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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06화 (106/346)

106.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고 하셨으면, 보여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나의 마왕 소환 주문에 모두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정작 고부장님까지 너무 놀란 얼굴이란 것이 조금 죄송하지만······.’

하지만 어쩌겠나?

황금열쇠를 손에 넣은 것이 바로 어제의 일이었으니까.

“천이사.”

“네, 네!”

천이사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얼떨결에 대답했다.

“자네도 잠깐 나오게. 오랜만에 이야기 좀 나누자고.”

“아, 알겠습니다.”

조회장의 부름에 천이사는 헐레벌떡 움직였다.

“고부장님.”

“어? 어?”

고부장님도 혼란 디버프에 걸려있는 탓에 대답이 어리버리했다.

“뭐 하세요. 회장님께서 부르신 겁니다. 서두르세요.”

“나를?”

“네.”

“왜?”

“글쎄요?”

나는 슬쩍 한걸음 물러섰다.

내가 직접 조회장을 움직인 사실이 알려지면 괜한 오해가 커지기 마련.

자칫 눈치 빠른 이들 중, 나와 연아의 관계, 혹은 내 입지를 의심하는 사람이 나타날 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르쇠로 일관하자.

“아무튼 나오세요.”

“아, 알겠어. 나 그럼 잠시 다녀올게.”

고부장은 하부장에게 말했다.

“네, 네. 그러십시오.”

하부장 조차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마왕은 등장만으로도 모두를 얼게 하는구나.

“뭐야, 표팀장 팀원들 모두 모여있네?”

“네. 오늘은 과장 승진 기념 회식인 셈이거든요.”

“그런데 왜 회장님이 함께 계시는 거지?”

“승진 축하 해주신다고 하더라고요.”

“회장님이 과장 승진을 축하해주신다고?”

“네.”

“그, 그럼 나와 천이사님은 왜······.”

“부장님.”

“어?”

“당황하신 것은 이해합니다만,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마음 편히 계세요. 나쁜 일은 없을 겁니다.”

내 말에 고부장의 표정이 서서히 평온을 되찾았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럼, 가시죠. 이쪽입니다.”

나는 따로 예약한 룸으로 고부장을 안내했다.

*

*

*

몇 시간 전.

“두 사람 모두 과장 진급 축하한다.”

나는 두 사람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었다.

“축하드려요.”

함송희도 박수와 함께 축하했다.

“흐흠, 뭐 예상은 했었지만 그래도 기쁘네요. 저 녀석과 함께 승진한 것은 좀 그렇지만.”

남궁원은 뻔히 기쁜 것이 드러나는 얼굴로 새초롬하게 말했다.

“그래. 나도 축하한다.”

“난 축하한 거 아니거든?”

“그래. 그래.”

홍기도는 정말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고, 남궁원은 그 모습이 얄밉다는 듯이 눈을 치켜떴다.

“두 사람 모두 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축하합니다.”

권태인을 포함해, 공대리, 민대리 모두 산뜻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얼마간 얼굴을 맞대고 함께 고군분투한 덕분인지, 나름 거리가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마침 잘됐네.”

마침 오늘 과장 승진 발표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마침? 맛있는 냄새가 나는 멘트네요.”

역시 홍켓몬 이놈은 개코다.

“그래. 다들 오늘 회식이다.”

“아, 저는······.”

권태인 차장은 일이 조금 남은 모양. 하지만 오늘은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 기싸움에 마무리를 지어야 할 차례가 왔으니까.

오늘을 끝으로 우리가 진짜 한팀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권차장님, 오늘 같은 날은 빼시면 안 되죠.”

마침 민대리가 나 대신 권태인을 설득했다.

“하긴······. 그렇네요.”

권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들 퇴근하고 술집으로 이동하자.”

“예약, 지난번 거기로 할까요?”

“아니. 오늘은 내가 예약했어.”

“팀장님이요?”

“응.”

“메뉴가 뭔데요?”

“오리집이라더라.”

“라더라?”

내 애매한 대답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어쩌겠나.

부장급 회식 장소가 오리고기 집이라는데······.

그럼 한번 가볼까?

*

*

*

기획팀과 조회장, 그리고 천이사와 고부장이라는 다소 어색한 조합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회장님께서 여기는 어쩐일로······.”

천이사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조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이랄까?

밑에 사람이 파벌 놀이에 열을 올리는 것을 너그럽게 지켜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것을 알고 있기에 천이사는 지금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일 것이다.

“표팀장 팀원들이 두 명이나 특진하지 않았나, 뭐 축하 인사도 할 겸. 게다가 듣기로는 자네와 고부장도 이번 일에 한 손 거들었다면서?”

거들었다?

어쩌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나뿐이던, 과장 TO를 늘려준 장본인이 바로 천이사 본인이었고, 고부장까지 설득해서 심사를 떠맡겼었다.

