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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04화 (104/346)

104.

-곧 도착합니다.

시간이 흘러 제임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두 위치로. 곧 도착한답니다.”

“알겠어.”

“호들갑은······.”

조회장은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연아와 함께 현관으로 향했다.

“너무 오바하는 것 아니냐?”

아무래도 자신이 현관까지 나와서 대기하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

하지만, 오늘만큼은 천하의 맥베스 회장이 아닌 내 각본에 출연하는 배우 입장이 아니던가?

그러니 배역에 집중해 주세요.

“아버님.”

“왜?”

“다른 것은 다 잊으세요. 이 순간만큼은 미션 성공에만 집중해 주세요.”

“뭘 또 그렇게까지.”

“타냐만 생각하세요. 손녀에게 좋은 할아버지 한번 되어주시는 겁니다.”

“나, 나도 안다.”

그래도 손녀 이름이 나오니, 금방 풀어진다.

“도착했나 보다.”

마침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저희······. 왔습니다.”

“!”

“!”

“!”

농담 안 하고 0.1초쯤? 현관에서 대기 중이던 우리 세 사람은 순간 돌처럼 굳어졌다.

제임스······.

진짜 웃는 얼굴 이상하다.

반면 회장님은······.

“타냐. 내가 할애비다. 기억 못하겠지만, 정말로 보고 싶었단다.”

조회장은 무릎을 꿇고 살짝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타냐는 어린아이 특유의 짓궂은 미소와 함께 호다닥 달려가 조회장의 품에 안겼다.

“방가워요. 할아부지.”

다소 서툰 한국어와 함께 타냐는 조회장의 양쪽 뺨에 번갈아 입을 맞추었다.

“어이고, 예쁘다. 우리 타냐 너무 예쁘다.”

조회장은 타냐의 등을 쓰다듬으며 너털 웃음을 흘렸다.

‘이건 연기 아니구나.’

나는 타냐가 품에 안길 때, 조회장의 등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자신의 자식이 낳은 자식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일까?

골치 아픈 문제 없이, 그저 무작정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존재.

내가 조회장님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아마도 머나먼 훗날의 일이겠지.

“반가워요.”

“저도요. 언니.”

밝은 갈색 머리가 인상적인 로렌스는 연아를 껴안으며 그녀의 양 볼에 입을 맞췄다.

“표세인?”

그리고는 나에게도 포옹을 시도했다. 나는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며 그녀의 행동에 보조를 맞추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볼 키스를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네요?”

“······예.”

이거, 아무래도 제임스에게 제시한 미션이 생각 보다 난이도가 많이 높은 것 같다. 제임스는 안면 경련이 의심스러울 정도의 어색한 미소로 로봇처럼 대꾸했다.

‘훗, 네놈이 그러면 그렇지.’

타냐와 함께 거실 소파에 걸터앉은 조회장은 제임스의 어색한 미소를 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자신과 경쟁할 깜냥 따위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훤히 드러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회장은 다시금 타냐와의 대화에 정신이 팔렸다.

“타냐, 배고파요.”

“오냐, 오냐. 이 할애비가 금방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주마.”

“제가 도와드릴까요?”

로렌스가 일어나려했지만, 연아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만류했다.

“아니에요. 이미 준비는 다 끝났어요.”

그 사이 나는 한발 먼저 주방에 들어가, 된장찌개에 불을 올리고, 비빔밥 재료들을 옮겨담기 시작했다.

“다 튀겨두었으니, 양념과 함께 살짝 볶아주시기만하면 됩니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

조회장은 닭강정이 엄청난 요리라도 되는 것처럼 긴장한 얼굴로 프라이팬과 주걱을 움직였다.

“자, 먹자.”

“치킨!”

“닭강정이라고 하는 거다. 타냐는 먹어본 적 있니?”

“이건 치킨볼 같은데, 울퉁불퉁해!”

어린 아이 특유의 하이텐션이랄까? 타냐는 처음 본 닭강정에 눈을 반짝였다.

“자, 할아버지가 잘라 주마.”

조회장은 닭강정을 반토막으로 잘라서 타냐에게 먹여주었다.

“음! 맛있어요!”

타냐 몫의 닭강정은 따로 매운맛을 줄이고 단맛을 올린 특제였다.

다행히 어머니에게 받은 레시피가 효과가 있던 것인지, 아니면 조회장의 정성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타냐는 엄지를 치켜들며 어깨춤을 추었다.

“정말 맛있네요. 이걸 아버님께서 하셨다고요?”

“음······.”

