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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16화 (116/346)

116.

“다들 오랜만이군.”

갑작스러운 미국행에 이은 갑작스러운 복귀. 그와 동시에 함전무는 자신의 측근들을 불러들였다.

천이사를 비롯해 오랫동안 함전무와 손발을 맞춰온 임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사급 아래로는 호명되지 않은 그야말로 중진급 회의.

조회장을 제외하면 오직 함전무만이 이 정도 인사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것이었다.

“미국 출장은 어떠셨습니까?”

천이사가 냉큼 입을 열었다.

지난번 부장급 회동에 느닷없이 조회장이 들이닥친 이후로 그의 입지는 미묘해졌다.

함전무의 뒤를 이을 차세대에서 순식간에 조회장의 눈밖에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것.

이런 상황에는 일단 한껏 몸을 낮추고 함전무의 비위를 맞추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하지만!

“거두절미하고 말하겠네. 나는 다음 분기에 퇴직하기로 결정했네.”

“헉!”

“그, 그게 무슨······.”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선언이었다.

물론 쉬쉬하고는 있었지만 함전무의 시대가 머지않아 끝날 것이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아니. 그저 내 개인적인 사정일세.”

모두가 눈알을 굴리며 서로의 면면을 살필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하, 하지만 전무님께서 이대로 회사를 떠나시면······.”

그 뒤는 누가 이어받게 되는 겁니까? 천이사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고, 차마 뒷말을 끝까지 뱉지는 못했다.

‘나인가?’

‘설마 나?’

‘혹시 내가?’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감히 이밖으로 낼 수는 없어도, 모두가 내심 꿈꿔왔던 그 상황.

“하지만 그래서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함전무님께서 쥐고 계신 중국 시장과의 커넥션은 회사의 입장에서 무척 중요한 것이지 않습니까?”

모두가 시원하게 김칫국을 들이마시는 가운데, 전무군단의 차세대라 불리는 도경우 이사는 함전무가 사라진 이후의 일을 걱정했다.

지금은 비록 판호가 막힌 탓에 중국시장 진출이 요원한 상황이지만, 국내 게임 업계의 폭발적인 성장 배경에는 중국 시장에서 긁어모은 막대한 매출이 있었다.

비록 현재는 중국 시장 진출 길이 막혔지만, 그렇기에 언제고 다시금 개방되는 날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함전무가 손에 쥔 꽌시의 인수인계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나도 늙었어. 내 인맥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그래서 마지막 기회를 얻어냈지. 판호 따냈네.”

“파, 판호를?”

“대단하십니다!”

판호라는 단어에 이사진 전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판호라고 한다면 게임업계에서는 그야말로 황금향으로 향하는 열쇠가 아니던가?

“놀랄 것 없어. 대신 이것으로 내 꽌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함전무는 스스럼 없이 시인했다. 자신의 최대 무기인 꽌시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순순히 털어 놓는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은퇴 선언이 거짓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그렇지만 이 시국에 판호라니······. 이건 전무님이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천이사는 두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와중에도 매끄럽게 혀를 놀렸다.

물론 거짓말도 아니었다.

중국 정부가 게임을 정신적 마약으로 규정하고 철저히 규제하기 시작한 이 상황에서 판호를 따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으므로······.

“그래서 그 판호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유독 도이사는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함전무의 갑작스러운 은퇴선언과 모든 영향력을 대가로 손에 넣은 판호.

과연 이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란 말인가?

자연스러운 은퇴라면, 후계자를 정하고 꽌시 자체를 넘겨주는 쪽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닌가?

“다들 진정하고 지금부터 내 말 잘 듣게.”

“예.”

“말씀하시죠.”

함전무는 잠시 자신의 앞에 있는 이사진들을 면면을 침착하게 살펴보았다.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여러 역경을 넘나들며 회사의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날들이 스쳐지난다.