“네. 맞습니다. 이번 일에 천이사가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박수.”

내 말에 기획팀 전원이 손뼉을 마주쳤다.

“하하, 벼, 별것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

“함전무 밑에 있는 자네가 굳이 양성태 밑에 있는 표세인의 팀을 도와준 이유가 뭘까?”

“아, 그, 그것이······.”

천이사는 또 한 번 당황했다.

어찌, 사실은 훼방 놓으려다가 발목 잡혔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게다가 자네 쪽에서 보내준 인력들은 하나 같이 고급 인력이고 말이야. 권태인 차장. 맞지?”

조회장은 슬쩍 고개를 돌려 권태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권태인은 살짝 감동한 얼굴이 되었다.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니!

이것에 감동하지 않을 사원이 있을까?

“애써준 것은 고마운데, 내 한 가지만 말하지.”

“경청하겠습니다.”

“요즘 함전무 행동이 묘한 상황이라서 들뜨는 것은 내 이해하겠어.”

“아, 아닙니다.”

자신의 속내를 훤히 꿰고 있는 조회장의 말에 천이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고개를 조아렸다.

“임직원들 경쟁까지 내가 이래저래 말하고 싶지는 않아. 직장인이라면 정상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도 좋아. 암, 그렇고말고.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말에 주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지금 표세인을 건드리면 안 되지. 지금 이 녀석이······. 아니, 표팀장이 맡은 프로젝트가 어떤 것인 줄 모르나? 거기에 조실장 사표까지 걸겠다고 한 것을 벌써 잊었나?”

“저, 저는 그저······.”

천이사는 이제는 아예 동공지진까지 일으키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이 시점에 천이사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는 권태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 역시 놀람이 적지 않은 눈치였다.

‘이제 이걸로 자신과 나의 사내 입지에 대해 착각하는 일은 더이상 없겠지.’

배후에 천이사를 둔 자신과, 회장을 두고 있는 나.

이 정도까지 보여줘도 순순히 승복하지 못하겠다면 안타깝지만 정말로 부숴버릴 수밖에······.

하지만 다행히도 불상사는 없을 것 같았다.

홀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모습, 어디에도 나에 대한 반발심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고작 천이사에게 휘둘리는 본인과 회장님의 총애를 받는 내 입지를 목격했으니, 이제 각자의 위치를 똑똑히 파악했을 것이다.

“여기서 정리하지.”

“예. 알겠습니다.”

천이사는 그 말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이해한 것 같으니 다행이군. 그럼 가보게.”

“알겠습니다.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이 정도로 무슨 심려씩이나, 아, 그래도 한가지는 당부하지.”

“네. 말씀하십시오.”

“부모 운운하는 버릇은 고치도록 하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쯧. 두 번은 없어. 알겠나?”

“며, 명심하겠습니다.”

천이사는 90도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굳이 보지 않아도 룸을 벗어난 그가 얼마나 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지가 눈에 훤했다.

“그리고 고부장.”

“네.”

“잘하고 있어. 자네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나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지. 재무부장이라는 위치는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계속 지금처럼만 해주게.”

“감사합니다.”

작은 눈빛 한번, 짧은 한마디마다 실린 무게가 다르고, 전달되는 감동이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대 기업의 정점에 오른 인물의 존재감이라는 것은 이토록 압도적이다.

이미 고부장의 머릿속에는 천이사와의 견제 따위는 깨끗이 씻겨나갔으리라.

“그럼, 자네도 이제 가보게.”

“네.”

고부장은 마지막에 나에게 넌지시 눈짓을 보내고는 룸을 벗어났다.

“자 그럼 다음 차례는 축하만 남은 건가?”

조회장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고,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축하하네. 앞으로도 부디 지금처럼 계속 힘써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홍기도와 남궁원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이제 나는 가보기로 할까?”

“회장님.”

“응?”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조회장을 홍기도가 불렀다.

아! 내가 고부장님만 신경쓰느라고 차마 홍켓몬을 신경 못썼다. 하필이면 자리도 건너편이라서 물리적(?) 제지도 불가능한 상황!

“아직 주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회식은 회장님께서 책임져주신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

“헐······.”

홍켓몬의 캐릭터에 이미 적응 완료인 남궁원과 함송희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지만, 권태인 그룹은 입을 쩍 벌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세상에 조회장에게 저런 멘트를 날리는 미친놈이 있다니? 뭐 이런 심정이겠지.

이들은 그간 홍켓몬이 업무 모드에 들어가 있던 탓에, 이 녀석의 본모습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 두통이 올 것 같다.

“배터지게 먹어보고 싶다 이거지?”

“예. 바로 그렇습니다.”

조회장은 실풋 웃는 얼굴인 반면, 홍켓몬은 비장한 얼굴이었다.

