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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11화 (111/346)

111.

“표세인과 조연아가 미국에 왔다고 합니다.”

언제나 웃는 낯을 연기하던 마커스였지만, 오늘은 가면을 벗어던지고 잔뜩 그늘진 얼굴이었다.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군요. 아버지의 충견인 양실장이 움직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조연아는 다름 아닌 조회장이 후계자라고 공표한 인물 아닙니까?”

“그런데요?”

그런데요. 라니?

기업의 영주라고 할 수 있는 회장이 공표한 후계자.

그런 인물이 자신들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오고 있다는 데, 이렇게도 침착할 수 있나?

아무리 장남이라지만······. 그는 현시점에 멕베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방인일 뿐이다.

“섣불리 색안경을 끼기 전에 맥락을 정확히 짚어야지요.”

“색안경?”

“회장 딸이니, 후계자니 하는 것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손에 쥔 카드가 무엇일지를 파악하는 것이죠. 그 카드가 중요하지, 그 카드를 누가 들었느냐는 전혀 상관없지요. 미합중국 대통령 손에 들린 카드라도, 원페어는 투페어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직접 이곳을 방문한 것을 보면, 우리 꼬맹이가 좀 컷나보네.”

조연준은 조연아가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직접 행차했음을 간파했다.

“그래서 뭘 들고 왔으려나? 그리고 표세인······.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조연준의 질문에 마커스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남자 중의 남자라고나 할까요.”

“그게 무슨 의미죠? 완력이 강하다는 의미입니까?”

“아! 아니, 그게······. 죄송합니다. 완력도 그렇지만······. 일 처리와 사람들을 아우르는 능력에서 탁월한 인물입니다. 지난번 이곳을 방문했을 때도 제프리 팀 같은 실적부진으로 허덕이던 사원들을 갱생시키고, 아예 자신의 파벌처럼 흡수해버렸습니다.”

“모호하군요.”

“능력면으로도 굉장하지요. 본사에서도 이 점을 있다고 들었습니다. 맡은 족족 범상치 않은 실적을 냈고, 문상훈을 도와 사이프 바수를 포섭하는데 성공했으니까요.”

마커스는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덕분에 자신의 위치까지 위협받게된 형국이 아닌가?

그로 인해 현재 조연준 같은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에게 자신의 처지를 위탁해야 할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어쨌든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 인물과 조연아가 함께 왔다······.”

조연준은 흥미롭다는 듯이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우선은 지켜보기로 합시다. 일단 여론은 흔들어 놨으니, 이것을 뒤집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여론과 주가를 흔들어 저가 매수와 고가 매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월스트리트의 전통적인 사업방식이며, 언제나 패배하지 않는 황금패턴이었다.

“어쨌든 10%만 하락시키면 우리의 승리입니다.”

이미 주요 언론사를 움직여 몇몇 몰락한 비트코인의 사례와 결부시켜 NFT의 암울한 전망을 퍼트린 상황.

우습게도 여러 예술 작품이나, 복셀아트 캐릭터의 디지털 카피 상품 하나가 수백억대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여론은 그저 연일 NFT의 암울한 미래만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조연준의 작품이었다.

미디어를 이용해 여론을 선동하고, 주가가 낮아지면 단숨에 삼켜버리는 것.

그것은 월스트리트의 늑대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사용하는 유서깊은 방식이었다.

“그리고 깨비몬······. 이거 확실히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프로젝트가 확실하겠지요?”

“틀림없습니다. 멕베스는 한국 기업 아닙니까? 그들은 캐릭터 산업 경험이 전무합니다.”

“좋군요. 그럼 우리는 이제 기다리면 되겠군요.”

10% 가까이 주가가 내려앉기만 한다면 자신들의 승리였다.

이것만큼은 조연아가 아니라 조회장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방법이 없다.

“깨비몬 프로젝트에 탄환을 모두 소비하지 않았다면, 직접 매입으로 주가 방어하는 수단도 있었겠지만······.”

맥베스는 이번 프로젝트에 정말로 사활을 걸었다.

조연아는 무서운 기세로 회사 자금을 폭포수처럼 쏟아부어, 캐릭터 산업과 기타 마케팅에 투자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것.

“이 프로젝트가 이후 자신들의 주머니를 불려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주주들은 결국 우리의 손을 들어줄 겁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미국지부가 아닌, 맥베스의 본사를 손에 쥘 겁니다.”

아직 누구도 파악하지 못한 조연준의 진짜 목적.

