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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26화 (126/346)

126.

셋이서 우선 검증을 거친 뒤에, 승자에게 몰아준다.

확실히 그렇게 한다면 이 승부에서 이긴 사람이 반드시 판호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합리적이면서 파격적이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란 무엇인가를 교과서적으로 제시한 느낌.

‘하지만 성진규는 그렇다치고······.’

마침 성진규가 슬쩍 최기환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최기환이 어떻게 나올지가 걱정되는 모양.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

“아무리 나라도 표팀장의 제안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라는 것은 알겠어.”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하지만 뭔가 끌려가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들어.”

“?”

설마, 이걸 거절한다고?

대쪽같은 인물이라고는 예상했었지만, 설마 이렇게 괜찮은 제안을 거절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애초에 함전무에게 조연준을 들먹이며 접근한 것은 조연준에게 한 방 먹이는 것으로 투자까지 한꺼번에 해치울 요량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함전무의 이름을 자신의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기간한정 특수 아이템.

함전무가 은퇴를 언급한 순간 표세인의 눈에 함전무는 딱 그렇게 보였다.

손에 넣기만 한다면 효과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최강의 아이템인 바.

‘이게 안통하면 말이 안되는데······.’

하지만 섣부르게 입을 여는 것보다는 한발 물러나서 상대의 반응을 지켜봐야 할 때도 있다.

나는 가만히 최기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람이란게 의외로 언제나 논리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야. 무엇보다 남들을 쥐락펴락하는 태도 자체가 마음에 안들어, 그러니까······.”

아, 안된다. 저말이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 한번 거절의 말을 내뱉으면 최기환 같은 인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번복하지 않는다.

실수다. 함전무라는 최강의 아이템을 너무 믿었다.

최기환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대는 좀 더 세심한 맞춤 전략이 필요했다.

“일단 제 말을······.”

내가 다급하게 사태를 수습하려 나서려는 찰나, 테이블 위로 쾅하고 큰 소리가 났다.

“···진짜 남자들끼리 혓바닥 엄청 기네요.”

나이스!

평소라면 버르장머리 없다고 한 대 쥐어박아야겠지만, 때로는 허슬플레이도 필요한 법.

홍기도는 살짝 붉게 상기된 얼굴로 테이블을 후려친 손을 떨고 있었다.

그래, 좀 쎄게 치긴 했더라. 아프겠지.

어쨌든 너무 의외의 상황인지라, 최기환조차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겠지.

고작 과장 나부랭이가 이런 자리에서 이런 행동을 보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홍기도는 나중에 술 핑계를 대기 위해 시작부터 혼자 열심히 먹고 마신 거겠지.

뭐, 그게 아니었어도 시작부터 엑셀 세게 밟는 놈이지만······.

“본인 입으로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하셨는데,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거절한다? 듣기에 우습네요. 차라리 남자답게 결판 보시죠.”

“남자답게?”

순간 최기환이 반응했다. 확실히 이런 타입에게는 의외로 남자다움 같은 하등 쓸모없는 코드가 먹히는 법이다.

“최실장님 체격 좋으시네요. 마침 표팀장도 체격 좋고요.”

어? 설마?

“그런데?”

최기환이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체격 자체만 놓고 보면 최실장이 훨씬 크기는 하다. 게다가 딱히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나름 열심히 헬스장 다니며 쇠질 좀 해본 느낌이다.

“각자 힘 자신있는 것 같은데, 팔씨름 한번 가시죠.”

“팔씨름?”

터무니없이 뚱딴지같은 소리에 모두가 당황했다.

‘작전 너무 허술하지 않냐?’

‘노노, 저런 사람은 딱 이런 느낌이 먹히는 법임.’

‘술 얼마나 마셨냐?’

‘2병?’

‘그런데 얼굴 왜그렇게 빨개?’

‘나중에 사과할 때, 취했다고 핑계대려고 잠시 숨 참았어요.’

독한 놈. 뭐, 그런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홍켓몬과 눈빛을 교환하는 사이, 성진규가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그거 재미있군.”

어? 이걸 물어?

최기환은 아예 소매까지 걷어붙이며 의욕을 불태웠다.

“남자끼리는 이런 화끈한 이벤트도 나쁘지 않지. 서로 힘으로 한번 대화해 보는 거야.”

누가 게임회사 직원 아니랄까 봐, 소년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낯부끄러운 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는다.

