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13화 (113/346)

113.

“게임 회사는 게임으로 승부하는 겁니다.”

NFT에 대한 악성 여론? 우습지도 않다. 그까짓것은 그저 하나의 BM(비지니스 모델) 시스템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은 그래서 어떤 게임이냐가 중요하다.

기대작 하나가 회사 주가를 미친 듯이 요동치게 만드는 법.

그것이 가능한 것이 IT업계이고 게임업계는 그 순환이 훨씬 빠르다.

“이, 이게 무슨······.”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로 미튜브의 댓글이 늘어나며, 그 반응은 하나 같이 폭발적이었다.

“문이사가 NFT 발표를 미루니까, 그 분 행적만 주시하고 있었지?”

시야가 좁다.

NFT라는 강력한 아이템에 눈길을 빼앗긴 것은 다름아닌 조연준 자신이었던 셈.

투자자의 슬픈 본성이라는 거겠지. 하지만 덕분에 나는 시간을 벌었고, 제프리 팀을 이용해 이렇게 유명 스트리머들을 끌어모아 깨비몬의 정보를 터트렸다.

이제 NFT는 단순한 빌링 시스템이 아니다. 바로 어마어마한 기대작 뒤에 붙은 강력한 BM이 되어 투자자들의 눈을 홀리게 될 것이다.

“게임 업계에 발을 들이면 시장 조사를 좀 더 확실히 했었어야지.”

게다가 애석하게도 조연준이 손에 쥔, 게임업계에 대한 정보 창구가 마커스나 함전무처럼 개발 일선에서 한참 떨어진 노회한 인물들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자금력 있는 회사가 트랜드에 어긋나지 않은 게임을 발표하면 주가는 미쳐 날뛰는 법.

국내 게임 시장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사장된 상황이라서, 이들조차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새로운 바람은 들어왔다. 새롭게 주목 받은 게임사들은 이미 글로벌 시작에 걸맞는 트리플 A급 게임을 속속 발표하며 주가 상승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 않나.

“조연준씨.”

“······.”

“부디 저희 회사 주식 많이 사주시기 바랍니다.”

폭등하고 있는 상태에서 저런 큰 손이 달라붙는다면 그것 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큰 흐름이 형성될 것이다.

“더 할 이야기 있으십니까? 조실장님?”

“아니요. 이제 없습니다.”

연아는 무척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깨비몬의 열광적인 반응 뒤편에는 그녀가 지금까지 사력을 다해 출시한 깨비몬 상품과 그로 인해 형성된 붐이 뒷받침 되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

조연준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딱히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곧장 등을 돌렸다.

“준비한게 이거였구나?”

“응. 아슬아슬했는데, 생각보다 잘 해줬네.”

무엇보다 내가 잘 못 본 것이 아니라면, 홍켓몬이 화면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던데······.

내가 알아듣기에는 너무 빠른 영어라서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넋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스트리머들을 보며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 녀석 말 잘하네.’

홍켓몬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프레젠테이션 진행 능력이었다. 사람들 눈이 많은 곳에서는 심장 떨려서 말도 잘 못한다고 하더니······.

설마 그것도 뻥이었냐?

나 수년이나 속았던 건가?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별일 없는 척 은근슬쩍 캐내서 날 속인 게 맞았다면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리라······.

“솔직히 이렇게까지 통쾌하게 한방 먹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크큭.”

연아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웃으니까 보기 좋네. 여기와서는 계속 긴장한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는데.”

“응. 조금 신나네. 고맙기도 하고······.”

“고맙긴, 저 바탕은 전부 네가 준비해 준 거잖아.”

연아가 파격적인 속도로 깨비몬 상품들을 기획하고 출시한 덕분에 이것도 가능했던 것 아니겠나.

“이 영상은 얼마나 빨리 성장할까?”

“장담하는데······.”

“?”

“좀비로얄은 비교도 안 되지.”

이건 글로벌 스케일이고,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미 캐릭터 상품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붐이 일어난 상황이다.

“우리가 함께한 첫 번째 프로젝트잖아.”

“그렇네. 첫 번째네.”

순간 나는 연아의 손을 잡을까하다가, 혹시 누가 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멈칫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뭐, 뭐하는 거야.”

“뭐 어때.”

연아가 내 품으로 달려들 듯이 내 팔짱을 낀 것.

