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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23화 (123/346)

123.

“판호를 얻는 것고, 얻고 난 이후 외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도, 모두 최기환 실장님께는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

최기환은 그저 가만히 양성태의 말을 듣고 있었다.

평소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최기환이 현재 얼마나 복잡한 심정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가 이렇게나 장고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이해가 안가는 군요. 그래서 저는 그런 도움을 받는다 치고, 양실장님이 얻을 것은 뭡니까?”

“이 기회에 본격적으로 체격을 키울 생각입니다. 특히나 문이사님과 손을 잡은 만큼 그 속도도 빨라지겠지요. 문이사님의 성격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죠. 문이사님이라면 질질 끄는 성격이 아니시죠.”

길지는 않았지만 과거 문상훈 밑에서 일해본 적이 있던 최기환이었기에 문상훈의 스타일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최기환 실장님이 여타 파벌이나 사내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지내신 것은 알고 있습니다.”

양성태는 슬쩍 최기환의 눈치를 살핀다. 문상훈의 이름이 언급되자, 눈에 띄게 기세가 부드러워졌다.

손익계산 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마음을 여는 타입.

애초에 사내정치에 걸맞는 타입 자체가 아니었다.

그래서 양성태는 문상훈과는 달리, 문상훈의 이름 자체를 무기로 삼아 최기환의 경계심을 야금야금 무너트렸다.

“그런데······. 역시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뭐냐고 묻지도 않는다. 다 알고 있으니, 사양 말고 털어놓으라는 투다.

양성태의 이런 점이 사람들에게 경계 받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 머리가 복잡한 탓인지, 최기환은 불쾌함 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또한 양성태의 노림수였지만, 최기환이 거기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면, 이미 어느 파벌이고 가담하여 한자리 차지했으리라······.

“그쪽에는 표세인 팀장이 있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내심 보정훈이라 성진규의 이름이 먼저 언급될 줄 알았는데, 표세인의 이름이 먼저 나온 것은 양성태에게도 조금 의외였다.

하지만 그는 태연을 가장하며 나지막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그 친구가 있는데, 저에게 접근하신 이유가 뭡니까?”

“이유는 둘.”

“두가지나?”

“하나는 표세인 팀장은 본인 주변의 기반을 전부 다지지 못했다는 것.”

표세인의 스튜디오는 아직 게임 하나 출시한 이력 조차 없다.

여러 가지 의미로 아직은 멀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잠재력이야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지만, 이력이라는 것은 결국 무언가 실적을 낸 이후에 채워지는 것이 아니겠나?

“두 번째는 전무군단과의 관계. 아무래도 그쪽 인사들이 표세인 팀장과 합이 잘 맞을 거라 예상하기는 어렵지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얼마 전, 천이사와 실랑이한 것은 상당히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조회장까지 언급되는 뜬소문이라서 100% 믿지는 않고 다소 과장이 섞여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건 그런 소문이 있는 것은 사실.

게다가 아직 나이 마흔도 되지 않은 나이.

전무군단의 노회한 인사들이 표세인을 기꺼워할 것 같지는 않았다.

‘딴은 그럴듯하군.’

하지만 상대가 양성태다. 이치적으로는 아귀가 딱 들어 맞는데도, 어쩐지 그 안에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숨어있다는 느낌이다.

아니, 딱 맞물린 아귀 자체가 틈새로 그 뒤에 숨겨진 무언가가 드러날까, 우려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든다.

‘하지만 내가 양실장과 수싸움 따위를 해봤자······.’

원래도 자신 없는 수싸움을 천하의 양성태와 겨룬다는 것은 바보 짓이다.

최기환은 복잡한 머릿속을 지우고 그저 자신이 입장만을 돌이켜보았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더군다나 그곳에는 이제 문상훈까지 포진해 있지 않던가?

하지만 역시나 일말의 께름칙함이 남는다.

“우선 시간을 좀 드릴 테니, 충분히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양성태가 자리를 벗어나고 혼자가 된 최기환은 잠시 고민하고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한잔하자.

간결한 메시지였다.

*

*

*

“갑자기 이 인간이 무슨 일이지?”

“왜요?”

“아, 최기환 실장이 술 한잔 하자는데?”

“아!”

“아?”

내 반응에 한팀장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답장을 보고는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최실장과 술 약속한 적 있어?”

“지난번에 한팀장님과 셋이서 한잔 하자고 하시던데요?”

“정말 별일이네.”

“말씀을 들어보니, 그래도 한팀장님께는 상당한 호의를······.”