최기환 집에 책장 하나가 만화책으로 가득 차있다는 것에 내 손목도 걸 수 있을 것 같다.

“최실장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날 걱정하나?”

최기환은 살짝 기분이 언짢다는 듯이 미간을 구겼다.

-쿵.

다소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최기환이 테이블 위로 팔뚝을 올렸다.

“전에 한팀장에게 들은 적이 있어. 완력에 자신이 있다지? 나도 힘으로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지.”

“그전에 한가지만 확실히 하죠.”

“뭘?”

“제가 이기면, 제 제안 받아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지. 그럼 자네가 지면 어쩔텐가?”

최기환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진다고? 설마 팔씨름 세계대회 입상자라도 되십니까?

많이들 오해하는데, 팔씨름 팔뚝굵다고 잘하는 것 아니다.

세계대회 우승자 중에 팔뚝이 의외로 가느다란(그들 기준) 인물도 수두룩하고, 태릉에서도 이따금 테니스 선수가 역도선수를 이기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제가 지면 뭐든 최실장님이 하라는대로 하겠습니다.”

“···그거 좋군.”

최기환이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우선 힘빼시고.”

홍기도는 냅다 달려들어 심판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시작!”

“크으으윽!”

시작과 동시에 최기환은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깨달았다.

“이, 이건 뭐냐······.”

최기환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렇겠지, 설마 지더라도 어느정도는 힘겨루기가 있을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니까, 그런거 하시지 마시라니까.”

한팀장이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다 하셨으면, 끝내도 되죠?”

“어? 어?”

-쾅!

처음 홍기도가 테이블을 후려쳤을 때만큼이나 큰소리와 함께 최기환의 몸 전체가 옆으로 고꾸라졌다.

최기환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체격 대비, 딱히 힘이 좋다는 느낌도 아니다.

그냥 딱, 헬스장 좀 다녀본 일반인 수준.

그거 아세요? 팔씨름이란 의외로 전신을 이용해야 하는 법입니다.

“운동하실 때, 스트랩 많이 쓰시죠?”

“그, 그렇지?”

“스트랩 너무 과하게 쓰시면 안 좋습니다.”

악력을 보조해주는 스트랩은 좋은 보조기구지만, 때때로 근육량 대비 악력에 다소 안좋은 영향을 끼친다.

사실 나와 최기환의 힘차이는 고작 스트랩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그럼 약속한대로 해주시는 거죠?”

“그, 그래······.”

아직도 최기환은 얼떨떨한 모양이다.

“그럼 정리 됐네요.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죠.”

“사진?”

“원래 이럴때는 사진 한방 찍는 거죠.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는 말 모르시나요?”

홍기도는 성진규를 안쪽으로 밀면서 사진각을 잡았다.

“자, 찍습니다! 치즈~”

-찰칵.

카메라앱 특유의 경쾌한 효과음이 울렸다.

*

*

*

“그건 뭐지?”

“홍과장이 보낸 사진입니다.”

“사진?”

“예. 표세인 팀장이 일을 마무리 지은 것 같습니다.”

“둘이 정말 친하군.”

문상훈은 소파에 나직이 등을 기대며 콧방귀를 뀌었다.

“질투나십니까?”

“질투라니, 나 문상훈이야. 내가 그런걸 하겠어?”

딱 봐도 그래 보였지만, 양성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보다 그는 지금 급히 할 일이 있었다.

“뭐하는 거야?”

계속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양성태를 보며, 문상훈이 질문했다.

“미끼 투척하려고 합니다.”

“미끼?”

“표세인 팀장은 우리에게 각자 성진규와 최기환을 공략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렇지?”

지시라는 말이 아직은 좀 낯선 것인지, 문상훈의 표정은 다소 떨떠름했다.

“이건 전무 군단측의 신경을 보정훈과 자신에게로 쏠리게 하려는 노림수지요.”

“그정도는 나도 알아.”

“어쩌면 그들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일지 모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요. 자신들 스스로 지휘관을 모셔야 하는 일이니까요. 참으로 싫을 겁니다.”

“그래서 그 무거운 엉덩이를 걷어 차주겠다?”

“네. 그들이 조금 빨리 움직여주어야, 우리도 일이 편하니까요.”

“표팀장과 따로 이야기를 나눈 건가?”