“신입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네들은 알고 있겠지. 맥베스는 게임 포털에서 출발해, MMO, 모바일로 변화하는 격변의 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지.”

“그럼요. 시장이 변화에 맞춰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었습니까.”

“그럼요. 그럼요. 말도 못하죠.”

“그때, 우리와 경쟁하던 쟁쟁한 회사 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회사도 몇 없지 않습니까.”

모두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환경에 맞춰 진화를 거듭하지 못하는 종은 도태되기 마련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그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변화가 다가오고 있지.”

“으음······.”

모바일 게임 시장이 블루오션에서 차츰 레드오션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일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바일 게임의 인기는 여전했지만, 경쟁자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투자 대비 매출이 장점이었던, 가벼운 캐쥬얼 게임보다 어마어마한 투자의 뒷받침이 필요한 모바일 MMO 시장의 대두로 인해서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각축전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

“얼마전부터 회장님께서 누누이 혁신을 강조해왔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내 자리를 보전하려는 욕심에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지.”

함전무의 말에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높은 자리에 앉은 이들일수록 변화에는 보수적이기 마련이었다.

어렵게 오른 자리인 만큼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욕심에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에 인색해지고 말았다.

“그간 우리가 커트한 기획안이나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많았나, 그리고 그 안에 맥베스를 구원할 창의적인 대책이 숨어있을 수도 있었겠지.”

“으음······.”

모두는 신음했다. 구태여 되돌아보지 않으려했던 자신들의 치부를 굳이 이 시점에 들춰내는 저의가 무어란 말인가?

“맥베스와 함께 3M이라 불리는 회사들이 차례로 주가 하락을 겪은 지도 제법 되었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고집을 밀어붙인 결과 3M의 명성은 하루가 다르게 몰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운이 좋지.”

“그, 그렇습니다. 이런 시국에 판호라니, 이런 것은 함전무님이 아니시라면······.”

천이사는 순간 말을 멈췄다. 자신을 향해 서늘한 시선을 보내는 함전무의 모습에 덜컥 말문이 막혀버렸다.

“지금 판호가 문제가 아니지 않나!”

-쾅!

함전무는 노성과 함께 주먹으로 테이블을 강타했다.

“그래서 내가 판호를 주면, 자네는 확실히 성공시킬 수 있나?”

“그, 그것이······.”

이미 중국 게임사들의 자본력과 기술력이 국내 게임사들의 역량을 추월하기 시작한 상황.

이제 더이상 중국 시장은 게임 하나 던져놓으면 미친 듯이 입질이 오던 황금어장이 아니었다.

“한국은 결국 창의력과 속도로 승부해야 해! 그런데······. 우리들은 너무 늙고 시대에 뒤쳐졌지.”

“······.”

또 한번 무거운 침묵이 주변을 짓눌렀다.

“하지만 외부 스튜디오 대표들은 아직 젊어. 그리고 우리와는 달리 아직 개발업무를 담당하고 있지.”

“그, 그 말씀은······.”

모두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하나 같이 임원까지 오른 인물들이다.

눈치 없는 인물이 어찌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까?

모두는 함전무의 의지를 간파했다.

“이제는 생존경쟁이야. 뒷방늙은이 신세가 되어버린 우리가 아니라, 현장에서 날뛰고 있는 젊은 놈들에게 기회를 줘야겠다는 것이 내 판단이야. 그렇지 않으면 자네들의 미래도 밝지 않을 거야.”

“!”

본사 임원들은 외부 스튜디오 대표들보다 높은 연차였다.

지금 함전무는 자신의 후계자를 자신들이 아닌, 외부에 있는 보다 젊은 이들 중에서 물색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

“아, 아무리 그래도······.”

천이사를 비롯한 가장 높은 연차를 자랑하는 임원 몇몇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설마 자신들끼리의 경쟁이라면 모를까, 외부 스튜디오의 대표들이라면, 까마득한 후배들이 아닌가?

