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98화 (98/346)

98.

“정말 괜찮으세요?”

“그럼, 당연히 상관없지. 다들 마음껏 즐기라고. 하하!”

박대표는 호탕하게 웃었다. 실제로 지금 그에게 돈은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그저 남궁원과 단둘이 대화할 기회가 사라진 것이 조금 아쉬울 뿐.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넌 사양 좀 해라, 임마!”

“박대표님이 괜찮다는데, 네가 뭔 상관이냐?”

“그래도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남궁원은 메뉴판을 쥔 홍기도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홍기도는 신경쓰지 않고 제 마음대로 주문을 했다.

“둘이 사이가 좋아 보이네, 동기인가?”

“네. 입사동기에요. 전 회사는 어쩌자고 이런 녀석을 뽑은 건지.”

“솔직히 전 회사가 인재풀은 좋았지.”

“그게 네 입으로 할 소리냐?”

“표팀장님도 전 회사 출신이잖아.”

“······그건 그렇지.”

표세인의 이름이 나오자, 남궁원은 슬쩍 물러났다.

“그런데 표팀장님은 왜 더 좋은 회사로 옮기지 않으시고, 계속 거기에 계셨던 걸까?”

“아, 그땐 그 우리 표상무가 날아다닐 시점이었으니까.”

남궁원의 질문에 박영수가 대답했다.

“날아다녀요?”

“응. 솔직히 인상하나 보고 뽑았었거든? 예전에는 기획을 딱히 포트폴리오로 뽑던 시절이 아니었어. 죄다 다른 게임 분석하거나, 역기획서를 제출하던 때라서, 그것만으로 업무역량이 파악이 안 되던 시점이라. 무조건 면접으로 뽑던 시절이거든.”

“혹시 표팀장님 면접, 박대표님이 보셨어요?”

“어, 그 당시 팀장님이 외근을 나가셔서, 파트장이었던 내가 면접을 대신했지. 그 시절에는 기획이니, 프로그래밍이니 할 것 없이 죄다 한팀 소속이었거든. 팀 규모가 워낙 작던 시절이라서. 아, 그때 표전무 진짜 빠릿빠릿했었는데.”

“표팀장님 옛날이야기 너무 궁금해요.”

가만히 듣고있던 함송희가 냉큼 끼어들었다.

“그냥 별건 없어. 지금처럼 눈썰미 좋고 손빨라서 금방금방 일을 배우고 그렇게 1년 지나니까, 남들 일까지 욕심내면서 ‘제가 하겠습니다’를 연발하기 시작하더라고.”

“오, 일 욕심. 역시 지박령.”

“아! 지박령, 그래 예전에 표팀장님 별명이 그거 였지?”

“지박령이요?”

맥베스에서 처음 표세인을 만난 함송희는 이전회사의 일을 알지 못했기에 급 관심을 보였다.

“표팀장님 예전에 진짜 퇴근 안하시지 않았나?”

“하긴했는데, 워낙 철야, 야근이 잦아서 그렇게 보였던거지.”

“그랬나?”

“표이사가 원래 승부욕에 일욕심도 있지만, 그 시절에는 콤플렉스가 강했거든.”

“콤플렉스요?”

“체대 출신이잖아. 지금이야, 학벌 운운하는 사람들 많이 줄었다지만, 예전에는 장난 아니거든.”

박영수의 말에 민대리가 슬쩍 말을 보탰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서울대라인들 가끔 자기들끼리 따로 밥먹잖아요.”

“지금도 그런 친구들이 있구나.”

“언제나 있기 마련이죠. 아! 고기 왔다.”

“고기는 제가.”

표세종은 냉큼 일어나서 고기를 받아 불판에 올렸다.

-치지직.

금방 핏물이 끓어오르며 고소한 냄새가 맴돌기 시작했고 표세종은 정말로 숙련된 솜씨로 박영수를 시작으로 순서대로 고기를 분배했다.

“진짜 잘하네.”

“역시 표팀장님 동생 답네.”

“표전무 동생이라고?”

표세종이 표세인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박영수가 조금 놀랐다는 얼굴로 표세종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살짝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형은 엄마 닮고, 저는 아빠 닮았어요.”

“그렇구나. 만나서 반가워, 나 좀비로얄 대표 박영수야.”

“표세종이라고 합니다.”

“소속이 기획?”

“아닙니다. 프로그래밍입니다.”

“형이랑 다르네?”

“네. 저는 형과는 다릅니다.”

마치 표세종은 형과 다르다는 것이 자랑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면 표팀장님 이야기는 세종씨에게 들어야겠네. 표팀장님 어릴때는 어땠어요?”

남궁원의 질문에 함송희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표세종은 곰곰이 머리를 굴렸다.

“솔직히 나이 차이가 커서 직접 본 것은 적은데, 한때, 부모님이 형보고 목수라고 불렀었어요.”

“목수?”