“그런 양반이 아니야.”

“그래요?”

한팀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셨다.

“불안한데.”

“뭐가요?”

“이 양반이 갑자기 이러는게, 좀 께름칙하네.”

술 한잔하자는데 거기까지?

“이 양반이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약간 4차원이거든, 왜 그런 사람 있잖아.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데, 집에 가보면 개판으로 사는 사람.”

“네.”

“그런 사람이거든.”

아, 뭔지 알 것 같다. 회사 책상은 깔끔한데, 집 청소는 안하는 사람.

그런 사람 꽤 있지.

“보아하니, 이거 사내 정치 일환인 것 같은데, 이 사람 이런거 못하는 양반인데.”

“걱정되세요?”

“걱정은 무슨······.”

한팀장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돌렸지만, 걱정하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정말로 속 정 깊은 사람이다.

팀장으로는 이런 사람이 최고다. 그리고 부장 같은 중간관리직으로서도 흠잡을 구석이 없다.

역시나, 이 사람 승진시켜야 한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 하자고 부른 거야?”

“별건 아니고, 한팀장님 이제 그만 슬슬 진급하셔야죠.”

“뭐?”

한팀장은 화들짝 놀랐다.

“뭘 그렇게 놀라세요. 여로모로 자격 충분하다 못해 넘치시는데, 너무 오랫동안 팀장 자리에 계셨잖아요.”

“아니, 무슨 그런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해?”

“그럼 어떻게 하나요. 회의실 빌려서 중대발표라도 해요?”

“······그건 그렇지.”

“아무튼 그렇게 알고 계세요.”

“아니, 진급이 표팀장이 바라면 뚝딱 되고 그런거야?”

“바란다고 뚝딱까지는 아니지만, 이번에 문이사님도 귀국하셨겠다. 이 참에 저희도 체급 좀 불려야죠.”

그동안 파벌의 체급이 부족하다는 인식은 하고 있었지만,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느라고 다소 지지부진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함전무와 이상무의 세력이 예전 같은 위세를 잃어버린 지금. 이 절호의 기회를 틈타, 확고부동한 위치를 확보할 계획이다.

모두의 시선이 그저 함전무가 내건 판호에 몰려있는 사이에 그 이상을 손에 쥐어야 한다.

“그런데 나하나 부장 단다고 달라진 티가 나겠어?”

“하나가 아니죠.”

“응?”

“저도 진급하려고요.”

내 말에 한팀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급이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하는 거야?”

“하고 싶다기보다는 해야겠다, 싶은 거죠.”

사실 스튜디오 대표가 팀장이라 불리는 것도 좀 웃긴 것은 사실이다.

회장님의 지원 덕분에 어쩌다보니 밸런스가 맞지 않게 되어 버렸다.

“해야겠다라······. 표팀장.”

“네.”

“뭔가······. 상당히 커졌네.”

“커졌다고요?”

키 클 나이도 한참 지났는데, 갑자기?

“······최기환 실장과 술자리. 이거 그냥 친목도모 아니지?”

“네.”

“알겠어. 혹시 내가 뭐 해야 하는 것 있어?”

“글쎄요. 이건 저도 최실장님이 어떤 분인가 가늠하는 자리라서요. 딱히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가늠까지 필요한 양반이 아니긴한데······. 뭐 표팀장이 필요하다면야, 그건 거겠지. 아무튼 알겠어. 오늘 보자는데 시간 괜찮아?”

“네. 좋습니다.”

한팀장은 메시지를 전송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바쁜 일이라도 있어?”

“오늘 술자리에 가려면, 좀 서둘러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아, 그리고 조만간 진급하시면 팀장자리 비는데, 그 부분도 고민해주세요.”

“음······. 그거 쉽지 않네.”

지금 한팀장 밑에 있는 차장급이 김순영 차장이다. 원래 앙숙이었지만, 개발2실에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탓에 우리에게로 투척되어진 인물.

“마땅한 인물 없으면 밖에서 찾으셔도 되죠.”

“그것도 방법이지.”

한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김차장에게 팀장직은 아직 버겁다라고 느끼는 모양이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알겠어. 음······. 누가 좋으려나······.”

나는 한팀장과 헤어진 후, 내 자리로 돌아왔다.

“다녀오셨어요.”

“응.”

-타다다닥!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작성하던 문서를 손보기 시작했다. 이걸 마무리해야, 나도 마음 편히 술자리에 갈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업무지만 중요도는 무척 다르다.

