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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83화 (83/346)

83.

‘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

남궁원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등 뒤에 앉은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벌써 며칠째이던가?

홍기도의 갑작스러운 페이스에 보조를 맞추다 보니, 자신 역시 평소보다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상하다.

지금 사무실 공기가 전과는 너무도 달랐다.

분위기 메이커였던 홍기도가 그래픽팀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앉아서 기획서만 쳐내고 있고, 가끔 일어난다 싶으면, 여자라고는 한 명도 없는 프로그램팀에 가서 업무 관련 대화만 짧게 나누고 온다.

‘하다못해 팀장님까지 쟤 눈치만 보고 있고.’

물론 표세인의 마음은 백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홍기도가 갑작스럽게 일에 전념하고 있지 않나? 팀장으로서는 부디 오래오래 유지되기를 바랄 것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더 두고 보기에는 찜찜함이 지나쳤다. 최소한 이유라도 듣고 싶었다.

“야. 홍기도.”

“!”

“!”

정작 홍기도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에서 의자 들썩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걔한테 말 안 걸면, 안 되니?’

등을 돌리자, 표세인이 애절한 눈빛을 발사하고 있었다.

‘이게 되는 거였구나.’

전에는 표세인과 홍기도의 눈빛 대화가 부러웠더랬다.

하지만 도저히 자신은 그들처럼은 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오늘은 표세인의 눈을 통해 속마음이 속속들이 읽힌다.

‘사고 안 칠게요. 그래도 이유는 알아야죠. 안 불안하세요?’

‘난······. 몰라도 될 것 같은데······. 혹시 철든 것인 수도 있지 않아?’

‘팀장님.’

‘왜?’

‘얘 홍기도에요.’

‘그렇지요. 그랬네요. 그게(?) 홍켓몬이라는 사실을 잊고 싶었어요.’

‘아무튼 팀장님이 가만히 계시니, 이 녀석 머릿속 좀 들여다보고 오겠습니다.’

‘나 지금 현재 업무 속도로 일정 계산하고 있었는데······.’

표세인 팀장은 못내 아쉽다는 눈빛이었다.

“무슨 일인데?”

-타다다닥.

홍기도는 등을 돌리지도 않은 채로 질문했다. 그리고서는 자판을 오가는 손은 멈추지 않고 있다.

“담배 한 대 피우자.”

“나 지금은 딱히······.”

“가자.”

남궁원은 생각 없다는 홍기도를 끌고 옥상으로 향했다.

“표팀장님.”

“네?”

안문주 차장을 비롯한 홍기도와 가까운 그래픽팀 여직원들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우리 기도 괜찮은거죠?”

“지금 저거 표팀장님 작전이죠?”

“어떻게든 해 주실 거죠?”

모두가 한결같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와중에 표세인은 생각했다.

‘이대로가 좋다고 하면, 그래픽팀과 원수지려나?’

표세인은 잠시 눈을 감고 홍기도의 업무속도와 그래픽팀과의 파트너쉽을 저울에 올렸다.

‘아, 쉽지 않다.’

표세인은 혼란에 빠졌다.

*

*

*

“너 무슨 일 있냐?”

남궁원은 담배 연기를 깊게 내뿜은 후에, 용건을 꺼냈다.

“그거 물어보려고 일하는 사람 여기까지 끌고 온 거냐?”

“응.”

홍기도가 뭐라건 남궁원은 당당했다. 무엇보다 업무시간마다 여기저기 쏘다니던 홍기도가 업무 운운한다고 찔릴 턱이 없다.

“궁원아.”

“미친 새끼가······. 이 와중에도 장난치냐? 누구 맘대로 호적 고쳐 쓰냐.”

“원아.”

“잠깐, 그거 이상하다. 선 넘지 말지.”

“남궁원아.”

“······장난 그만 치고, 그냥 남궁원이라고 불러라.”

남궁원의 말에 홍기도는 대답 대신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우.”

“분위기 그만 잡고 말하지?”

남궁원의 채근에도 홍기도는 담배 연기만 내뿜었다. 그러다 남궁원이 못 참겠다 싶을 때쯤, 홍기도가 입을 열었다.

“···팀장님 말이야.”

“팀장님이 왜?”

“여기 오시고부터 엄청 눈에 띄게 되셨잖아?”

“뭐 그렇지. 솔직히 기획팀장 이름으로 스튜디오를 따로 빼준다는 것도 무슨 일인가 싶지.”

독립 스튜디오는 어쨌건 별개의 법인이기에 그곳의 수장은 대표이사인 셈.

