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14화 (114/346)

114.

‘뭐든 마음 먹기 나름이라더니······.’

오늘따라 마음이 홀가분했다.

지난 몇 년간, 마음에 짐처럼 느낀 정체에 대한 걱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동안 뭘 그리 걱정했던 걸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웃음만이 나온다.

때마침 스마트폰이 울렸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렇게 진행하시죠.

마침 기다리던 메시지도 도착한 상황.

“좋은 아침이군.”

함성준은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회사로 향했다.

*

*

*

“이야기는 어제 연아에게 들었다.”

조회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이런 일은 둘이서 함께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려야 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출장 직후라서 일단 각자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 그게 맞지. 그리고 이미 상견례까지 끝난 마당이지 않나. 이거 뭐, 마땅한 말이 생각이 안나네, 이제와 새삼 축하한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단순한 부하직원이라면 축하의 말이 당연하겠지만, 아무래도 장인이 사위에게 축하한다고 하는 것도 좀 어색하다는 느낌이다.

“사실 제 입장에선 플라잉 재떨이만 시전하지 않으셔도 감사한 입장이죠.”

“재떨이는 무슨······. 그럴거였음 이미 진작에 했겠지.”

“그 점은 예전부터 항상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첫 만남 당시. 나이 차도 제법 나는 데다가, 재벌집 딸인 연아에 비해 나란 놈은 뭐 변변히 가진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회장님은 처음부터 텃세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소탈하게 대해주셨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성장을 뒤에서 물심 양면 지원해주시지 않았던가?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만 가득하다.

“내년 봄이라고 했지?”

“네. 역시 결혼은 봄이 좋지 않겠습니까?”

깨비몬 정식 출시부터 연아와 나, 두 사람 모두 새로운 일을 맡게 된 시점이라서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 좀 여유 있게 날짜를 고려했다.

물론 그 모든 이유를 떠나서, 연아에게 5월의 신부라는 타이틀(?)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모종의 사명감이 한몫한 것도 사실이다.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 너무 늦다고 걱정하시진 않나?”

“전혀요. 그냥 날이 잡혔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다행이군. 그래서 어떻던가?”

“뭐가요?”

“우리집 장남. 조연준 그놈. 실제로 보니 어떻던가?”

아,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 나왔다.

“사원으로 대답할까요. 아니면 예비사위로 대답할까요?”

“둘 다.”

조회장은 선뜻 대답했다. 그래, 뭐 그러시다면야.

“예비 사위로써 말씀드리자면······.”

“사양 말고 말해봐.”

“재미있는 분이더군요. 말투부터 눈빛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캐릭터라서, 함께있으면 심심하지는 않겠다. 뭐 그런 느낌?”

“클클클. 지랄하고 있네.”

아, 지랄이라니······. 드디어 내가 회장님과 이런 저렴한 멘트까지 오갈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느낌이다.

“그럼 사원으로서는?”

“안좋습니다. 많이 안좋습니다.”

나는 진심 100%를 담아 말했다.

“그런 기질을 지닌 주식브로커라니, 솔직히 그런 사람이 우리 회사에 눈독을 들인 것 자체가 불운이라는 느낌입니다. 이번에는 마침 깨비몬이라는 카드가 준비된 상황이라서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었지만, 이후로는 글쎄요.”

모든 일이 그렇듯이, 주가가 영원히 상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측에서는 그에게 데미지를 입힐 확실한 수단이 없다는 부분에서도 질이 나쁘다.

괜히 월스트리트의 종사자들이 미움받는 이미지로 굳어진 것이 아니란 거겠지.

“사실 그 녀석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분탕질을 친 것은 사실이지만, 꼭 그 녀석이 아니더라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지.”

“혹시 외국자본 말씀이십니까?”

“그래. 너도 알겠지만, 이미 국내 대형게임사들은 외국자본에 먹힌 지가 꽤 됐지. 우리라고 영원히 무탈할 수만은 없지.”

대체로 중국계 자본인 경우가 많지만, 프로젝트 한 번에 엄청난 고수익을 창출하는 게임 회사들에 대한 외국자본의 공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나.

따지고 보면 맥베스가 이례적으로 오랫동안 버텨온 셈이었다.

“어쨌건 조연준 그 녀석과 자네가 결국 만났군. 뭐 영원히 안 보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겠지만······.”

“에이, 나중엔 가족이 될텐데 어떻게 영원히 안보고······.”

“가족이라도 때로는 남보다 못한 관계도 있는 법이지.”

“······.”

나는 잠시 조회장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 어쨌든 이제 정말로 결혼이다. 이거로군. 어느새 막내딸까지 시집 보낼 나이가 됐어.”