로렌스의 감탄과 제임스의 놀란 얼굴까지! 확실히 내가 먹어봐도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아버님이 요리도 잘하신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나는 거짓말 한 것이 아냐. 나도 몰랐으니까.”

제임스는 정말로 당황한 모양이었다.

“자, 이렇게 비비는 거란다.”

“오오!”

주변 반응이야 어떻건 조회장은 오직 타냐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녀의 비빔밥을 비벼주는 통에, 정작 자신은 한 술도 뜨지 못한 상황.

“아버님, 타냐는 제가 돌볼테니, 아버님도 식사를······.”

“아니다. 나는 천천히 먹으면 된다.”

조회장은 마치 이 기회를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타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언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아빠도 타냐가 너무 예뻐서 저러는 거니까요.”

“다행이네요.”

로렌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내심 긴장했던 모양.

가만히 로렌스를 바라보던 연아는 슬쩍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뭔가 좋다.”

“좋아?”

“응. 우리집은 이런 훈훈한 분위기······. 처음인 것 같아.”

“앞으로는 계속 이럴거야.”

“정말?”

“물론이지.”

네가 좋다고 했잖아. 그럼 계속 그렇게 되어야지.

“믿을게.”

연아 내 손을 꼭 잡았다.

“잠깐 바람 좀 쐬자.”

식사가 끝난 후, 조회장은 나와 제임스를 불렀다. 우리는 베란다로 나갔다.

“오늘······. 좋구나.”

“······예.”

진짜 이 부자지간은 정말 문제가 많다. 보통 이런 분위기면, 그간의 어색함이 눈 녹듯 사라지고, 가족애가 넘실대는 함박웃음쯤 나와줘야 하는 것 아닐까?

조회장은 타냐와 떨어지기가 무섭게 회장 모드로 돌입했고, 제임스 역시 미소인지, 뭔지 모를 이상한 표정을 곧바로 털어냈다.

“세인아.”

헉! 순간 너무 놀라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뭘 그렇게 놀라냐? 너도 아버님이라 불렀으니, 나도 이름쯤은 부를 수 있지.”

“그, 그렇죠.”

내가 아버님이라고 기습 공격했을 때, 회장님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이게 생각 보다 놀람이 크다.

“오늘 잘했다. 고맙다. 수고 많았다.”

뭔가 한마디씩 뚝뚝 끊어서 내뱉는 듯한 느낌. 아마도 뭔가 복잡한 심경이 얽혀 있기에 이런 말투가 나오는 거겠지.

“아닙니다. 아버님께서 수고가 많으셨죠.”

“정말로 아버지가 요리를 하신 겁니까?”

“그럼요. 앞치마와 두건까지 쓰고 열심히 하셨죠.”

“앞치마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조회장은 머쓱한 듯 고개를 돌렸다.

“직접 요리를······.”

“이제 그만 해라.”

“정말로 요리를 직접······.”

“그만하라니까.”

“아버지가 요리를······.”

아, 연아랑 남매 맞구나.

엉뚱한 부분에서 친남매 인증하네.

“아무튼 오늘 즐거웠고······. 그 뭐 가끔 이런 자리 나쁘지 않겠구나.”

종종 방문하라는 말을 이렇게 어렵게 돌려 말하다니.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또 있겠지요.”

종종 방문하겠다는 말을 이렇게 어렵게 돌려 말하다니.

사돈댁은 정말 문제가 있다. 이건 뭐 조씨집안 종특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처음 봤을 때처럼, 냉기가 풀풀나리를 분위기는 아니었다.

확실히 겨울이 지나 봄의 부드러운 바람이 찾아온 느낌이랄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이정도면 성공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 그러면 이제 평가를 내려보지?”

“네?”

“갑자기 웬 평가?”

“배우들 연기 지켜봤으니, 평가를 내려야지.”

조회장의 얼굴에 오늘 내내 사라졌던 짖궂은 미소가 다시금 떠올랐다.

“아, 사실 뭐 평가랄 것 까지도······.”

내가 제임스를 바라보자, 그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잘은 안보이지만, 뭔가 귀쪽에 살짝 그라데이션이 깔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제임스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무척 부끄러운 모양이다.

“회장님의 승리시죠.”

“그래. 당연한 결과지.”

“쯧.”

“뭐 처음부터 당연한 결과였으니, 그건 둘째치고 어쨌든 세인이 너는 오늘 고생했으니, 상을 주마.”

“아, 황금열쇠!”

“황금열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 제임스는 탈락. 하지만 세인이 너는 잘했으니. 황금열쇠 하나 주마.”

“이거 바로 사용해도 됩니까?”

“지금?”

“바로?”

