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82화 (82/346)

82.

일이 꼬여도 너무 꼬였다.

함성준 전무는 깊은 고뇌에 잠겼다.

사내 제일의 중국통으로 모바일 시장의 개방과 동시에 중국의 시장성을 주목하고 제집처럼 드나들며 꽌시를 쌓았더랬다.

그 결과 한때는 회사 전체 매출의 50%를 홀로 컨트롤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국제정세의 영향으로 중국의 판호가 막히면서 국내 게임의 중국시장 진출이 난항을 거듭하기 시작.

그의 영향력 역시 갈수록 낮아지기 시작했다. 반면 한참 아래로 여기던 이걸영 상무는 문상훈과 손을 잡고 승승장구하며 어느새 위협적인 파벌을 일궈내며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제 오른팔에게 배신당한 주제에 공격을 감행해?”

도무지 신중한 이걸영 답지 않은 처세다.

뭔가 있다.

분명히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배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작은 건수로 나와 부딪치는 것은 상수가 아닐 텐데? 집 단속에 신경 써도 부족한 상황 아닌가?’

‘물길이 바뀌면 입질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전무님이야말로 정말 이런 사소한 일이나 신경 쓰고 계셔도 되겠습니까?’

마치 문상훈의 반란 따위는 한참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는 투였다. 아니,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본사 재직 시절에는 미친개로 소문이 파다하던 문상훈이다.

문상훈은 애초에 남의 밑에서 일할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신도 그렇게 판단했기에 영입에 주저하던 차에, 이걸영이 먼저 손을 쓴 것이지 않나?

그렇다면 남은 것은 뭔가?

“부회장이라······.”

몇 해 전 난데없이 김태영 대표라는 외부인사를 대표이사로 취임시킨 것을 시작으로 조양길은 마치 자신에게 너는 거기까지다라고 선을 그은 것 같았다.

사적인 자리에서 지금도 나쁘지 않은 관계지만 조양길은 예전부터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는 스탠스를 철저히 지켜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부회장이라는 목표를 선회할 수는 없다.

위기는 기회라는 얄팍한 생각이 아니다.

사람은 목표를 잃었을 때가 끝인 법이다. 아직 자신의 나이 60이 안됐다.

아직 한창이다.

정년퇴직?

웃기지도 않은 소리다.

날이 갈수록 젊은 인재들이 임원 딱지를 손에 넣는 경우가 늘어가고는 있지만, 함성준은 그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은 여전히 현역이고, 힘이 넘친다. 그리고 이루어야 할 목표가 남아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욱 우수한 인재들을 손에 넣어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져야 한다.

표세인이라는 인물을 보고 있자면, 그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반쯤 장난 같은 행동이었지만, 면접장에서 표세종을 만나고 난 뒤에는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표세인의 동생이라는 라벨을 떼고 봐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에 버금가는 인재라면 더없이 훌륭할 것이다.

“복잡한 생각하지 말자. 괜히 발목만 잡히는 법이지.”

함성준은 생각을 정리했다. 표세종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하나씩 풀어간다.

눈앞에 먹잇감도 낚아채지 못해서야, 어찌 큰 사냥에 나설 수 있겠나?

그때였다.

-삐삐삐!

책상에 비치된 사내 전화가 울렸다.

“뭐지?”

-전무님, 미국지사에서 걸려온 전화입니다.

“미국지사?”

자신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미국지사에서 무슨 일이란 말인가?

“누구지?”

-미국지사의 센터장 마커스입니다.

“마커스?”

지금 한창 문상훈과 힘겨루기 중인 마커스가 자신에게 전화를 건 이유가 뭔가?

설마 이 시점에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아닐 텐데?

물론 도움을 청한다고 해도 딱히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애초에 독립 스튜디오이며, 외부 주주들의 입김이 강한 지역이다.

중국지사와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른 곳.

“연결해.”

-알겠습니다.

잠시 연결음이 지나가고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HAHAHA.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함.

“오랜만이군. 그런데 무슨 일로 나에게 전화까지?”

영문을 알 수 없기에 절로 경계심이 발동한다.

-제안을 하나 드릴까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제안? 그쪽이 나에게 제안할 만한 건수가 있나?”

