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얼마 후.
내가 제프리팀과 새로운 비밀무기(?)를 준비하는 사이, 연아가 나를 찾았다.
“의외로 순순히 우리 요청을 받아줬네.”
“그러게.”
나는 연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연준과 함전무는 우리의 미팅 요청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우리는 조연준이 예약했다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드디어 소문 무성한 조씨가문 장남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회장을 닮은 것인지, 남자치고는 다소 작은 키에 동글동글한 턱선이 인상적이었다. 외모로만 놓고 보면 전해 들었던 공격적인 인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조금 이상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보통 먼저 먹고 있나?’
조연준은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왔군.”
함전무는 다소 께름칙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본사에 있을 때는 언제나 활력과 힘이 넘치는 인상이었는데, 오늘은 유독 그가 노년의 나이라는 것이 뚜렷이 보이는 것 같았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나와 연아는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정말 특이한 사람이구나.’
조연준은 나와 연아가 도착했는데도, 눈으로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금 식사에 열중했다.
“하아, 그럼 우리도 뭔가 주문할까?”
함전무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 그래, 사실 이게 정상이지.
조연준과의 만남은 처음부터 뭔가 쎄하다. 다른 사람들이 저 이름만 나올때면 한숨을 내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우리는 음식을 주문했고, 우리의 음식이 준비될 무렵 조연준은 혼자서 식사를 끝냈다.
“자, 그럼 이제 일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
뭐라는 거야, 우리는 아직 한입도 못 먹은 상황이지 않나.
하지만 함전무와 연아는 이미 예상했었다는 듯이 포크에 손도 대지 않은 상황이었다.
“굳이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죠? 제 목적은 간단합니다. 미국지사를 매입하는 것.”
“빙돌리는 취미는 없으신 줄 알았는데, 사람이 좀 변하셨나 보네요.”
“하하하.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네?”
웃는 소리를 내면서도 가늘게 뜬 눈은 상대를 탐색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음흉하다는 단어는 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나저나 표세인씨?”
“네?”
“처음뵙겠습니다. 조연준입니다.”
“표세인입니다.”
“첫 인상은 참 중요하죠. 모쪼록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시면 좋겠네요.”
이죽거리는 말투 속에는 나를 얕잡아 보고 있다는 티가 역력했다.
“조연준씨.”
“네?”
“벌써 지루해지기 시작하네요.”
“뭐라고요?”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수가 훤히 드러난 쪽은 그쪽이죠. 기껏해야, NFT 발표를 발목 잡아서 주가 좀 떨어트려보겠다 이거 아닙니까? 설마 그 정도에 우리가 백기를 흔들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말에 조연준은 당황했다. 반면 함전무와 연아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서렸다.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때때로 첫 만남과 동시에 곧바로 파악이 되는 타입들이 있다.
내게는 조연준이 그렇다.
상대를 도발하고 그 반응을 즐기는 사람. 사실 의외로 운동선수 출신 중에는 이런 타입들이 많다.
상대를 흔드는 것은 가장 손쉽게 승리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니까.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그런 녀석들을 역관광하면서 불패 성적을 자랑하던 몸이다.
“한번 맞춰보세요. 내가 무슨 수를 준비해왔다고 생각합니까?”
“······.”
“아, 이렇게 곧바로 입이 막히면 재미없는데······.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도 회장님 아들이라는 생각에 조금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회장님에 비하면 이건 너무 솜털이 보송보송한데?”
아마도 조연준이 나보다 몇 살 때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도발의 효과는 더욱 효과적이겠지.
애초에 저쪽이 선수를 친 상황에서 수읽기는 우리쪽이 유리한 상황이다.
물론 정말로 좋은 수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전제되지만, 어쨌든 분위기를 빼앗아 오는 것만큼은 성공적이다.
“목돈 쥐고 흔들다 보니까, 본인이 눈독을 들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를 잊으신 모양이네요. 게다가 함전무님? 게임 회사의 내부를 살펴보려면 그전에 개발자들과 먼저 접선을 했어야지. 일선에서 물러난지 한참 지난 분을 모시고 뭘 하겠다는 건지······. 쯧.”
의도적으로 함전무의 체면을 살짝 구기며 혀를 찼다.
그리고 내 도발의 효과 덕분일까? 조연준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건 불이 붙었다는 의미.
