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태권도를 그만두고 표세인이 무료함을 달랠겸 택한 취미는 종합격투기였다.
딱히 종합격투기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체육관이 집과 가까웠기 때문.
그리고 그곳에서 표세인은 체육관 관장에게 한가지 가르침을 받았었다.
‘기억해라, 프로와 아마의 차이는 원하는 지점을 정확히 가격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
‘왜 대답이 없어?’
‘그걸 선수도 아닌 저에게 왜 가르쳐 주시는 건데요?’
‘······넌 왜 선수 안하냐? 운동은 선수반에서 하면서?’
‘여기서 하라고 난리치신 것은 관장님이신데요? 전 취미반이니까, 싫다고 계속 말씀 드렸고요. 이제라도 취미반으로 돌아갈게요.’
‘아니다. 내가 말실수했다.’
‘······.’
별로 큰 의미는 없는 가르침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표세인은 처음부터 그게 가능했었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튼튼하게 단련된 그의 하반신과 타고난 감각은 표세인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었다.
어떤 스포츠에서라도 성과를 낼 수 있을만한 축복받은 신체.
모든 체육 지도자가 군침을 흘릴 수 밖에 없는 타고난 자질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축복받은 신체가 차갑게 분노하고 있었다.
“눈 조심해라.”
엄지와 검지를 곧게 편, 그 사이를 이용해 토마스의 미간을 빠르게 쳤다.
“윽!”
갑작스러운 공격에 토마스는 제 얼굴을 붙잡고 주춤, 물러났다.
그 틈을 노리고 한 걸음 다가선 표세인은 원투 펀치를 날렸다.
뒷발의 회전력이 골반과 허리를 타고 어깨로 이어진다.
그렇게 체중이 올바르게 실린 주먹은 정확히 토마스의 턱을 두 번 강타했다.
-퍼퍽!
아래로 한번, 오른쪽으로 또 한 번.
찰나의 순간에 뇌가 두 번이나 흔들리자, 150kg이 넘는 거구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쿵.
벌목장의 나무가 쓰러지듯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토마스는 그대로 벌렁 나자빠졌다.
“한국 땅에서 어르신께 폭력을 행사하다니······. 아주 때려달라고 고사를 지내는구나.”
표세인은 후속타를 날리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함전무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자네 정말 주먹 잘 쓰는군.”
“······부디 회사에는 비밀로······.”
당황한 나머지 앞뒤 안 가리고 주먹을 날렸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회장과 연아의 귀에 들어갈까 사뭇 걱정되었다.
“마커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군.”
조연준은 풀린 동공을 껌뻑이며 바닥을 헤엄치는 토마스를 보며 짧게 혀를 찼다.
“차라리 피라도 좀 흘릴 것이지······.”
폭행으로 엮어 공권력의 힘을 이용하려 해도, 딱 봐도 별로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조연준은 못내 그것이 아쉬웠다.
“사람 쓰러졌는데, 할 말이 그게 전부냐?”
“쓰러트린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것도 그렇긴 하다.
“아무튼, 자네 잘 생각해보게, 내일까지 시간을 주지. 우리와 손잡고 맥베스를 공격하기보다는 함께 상생하는 길을 찾아보자고, 그게 순리일세.”
“불법 녹취까지 하고서는 이제 와 좋은 어른 행세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나?”
“많이들 모르는 사실이지만, 녹취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네.”
“어?”
“미국도 몇 개 주를 제외하면 불법이 아닐 텐데?”
조연준도 이것은 몰랐던 모양인 듯,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어쨌든 잘 생각해보게.”
“······.”
함전무는 조연준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쓰러져있는 토마스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가지.”
“네.”
표세인은 함전무와 함께 호텔을 벗어났다.
*
*
*
“그런데 저 친구는 괜찮은 건가?”
“네. 턱만 좀 흔들어 놓은 것뿐이니까요. 그보다 전무님은 괜찮으세요?”
토마스라는 경호원은 함전무를 거의 테이블에 내리꽂듯이 처박지 않았던가?
예정에 없던 액션씬 덕분에 살짝 걱정된다. 함전무님은 나이도 젊지 않으신데, 이런 험한 일을 겪으시다니······.
“그보다 조연준이 과연 연락을 할까?”
“아니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연준의 캐릭터는 명확하다. 그는 자신의 뜻을 따를 바에야 장렬한 침몰을 선택할 유형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판단을 했기에 나는 기꺼히 그를 침몰시킬 준비를 끝마쳤다.
“그보다 자네는 정말 든든하군. 나는 아까 그 덩치 큰 친구와 눈도 못 마주치겠던데······.”
“에이, 군대도 안 가본 녀석들 마음가짐이야 뻔하지요. 그냥 기습 공격이 통한 것뿐입니다.”
“크큭. 또 군대 이야기군.”
“또라니요. 지난번에도 전 그냥 전무님 장단에 맞춰 드린 것뿐입니다.”
“그래. 그런 거로 하지, 그보다 나는 제대로 한 것 맞나?”
함전무는 살짝 내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데뷔작이신지라, 평가가 궁금하신 모양.
나는 대답 대신 엄지를 치켜들었다.
“훌륭하셨습니다.”
“그런데 상생 운운한 것이 소용이 있을까? 씨알도 안 먹힐 것 같던데?”
함전무는 살짝 걱정하는 눈치였다.
“지난번에 말씀 드렸다 시피,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그럴까?”
“그는 타인의 호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어? 내 생각과는 뭔가 좀 다른데?”
“아닙니다. 같을 겁니다. 그는 타인의 호의를 발견하면 그것을 어떻게든 이용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이것은 확실한 정보입니다.”