“뭐 만드는 것 좋아하셨어요?”

“아니요. 부모 가슴에 대못 박는다고······.”

“에?”

“표팀장님 어릴 때 불량했어요?”

모두의 지나친 관심에 표세종은 뺨을 긁적였다.

“불량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랬으면 부모님 성격에 내쫓았겠죠.”

“그럼 무슨 대못을 박았어요?”

“형이 상비군 발탁되서, 태릉에서 올림픽 준비하던 중에 사고를 쳤거든요.”

“사고?”

“그 당시 형은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헤비급 유망주여서, 대표발탁이 거의 확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비군에서 쫓겨났을 때, 집안 분위기 정말 장난 아니었죠.”

“왜요? 왜 상비군에서 쫓겨났어요?”

함송희는 표세종을 다그쳤다.

“그때 협회장 손잔가? 하는 사람이 형 후배와 선발전에서 편파판정 시비가 붙었었는데······.”

“그랬는데?”

“태릉에서 형이랑 대련중에 형이 그 사람 다리를 부러트려버렸어요.”

“다리를?”

“자, 잠깐. 대련 중이라면 단순 사고 아냐?”

“다들 그렇게 말했지만, 어쨌든 형은 상비군자격 박탈당했고, 그 길로 바로 군대 지원했죠. 운동선수가 한창때, 입대한다는 것은 선수 생활 접는다는 거니까요. 그리고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한국에서는 협회에 찍힌 선수는 선수 생활 불가능하거든요. 게다가 특전사라 4년이나 되니까······.”

“그런 일이 있었구나.”

“표팀장님 성격 있구나.”

“진짜 멋있네요. 팀장님. 그거 후배 복수 해준거잖아요. 그쵸?”

함송희의 말에 표세종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은 진짜 사고였다고 하는데, 아마 복수 맞겠죠.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이라서 전성기 지나면 기회가 없으니까. 원래 형이 자기 사람은 끔찍하게 챙기거든요.”

“맞아. 표전무가 그런 면이 있지. 홍기도씨는 알겠네. 전 팀장에게 의리 지킨다고 송부장에게 완전히 찍혔던 것 아냐.”

“아, 그랬죠. 그때 진짜 외주팀에서 눈칫밥 먹느라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홍기도는 이전 회사에서의 고생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표세인과 둘이서 외주팀에서 구르던 시절은 홍기도에게 조차 끔찍한 기억이었다.

“진짜 표팀장님은 너무 멋있지 않아요?”

“뭐, 멋있긴 한데······. 너 눈이 너무 풀렸다. 표팀장님 애인있어. 정신차려!”

남궁원은 눈이 반쯤 하트가 되어있는 함송희의 어깨를 툭 밀었다.

“이건 그냥 팬심이죠.”

“팬심? 표팀장님이 무슨 연예인이야?”

“저한테는 그런거죠. 헤헤헤.”

“혹시 체육대회 때, 표팀장님께 반한건가?”

“네, 맞아요. 정말 멋있었어요.”

요즘 애들은 정말 다르네, 하고 박영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저 함송희가 조금 특이한 캐릭터일뿐.

“요즘엔 특히 더 멋있어지지 않으셨어요? 슈트핏 최고라고 생각해요.”

“아, 맞아. 그건 인정.”

“그거 비싼 거던데, 요즘 돈 많으신가 봐. 이전 회사에서는 맨날 돈 없다고 힘들어하셨었는데.”

“맞아요. 저한테도 지난번에 용돈 정신 나간 수준으로 주더라고요.”

표세종까지 합세해서 요즘 풍족해진 표세인의 주머니 사정에 동의했다.

“그런데 다들 표팀장님 엄청 좋아하시네요?”

민대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뭐, 싫어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타입이잖아? 상냥하고 배려심있고, 일 잘하고.”

“고기 잘굽고.”

“넌 또 무슨 헛소리냐?”

“이거 중요한 거거든?”

남궁원과 홍대리는 다시금 투닥거렸다.

“솔직히 밖에서는 하도 낙하산, 낙하산 그러기에 좀 다르게 생각했었는데요.”

“뭐?”

순간 모두가 도끼눈으로 민대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민대리는 아차, 하며 손을 휘저었다.

“아니, 제가 그랬다는 것이 아니고······. 그치만 다들 아시지 않아요? 밖에서 표팀장님한테 어떤 소문이 있는지?”

“소문?”

“회장님 숨겨둔 아들이라거나, 양실장님 동생이라거나······.”

“음······. 우리 엄마 서씨인데.”

“아무튼, 그런 소문이 무성해요. 솔직히 이번 사내벤처만 해도 팀장급에게 던져줄 만한 일이 아니잖아요?”

민대리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표세인의 활약이 대단한 것은 맞지만, 그가 얻은 포상들 역시 하나 같이 믿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아!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홍기도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넌 또 뭔 헛소리를 하려고 갑자기 난리냐?”