따라서 본사 기준으로 최소 실장급, 더러는 이사급 대우이기 마련.

그런데 기획팀장급 인사를 중심으로 덜컥 스튜디오를 구성한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내정치라는 건 잘 모르겠는데.”

“니가 그걸 알고 있었다면······. 넌 진짜 사이코패스지.”

그간 홍기도의 행적을 지켜본 모두가 동의할만한 평가였다.

모르니까 저러는 거겠지. 이것이 그나마 홍기도에게 내려질 수 있는 최선의 평가가 아니겠나?

“지금 팀장님 밑에 우리뿐이잖아?”

“그런데?”

“대리 직함으로는 팀장님을 돕기가 어렵겠지?”

“너, 너 누구냐!”

남궁원은 당황했다.

도대체 지금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이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홍기도가 이런 멘트를 입에 담다니?

“여기 와서 반년 동안 팀장님하고 시시덕거리느라 생각을 못 했는데, 지난번에 양실장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도 어느 정도는 보조를 맞춰야겠다 싶더라고.”

홍기도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너도 알다시피 팀장님, 여기 와서 물 만난 고기처럼 승승장구하고 있잖아? 그러니 뒷받침은 못 할지언정 발목은 잡으면 안 되는 거잖아.”

“그, 그렇지.”

남궁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팀장님 기세면 나중에 실장이든, 이사든 곧장 올라가 버릴 것 같은데, 최소한 팀장 직함 달고 지원할 스펙은 갖춰야 하지 않겠어? 일단은 과장부터 달아야겠지만.”

“과, 과장?”

“그래서 액셀 좀 밟고 있다. 그러니 당분간 나 건들지 마라.”

“잠깐, 너 그럼 과장 진급 노리고 지금 이러고 있다는 거야?”

“응. 그래도 내가 오른팔인데······.”

“니가 왜 오른팔이야!”

남궁원의 말에 홍기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이 남궁원을 더욱 흥분시켰다.

“니가 오른팔이면 내가 왼팔이란 거냐?”

“모르지? 아무거나 골라, 앞다리든 뒷다리든······.”

“팀장님이 무슨 켄타우로스냐?”

“지금 그게 중요하냐?”

평소에 이상하던 놈이 제대로 된 소리를 하니까, 어이가 없다.

“애초에 니가 나보다 과장 진급을 빨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사내평가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홍기도에게 밀릴 일은 없다. 아니,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남궁원은 다른 것은 몰라도 지고는 못사는 타입, 더군다나 상대가 홍기도라면 말할 것도 없다.

“딱히 널 신경 쓰는 것은 아닌데?”

화르륵!

뚜껑 열린다는 말이 있다. 지금 남궁원의 상태가 바로 그 상태였다.

마치,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 같은 천연덕스러운 표정.

내심 표세인 밑에서 홍기도를 경쟁상대라고 생각했던 남궁원에게는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다.

“좋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뭔 소리야?”

“해보자고.”

“뭘 해봐?”

“누가 먼저 과장 진급하는지, 한번 해보자고.”

“아니, 니 일은 니가 알아서 하고 나는 그냥······.”

홍기도는 무심한 얼굴로 풀 엑셀을 밟았다.

“표세인 팀장님은 사적인 감정을 넘어서, 업무성과를 제대로 봐주시는 분이야.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나보다 너를 우선시하실 분이 아니야.”

“······나 내려가도 되냐?”

“내가 먼저 내려갈 거다!”

남궁원은 씩씩거리며 먼저 옥상을 내려가 버렸다.

그리고 홍기도는 남궁원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얌전히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흠······. 예상보다 더 효과가 좋네.”

불난 곳에는 기름을! 언 곳에는 찬물을!

이것이 홍기도가 표세인 곁에서 배운 인재운영방식이었다.

“그래, 너도 힘내라.”

앞서 말했듯이 표세인은 더욱 높은 곳으로 내달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과장직급 따위 첫 계단에 불과할 뿐!

홍기도에게 순서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팀장님에게 진 빚 갚으려면, 나도 포지션은 갖춰야겠지.’

어쨌든 자신은 표세인의 힘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표세인 본인도 모르는 홍기도만의 비밀.

홍기도는 한껏 기지개를 켜고는 옥상을 벗어났다.

*

*

*

한편, 남궁원과 홍기도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얘는 정말로 승진이라도 시켜야겠는데?’

표세인은 함송희가 만들어온 개발툴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이거 고작 며칠 만에 함송희씨 혼자서 뚝딱 만들었다고?”