자신이 마커스에게 해줄 것이 없는 것처럼,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사업 영역이 크게 다르다는 것도 문제지만, 당장 문상훈의 하드펀치에 직격당해 그로기 상태에 몰린 신세가 아니었나?

-듣기로는 딱히 좋은 상황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하! 쥐, 고양이 생각하는 격이로군.”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아니. 계속하게.”

마커스 말이 어이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한국어로 대답하고 말았다.

-사람 하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사람을?”

-예. 미스터 함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미국에 그런 사람이 있나? 차라리 문상훈이가 자신의 밑에 붙겠다면야, 그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커스가 주선할 수 있는 인맥 중에 자신에게 도움 될만한 인물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빙빙 돌리는 거지? 속 시원하게 말하면 안 되나? 문상훈에게 한 방 먹더니, 사람이 달라졌나?”

-HAHAHA! 승부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지요! 2016 슈퍼볼에서 나온 드라마틱한 역전극을 모르십니까?

“한국인들은 미식축구에 대해 잘 몰라. 슈퍼볼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을걸?”

-그건 정말로 아쉽군요. 아시안 보이들은 너무 연약한 이유가 바로 진정한 남자의 스포츠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아시안 보이에게 콧대가 납작해진 양반이 할 만한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워낙에 유명한 소란이었던 지라, 함성준의 귀까지 마커스의 코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미스터 세인은 논외로 하지요. 대체 MMA 선수가 왜 게임 회사에 있는 것입니까?

이 안하무인이 이렇게 기가 죽을 때가 있다니? 함성준은 기분이 살짝 유쾌해졌다.

“그래서, 누구야. 더는 시간 끌지 말기로 하지.”

-하하하. 미스터 프린스라고 하면 이해하시겠습니까?

“프린스?”

-회장님의 장남. 조연준. 그 친구가 미스터 함과 나눌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함성준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일발 역전의 찬스일지 모른다는 직감!

마치, 처음 중국시장에 발을 들였을 때, 느꼈던 황금의 향기가 다시금 코끝을 스쳤다.

*

*

*

일이 술술 풀린다는 말이 있다.

마치 산 위에서 구르기 시작한 돌처럼 막힘없이 굴러내러 간다.

이 현상의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홍기도의 변신 때문이다.

트레이너의 허락도 없이 어디서 열정열정 열매라도 집어 먹은 것인지, 자리에 붙박이처럼 틀어박혀서는 미친 속도로 기획서를 쳐내는 홍기도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동을 넘어서 두렵기까지 할 정도.

팀원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다니.

정말로 홍켓몬만이 선보일 수 있는 재주다.

“티, 팀장님. 저 조금 두려워요.”

함송희가 나직이 말했다.

“미안하다. 송희야.”

“팀장님이 왜요?”

“팀장으로서 나만 믿으라고, 걱정할 것 없다고 팀원을 안심시켜줘야 하는데······.”

-타다닥! 타다다다다!

홍기도의 자판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절로 오싹한 기분이다.

“내가 더 무서워.”

“홍대리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남궁대리도······.”

-파파파파파팟!

홍기도가 설치니, 남궁원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분노의 기획서 뽀개기에 한창이었다.

우리 파티의 파이터인 남궁원과 도적인 홍기도가 좌우에서 쉬지 않고 원투펀치를 날려대니, 기획서가 후두둑 쏟아진다.

덕분에 나는 여유롭게 함송희와 개발툴 기획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너무 찜찜하긴 한데······.’

너무 편한 나머지 감히 이유를 알기가 두렵다. 그냥 모른 척 지나가면, 최대한 이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그 왜,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같은 느낌 있지 않나?

지금 내 상황이 딱 그거였다.

“대충 필요한 기능들은 숙지했지?”

“네.”

며칠 동안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심한 결과 기초 개발툴에 대한 내용은 거진 정리가 되었다.

개발툴을 기획팀 안에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눈부신 일인가?

기능하나 추가해 달라며 프로그래머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야 했던 옛날 일을 떠올리면 감회가 남다르다.

“그럼 부탁할게. 파이팅.”

“네, 팀장님도요.”

함송희는 씩씩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때마침 한팀장이 다가왔다.

“표팀장.”

“한팀장님?”

“오늘 분위기가 좀······. 다르네? 뭐지? 보기엔 이상할 것이 없는 느낌인데.”