“표세종씨라면 알거 아냐. 환상종!”

“아! 팀장님 여자친구!”

“그,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상견례도 하셨다면서요.”

“어······. 어, 그게······.”

순간 표세종은 패닉에 빠졌다.

‘다른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절대 말하면 안된다고 했는데······.’

하지만 대충 넘기기에는 모두의 관심도가 지나쳤다.

“팀장님 여자친구분 예뻐요?”

이 정도는 말해도 되나? 그래, 이름만 밝히지 않으면 되지 않나.

“네. 예뻐요. 솔직히 미녀와 야수죠.”

“팀장님이 야수는 아니지 않나?”

“한팀장님이 와이프분과 미녀와 야수 같은 구도라고 들은 적은 있는데······.”

“아니, 짐승남에 상남자 같은 거라면 그럭저럭······.”

“두 사람 어떻게 만났어? 이야기 들은 것 있지?”

홍기도는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게, 아마······. 몇 년 전인가 형이 전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정의의 응징!”

-퍽!

“꽥!”

머리 위로 묵직하게 내리꽂히는 주먹에 표세종은 괴상한 신음을 흘렸다.

“누구 허락 받고 내 연애사를 읊어대는 거냐.”

야생의 표세인이 등장했다.

“혀 깨물었잖아!”

“아, 피 안나네. 요즘 펀치력이 많이 떨어졌나본데? 이리와봐, 감 좀 잡아보자.”

표세인은 잠시 동생과 투닥거린 이후, 자리에 앉았다.

“늦었습니다.”

“아니야. 내가 갑자기 부른건데 뭐.”

“다들 재미있는 이야기 나누고 있었어? 민대리와 공대리까지 와 있으니, 보기 좋네.”

“권차장님은요?”

“따로 선약이 있으시다고 가셨어. 나중에 정식으로 팀 회식 때 기회가 있겠지. 권차장님은 술 하시지?”

표세인의 질문에 민대리와 공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희 둘 합친 것 보다 세실걸요?”

“아이고, 그정도면 장난 아니시겠네. 몸 사려야 겠네.”

“표팀장님도 술 잘드시지 않으세요?”

“나도 이제 예전 같지 않거든.”

“임마,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되냐. 꼭 젊은 것들이 노인 행세를 한다니까.”

박영수의 핀잔에 표세인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그보다 웬일로 여기까지와서 저희팀원들 술까지 사주시게 되신 겁니까?”

“남궁대리 스카웃하러 왔는데, 어쩌다보니 코가 꿰었지.”

“그렇군요. 홍기도가······.”

굳이 듣지 않아도 상황이 어찌 흘러간 것인지 정도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네가 요즘 조용하다 싶었다.”

“제 안에 흐르는 사냥꾼의 피가 발동했을 뿐입니다. 공짜술이 눈에 보이는데, 그냥 넘어갈 순 없잖아요.”

“사냥꾼 보다는 참새가 어울리지 않냐? 방앗간 보인다고 쌩하고 달려들었겠지.”

“흠, 듣고보니, 참새가 더 귀여운 것 같네요. 참새로 할게요.”

“······.”

“너도 고생이 많겠구나.”

박영수가 넌지시 잔을 들었다.

“그보다 우리 남궁원 못 넘겨 드립니다.”

“하하, 그게 어디 팀장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나 어설픈 제안하려는 것 아니야.”

표세인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박영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차피 결정은 남궁원의 몫이니, 반쯤은 장난이면서도 반쯤은 진심인 상황.

“언니, 정말로 이직 생각있으세요?”

“어?”

이번에는 남궁원을 향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남궁원은 그녀답지 않게 슬쩍 좌우로 시선을 오락가락하며,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차피 개발자는 이직을 반복하면서 직급과 페이를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요즘에는 풍토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예전에는 이직을 못하는 사람이 무능력하다고 평가 받는 시절도 있었다.

박대표의 회사는 아직 규모는 작더라도, 현재 국내 개발사 중에서 첫손에 꼽히는 핫한 개발사 중에 하나로 여겨지고 있었다.

표세인과 다른 팀원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기회다.

“고민할 것 뭐 있어. 가야지.”

홍기도가 말했다.

“뭐?”

“이걸로 경쟁자 하나가 줄······.”

“이 미친놈이 뭐라고 지껄이냐, 갈 때 가더라도 너는 꺾어주고 간다!”

남궁원은 이를 갈았다.

‘이놈 이거 많이 컸네?’

짧은 촌극을 지켜본 표세인은 속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별것 아닌 장난 같은 말투였지만, 분명 남궁원의 머릿속에서 이직이라는 키워드를 승진 경쟁으로 뒤바꿔 버렸다.

‘홍켓몬······. 어느새 이렇게나 성장했구나.’

트레이너로서 눈가가 촉촉해질 정도다.

-띠링!

[홍켓몬은 광대놀음(혼란 디버프)을 습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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