표세인의 부름에 불려온 한명수 역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별거 아니에요, 어차피 뉴니티 엔진을 이용한 툴 관련 스크립트는 오픈소스로 퍼져있잖아요?”

함송희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런 겁니까?’

‘그럴 것 같아?’

‘그럴 리가 없겠죠.’

모든 분야마다 고유의 천재가 있기 마련.

일례로 넥스트 박스 게임기의 경우, 차세대호환 기능에 대해 오랜 시간 골머리를 썩였었다.

그때,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홀로, 될 것 같은데? 라며 수많은 시니어 개발자들이 포기했던 호환기능을 처리해버리고, 그 공로로 호환부서의 수장으로 취임해버린 예도 있지 않은가?

“그보다 남궁대리님과 홍대리님이 걱정이네요.”

“함송희씨.”

“네?”

“지금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죄,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게······.”

“일단 선임연구원 정도 직함이면 되겠네. 이런건 제 선에서 가능하죠?”

표세인의 말에 한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독립 스튜디오잖아? 팀내 인사고과야 표팀장 마음이지?”

“?”

함송희는 대화의 흐름을 쫓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함송희씨 조만간 선임연구원으로 올릴게. 당장 팀을 이끄는 것보다는 자율성을 보장받는 편이 낫겠어.”

“네?”

“본사직급 체계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스튜디오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그때 정식으로 직급과 연봉도 논의해 보자고.”

“네?”

여전히 이해를 못 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함송희를 뒤로 한 채, 표세인은 그녀가 만들어낸 툴을 살펴보며 입맛을 다셨다.

좋은 개발툴은 개발자에게 천군만마나 다름 없다.

“이거 데이터 테이블 직접 연동되게 작업할 수 있지?”

“그거 이쪽 버튼 누르시면······.”

“벌써 들어가 있어?”

“스크립트 머지 기능도 있으니까, 클라이언트에서 작성한 스크립트 우선 테스트는 이렇게 하시면······.”

힐러라는 것은 결국 파티원들의 전투를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돕는 포지션이 아니던가?

“이, 이거 진짜 미쳤네?”

마치 큰 싸움 중에 쏟아지는 미칠듯한 힐 샤워를 경험하는 기분이랄까?

“무슨 일 있으세요?”

때마침 남궁원과 홍기도가 돌아왔다.

“하던 이야기는 잘했냐?”

“네, 뭐.”

남궁원은 머쓱하게 대답했고 홍기도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좀 봐봐. 함송희, 아니, 아니지. 함선임이 만들었다.”

“함선임?”

“어. 니들도 앞으로 함선임이라고 불러라.”

“갑자기?”

“일단 이거 보고 말해.”

표세인의 말에 남궁원과 홍기도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 그냥 별거 아니에요. 뉴니티 엔진도 막상 다룰 때, 불편한 점도 있고 게임마다 필요한 기능이 다르니까, 저는 그냥 깨비몬 개발에 맞게 정리정돈한 것 뿐이에요.”

“하, 함선임님.”

“함선임님.”

기획자에게 훌륭한 개발툴이 지닌 위상은 남다르다. 더군다나 앞으로도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 달라고 요청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겠나?

“야, 개발툴을 기획에서 컨트롤 할 수 있다니? 대단한데? 솔직히 함송희씨 처음에 기획팀으로 발령 났을 때는 있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가만, 그런데 이러면 그냥 다시 프로그램팀으로······.”

“한팀장님!”

“?”

“싸울래요?”

남궁원과 홍기도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자세를 취하자, 한명수는 농담이었어 라며 슬쩍 물러났다.

“그, 그냥 전처럼 함송희라고 불러주시면 안 되나요? 함선임은 좀 부끄러운데요.”

“우리끼리 뭐라고 부르든 별 상관은 없는데, 함송희씨는 좀 빨리 익숙해져야 할 거야?”

“네?”

“곧 있으면 얘들보다 먼저 과장 달지도 모르겠는데?”

“네?”

“네?”

“네?”

세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뭘 놀라, 요즘 세상에 입사 시기로 승진하나? 일 잘하면 승진하는 거지, 안 그래?”

남다른 속도로 승진 등반 중인 표세인의 말이 아닌가?

말에 무게가 남달랐다.

‘갑자기 함송희씨?’

‘내, 내가 함송희까지 걱정해야 한다고?’

‘함선임······. 어감 별론데?’

홍기도, 남궁원, 함송희.

기획팀 3인방의 과장을 향한 승진 레이스가 시작됐다.

< 금광 좀 캐고 올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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