그는 맥베스 자체를 통째로 삼킬 생각이었다.

*

*

*

“세인!”

건물 안에 들어서자, 지난번 내 통역을 담당했던 아나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아직도 연인과는 잘 지내고 있어?”

윽, 이런 말을 연아 앞에서 하다니! 다행히 연아는 아무것도 못들었다는 듯이 새초롬한 얼굴이었다.

“당연히 잘 지내지. 곧 결혼 할거라니까.”

“······아쉽네.”

무슨 농담을 이렇게 진지한 얼굴로 한담.

“그럼 이번에도 내가 통역을 맞아주면 될까?”

“아니, 이번에는 통역이 있어.”

“잘 부탁합니다.”

홍켓몬은 버스에서 미친 듯이 텐션을 올린 덕분에 이제는 상당히 침착해진 상황이었다.

그 덕분인지, 무척 정상적인(?) 인사였다.

“그런데 뒤에 분들은?”

아나는 연아와 김비서를 바라보았다.

“본사에서 오신 조실장님과 김비서님이야. 아마 이분들도 통역은······.”

“아나씨.”

“네.”

“통역 부탁드립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가급적 제 곁에 계셔주시면 좋겠군요.”

영어회하에 전혀 문제가 없는 연아가 아나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별일이네?

“알겠습니다. 이미 문이사님께 여러분을 최대한 어시스트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곳에 계시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서포트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지금 바로 문이사님을 뵙고 싶군요.”

“마침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우리는 아나의 안내를 받아 문이사의 방에 도착했다.

“연락은 받았지만, 자네들 두 사람이 동시에 방문하다니······. 이 보다 더 든든할 수가 없군.”

문이사는 나와 연아를 번갈아 보고는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 영상통화 때에 비해서 무척 밝아진 얼굴이었다.

아마도 내가 말한 대로 자신의 최종목표는 어디까지나, 본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모양.

그저 한 계단에 불과한 센터장 자리에 과하게 목을 매거나, 다소 늦어지는 것에 전전긍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차피 깨비몬이 성장하고 본사 IP에 NFT시스템이 결합하기 시작하면 이 프로젝트의 발안자인 문이사의 주가는 껑충 치솟을 것이다.

“혹시 함전무님은 만나보셨습니까?”

“이곳에 오신 첫날 대화한 것이 전부야. 그 이후로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않으시더군. 마커스와 따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 같기는 한데······.”

“아마 조연준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있을 겁니다.”

“조연준? 설마······.”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슷한 이름이지.

문이사는 곧바로 조연준의 정체를 파악했다.

“회장님의 아들?”

“네. 장남입니다. 제 큰오빠죠.”

“그 사람이 왜······.”

아무리 회장님의 아들이라도 지금까지 맥베스와 전혀 인연이 없던 사람이 어째서 이런 시점에 등장한단 말인가?

“그는 현재 월스트리트에서 활동중인 주식브로커입니다.”

“그럼 설마, 이번에 발생한 6%의 변동이?”

“네. 아마도 주주 자격을 손에 넣기 위해 살짝 손을 쓴 것이겠지요. 수조원대의 자산을 운용하는 사람이니, 마음만 먹었다면 아예 미국지사 자체를 삼킬 수도 있겠죠.”

“그럼, 혹시 이번 NFT에 관한 안 좋은 전망 덕분에 주가가 내려앉는 것을 방어해주려고, 매입을 시도한 건가?”

안타깝게도 문이사의 추측은 틀렸다.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설마 친아버지의 회사를 공격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하겠는가?

“아니요. 그 반대입니다. 아마 여론을 선동한 것 자체가, 그의 작품일 겁니다. 주가를 떨어트려서 더 싼 값에 매수하려는 속셈이겠지요.”

“대체 왜?”

“아마도······. 제가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뭐, 이런 심정일거라고 추측합니다.”

“상속다툼이란 말인가?”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아버지는 핏줄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하신 분이니까요.”

“회장님은 그런 부분에서 정말로 남다른 분이시지.”

“네. 저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시려는 아버지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 제 가치를 증명하는 중이니까요. 하지만 조연준은······.”

연아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 증거로 그녀는 이제 오빠가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그냥 분탕질을 치고 싶은 겁니다. 일종의 자기 과시랄까요?”

“자기과시?”

“예전부터 그랬습니다.”

연아는 나쁜 기억이라도 떠올린 것 같은 얼굴이었다.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잠시만요.”