사실 현재 내 상황에서는 문서 하나 보다 정치적인 일들이 훨씬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개발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무언가 마음이 편치 않다.

“오늘 바쁘신가 보네요.”

“응. 바쁘다.”

“······.”

“뭘 하고 싶든지. 하지 마라.”

“그렇게는 못하겠네요?”

“왜?”

“팀장님한테 술냄새가 나요.”

“뭔소리야, 나 어제 술 안마셨어.”

“오늘 술 마실 것 같은 냄새가 나요.”

“······그러냐?”

공감각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한 감각의 심상을 다른 감각의 형용사로 묘사하거나 하는 것을 뜻한다.

아무래도 이놈은 이런 능력을 가진 것 같다.

업무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 아쉽다.

“남자끼리 술자리야. 네가 낄 자리가 아냐.”

말하고 보니,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이 녀석이 남자들 술자리에 좋다고 끼는 스타일도 아니니까.

“저도 가야 할 것 같아요.”

“뭐?”

“저도 참전하겠습니다.”

“아, 아니 왜?”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정말로 네가 왜?

“뭔가 촉이 와요.”

“네가 필요할 것 같다는 느낌으로?”

누가 들으면 말 같지도 않은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가끔 이 녀석의 촉이 무서울 정도가 있다.

그래서, 9할은 헛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래. 뭐 재미있는 자리는 아닐 텐데, 네가 상관없다면 안 될 것은 없지.”

“오케이.”

“근데 무슨 촉? 뭐 힌트라도 줘봐.”

혹시라도 나도 대비해야 할 수도 있잖아. 어느 정도 정보 공유가 있어야, 나도 준비를 하지.

“힌트라기 보다는 그냥 오늘 제가 술을 좀 마셔야 할 것 같다는 촉이 오네요.”

“네가 술을 마셔야 할 것 같다는 촉?”

“네.”

“아······. 너 지금 심심해서 나한테 장난치는 거구나?”

“······그럴지도?”

“하하하.”

“하하하하.”

오랜만이다. 이 녀석이 이런 영양가 1도 없는 장난을 치는 것도······.

“지금이야. 도망쳐.”

바쁠 때, 방해 공작을 펼쳤으니, 데미지 2배 버프 들어간다.

지금 맞으면 아프다는 정도로 안 끝나.

“알겠습니다!”

홍켓몬은 후다닥 달아났다.

“두 분은 정말로 친하시네요.”

권태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법 오래 붙어있었으니까요.”

“보기 좋네요.”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네요.”

나나 홍켓몬이나, 워낙 캐릭터가 있어서 이따금 눈살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좋게 봐준다면야,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보다 지금 깨비몬 출시 관련 디벨롭 문서 작성 중이신 거죠?”

“네.”

“이거 한번 봐주세요.”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파일 하나가 전송되었다.

“이게 뭐죠?”

“남궁과장이 혼자 틈틈이 작업했나 보더라고요. 어제 저에게 컨펌 좀 해달라고 했는데, 솔직히 남궁과장 실력 아시잖아요?”

알지. 알다마다. 남궁원은 내가 건진 최고의 득템이나 마찬가지다.

“잘했네.”

솔직히 남궁원의 문서 처내는 실력은 속도와 완성도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내 일까지?”

이건 내 할 일은 대신해준 수준이 아닌가?

“어필하는 거죠.”

“어필이요?”

“자기도 좀 봐달라고 하는 거죠. 두 분이 너무 친하시니까, 좀 불안한 기분이 드는 거겠죠?”

으음······. 안 그래도 요즘 툭툭 불만을 내뱉기는 했었지.

“오늘도 바깥일 신경 쓰시는 것 같은데, 가끔은 안쪽도 들여다봐 주세요. 다들 자기일 잘하는 인재들이라 크게 걱정 안 하시는 것은 알지만, 믿는 것과 무관심은 다른 거니까요.”

반박할 수 없이 옳은 말이다.

“감사합니다. 권차장님. 유념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제 부족한 점이 보일 때마다,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표팀장님은 정말 그릇이 크세요.”

“아닙니다. 부족한 게 많다는 것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아니까요.”

판호건으로 피치를 올리다보니, 요즘 팀원들을 좀 신경 쓰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깨비몬도 상당히 하드한 스캐쥴로 진행했고, 그 일정을 문제 없이 잘 처리해준 팀원들에게 속으로만 고맙다 생각하고, 뭔가 해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다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여준다.’

나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선물을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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