대체 뭐가 너를 그렇게까지 미치게 하는 거냐! 대체 이유가 뭐냐!

“표세인 팀장.”

“예. 죄송합니다. 제가 책임지고 정신교육을 다시······.”

“이놈 배 터트려버려.”

“아, 알겠습니다.”

“다들 눈빛들이 좋군 마음에 들어. 아무튼 깨비몬만 성공시키라고, 다들 섭섭지 않게 보상해주지.”

조회장은 허언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가 직접 섭섭지 않은 보상 운운하자, 마치 스위치라도 켠 것처럼, 모두의 눈이 반짝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다들 그냥 앉아 있고, 표세인 팀장.”

“네.”

“자네만 좀 따라오게.”

“예.”

조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조회장님을 배웅할 겸 함께 룸을 나섰다.

“뭔가 팀장님과 회장님 상당히 가까워 보이지 않아?”

“맞아. 그런 느낌이지?”

“팀장님이 회장님과 저런 관계였나?”

주변의 작은 소곤거림을 한 귀로 흘리며, 권태인 차장을 슬쩍 훑어보았다.

살짝 넋이 나가 있는 표정.

이제야 자신이 누구와 기 싸움을 벌이려 했었는지를 깨달은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는 내가 고삐를 흔드는 대로, 순순히 따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로써, 오늘 내 목적은 모두 달성했다.

“표팀장.”

“예.”

“너 내가 준 카드 잘 쓰고 있나?”

“잘 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연봉이 얼마나 올랐는지도 모를 정도인데요.

“아끼지 말고 팍팍 써, 특히 팀원들 대접할 때는 더더욱. 어디 가서 쩨쩨하단 소리는 듣지 않았으면 한다.”

뭐랄까, 이건 팀장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예비 사위에게 하는 말이라는 느낌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난 간다. 아무튼 이걸로 이번건은 끝이야. 그렇지?”

“예.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고부장 같은 깐깐한 인사까지 포섭하다니······. 제법이군.”

“아닙니다. 그냥 운때가 맞았을 뿐입니다.”

솔직히 고부장님건에 대해서는 내가 뭘 한 것이 있나?

그냥 상황이 우연히 그렇게 흘러갔을 뿐이다.

“의외로 우연 같은 것은 잘 없지. 평소의 미소 한 번, 커피 한 잔 같은 것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이다. 아마 네 녀석도 모르게 뭔가 했겠지?”

그런가? 황금 고블린······. 아니, 고부장님은 처음부터 한결같이 잘해주셨기에 언제나 감사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기억해둬야 할 일이 있다.”

“경청하겠습니다.”

“함전무의 갑작스러운 미국행. 이건 내게도 보고하지 않고 독단으로 움직인 행사다.”

전무가 회장에게도 알리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뭔가 있다는 것은 틀림없겠지. 더욱이 현재 미국지사는 NFT와 블록체인 관련으로 정신이 없는 상황.

“대비책을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내가 이 모든 일의 전말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장님이 이렇게 주의까지 주실 정도라면, 나도 마음가짐을 다르게 가져야 겠다.

‘함전무······. 너무 큰 상대긴 한데······.’

연아의 데뷔 무대에 어떠한 잡음도 들려서는 안 되니까.

내 여자의 첫 프로젝트는 완벽해야 한다.

*

*

*

“함전무가 마커스와 접촉했다는 보고입니다.”

김비서의 말에 조연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렇게 되는 거군요.”

“그런데 사실 이건 저희 쪽에 해될 일이 없지 않습니까? 분위기로 봐서는 그들의 타겟은 문이사일 텐데요? 어차피 이상무와 결별한 문이사는 잠재적인 저희의 경쟁상대 아닙니까? 게다가 그는 양실장과도 모종의 거래를 한 것 같다는 심증이 있기에 더더욱.”

강한 파벌은 결국 회장이 될 조연아에게는 걸림돌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조연아의 성향은 조회장과 크게 다르다.

그녀는 파벌 싸움이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회장으로 향하는 길에 미리미리, 거슬리는 돌맹이 들을 치워 놓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단 한가지 예외 사항이 있다.

“미국지사는 현재 깨비몬 프로젝트에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마무리될 때까지는 어떠한 잡음도 들리지 않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것도······. 사용하실 생각이십니까?”

김비서는 조연아 앞에 놓인 서류를 바라보았다.

“그럴일이 없길 바라지만······.”

가능한 쥐고만 있으려 했지만······.

내 남자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만한 일이 생긴다면······.

다소 소란이 벌어지더라도, 방해물은 확실히 치워낼 것이다.

‘오빠는 계속 바라는 대로 해. 내가 오빠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도와줄게.’

조연아는 조회장의 딸이다.

그녀 역시 빈말은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 작전명은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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