“조연준씨 게임 잘 모르죠?”
“그러는 그쪽이야 말로 투자회사의 방식을 모르나 본데, 우리는 그런거 안따져.”
조연준의 말투가 달라졌다. 이제 가면은 벗어던지기로 한 모양.
그래, 차라리 이쪽이 편하지. 이제부터가 본 무대의 시작이다.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여론을 선동해서 목표치 만큼 주가가 떨어지면 날름 삼키겠다는 거잖아요. 지금 우리 그거로 한판 붙어야 하는 상황이고.”
주식브로커의 투자는 우선 클라이언트를 납득시켜야 한다.
따라서 얼마나 낮은 가격에 매수하고 어느 정도로 올랐을 때, 매도할 것인지가 사전에 결정이 되어 있다는 의미.
그리고 조연준은 그것을 위해서 여론을 선동했고 그의 예상대로 미국지사의 주가는 조금씩 소폭하락세다.
정확히 몇 퍼센트가 그의 목표인지는 알 수 없지만, NFT루머로 주가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빙빙돌리는 것은 그쪽인 것 같은데? 정작 본인패는 감추고 뭐하자는 거지?”
“게임 업계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무슨 대화를 합니까?”
“고작 게임이나 만드는 주제에, 건방이 대단한데?”
“고작 게임이나 만드는 상대에게 한 방 맞으시면 꽤나 아프시겠다. 그렇죠?”
조연준의 입가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이런 타입은 친구가 별로 없는 법이다. 그러니 놀림이나 조롱에 대한 면역력이 별로 없지.
다소 유치한 첫 대화는 내가 선취점을 따냈다고 봐도 괜찮겠지.
그리고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와중, 어느새 연아와 함전무도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조연준씨 곁에 서실 생각이십니까?”
“······.”
“솔직히 여기에 오신 것만으로도 저로서는 좋게 봐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창업 공신이라는 부분을 참작해서, 지금이라도 돌아가신다면 불문에 붙이겠습니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건가?”
우와, 나와 조연준이 어린애들 같은 유치한 말장난을 나눈 것에 비하면 이쪽은 장르가 스릴러나 다름 없다.
“협박이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요. 중국진출 당시의 재무자료가 제 손에 있습니다.”
“뭐?!”
“긴말 하지 않겠습니다. 이걸 협박이라고 생각하시던지, 충고라고 생각하시던지, 빠르게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나, 나는 회사를 위해서 한거야! 단 한푼도 내 사리사욕을 위해 챙긴 것은 없어! 네가 그 시절 중국 시장에 대해 뭘 알고 있지?”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함전무님께서 지금까지 경쟁자들을 처리하시는 과정에서 이 말의 무게를 실감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함전무의 일갈에도 연아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사람이 시대를 이기는 법은 없습니다. 편승하실지, 물러나실지. 알아서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저보다 늦게 귀국하신다면 그것을 전무님의 대답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연아의 말이 끝났음에도 함전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야, 멋진 커플이네.”
커플? 설마 이 자식?
“아주 잘 어울려. 새로운 맥베스의 원투펀치라 이건가? 이제 우리가 막 벌벌 떨면서 백기를 흔들면 되는 건가?”
내가 잠시 연아에게 집중한 사이, 다시 기가 살아난 조연준이 특유의 이죽거림과 함께 비아냥을 쏟아 냈다.
나는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마침 적당한 시간이다.
“조연준씨.”
“?”
“게임 회사는 결국 게임으로 승부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NFT니 뭐니 해봤자, 결국 그것들은 게임에 붙는 일개 시스템에 불과하다는 거지. 우리 회사 주식을 매입하시겠다? 그거 감사하죠. 어차피 우리 주가 올려주겠다는 거니까.”
“자신감이 좀 지나친데?”
“내가 자신감이 지나친게 아니라.”
나는 스마트폰을 앞으로 내밀었다.
“당신이 방심이 지나친 거지.”
내 스마트폰에서는 미튜브 영상이 출력되고 있었다.
*
*
*
멕베스 아메리카 스튜디오의 영상제작실.
스텝들과 카메라가 모여있고, 그 뒤로 거대한 스크린이 자리했다.
"패널들 대기 완료 중입니다."
"오케이. 동시 송출 체크했어?"