조회장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갑자기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것이 딸을 시집 보내는 아버지의 쓸쓸한 뒷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회장이라는 거대한 직함 때문에 종종 착각하곤 하지만, 조회장님은 원래 체격도 크지 않고 왜소한 타입이라서 오늘따라 무척 작게 보였다.

“아, 아버님 앞으로는 제가 더 자주······.”

회장님이라는 단어 대신, 절로 아버님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우리도 슬슬 결혼 전 마지막 게임을 시작해야겠군.”

“네?”

“뭘 그리 놀라나? 왜 싫은가?”

“아, 아니요. 싫기는요.”

그래, 이래야 우리 회장님이지.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래서 이번 퀘스트는 뭡니까?”

“아직도 흥미가 있나? 이제 슬슬 물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는데?”

조회장은 넌지시 운을 땠다. 훗,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하시긴.

“이제는 저에대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나 회장님이나 우리는 게임 좋아하고 게임 만드는 사람들 아닙니까. 이런 거 싫어해서 되겠습니까.”

“크큭. 그래, 그래야지.”

조회장은 짧게 키득거렸다.

“그래서 진짜로 뭔가요? 궁금하네요.”

“아, 그건 나도 몰라.”

“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아마 곧 생길 거야. 그때까지 기다······.”

“저, 전무님 이러시면!”

“?”

-덜컥.

조회장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비서의 당황 섞인 목소리와 함께 회장실의 문이 열렸다.

“함전무님?”

조회장은 난처해하는 비서에게 슬쩍 손짓을 보내는 것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뭔가 눈빛이 달라졌구만.”

“예. 이제 다 털었습니다.”

함전무는 정말로 뭔가 시원하다는 표정이었다.

“완전히 턴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폭탄 하나 투척하고 가겠다는 느낌이 드는데······.”

조회장은 특유의 짖굿은 미소를 입에 담았다.

그러자 함전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냥 물러나면 재미없죠.”

“그동안은 그렇게 재미없게 굴더니, 이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구만.”

“원래 형님 보다는 제가 유머가 있는 편이죠.”

“······뭐라는 거냐.”

회장이 아닌, 형님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이건 내가 낄자리가 아니다.

나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아니, 자네도 남게.”

“네?”

의외로 함전무가 나는 붙잡았다.

“제가 낄 자리가······.”

“아니야. 자네가 낄 자리 맞아.”

“호오······.”

당황한 나와 함전무를 보며 조회장은 묘한 소리를 냈다.

“좋아. 한번 이야기나 들어보자고, 기대되는 구만.”

결국 조회장과 함전무, 그리고 내가 한자리에 앉았다.

“솔직히 예전부터 양실장은 좀 아니다 싶었더랬습니다.”

“그래. 그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역시 나는 개발자가 필요했어.”

“이 친구는 확실한거지요?”

“그래. 확실해. 이 녀석이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대화의 흐름이다. 내가 뭐라고?

뭐가 확실하다는 거지?

순간 조회장과 함전무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며 묘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그래도 검증은 필요합니다.”

“이미 충분하지 않았나?”

“아니요. 회장님이 깔아준 레일을 달린 것 뿐이라는 여론도 무시 못합니다. 그런 것 깔끔하게 모두 걷어내야죠.”

“방법은 있고?”

“네.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이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공정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일은.”

“이제 그만 뜸들이고 속시원하게 털어 놓지?”

조회장은 감질난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동감이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은 아닌 것이 분명한데, 지금 흘러가는 상황 자체를 이해 못하겠다.

“그동안 온실 속 화초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밖에다 뿌려놓은 화초들 불러들여서 제대로 품평회 한 번 해볼 생각입니다.”

“품평회라······. 그 녀석들을 한데 모아놓고 컨트롤이 되겠나?”

“미끼만 확실하다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끼는?”

“오늘 아침에 중국에서 확답을 받았습니다. 판호! 손에 넣었습니다.”

“판호······.”

판호라는 단어에 나는 물론이고 조회장 조차 눈을 부릅떴다.

예로부터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은 가장 큰 시장의 하나였다.

과거 사농공상이라는 유서 깊은 카스트에도 불구하고 종 3품 부사까지 출세한 입지전적인 인물인 임상옥이라는 거상의 사례도 있지 않은가?

그가 그런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중국에 인삼을 판매했기 때문.

지금 게임업계에서의 중국시장이란 딱 그런 느낌이다.

그 어마어마한 인구를 비롯,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와 명예욕에 불타는 습성이 어우러져, 중국인들의 게임에 대한 지출은 딱히 인구가 아닌, 개인소득 대비 지출로 따져봐도 압도적인 수치다.

