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깨비몬의 출시가 임박하자, 주변의 공기부터 달라졌다.
이미 연아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캐릭터 상품의 출시로 세간은 깨비몬이라는 단어와 상품들이 심상치 않게 눈에 띄는 상황.
여기에 게임쇼와 미튜브를 통해 게이머들의 관심까지 폭발한 덕에 폭풍전야라는 말이 연상되는 미묘한 긴장감이 사무실 내에 가득했다.
나 역시 깨비몬 출시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모니터 앞에 들러붙어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업무가 끝나갈 때쯤, 의외의 인물들이 나를 찾아왔다.
“표대표님.”
“네?”
대표라고 불리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살짝 얼떨떨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제 이름은 보정훈, 이 친구는 성진규입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대표와 성대표에게 차례로 악수를 건넸다.
‘나를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네.’
역시 행동력이 있다.
‘차라리 잘 된 걸까?’
어쩌면 양실장과 문이사가 그들에게 접근하기 전에 내가 먼저 파악하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권차장님.”
“네.”
“지금 제가 보내드린 것, 마무리 좀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마무리를 권태인에게 부탁하고 보정훈 일행의 뒤를 쫓았다.
아무래도 현재 상황이 상황이기 때문일까? 우리는 회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카페를 방문했다.
“그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보정훈은 부드러운 미소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에 비해 성진규는 다소 딱딱한 인상이었다.
‘나한테 불만이 있다기보다는······. 조금 긴장한 것 같은데? 나에게 그럴 필요가 있나?’
성진규의 태도는 다소 모호했지만, 당장은 대화를 주도하는 보정훈에게 집중하는 것이 맞겠지.
“저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네?”
보정훈에게 신경을 쓰고 있던 차에, 성진규가 갑작스럽게 끼어들어서 살짝 놀랐다.
그런데 보통 이런 걸 질문하나?
“혹시 양실장님께서······. 저에 대해 언급하셨다거나······.”
성진규의 말에 보정훈은 슬쩍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호의라는 단어의 레벨이 팬심에 가까운 수준인가?’
일단 성진규에 대해 조금 파악해볼 겸 장단에 맞춰보기로 했다.
“네, 양실장님께서 성대표님을 이따금 언급하셨었죠.”
“뭐, 뭐라고······.”
이 반응. 이건 틀림없다. 이번 각본 기대 이상으로 그럴듯한 그림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걸 제 입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좀 그렇고 나중에 양실장님께 직접 들으시면 되지 않을까요?”
“음······.”
직접 물으라는 말에 성진규는 슬며시 한발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금 보정훈이 입을 열었다.
“하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네.”
“이번 판호 관련으로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
견해? 단어 선택이 조금 낯설다.
“딱히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마침 깨비몬도 출시가 가까운 덕분에 차기 프로젝트를 위해서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에이, 그건 너무 표면적인 이유죠.”
어라? 이렇게 대놓고 간 보러 들어온다고? 보정훈의 미소를 슬쩍 살피며 나는 입가가 씰룩이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상대를 감평하려는 의도를 숨기지도 않는 소탈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음흉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오히려 상쾌하다는 느낌이다.
성진규는 기획이고 최가환은 프로그래머, 반면 보정훈은 그래픽 출신이라고 했다.
뭔가 포지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캐릭터성을 지닌 것 같다.
“이번 판호는 따지고 보면 부상에 가깝지 않습니까. 진짜는 함전무님의······. 후계자란 표현은 좀 낯간지럽다는 느낌이지만, 어쨌든 진짜는 그쪽이 아닙니까?”
“그렇지.”
보정훈의 말에 성진규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무군단. 그게 목적 맞으시죠?”
보정훈과 성진규는 어서 대답하라는 듯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물론 내 목적은 그거다. 하지만 접수 방식은 아마 너희가 생각하는 식은 아니겠지만······.
그래, 이렇게까지 산뜻하게 들어와준다면, 나도 장단을 맞추지 않을 수가 없지.
“맞습니다. 당연히 눈독 들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의뭉스럽게 돌려 말하지 않으셔서 기쁩니다. 이러면 대화가 순조롭지요.”