“모두 내 뜻을 존중해주기 바라네. 우리는 임원이야. 애사심이라는 말도 요즘 세상에 우스운 일이지만, 임원인 우리는 달라야 하지 않겠나?”

비록 자신의 소유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 회사의 주춧돌 하나까지 스스로 실어 날랐다고 여기는 함전무였다.

한때는 그것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조연준 같은 인물에게 놀아나기까지 했으나, 막상 모든 짐을 내려놓기로 결정한 지금, 함전무의 마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임원들의 얼굴을 밝지 않았다.

“······.”

누구하나 입을 여는 인물이 없었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침묵. 그러나 그 고요함을 깨트린 것은 이 자리에 있는 인물 중에 가장 젊은 도이사였다.

“혹시 염두에 두신 인물은 있습니까? 외부 스튜디오 대표급 중에서 눈여겨볼 만한 인물들이라면······.”

순간 모두의 머리 속에 몇몇 이름이 스쳐지났다.

“보대표, 성대표가 일단······.”

모두가 차세대 주축으로 주가를 올리는 외부 스튜디오 대표들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가만, 표세인 팀장도 지금 외부 직급은 대표아닙니까?”

“!”

“그, 그러고 보니······.”

독립 스튜디오니, 사내벤처니, 말은 요란했지만, 여전히 본사 내부에 몇 안 되는 인원들을 이끌고 있던 탓에 모두는 표세인의 입지가 외부 스튜디오의 대표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표, 표세인은 안 됩니다!”

순간 천이사가 경기를 일으키듯이 소리쳤다.

“표세인은 왜 안되나?”

“네?”

“한번 말해 보게.”

함전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천이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다른 인물들 역시 천이사를 주목했다.

“그, 그것이······.”

설마 여기서 개인적인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는 노릇, 천이사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 그 친구는 양실장 라인 아닙니까? 결국에는 우리와는 노선이 다른······.”

“확실히 그건 있지.”

“그렇지, 남의 라인 배불리기는 좀······.”

다행스럽게도 다른 이들 역시 천이사의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표세인 팀장의 입지가 생각할수록 묘하군요.”

“?”

도이사의 말에 다시금 그를 향해 이목이 집중되었다.

“양실장의 라인인데, 이미 독립스튜디오의 대표. 사실 본사 직급 떼면 본인이 그냥 이사아닙니까?”

“그래도 외부 이사는 본사 직급 보다······.”

“물론 그렇지요. 문제는 양실장도 이사가 아닙니다.”

“아!”

조회장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탓에 종종 양실장의 입지를 오판하는 경우가 있다. 그는 아직 실장에 불과했다.

“이거 어쩌면 이걸 계기로 표세인 팀장······.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가능한 것 아닙니까?”

“그게 가능 할까?”

내심 함전무도 노리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도이사가 가능성을 언급하니, 흥미가 동했다.

“한 산에 호랑이 두 마리가 공존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도이사의 질문에 함전무의 입가가 길게 늘어졌다.

대학교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이상무와 자신 조차,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두고 한치의 양보 없이 대립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상대는 다름 아닌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표세인이다.

그가 현재 개발 중인 깨비몬만해도 이미 전례없는 성공이 예상되는 상황.

‘내 후임으로 표세인 정도라면······.’

스스로 생각해도 솔직히 ‘정도’라는 표현은 좀 허세다 싶은 상황.

“아무튼 잘 생각해. 결국 파벌은 실적을 공유한다는 것이 핵심이야. 표세인이나, 다른 쟁쟁한 젊은 친구들과 실적경쟁할 열정들이 남아있나?”

“······.”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실적 물어다 줄 텐데, 이걸 고민해?”

깨비몬 같은 초대박 게임을 만들어내는 표세인의 실적을 공유하게 된다?

순식간의 사고의 균형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전무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예.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맥베스 판, 디아토코이(후계자들) 전쟁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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