게다가 게임은 말하자면, 요즘 시대의 인삼이 아닌가?

한국 상품의 우수한 품질은 중국인들로서는 침 흘리지 않을 수가 없는 상품 중의 최상품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오래전 게임을 정신적 마약으로 규정하며 여러 가지 철퇴를 준비했으며, 외국 회사들의 게임 출시 자체를 막아왔다.

그런데 그것의 허가증이라 할 수 있는 판호를, 함전무가 준비해 온 것.

“게임 개발자들에게 이 이상의 미끼는 없을 겁니다.”

“자네······. 진짜로 다 내려놨군.”

중국의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판호를 가져왔다?

이 말의 의미는 간단하다. 함전무는 자신이 가진 영향력과 꽌시를 모조리 쏟아부은 것이다.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아마 다음 번의 기회는 없으리라······.

뭐든지, 순리를 어긋난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조건하나 받아주시죠.”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받으라고 한다. 그러나 판호라는 패를 들고 있기 때문일까? 조회장은 기분 나쁘다는 티도 없었다.

아니, 그는 지금 이상황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뜸들이지 말라니까?”

“형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든, 이 회사는 저에게도 ‘내 회사’입니다.”

“그거야 그렇지.”

“물러나는 판에 마지막 한 수입니다. 이번 일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물러나는 판에 마지막이라······. 뭐 디아도코이라 그건가?”

디아도코이?

이건 아마 고대 그리스어로 ‘후계자들’ 혹은 ‘계승자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일 것이다.

내가 딱히 역사에 정통한 것은 아니지만, 개발자로 굴러먹다 보니, 좀 있어 보인다, 싶은 단어들은 머릿속에 담아두는 편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임종 하는 순간에 후계자는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시작된 후계자 전쟁.

‘가장 강한자.’

지금까지 이야기와 디아도코이란 단어를 조합해 볼 때······.

아마도 함전무의 바람은 명확했다.

“아시겠지만, 회사에는 오너 일가 앞에서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재가 반드시 필요한 법입니다.”

오너 일가와도 맞설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쥔 자.

조회장이라는 태양 아래 가려져 있다고는 하나, 결국 일이란 것은 사원들의 몫이기 마련이다.

당장 중국과의 꽌시를 손에 쥐고 있는 인물부터가 조회장이 아닌, 함전무이지 않은가?

함전무는 자신의 사내 영향력을 고스란히 물려줄 후계자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니, 조회장의 핏줄이자, 차기 회장인 연아는 당연히 제외될 수 밖에······.

“그거야 그렇지.”

조회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연아 실장은 자격 없습니다.”

“그래. 내 핏줄이니, 당연하지.”

“반대로······. 회장님께서 이 친구를 본인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 친구 역시 이 회사의 사원입니다. 결국 제 라인이라는 거죠.”

라인? 갑자기 그게 무슨······.

“이 친구는 참가시키겠습니다.”

“자, 잠깐 자네 정말 괜찮겠나?”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이 친구를 총애하시는 것은 압니다만, 뭐 숨겨놓은 자식도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내 핏줄은 아니네만······.”

“가장 강한 자! 그 요건만 채우면 됩니다. 마침 이 친구도 스튜디오 대표 아닙니까? 충분히 자격이 있습니다.”

“······자네가 괜찮다면야······. 자네 선택이니, 나는 책임 못 지네.”

“하늘 위의 금수저 보다는 결국 같은 사원끼리 통하는 법입니다. 조실장 단속이나 부탁드립니다. 이 시점에 차기 회장이 발을 들였다가는 형평성이고 뭐고, 와르르 무너질 테니까요.”

“······그래 그러니까 그 형평성······. 정말 괜찮겠나?”

“제 모든 것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는 일입니다. 더 이상 참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 친구가 제 색으로 물들어도 너무 탓하지는 마시고요.”

“자네가 물들일 수 있다면야, 그거야 자네 재주겠지만······.”

조회장은 찜찜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이 시점에 나는 그저 단 하나만 생각했다.

‘중국시장을 노리는 게임이라······.’

중국 게임폐인들이 게거품 물고 달려들 만한 게임이라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또 뭐가 있나?”

“우리 TRPG는 대체 언제 합니까?”

함전무의 말에 조회장은 뜨악한 얼굴이 되었다.

“거, 거의 다됐어.”

조회장이 이렇게 수세에 몰리는 것은 처음 본다.

그래, TRPG도 있었구나······.

중국 판호, TRPG, 게다가 결혼.

한동안 정말 바빠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 우리 경쟁자였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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