“누가 보면 어쩌려고.”

“몰라, 오늘은 그냥 이대로 둘이 시간 보내자. 그리고 우리도 슬슬 날 잡을까?”

“가, 갑자기?”

“응. 그냥 그러고 싶네.”

연아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가족 모임 때도 약간 그런 낌새가 있긴 했지.

“날을 잡는 것은 잡는건데······.”

“왜? 무슨 걱정 있어?”

“아니, 너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야.”

“?”

프로포즈······.

그래, 나 이거 준비해야 하는 구나!

*

*

*

-조연준! 훌륭해, 역시 너는 최고의 사냥개야! 갑자기 게임회사 따위를 인수하겠다고 해서 뭐하는거지? 싶었는데, 이런 고급정보를 어떻게 얻었나?

스마트폰 너머로 투자고객의 찬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조연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일단 나중에 상황이 조금 더 진척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오케이! 알겠어. 이번건, 기대하고 있겠어!

상대의 목소리가 들뜰수록 조연준의 기분은 가라앉았다.

“······표세인, 이번에는 내가 한방 먹었군.”

조연준의 넋두리에 가까운 혼잣말을 듣고 있던 함성준의 표정 역시 밝지 않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무슨 말씀입니까?”

“고작 철없는 금수저의 장난질에 놀아났다는 건가?”

함성준은 조연아의 경고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자조했다.

과거 중국시장 진출을 위해, 그리고 중국 사회 특유의 꽌시 문화를 위해 그가 암암리에 빼돌린 사업비.

스스로는 단 한번도 개인적인 착복 따위 한 적이 없었다.

어차피 접대란 그런 것이고, 접대 없는 사업따위는 없었다.

그 규모의 크기가 다소 문제의 소지가 될 수는 있다하여도, 함성준 자신은 당당했다.

하지만 귀에 걸면, 귀거리요. 코에 걸면 코거리라고 했던가?

문제의 소지로 삼으려 들면, 무엇이든 먼지가 나올 수밖에.

게다가 그 당사자가 바로 조회장의 후계자인 조연아라면······.

“그래. 은퇴해야할 때로군.”

이미 지천명이 지난지도 한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물러날때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더니, 이런 것일 줄은 몰랐다.

“고작 한 대 맞았다고, 꼬리내리고 물러나는 겁니까? 한심하군요.”

“한심하다? 그렇군. 자네 말이 맞아 나는 정말 한심해졌군.”

이제야 비로소 조연준이라는 남자의 면모가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아무튼 이걸로 우리가 다시 보는 일은 없겠군.”

“쯧, 마커스 말대로 아시아인들은 패기가 없어서 못 써먹는다더니.”

자신도 한국인 혈통인 주제에 저런 말을 입에 담는다.

“그래도 멋 없게 물러날 수는 없지······. 마지막으로 화려한 폭죽 한번 정도는 터트리고 가야지.”

함성준은 조연준의 말은 아예 무시한 채, 자리를 떠났다.

“크큭. 좋아. 어차피 폰 하나 정도 없어도 대국에는 지장 없어. 두고보자고, 이제 시작이야.”

홀로남은 조연준은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

*

*

“이건 문제가 있다.”

홍켓몬은 자신이 지금 대단히 진지하다는 것을 과도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지은 죄가 있는지라,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소곳이 홍켓몬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어제 왜 외박을 하신 겁니까? 저를 강제로 끌고 와 놓고서는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그게······. 참 나도 어쩌다보니······.”

“지금 이거 보이십니까?”

홍켓몬은 자신이 출연한 미튜브 영상을 들이대며 말했다.

“그래. 어제 정말 잘했더라, 와~ 대단했어. 네가 원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이렇게나 잘하는 줄은 몰랐다.”

그래. 이게 있었지. 이거 하나만 물어라. 일발 역전이라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저, 남들 앞에서 발표 같은 것 잘 못 하는 것 아시잖아요.”

“나도 그런 줄 알았지만, 영상 보니까 아주 청산유수더구만!”

걸렸다! 지금 걸린 거지?

“그게 몇 사람 없다 보니 되더라고요. 스탭도 몇 없었고, 대부분은 그냥 화면이나, 카메라 보고 말하니까요.”

아······. 이 자식 이거······. 오늘따라 빈틈이 없네.