“그렇습니까?”
역시 삼엄한 본사 내부에서가 아닌, 외부에서 힘을 키운 인물들답게 뭔가 좀 더 호방하다는 느낌이다.
“수 싸움 같은 것은 나중에 본사로 들어갔을 때나, 생각하면 될 일이고 벌써부터 골치 아프게 머리 굴릴 필요는 없게죠. 뭐, 이 친구처럼 시작과 동시에 손을 잡자고 움직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보정훈의 말에 성진규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걸 보통 이런 자리에서 말하냐?”
“하하, 대단한 비밀도 아니잖아.”
“······내가 사람을 잘 못 봤네. 하긴 너도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이었지······.”
“하하, 그거 오랜만에 듣네. 예전에 천이사님 밑에 있을 때는 종종 그런 말을 들었었지.”
이번에는 성진규가 보정훈에게 골치아프다는 눈빛을 보냈다.
뭘까, 생각보다 캐릭터들이 개성이 뚜렷해서 금방 파악이 된다는 느낌?
“혹시 지금 이야기 기분 나쁘게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손을 잡고 꿍꿍이를 부리겠다는 뜻은 아니었고, 어쨌든 판호지 않습니까? 좋은 기회를 놓치기는 싫어서 저 녀석에게 말을 꺼내본 것뿐인데.”
성진규는 난감하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의외다. 양실장을 좋아한다기에 좀 더 노련한 타입을 상상했는데, 뻔뻔하지도, 능청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보정훈쪽이 더 잘할 것 같네. 하지만 이쪽은 어쩐지 그런 쪽으로 머리굴릴 것 같은 타입은 아니고······.’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는······. 뭐랄까, 미국지사에서 느꼈던 자유로움과 여유랄까? 그런 느낌이 전해졌다.
“그보다 호칭 정리가 좀 필요하겠네요.”
“호칭이요?”
“일단 본사 직급으로 저희는 전부 실장입니다.”
“아, 그러셨군요.”
“네. 외부에서야 대표라고 불려도 앞으로 종종 본사에서 마주하게 될 텐데, 임원분들 계신 곳에서 대표라 불리면 좀 그렇죠?”
“알겠습니다.”
나 역시도 대표 보다는 팀장으로 불리는 것이 익숙하기에 이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애초에 저희 스튜디오는 직급이 없거든요. 전부 닉네임으로 통일입니다.”
“우리는 ~님으로 부릅니다.”
“그게 효과가 있던가요? 요즘 많이들 그렇게 하는 추세라고는 들었는데.”
“저는 괜찮더군요. 사원분들과 거리감도 좁혀지는 것 같고요.”
“저희도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나중에 본사 밖에 스튜디오를 꾸리게 되면 나도 이 부분은 고려해봐야겠지.
어차피 서로 판호와 전무군단의 영향력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확인했으니, 이쪽 관련 이야기는 더 나올 것이 없었다.
따라서 나는 후배로서, 먼저 스튜디오를 이끄는 선배들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느낌으로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다.
“생각보다 훨씬 호감상이시네요.”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양실장님에, 회장님에······. 너무 쟁쟁한 분들의 총애를 받으신다고 들어서 다소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간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아닙니다. 회장님의 총애야, 아시다시피 양실장님의 몫이고 저야 그동안 양실장님 지시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여러모로 운이 좋았지요.”
“그 운은 계속되는 겁니까?”
성진규가 넌지시 빈틈을 노리고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제 전과는 좀 다르겠죠. 아시다시피, 양실장님께서는 비서실로 복귀하셨고 저는 저대로 자리를 옮긴 덕분에······.”
나는 최대한 아쉽다는 표정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포지션에 따라서 인간관계도 다소 변화가 있기 마련이죠.”
“그건 그렇죠. 사실 저희도······.”
간보기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이후 자잘한 이야기나, 향후 개발 목표와 비전 등의 개발자들이 으레 나누는 상투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대충 캐릭터가 파악이 되네.’
나는 대화를 나누는 틈틈이 이후의 각본을 조금씩 수정했다.
대충 각 나오겠는데?