마치 자신만 쏙 빼고 일이 진행되는 것 같아, 문상훈은 내심 심기가 불편했다.

그리고 양실장은 그것까지 모두 파악했다.

“설마요. 이런 일이야, 척하면 척 아니겠습니까?”

“흥.”

문상훈은 퉁명스럽게 글래스를 들어올렸다.

“저야, 이럴때나 도움이 되지만 문이사님은 이후부터가 본 무대가 아니겠습니까?”

“본무대?”

“개발이 시작되면 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물론 개발 외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청사진을 사전에 완성해 놓은 양성태였지만, 문상훈의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일부러 한발 물러나는 태도를 보였다.

“말은 잘하는군.”

그러면서도 싫지는 않은지, 문상훈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렸다.

각자 다른 능력과 다른 역할. 이렇게나 손발이 척척 맞는 관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인프라라는 느낌이었다.

‘케미스트리 하나는 최고로군.’

물론 그뿐만이 아닌, 개개인의 능력만 놓고 보더라도 최고다.

이런 팀은 무너질 수가 없다.

함께 어울리며 같은 비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넘치고, 스스로 그 안에 있다는 것이 못내 기쁘다.

“한잔 하지. 요즘은 정말 기분이 좋군.”

“저도 그렇습니다.”

“그거 별일이군. 크큭.”

두 사람이 같은 기분이라는 것이 못내 우습다. 언제나 경쟁에 불탄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이였기에, 상대의 기쁨은 자신의 고통이라는 공식 뿐이었다.

“그런데, 표팀장은 왜 함전무에게 접근한거지?”

“표면에 드러난 것 이상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언제나 두수, 세수 앞을 보고 움직이는 분이니까요.”

“그보다는 걸음마다 함정을 설치한다는 느낌이지만.”

동일한 인물에 대한 감상이 이렇게나 다르다. 하지만 서로의 의견이 틀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좋은 기분이다.

이런 날은 술이 달기 마련이다.

*

*

*

“오늘은 또 웬일이야?”

조회장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함전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해보니, 형님에게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은퇴를 입에 담은 이후로 함전무가 조회장을 부르는 호칭은 언제나 형님이었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조회장도 딱히 싫지는 않았다.

“뭘 말하려고?”

“저 지난번에 형님댁 장남에게 한방 먹은 것은 알고 계시죠?”

“으음······.”

천하의 조회장이라도 문제 있는 장남이 거론되면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가 없다.

“내가 사과라도 해야 하나?”

“사과는 무슨, 형님이 한것도 아닌데요.”

따지고보면 업무적인 일이었다. 자신은 사내정치를, 조연준은 주식브로커로서의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악연.

“하지만 제가 한방 먹은 것은 사실이니. 복수 정도는 하려고 합니다.”

“복수?”

“네. 마침 표세인 이 귀여운 녀석이 재미있는 계책을 준비해 오더군요.”

“표세인······.”

표세인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자, 조회장은 짧게 신음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함전무가 내심 표세인을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한 것이 못내 염려스러웠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표세인에게 너무 눈독들이다가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

“형님이야 말로 그만 손 떼시죠. 어차피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조실장 키워주셔야할 때가 아닙니까?”

“그건 맞지만······.”

이걸 말할 수도 없고, 가만히 있자니, 후환이 두렵다.

은퇴이후에는 사주와 직원이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몇 없는 지인이 되는 셈인데······.

‘이러다 TRPG 멤버 하나 날리게 생겼군.’

조회장은 씁쓸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아무튼 제 후계자 문제야, 이번건을 제일 잘 처리하는 녀석으로 낙점하기로 했으니, 그거야 표세인 그친구가 알아서 할 일이죠.”

“그래. 그건 정말 잘한 거야.”

무엇보다도 외부투자금을 물어오라는 아이디어가 무엇보다 매력적이지 않나?

“아무튼 조연준에게 복수하는 것에 대해, 불만 없으시죠?”

그래도 아들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함전무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그는 굶주린 늑대 같은 남자고, 이미 맥베스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상황이다.

굳이 자신의 체면 때문이 아니더라도, 한 방 먹이는 것으로 이쪽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성준아.”

“네?”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함전무는 움찔 당황했다.

“쎄게해.”

“네?”

“아주 쎄게해.”

“······.”

“표세인에게도 전해 아주 자근자근 밟아 놓으라고.”

진짜 이 집안은 뭔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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