문이사가 뭔가를 물으려 했지만, 내가 그를 저지했다. 연아가 원한다면 스스로 이야기하겠지. 나는 연아에게 잠깐 마음을 추스릴 시간을 주었다.

“후우······. 아버지께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던지, 제가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던지, 그 모든 것을 부숴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는 속셈이라고 추측합니다. 솔직히 저도 얼굴을 본 것이 너무 오래전이라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는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악질인 사람입니다.”

“유일하게 안면이 있는 조실장이 그렇다면, 주의하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질 않는군. 우리 처지에서야 답답한 일이지만, 그의 행동은 지극히 주식 브로커다운 행동 아닌가? 사적인 감정이 아닐 수도 있지 않나?”

문이사가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단순한 투자목적이라면 굳이 함전무님을 호출했을 리가 없다. 그거죠?”

“!”

문이사는 한발 늦게 상황을 깨달았다는 표정이었고, 연아는 내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나는 내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말을 이어 갈 수 있었다.

“함전무님이 관련 직무를 당담하고 계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 하더라도 외부인은 알 수 없습니다. 조연준 씨 같은 외부인이 볼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죠.”

그래.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다. 함전무의 가치는 그가 지닌 직함과 영향력 그 자체.

“함전무님이 회사에 큰 축이라는 것.”

나는 말을 끝냄과 동시에 연아를 바라보았고 연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물론 말씀드린 대로 제 추측이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는 사심 없는 투자조차 상대를 끔찍하게 괴롭히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 사견이 아닌, 지금까지 그의 투자 이력과 그의 타겟이 되었던 회사들의 사례를 토대로 내린 결론입니다.”

연아의 말에 문이사는 잠시 눈만 껌뻑일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놀랍다기보다는 황당하다는 것이 본심이리라······.

“으음······.”

문이사는 고뇌에 찬 얼굴이었다.

악명 높은 주식 브로커가 회사의 수뇌부로 파고들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악수를 고민하는 것이리라.

“그가 함전무님을 만난 이유는 뭘까요?”

나는 연아에게 물었다. 사실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고 대강 예측은 되는데, 확인차 질문한 것이었다.

“그가 미국지사를 건드리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사에 손을 뻗기 위한 준비 동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함전무님과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본사를 뒤흔들려는 생각이겠죠.”

“그건 위험하군.”

조연준이 보유한 거대한 자본력에 함전무의 사내 입지가 더해진다면 정말로 본사 전체를 흔들 수 있는 거대한 지각변동이 닥쳐올지 모른다.

“그래서 대책은? 설마하니, 본사 최고의 에이스 두명이서 아무 대책없이 오지는 않았겠지?”

문이사의 말에 나와 연아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우선 함전무님을 만날 계획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퇴직을 권유할 예정입니다.”

“퇴직?”

문이사는 두 눈을 부릅떴다. 얼마나 놀랐는지,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함전무님은 창업공신이야. 그런 분께 퇴직을 권유한다고?”

비록 다른 파벌에서 오랜 시간 경쟁관계에 있었지만, 사원 출신의 정점이나 다름 없는 입지를 지닌 함전무가 아니던가?

문득 지난번 함전무와의 대화에서 그가 나에게 같은 사원 출신이라는 동질감을 앞세워 손을 뻗어오지 않았던가?

“창업공신이라는 이유로 전무라는 자리까지 오르셨으니, 회사 차원에서의 보상은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발이 클 텐데? 설령 회장님이라도 전무님을 쳐내는 것은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아버지 뜻이 아닙니다.”

“아니라고?”

“저는 아버지와는 다릅니다. 과거에 어떤 관계였는지는 관심 없습니다. 적은 적일 뿐이죠.”

연아의 뜻은 단호했다.

“그······. 그래. 자네 뜻이 그렇다면야.”

문이사는 이 문제만큼은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여겼는지, 한걸음 물러서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저야, 당연히 문이사님을 지원 하는 것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하핫, 든든하군.”

문이사의 얼굴이 활짝 폈다.

“하지만 그 전에······.”

“?”

“일단 저도 함전무님과 조연준이라는 사람을 만나봐야겠습니다.”

“만난다고 해도, 그가 순순히 자신의 목적과 계획을 실토하겠나?”

“그런 것은 상관 없습니다.”

“상관없어?”

“저는 그냥 그 사람 자체를 살필 생각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방법을 찾게 되겠지요.”

방법과 대응 수준까지······.

일단 만나서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쩐지, 조연준과 연아를 단둘만 만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조씨 집안 장남 얼굴 한 번 봐야겠다.

< 홍켓몬 라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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