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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28화 (128/346)

128.

‘표세인이가 그 망나니 녀석과 한 판 붙겠다고 나설 줄이야.’

조회장은 오늘따라 심기가 불편했다.

자신의 장남을 공격하겠다는 선고를 들었기 때문에?

전혀 아니었다.

남사스러운 일이라서 밖에 나가 떠든 적은 없지만, 조연준은 어려서부터 조회장의 오랜 골칫거리였다.

전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겠다고 했을 때, 오히려 안심을 정도였다.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진정이 되겠지.

하지만 결국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이번에는 친아버지의 회사에 눈독을 들이는가 하면, 여동생이 물려 받기로 내정된 회장자리까지 침을 흘리기 시작한다.

“이 머저리 같은 녀석이······.”

회장자리를 원했다면 그에게 기회는 있었다. 아니 한참 어린 연아보다도 훨씬 큰 기회가 있었다.

만약 그가 자신의 밑에 들어와 성실하게 후계자 수업과 지지기반을 닦았다면? 한참 어린 연아에게는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십년 넘게 코빼기도 비추지 않다가 이제 와 이런 음흉한 방식으로 제 친족의 사업을 넘보다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양성태의 질문에 조회장은 대답하지 않고 지긋이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뉘었다.

“···골치가 아프군.”

“······.”

조회장의 말에 양성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역시나 자신의 마음을 꿰고 있다.

심복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심복이 이제는 온전히 자신의 사람이 아니다.

표세인이 등장한 이후 자신의 주변은 물론 회사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괘씸한 녀석 같으니라고······.’

자신의 딸을 데려갈 녀석이 이제는 심복까지 앗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 와중에 국내 거대 개발사 중에서는 드물게도 주가가 폭증한 상황이다.

“깨비몬 발표 이후, 현재 우리 주가가 얼마나 상승했지?”

“약 27% 상승했습니다.”

“크크큭.”

정말이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출시되지도 않은 게임의 영상과 게임쇼 출전만으로 이 정도 성과다.

장난처럼 던져준 30억을 시작으로 퀘스트 놀음 좀 했더니, 어느새 회사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로 급성장했다.

“함성준이도 떠나고······. 나도 머지 않겠지.”

조회장은 다른 대기업 회장들처럼 죽기 전까지 회사 경영에 목멜생각은 없다.

“만약 내가 퇴임한다면······. 예상 주가 변동은 어떻게 되지?”

모든 권력자들의 공포는 자신의 퇴임 이후의 발생할 왕국의 몰락.

조회장 역시 양실장을 비롯한 여러 인재들을 이용해 오랫동안 이후의 일을 대비해왔다.

“지난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5% ~ +5%. 현재 예측 가능한 변동폭입니다.”

“산성은 회장 교체 이후 오히려 주가가 상승했지.”

“예. 하지만 저희는 사정이 다릅니다. 무엇보다 조연아 실장의 나이가 문제죠. 그쪽은 후계자의 나이가 이미 사십대 중반이었고, 오랜 시간 경영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게 문제지.”

“그것을 위해서 표세인 팀장을 스타 개발자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푸시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시드 마이어나 히데오 코지마 같은 인물들은 그 이름값만으로 하나의 거대 브랜드다.

누구도 개발사의 회장 이름 따위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다.

개발 계획이나, 출시 계획 발표 당시에 스타 개발자의 이름만 언급된다면, 유저들은 그저 열광하기 마련이다.

만약 계획대로 표세인이 스타 개발자 반열에 올라선다면, 조회장의 퇴임은 오히려 주가 반등이라는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IT업계에 있어 혁신과 쇄신은 언제나 핫한 키워드니까.

“하지만 역시 이걸로는 부족하지.”

“네. 부족합니다.”

이쪽도 마찬가지로 연륜이 부족하다. 대개의 스타 개발자들도 이름을 떨친 것은 몇 개의 히트작을 연거푸 터트린 이후에나 가능하다.