“미튜브는 가능하구나. 너 이런 거나 해봐라,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준비하는데 손이 많이 가는 일이잖아요. 저 같은 녀석은 못할 거에요.”

이제는 겸손까지? 얘가 아주 오늘 작심을 했구나.

나를 제대로 무너트리려고······.

“어쨌든 이거 큰 빚이네요. 저는 일하는데, 자기는 놀다 왔으니까.”

“나도 임마, 중요한 자리 다녀온 거잖아.”

“설마 함전무님과 밤새 술 마셨다고 하실 건 아니죠?”

웃어?

이게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임상실험 제 372회 때 얻은 필살기(타력각성 17호)로 한 방 먹여 주고 싶지만, 지은 죄가 있고 또 이놈이 크게 한 건 해준 탓에 뭐라고 할 수가 없네.

“원하는 게 뭐냐?”

“일단 이 건은 킵해두기로 하죠.”

“그러지 말고 속 시원히 말해라, 뒤로 갈수록 약발 떨어지는 것 알잖냐.”

“팀장님.”

“왜 그러냐 불안하게.”

“이건 시간이 지날수록 불어납니다.”

홍켓몬든 미튜브 영상의 조회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넌 이런 건 누구에게 배웠냐?”

“팀장님이요.”

“······.”

아, 목이 바짝바짝 타는구나······.

“근데 이제 과장쯤 달았으니, 이런 사소한 건수에 빚 운운하는 것도 좀 아니지 않냐? 다 네 실적 아니냐. 더 승진해야지. 과장 달았으니, 이제 차장, 그리고 팀장!”

“훗······.”

또 웃어?

진짜 딱 한 대만 꽂아 넣으면 안 되나? 진짜 한 방에 보내 버릴 자신 있는데······.

“제가 승진 따위에 연연할 놈으로 보이십니까?”

미친놈은 이래서 무섭다. 게다가 그 미친 놈이 금수저까지 물고 있다면?

상식도 안 통하고, 말도 안 통하고······.

역시 남은 것은 주먹뿐인가?

“그런데 이상하네요?”

“뭐가?”

“팀장님이 미국에서 밤새 시간을 보낼 사람이 누구죠? 게다가 함께 나가신 분은 조실장님······.”

순간 살의가 솟구쳤다.

‘이건 기횐가?’

합법적으로 홍켓몬을 기절시키고 뇌세척을 시도해도 괜찮은 상황 아닌가?

내가 잠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홍켓몬은 갑자기 오한이라도 느낀 것처럼 양팔을 비볐다.

“갑자기 속이 안 좋네요. 우리 다른 대화하죠.”

“······.”

“팀장님 표정이 왜 그러세요?”

“······.”

“이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저 칭찬받아 마땅한 타이밍이에요.”

“······.”

아······. 진짜 이놈은 뭘까?

내가 홍켓몬의 생사여탈에 대한 고뇌에 잠겨 있는 사이, 제프리가 다가왔다.

“마스터 세인.”

“미스터를 잘 못 발음한 거죠?”

“아닙니다.”

아니면, 안되지······. 이제 그만 정상으로 돌아와.

“제프리, 고생 많았어요. 팀원들 모두에게 감사인사를 전해야겠네.”

“아닙니다. 어찌보면 우리 일이기도 하잖아요.”

하기야, 영상치환은 제프리팀의 프로젝트이기는 하다.

“어쨌든 이번에는 제가 크게 신세를 졌습니다. 다음에 제가 보답할 기회가 있다면······.”

“오! 그렇다면 나중에 꼭 보답받겠습니다.”

아니, 뭘 또 예의상 한 말에 이렇게나 철석같이 달라붙으시나······.

하지만 이것 역시 입 밖에 낼 수가 없다.

나는 제프리 팀과 홍켓몬에게 일을 떠맡기고 그들의 회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중죄인이니까.

“아무튼 모두들 수고했어. 나중에 미국에 다시오면······.”

“곧바로 돌아가시려고요?”

“응.”

“이렇게 빨리?”

홍켓몬은 그새 제프리와 친해졌는지, 퍽 아쉽다는 얼굴이었다.

“그럼 너는 더 있다 오던지.”

“왜 그렇게 서두르세요?”

서둘러 부모님 뵈어야해.

나······. 결혼 날짜 잡혔거든.

< 디아도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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