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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24화 (124/346)

124.

“상황은 이해했겠지?”

조회장의 말에 조연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해는 하겠는데, 납득은 못하겠다는 얼굴이네.”

“······.”

그말 그대로였다.

함전무가 판호와 전무군단의 후계자를 운운하며 진행하고 있는 이번 일에 대해, 조연아는 다소 탐탁지 않은 심정이었다.

“오너라는 것은 때로 나서기 보다,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때지.”

“하지만 함전무의 꽌시와 판호. 이것들 모두 회사의 힘으로 구축한 것입니다.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에요.”

연아는 이번 일에 자신이 손 놓고 지켜봐야만 한다는 것이 못내 신경 쓰였다.

게임업계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고려할 때, 함전무가 지닌 중국과의 파이프라인을 저들끼리 알아서 이어받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중요한 만큼 오너가 컨트롤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직원들의 일이라고 그들에게만 맡겨 놓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방임에 가깝다는 것이 조연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함전무, 그 녀석이 어처구니없게도 표세인을 마음에 들어하는 모양이더군.”

“······.”

그것이 그나마 조회장의 말에 따라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였다. 표세인이 차지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그렇다면 안심이다. 하지만 그것도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다.

표세인은 천생 개발자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꽌시가 주어진다면, 그가 개발에만 전념할 수는 없으리라, 차라리 그것을 자신이 손에 넣고 그를 돕는 것이 이상적인 그림일 터.

“사적인 감정 빼라고 했다.”

순간 조회장의 기세가 일순 돌변했다. 가늘게 뜬 날카로운 눈빛에 연아는 흠칫 놀랐다.

“나라고 과거에 겪어보지 않았겠냐? 마음이 가는 놈 밀어주고 싶고, 눈밖에 난 녀석 밀어내고 싶지 않았겠냐고, 그런데 그거 좋지 않다. 아니, 안 되는 거더라.”

“······.”

오랜만의 수업이다. 연아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아버지의 아니, 회장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

“결국 시류라는 것이 있어. 떠오를 때 뜨고, 가라앉을 때 내려가는 법이다. 그거 인위적으로 손대면 조정 안 된다.”

“······.”

가르침 와중에는 그저 묵묵히 들어야 한다. 그정도를 모를 정도로 배움이 얕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생각에 자신을 가질수록 리스크는 늘어나는 법이다. 때때로 밀어붙이는 것도 좋지만, 이런 일은 그런 종류가 아니야.”

“······.”

“보아하니, 내 말은 씨알도 안 먹히는 표정이기는 하다만 적어도 머릿속에 새겨둬라.”

“네.”

“그래. 가봐라.”

“네.”

연아는 조회장의 우려 섞인 시선을 등에 지고 회장실을 벗어났다.

“오셨어요?”

“네.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조회장의 말대로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일이다. 다름 아닌, 약혼자의 일이다.

게다가 차후 자신이 회장이 되었을 때의 그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기도 하다.

“양실장과 문이사가 움직였다지요? 그 건에 대해서 알아낸 것 있나요?”

“···죄송합니다.”

“···역시 양실장이군요.”

조연아의 말에 김비서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나 이런식이었다.

양실장의 정보통제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양실장을 향해 안테나를 세울 때마다, 그가 허락하는, 그가 선별한 그림만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아직 양실장에게는······.”

“이 시점에 양실장과 정보전으로 승부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죠. 조바심 내실 것 없습니다.”

그의 통제력의 상당 부분은 회장의 총애를 받는다는 부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비서의 역량은 부족하지 않다. 아마도 자신의 입지가 그녀의 등 뒤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상황에 상당부분 기여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묘합니다.”

“묘하다고요?”

“표세인 팀장의 움직임은 전혀 가림막이 없습니다.”

“전혀?”

“네.”

김비서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면 분명히 무언가 있을 것이었다.

‘전혀 없다.’

천하의 양실장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최측근인 표세인의 동향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리가 없다.

‘문이사의 등장 이후로 무언가 변했나?’

두사람이 직접 손을 잡았다는 것은 비밀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직후 자신들의 행적은 더 꽁꽁 숨기면서 표세인의 행적은 드러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로군요.”

“네. 처음에는 표팀장의 입지가 너무 강해지면서 그들 내부에 알력 다툼 같은 것이 발생한 것은 아닐까? 추측도 해봤습니다만······.”

“양실장이 표팀장과 알력다툼을?”

“일전에 표팀장은 양실장의 지휘하에 문이사와 충돌한 적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문이사와 양실장이 손을 잡는 상황에서 문이사가 다소 표팀장을 찜찜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군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끼리 엮이는 일이다.

세상에 한결같이 성격좋고 대범한 사람은 없다.

조금전 조회장 본인이 말했듯이, 누구라도 기꺼운 사람과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 있기 마련.

“이부분에 대해서는 역시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비서가 조연아의 눈치를 살폈다.

“음······.”

지금까지 표세인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양실장이다.

물론 그 저변에는 조회장의 지시가 한몫했었지만, 문이사와 손을 잡은 이시점에 공교롭게도 표세인에 대한 가드를 완전히 풀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만약 양실장이 표세인과 각을 세운다면······.

-질끈.

조연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버지가 우려한 것이 이거였나.’

표세인이라는 이름만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방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표세인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싹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모두 손수 뽑아서 던져버리고 싶다.

아니, 그러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다.

“우선 표팀장을 포함한 스튜디오 대표들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세요. 그 다음이 전무군단 인사들입니다. 양실장과 문이사는 당분간 패스하죠.”

단단한 가드를 뚫을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자원을 다른 곳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그런데 오늘 표팀장이 최기환 실장과 술약속을 잡은 것 같더군요.”

“술?”