내 말에 조회장과 제임스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

*

*

고부장의 음성은 상당히 고조된 상황이었다.

“자네가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는 거야. 이건 원래 분기별로 진행되는 부장급들 식사 자리야.”

고부장은 괜한 오해를 살까 전전긍긍했다.

분기별 부장 회동에 갑작스럽게 천이사가 참여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마도 천이사는 함전무가 자리를 비운 상이에 부장급 인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포섭하려는 모양.

하지만 이게 모양새가 우습게 되었다.

이러면 마치 천이사가 주최하는 모임에 자신이 참석하는 것 같은 그림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

이미 자신은 함전무 파벌을 떠나, 표세인측과 함께 하겠다고 결심한 상황.

행여나, 자신이 함전무측과 양다리를 걸치는 것 같은 모양새로 비칠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정작 스마트폰 너머로 들리는 음성은 무척이나 차분했다.

-진정하세요. 그보다 정확히 무슨 상황인거죠?

표세인의 질문에 고부장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당황한 탓에 자세한 설명 없이 너무 본건만 던지고 말았다.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야. 게다가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지.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함전무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상황이잖나.”

-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함전무님이 아무 말 없이 갑작스럽게 떠나신 것과 맞물려서 이사급들은 함전무님의 나이를 떠올리게 된거지.”

-확실히 함전무님이 적은 연배가 아니시죠.

“맞아. 그래서 이 기회에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다녀놓으려는 거지. 그 첫걸음으로 부장급들에게 충성서약을 받으려는 모양세랄까? 뭐, 실제로는 눈도장에 가깝겠지만.”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고부장의 머릿속에 부장 모임에서 천이사가 어떻게 행동할지가 훤히 그려졌다.

아마도 현재의 상황과 자신의 포부를 넌지시 흘리며 부장급 인사들의 면면을 낱낱이 파악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즉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겠지. 아마 제법 많은 부장급 인사들이 천이사의 손을 잡을 것이다.

고부장은 이러한 내용을 소상히 전달했다.

“하지만 움직이는 것이 천이사뿐은 아닐거야. 어쩌면 나도 한창 여기, 저기 불려다닐 지도 모르지.”

왜 아니겠는가? 재무부장이라는 포지션은 여기저기서 군침흘리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달콤한 꿀이나 마찬가지.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대충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부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다른 걱정을 하셔야죠.

“다른 걱정?”

-그 자리가 부장님께 좋은 자리는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아직 대외적으로 공표한 적은 없으나, 이미 자신은 천이사와 각을 세웠다.

이미 알음알음 소식이 퍼져나가고 있을 터. 어쩌면 배신자 처벌이라는 명목으로 상당한 압박을 가해 올지도 모른다.

“으음······. 그거야 그렇겠지.”

-마침 잘됐네요.

“잘됐다고?”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란 말인가?

-이번 기회에 제가 선물 하나 드릴 수 있겠네요.

“선물?”

-일단 지금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고, 그저 마음 푹 놓고 다녀오십시오.

“마음을 놓고 다녀오라고?”

천이사가 이를 가는 자리에 마음 편히 다녀오라니, 그것이 가능키나 한 말인가?

-제가 마법 전문이 아니긴 한데······.

“마법?”

고부장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천이사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문이사처럼 성격이 불같은 인물은 아니라고는 하나, 고요하면서도 탄탄하게 자신의 입지를 다져온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타팀의 TO까지 물어다 주는 기염을 토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고부장의 이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표세인은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모처럼 마법 주문 하나 얻었는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겠네요. 아, 천이사님께는 죄송하네요. 우리 TO까지 힘써 주신 분인데······. 하긴, 지난번 제임스 부모님 언급까지 했으니 어찌보면 자업자득인 셈이려나? 아무튼 걱정하지 말고 편히 다녀오세요.

“그, 그래.”

고부장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대답했다.

대체 표세인은 무슨 꿍꿍이를 계획하고 있는 걸까?

고부장은 알지 못했다.

‘아니지, 표세인 팀장 정도라면 양실장을 움직여서라도······. 흠, 이거 이러면 내가 또 빚을 지게 되는 셈인데······. 대체 이 녀석에게는 계속 뭔가 주어야 할 것 같은 상황이 오는 것 같군.’

고부장은 오판해도, 한참 오판하고 있었다.

표세인은 고작 양실장 정도를 움직일 생각이 아니었다.

물밑에서 시작된 함전무 파벌 내부의 자리싸움.

하지만······.

-그그그그······.

그런 물밑 싸움 정도는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거센 해일이 밀려오고 있었다.

< 마왕 소환 주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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