평소와는 다른 작업이기 때문일까? 회사에서 고용한 미튜브 방송 전문 촬영업체 인원들이 분주하게 내달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 보는 두사람.
바로 홍기도와 제프리였다.
“미스터 키드.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죠.”
홍기도는 자신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위험한 전략 아닐까요?”
“위험한 방식이 매력적인 법이죠.”
홍기도는 흔들림 없는 얼굴로 말했다.
“으음······. 마스터 세인이 당신의 의견을 귀담아 들으라고 했으니, 따르기는 하겠습니다만······.”
“이건 원래 팀장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다만 공개 시점이 앞당겨진 것 뿐이죠.”
“하지만 이래서는 미스터 문의 입장이 다소 난처해 질 수도······.”
“미스터 문은 알아서 잘 할 겁니다.”
사실 문상훈이 어떤 상황에 놓일지, 홍기도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이것은 표세인의 아이디어라는 것, 그리고 이게 더 재미있을 것라는 것.
단 두가지뿐.
“깨비몬은 기존 한국형 수집 게임의 굴레를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어차피 한국 게임 개발사들은 변혁의 기회를 놓쳤어요. 그러니 더 크게 갑니다. 게다가······.”
“?”
“이거 돈벌이 됩니다. 분명히.”
홍기도는 자신했다.
표세인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리고 표세인의 말은 언제나 설득력이 충분하지 않나?
“시작하시죠.”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미국의 유명 게임스트리머 3인방이 초대된 스튜디오가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이 영상의 주요 포인트는 대담형식이었다. 우선 그들은 미국지사에서 개발한 트레일러 영상을 감상했다.
깨비몬과 함께 주변을 가꾸고, 물건과 건물을 만들고, 전투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멋들어지게 연출된 영상은 우선 게임스트리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상은 훌륭합니다!”
“판타스틱! 이건 완전히 내 취향이야!”
“하지만 여기서 확인하고 가지 않을 수가 없죠. 한국 게임이라고 한다면 가혹한 BM(비지니스 모델)으로 유명하니까요.”
한 스트리머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홍기도에게로 향했다.
“미스터 키드. 이부분에 대해서 저희를 설득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저희가 이런 다급한 요청에 흔쾌히 합류한 것은 게임이 별로라면 호되게 디스해도 좋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입니다.”
홍기도는 뭐든 질문해보라는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미소지었다.
“이 게임은 우선 패키지 형식으로 판매되는 것이죠?”
“맞습니다.”
“인게임 결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한국 게임에 인게임 결제가 없는 경우는 아예 배제한 모양.
“인게임 결제는 단 하나뿐입니다.”
“단 하나?”
“교배를 통해 랜덤하게 획득되는 깨비몬의 디자인을 손에 넣게 되는 겁니다. 이를테면 특허권 같은 개념이라고나 할까요?”
“특허권? 아아! 오직 자신만의 유니크한 깨비몬을 손에 넣게 된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손에 넣은 유니크한 깨비몬은 3D프린터를 통해 완구 제품으로 구입하거나, 저희가 개발 중인 영상 치환 시스템에도 이용됩니다.”
“영상 치환이요?”
“우선 보시죠.”
홍기도는 지난번 표세인이 영상제작 미팅에서 선보였던 영상치환 영상을 보여주었다.
“와아······.”
“이건 정말 의미가 크겠는데요?”
“내가 키운 깨비몬이 그대로 영상 속에 투영된다니······.”
“여러분 솔직히 이정도면 인게임 결제 한번쯤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게임스트리머 방송 초유로 개발자가 BM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순간.
“솔직히 하나쯤은······.”
“나, 나는 콜렉션에는 쥐약이야. 이 게임은 내게 너무 위험해.”
“그렇죠. 페이 투 윈도 아니고 자기 만족인데······.”
“게다가 깨비몬의 캐릭터 상품은 무척 다양합니다. 스마트폰 케이스부터, 가방에 이르기까지. 솔직히 저는 3D프린트가 버텨줄지가 걱정입니다. 그러니 게임이 출시되면 빨리 예약하셔야 할겁니다.”
원한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니들이 알아서 해라!
인앱 결제라는 단어만 나오면 게거품을 물기 일쑤인 게임 스트리머들 조차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 순간.
조회수가 폭발했다.
< 날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