*
*
*
“어쩐 일이십니까?”
한명수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방문에 살짝 당황했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본사 방문한 김에 커피 한잔 정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최기환은 목을 좌우로 까딱, 까닥 풀며 말했다. 190cm에 가까운 거구의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목을 푸는 모습은 그 자체로 상대에게 상당한 압박감이 전달되었다.
한명수도 어디 가서 체격이 작다는 말을 듣지는 않지만, 최기환 옆에서면 스스로 한없이 왜소하게 느껴진다.
“드시지도 않는 커피는 왜 찾으십니까. 올라갈까요?”
“그래. 한 대 피우자. 그리고 카페에 콜라도 있다.”
“네. 네.”
한명수는 피식 웃으며 옥상으로 향했다.
“후우······.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한명수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자신이 한때, 최기환 밑에서 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딱히 찾아와 안부를 물을 정도로 친했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최기환이라는 남자 자체가 그렇다. 회사는 일하는 곳. 이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어느 누구와도 딱히 깊은 친분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말씀해 보시죠. 무슨 일로 여기까지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거, 되게 딱딱하네. 누가 보면 우리 사이 나쁜 줄 알겠어.”
“딱히 좋지도 않잖습니까?”
“···그래도 좀 친한 편 아니었나?”
“?”
생전 연락 한번 한 적 없는 사이에 이게 무슨 소리람? 한명수는 황당하다는 듯이 입만 뻐끔거렸다.
“표세인 팀장, 얼굴이나 좀 볼까 해서 왔는데······. 마침 자리를 비웠더군.”
“표세인 팀장은 무슨 일로?”
표세인의 이름이 언급된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한명수의 안색이 돌변했다.
“왜 그렇게 방어적이야?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봐?”
순간 한명수는 최기환이 딱히 정치공작 따위를 획책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우려되는 것은 기껏해야 기싸움 정도인데······.
“하긴 뭐 별 문제는 없겠네요.”
“왜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냐. 기분 나쁘게.”
최기환이 표세인 보다 키가 조금 크고 체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표세인은 피지컬 레벨이 일반인이 아니지 않나?
첫 만남 당시 악수를 청했다가 역관광 당했던 전례가 떠오르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최대표님.”
“뭘 또 그런 호칭으로 부르냐. 형이라고 해도 된다.”
“그렇군요. 본사에서는 실장님이라고 불러야 겠군요.”
“······형이라 불러도 된다니까.”
최기환은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한명수는 그 말을 싹 무시했다.
“최실장님, 그래도 연이 있어서 말씀드리는데······. 악수는 하지 마세요. 하셔도 최대한 살살하시고요.”
“내가 어디가서 힘자랑 하는 스타일이냐?”
은연중에 하는 타입 맞지. 그리고 그것을 자신도 배워버리지 않았나?
“그런데 뭘 그렇게 싸고 돌아? 너 원래 기획 못잡아먹어서 안 달인 녀석이잖아.”
“실장님만 하겠습니까. 그리고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씀 마십시오. 팀 케어 차원에서 행동한 거지. 사적인 감정으로 그런 적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 아무튼 표세인 팀장은 어떤 느낌이냐? 네가 친하다며?”
“음······.”
“왜 이렇게 뜸을 들여, 실제로는 안 친해?”
“그건 아니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뭘 고민해, 그냥 다 말해도 돼. 나 시간 많아.”
“실장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혹시나 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적?”
“요즘 함전무님이 판호 카드 꺼내신 것으로 시끌시끌하지 않습니까? 저도 귀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경쟁자 정탐 나오신 것 아닙니까?”
“정탐?”
“제가 틀렸습니까?”
한명수의 말에 최기환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정탐은 도전자가 하는거지. 아직 스튜디오 정비도 안끝난 풋내기를 내가 왜 정탐해?”
“풋내기요?”
이번에는 한명수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너 그 미소 뭐냐, 기분 나쁘다.”
“최실장님.”
“왜.”
“부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최기환은 한명수의 께름칙한 미소가 무척 궁금했다.
“뭔데?”
“직접 겪어보세요.”
하지만 한명수는 최기환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 나는 한다 복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