“아직은 더 버텨야 겠군.”

“네. 그렇습니다.”

“얼씨구?”

조회장은 피식 웃었다. 지금 양성태의 대답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기 마련.

“이제는 내 앞에서 대 놓고 표세인을 떠받드나?”

“모든 것은 회사의 장래를 위한 것입니다. 회장님께 보은하려는 제 나름의 노력입니다.”

아니라고도 안한다.

이 우스운 상황이,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는 말 그대로 우습다.

더욱이 표세인이 마냥 남이라면 모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으로 가족이 될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이럴때면 그저 웃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다.

“표세인이가 함성준에게 접근했다지?”

“네.”

“목적이 뭐라고 보나?”

“조연준을 공략하기 위해서입니다.”

“공략이라······.”

함전무의 말을 돌이켜 보자면, 공략이라기보다는 공격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함전무가 외부 투자 운운했었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목표는 돈인가?”

조연준의 지갑을 털겠다? 이게 가능한 이야기 일까?

워낙 기상천외한 성과를 거듭해온 표세인이지만, 이번 일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 와중에 조연준은 천이사에게 접근했다지?”

“네. 목적은 천이사가 아니겠지만······.”

“보정훈?”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양성태의 질문에 조회장은 잠시 턱을 긁적였다.

판호를 둘러싼 프로젝트에 투자해서, 투자이익을 얻어낸다. 무척 건설적이고 정상적인 접근이다.

하지만 정작 지분을 쥘 수 없다. 그 탐욕의 화신 같은 녀석이 지분이 걸리지 않은 투자에 흥미를 느낄 리가 없다.

“아마도 그 것조차 함정이겠지.”

투자라는 것은 실제로 입금이 완료되기 전까진 무수한 변수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그러한데, 조연준의 수작이라면 고려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확실히 곤란하군.”

거금을 휘두르는 주식 브로커라는 신분에 맥배스 오너의 아들이라는 신분까지.

누구라도 휘둘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참에 한번 잡긴 잡아야 겠군.”

평생 품에서 기른 조연아에게 조차 오랜 시간 신분을 숨기고 비서 업무를 강요했던 조회장이었다.

그런데 눈 밖에 난 녀석이, 자신이 핏줄 운운하며 회사를 농락한다? 더이상 좌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침 자신이 나설 것도 없이 표세인이 함전무를 끌어들여서 무언가 꿍꿍이를 준비중이다.

“한손 거들기는 해야하려나?”

“거들어 주신다고요?”

양성태는 의아하다는 듯이 조회장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직접 나서서 누군가를 조력한 적은 없었던 조회장이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언제나 사태를 관망하는 것을 일종의 신념처럼 지켜오지 않았던가?

“표세인이에게 전해.”

“네.”

“내 자리 하나 마련하라고.”

“네?”

“들었으면서 뭘 되물어? 요즘 너무 변했어.”

변한 것은 자신인가? 아니면 조회장인가?

“뭘 멀뚱히 바라보고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여튼 변했어.”

‘저보고 변했다고 타박하시기에는 회장님이야 말로······.’

양성태와 조회장은 그렇게 서로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었다.

*

*

*

“회장님이 거들어주신다고요?”

“네, 본인 자리도 한 자리 마련하라고 하시더군요.”

“아하······.”

“딱히 고민하실 필요까진 없으실 겁니다.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까, 우려되신다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일단 마왕소환 카드는 잠시 접어두자. 이미 각본과 캐스팅이 끝난 상태에서 조회장 같은 히든 카드가 들어오면 오히려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일단 조회장님의 역할은 뒤쪽으로 미뤄두자. 애석하게도 당장은 카메오 정도가 내가 회장님께 드릴 수 있는 역할의 전부다.

“···그런데 그보다는······.”

양실장은 슬쩍 눈을 돌려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제임스는 괜찮습니까?”

“뭐가요?”