한팀장은 슬쩍 기획팀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획팀 전원이 열심히 일에 매진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의아함을 느끼다니······.

“하하, 무슨 일이세요?”

나는 혹시라도 홍켓몬의 주의가 흐트러질까 싶어 말을 돌렸다.

“잠깐 옥상으로 갈까?”

“그러시죠.”

나는 한팀장과 함께 옥상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세요.”

“아, 별일은 아니고 표팀장에게는 말해둬야 하지 않나 싶어서.”

“?”

“표팀장 동생 말이야. 표세종씨.”

“아, 네.”

“가능하면 우리 팀으로 끌어오고 싶었는데, 조금 상황이 묘한 것 같아서 말이지.”

“딱히 우리 팀이 아니라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내 말에 한팀장이 슬쩍 뺨을 긁었다.

“솔직히는 그냥 내 욕심 때문에.”

“욕심이요?”

“한번 잘 가르쳐서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렇습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동생을 칭찬해주는 말에는 기분이 나쁠 수가 없다.

단둘뿐인 형제지만 워낙 나이 차가 있어서 막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묘하다는 말씀은 무슨 말씀이신가요?”

“함전무님과 이상무님이······. 아주 대놓고 자기가 점찍었다며 기 싸움을 하시는데, 나는 뭐 낄 레벨이 아니란 느낌이랄까?”

한팀장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왜 웃어? 그래도 함께 일 하는 편이 좋지 않아?”

“글쎄요. 그래도 그놈이 운은 좋네요.”

“운이 좋아?”

“입사 시작부터 높은 분들 눈에 든 것 아니겠습니까?”

“신입 때부터 그런 분들 눈에 들면 오히려 혼란스럽지 않을까? 부담스러울 수도 있잖아?”

“그놈은 그런 놈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부담을 갖는 방식도 가지각색.

세종이는 막상 큰 경기에 나설 때 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때도 있지만, 반대로 어려서부터 막내둥이로 이쁨을 받는 일에 익숙해서, 어른들이 관심을 받으면 더욱 분발하는 타입이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세종이를 좋게 보신 건가요?”

“남자답고 호쾌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달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팀워크에도 잘 적응하는 타입 같은 느낌이고 말이지.”

“뭐, 그 부분은 저보다 낫겠죠.”

“그래?”

걱정하는 부분이 코딩 실력이지, 사회생활은 아니다.

사실 나도 은근히 반골 기질이 있어서, 지난 회사에서는 고생 좀 하지 않았던가?

그에 비해 세종이는 어디 가서 미움받는 스타일은 아니다. 확실히 그 부분은 나보다 낫다.

“그건 그렇고 오늘 기획팀은 분위기가 뭔가 좀 다르네?”

“그렇죠?”

“뭐가 다른 거지?”

“실은 저도 잘 모르겠는데, 기도가 갑자기 일을 열심히 하네요. 딱히 푸시한 것도 아닌데, 딴청 한번을 안 피우고 홀린 듯이 모니터 앞에 붙어있네요.”

말로 내뱉고 나니, 뿌듯함까지 느껴질 지경. 이것이 바로 트레이너의 감동일까?

하지만 정작 트레이너인 나는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홀로 버프 걸려서 열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시 좀 걱정이 든다.

“설마······. 철들었나?”

나이 서른도 넘은 녀석을 철들었다고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에이, 설마요.”

응. 아니야. 아닐 거야. 세상 모든 사람이 철들어도, 홍켓몬에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지.

“그렇겠지? 뭐, 일 열심히 하면 좋지.”

“그러게요. 이번 일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겠네요.”

열일하는 펫에게는 간식이 주어져야 하는 법!

내가 또 악덕 트레이너는 아니지 않나?

“한팀장님.”

“응?”

“프로그램팀 모두에게 전해주세요. 당분간 홍대리에게 말 걸지 말라고.”

“아! 그, 그래. 이럴 때 잘 키워야지. 혹시 아나? 이게 버릇이 들지?”

“그, 그럴 수 있을까요?”

“아니.”

한팀장은 정색했다.

그렇게 정색하실 것 까지야······.

어쨌든 일이 술술 풀린다. 이대로만 가자!

< 생각지도 못한 복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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