그런말 없었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술약속 같은 것이 있다면 언제나 먼저 연락하던 표세인이었다.

-우웅.

“아!”

스마트폰이 울렸다.

-나 오늘 술약속 있어. 최기환 대표와 한팀장과 한잔 할 것 같아.

순간 조연아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정말 우려할 틈도 안 주네.’

종종 일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는 하지만 서로 업무의 깊은 내막까지는 밝히지 않는 것이 조연아와 표세인 사이의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자신은 장차 회장이 될 것이고, 그에 관해 피치못하게 밝히지 못할 일도 생길거라는 생각에 항상 조심하는 한편, 때로는 그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표세인 역시 냉큼 그것을 알아채고 그녀와 보조를 맞췄다. 하지만 이럴 때는 또 여지없이 먼저 말해준다.

연아는 이것이 이상하게도 기뻤다.

“아무튼 부탁드려요. 함전무가 지닌 꽌시의 향방,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어디까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우리도 한발 걸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네. 심혈을 기울이겠습니다.”

업무 모드에 들어간 김비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

*

*

“여자친구분께 연락하셨어요.”

“응.”

“잘하셨네요.”

“근데 왜 갑자기 네가 내 여자친구를 신경쓰냐?”

안그래도 연락은 하려고 했었지만, 사실은 술자리가 끝난 후에 전달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홍켓몬은 뭘 잘 못 먹은 것인지, 뜬금없이 여자친구에게 연락은 했냐며 질문한 덕분에 연아에게 메시지를 보내게 된 것.

“훗.”

“뭐지 그 웃음은? 내 주먹을 장전시키는 그런 웃음 좋지 않아.”

“제가 뭘 생각하고 말한거라 생각하세요?”

“···그래. 내가 헛짚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홍켓몬을 보니, 정말로 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이놈은 가끔 이렇게 별생각 없는 말을 던지는데, 물어보면 자기도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거라고 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 보다 말해봐.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오늘 술자리에 끼겠다고 한거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최 이해가 안된다. 남궁원이 내 일을 거들어준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홍켓몬의 머릿속을 읽을 수가 없다.

“괜히 머리쓰실 필요 없어요. 별거 아니니까.”

“별거 아니면 말해라. 긴장시키지 말고.”

“양실장님 지시에요.”

“양실장님?”

홍기도는 슬쩍 주변을 살피고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당분간 위장전술 펼치시기로 하셨다면서요?”

“어.”

“그 동안은 새로운 전술통신망이 필요하겠죠.”

“그게 너다?”

“제가 또 통신병 출신 아니겠습니까.”

“니가? 그 무거운 통신장비 짊어지고 다녔다고?”

“아니요. 저를 뭘로 보시고 저는 교환병이죠! 저 무거운 거 못 들어요.”

허우대는 멀쩡한 녀석이 뭘 그렇게 당당하게 말한담?

“아무튼, 그런걸로 아시면 됩니다.”

“뭘 그런걸로 알아? 그래서 뭐 정확히 네 역할이 뭔데? 그냥 양실장님께 보고하는 것이 전부야?”

“그것도 있는데, 이번 경우에는 좀 다르죠.”

“뭐가 다른데?”

“듣기로 최기환 실장님은 음흉한 타입 딱 질색이시래요.”

“뭐, 그렇다고 하더라.”

양실장이 아닌 호탕한 문이사를 좋아하는 것 부터가 딱 그런 느낌이지.

“그런데 팀장님은 상황에 따라서 작전수행도 하셔야 하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만약 최기환 실장의 마음을 사야하는 이유가 생기면, 그러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아! 네가 그래서 나 대신 작전을 전개하겠다?”

“뭐 그런거죠.”

“그런데 이걸 양실장님이 지시하셨다고?”

“네.”

양실장은 우리 팀과 함께 부대낀 적이 손에 꼽는다. 아직 권태인 조차 홍기도의 캐릭터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양실장님은 벌써 이 녀석을 그렇게까지 파악하고 이런 지시를 내린다고?

확실히 굉장한 인물이다.

대체 이런 사람이 나의 어디에 끌려서 내 뒤에서 나를 밀어주려고 하는 것일까?

솔직히 내가 회장님이라도, 양실장은 연아의 뒤에 붙이고 싶지 않았을까?

그저 감사하기에는 양실장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두 사람, 왔네?”

마침 로비에서 기다리던 한팀장과 조우했다.

“최실장님은 먼저 도착해 있다니까, 우리도 어서 가자고.”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한팀장의 안내를 받아 약속장소로 도착했다.

“어?”

“···다른분 말씀은 없으셨잖습니까?”

한팀장이 최기환 곁에 있는 성진규를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럴 때보면 한팀장도 여간 아니다. 어쨌거나 준임원급 인사들 앞에서 눈살을 찌푸리다니.

“내가 부른 것 아니다. 이 녀석이 갑자기 찾아와서 이렇게 됐다. 게다가 그쪽도 군식구 붙여왔잖아.”

“갑자기 끼어서 미안해. 하지만 나도 표세인 팀장과 대화가 좀 나누고 싶었거든.”

성진규는 살짝 손을 들어 양해의 뜻을 표했다.

“아닙니다. 저야 영광이죠. 저도 뵙고 싶었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지.”

최기환의 말에 따라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그럼 주문은 제가 하겠습니다.”

홍기도는 냉큼 메뉴판에 고개를 박았다. 뭐랄까, 막내니까 얘가 이런 거 하는 게 맞긴 한데······.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얄밉지? 하지만 모두는 당연하다는 듯, 아니,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일단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지.”

최기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운을 뗐다. 간보거나 하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 바로 용건을 시작한다고?

모두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 더치페이지?”

“······.”

이, 이 사람······. 진짜 깨는 타입이구나.

< 레이스? 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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