“지금 친형을 공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자리입니다. 솔직히 조금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양실장의 말에 제임스는 눈을 껌뻑이며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업무지 않습니까.”

“업무······긴 하지요.”

“업무에 사적인 감정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리고······.”

“?”

“조연준과 친한 사람 같은 것은 세상에 없을 겁니다.”

뭐랄까, 순간 조연준도 참 딱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연아도 그랬지만, 조연준을 오빠라거나, 형이라 부르지도 않는구나.

“어쨌든 핵심은 하비 로스입니다.”

하비 로스.

조연준의 핵심 고객으로 수많은 고객이 그를 통해 조연준과 거래하고 자신들의 자본 운용을 맡기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거 지금 막 조사한 것이 아닌 것 같은데요?”

“네. 혹시 이런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예전부터 틈틈이 준비했었습니다.”

“준비?”

“예. 분명 조연준 성격에, 언제고 반드시 이런 일을 벌일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제임스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어쨌건 하비 로스를 포섭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겁니다. 만만치 않은데다가, 조연준의 실적은 상당히 우수한 편이었으니까요.”

“확실히 그렇군요.”

나와 양실장은 제임스가 준비한 자료를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 시작되고 %로 끝나는 수치들만 봐도 조연준이 주식브로커로서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제가 준비한 자료는 이상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작전 실행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네요.”

“그런데 어떤 작전을 준비중이십니까? 조연준이 한국에서 보정훈 실장을 만나서 음흉한 꿍꿍이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와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양실장은 살짝 우려 섞인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조연준을 만나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지난번 일로 경계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타입은 지난번 일을 만회하고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만나자고 하면 헐레벌떡 달려나올 겁니다.”

내 말에 제임스는 나지막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점이 있지요. 그런 부분은 아버지를 닮아서······.”

뭔가 아버지를 닮았다는 부분에서 묘하게 표정이 좋지 않다.

“그런데 혹시 작전을 비밀로 하실 겁니까?”

양실장은 조금 답답한 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제임스도 마찬가지.

확실히 자료까지 요청하고서 이들에게까지 비밀로 하는 것은 너무 박하긴 하지.

사람에 따라서는 고문에 가까울 수도 있지 않나? 유독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제가 사실 이번에는 아이템을 하나 준비해왔습니다.”

나는 테이블 위에 만년필을 올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조연준을 낚고 하비 로스를 움직일 수 있는 미끼이자, 열쇠랄까요?”

“미끼이자, 열쇠?”

“저는 그 두사람이 서로 끈끈한 신뢰로 묶여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거야······.”

“조연준만큼 신뢰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사람은 없죠.”

제임스는 한마디, 한마디에 조연준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것이 느껴진다.

게다가 미국 스타일로 형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으니, 더더욱 그렇다.

“이미 회장님께는 ‘아주 쎄게’해도 된다고 하셨으니, 이참에 제대로 저질러볼 생각입니다.”

“저지른단 말씀은?”

“저 조연준을 백수로 만들 계획입니다.”

“헉!”

“······그거 정말 재미있겠군요.”

맞습니다. 정말 재미있을 겁니다.

돈 믿고 까부는 녀석에게는 돈을 공격하는 것이 올바른 공략법이 아니겠나?

“그리고 제임스.”

“네?”

“조연아 실장님께 가보세요.”

“조실장이요?”

제임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와 조실장님이 이번에 합작해서 회사를 하나 차릴 생각입니다.”

“회사라고 한다면?”

“투자회사를 하나 차리려고 합니다. 제임스는 당분간 이 일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투, 투자회사요?”

“설마 지금 그리고 계신 그림이······.”

“네. 맞습니다. 하비 로스와 그를 따르는 자본가들이 저희 투자회사의 첫 고객이 될 것입니다.”

“!”

“!”

두 사람이 이렇게 놀랄 정도라면, 조연준은 더더욱 그렇겠지?

이 정도면 이번 작품의 흥행은 이미 예정된 수순 아니겠나?

< 액션 스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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