이미 제임스를 통해 조연준의 캐릭터는 파악이 끝났다.
“어쨌든 작전은 성공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함전무는 뭔가 입맛이 쓰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아까 상생 운운한 것은 완전히 연기는 아니었던 모양.
하지만 이미 배는 떠났다. 그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다음 작전이 개시된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투자자를 공략하는 것과 방어하는 것은 투자시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활동 아닙니까. 이건 그에게도 익숙한 방식일 겁니다.”
“녹취까지 이용한 강탈을 경험한 적이 있을까?”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법 아니겠습니까?”
물론 나라도 이렇게 쓴 약 따위는 바라지 않지만······.
“어쨌든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끝났습니다.”
“곧장 하비를 만나러 가는 것 아니었나?”
“그건 제 역할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그때였다. 스마트폰이 울리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녹취록 잘 받았습니다. 마침 지금 하비와 미팅을 시작합니다.
때마침 제임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회사 최고의 금융 전문가가 나설 차례입니다. 일처리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니,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자네의 일 처리는 정말 빈틈이 없군.”
“아닙니다. 함전무님께서 험한 일을 겪으실 줄 예상치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야. 이런 일을 어떻게 예상했겠나.”
함전무는 힘없이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르렸다.
“어쨌든 이제 결과를 기다리면 되는 건가?”
“네. 이제 느긋하게 기다려보시죠.”
“자네는 일이 100% 뜻대로 흘러갈 거라고 믿는 모양이군?”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러니 믿을 수 밖에요.”
“······좋군. 아주 좋아. 그게 리더의 역할이지.”
아니, 딱히 리더라서가 아니라, 제임스의 정체와 경력에 기대를 거는 것 뿐입니다만?
“사람에게 일을 맡길 때는 그렇게 믿음을 갖고 지켜볼 줄도 알아야지. 이건 방임과는 엄연히 다른 법인데, 전혀 다른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이들이 많지. 자네는 그런 점에서 여러모로 놀랍군.”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어쨌든 홀가분하군.”
“이제 한동안 조연준이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모습을 상상하시며 결과를 기다리시면 될겁니다.”
“그래. 정말로 후련해. 고맙군.”
“뭘요, 다 회사를 위한 일이잖습니까.”
나는 함전무에게 미소로 답했다.
*
*
*
“들어오시랍니다.”
“네.”
제임스는 비서의 지시에 따라, 하비의 방으로 들어갔다.
하비는 따로 사무실을 두지 않았다. 거대한 저택 내부에 자리한 서재를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하비입니다.”
“제임스입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앉으시죠.”
하비는 친절하게 제임스에게 자리를 권했다.
‘모를 일이군.’
첫인상만 놓고 보면 조연준 같은 인물과 함께 일하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왜 이런 사람이 조연준 같은 인물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일까?
그간의 조사에 따르면 하비는 재산 불리기에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소소하게 굴리는 자금을 제외하면 조연준과 투자회사에 맡겨두고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하비의 두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나이를 잊은 듯한 표정에, 더더욱 의구심이 싹튼다.
대체 어쩌다 조연준 같은 인물과 엮인 것일까?
“투자관련으로 제안을 하나 드리기 위해 왔씁니다.”
“투자라······. 이거 난처하군요. 제 자금은 대부분 전문투자자에게 위탁한 상황입니다.”
“말 돌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정확히 조연준이 담당하는 자금을 저희쪽으로 옮겨주실 것을 제안하러 왔습니다.”
“아······.”
설마 이런 용건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하비는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왜 하필이면 조연준······. 그에게 맡긴 자금이라고 특정하신 겁니까?”
“간단합니다. 그가 맥베스를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번 기회에 이러한 시도를 원천봉쇄할 계획입니다.”
“공격이라······. 분명히 그의 방식은 다소 공격적입니다. 하지만 지분 매입이라는 것은 결국 대개의 경우, 다소 공격적이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괜히 조던 벨포트와 같은 월가에서 이름난 인물에게 늑대와 같은 별명이 따라붙는 것이 아니지 않나?
합법과 위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탐욕적으로 지폐를 긁어모으는 습성이야말로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의 본성이며, 그들이 손가락질받는 원인이기도 했다.
“정상적인 주식 매매 행위를 공격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조연준에게 이번 일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친형제의 일이다.
제임스는 조연준의 행동 패턴을 훤히 꿰고 있었다. 그가 고작해야 물주에 불과한 인물에게 자신의 속내를 밝힐 리 없다고 확신했다.
“······제가 기본적으로 한번 맡기면 간섭을 하지 않는 주의이라서요.”
어떻게 포장하든, 결국은 모른다는 말에 불과하다.
실제로 하비의 표정은 무척 떨떠름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임스는 이 대화의 흐름을 자신이 완전히 주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조연준은 누구와도 감정을 나누는 일이 없지요.”
“흠······. 그에대해 잘 알고 있다는 말투군요. 저는 이래봬도 그와 7년이나······.”
7년이나 함께 하면서도 감정의 교류는커녕 사적인 대화를 나눈 것조차 손에 꼽는다. 하비는 말을 이어갈수록 무언가 묵직한 것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눈앞에 차가운 인상의 남자, 제임스의 무덤덤한 눈빛이 그 무게를 더욱 불어나게 하는 것만 같았다.
‘이건 압박감일까?’
자산가들이란 주로 압박감을 주는 사람이지, 받는 경우가 드물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하비 본인부터가 최대한 부드러운 스탠스를 고수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는 하비의 재산이나, 입지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아니, 애초에 제안하러 온 입장이면서도 자신의 제안이 거절당하리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다름 아닌 표세인이 그린 그림이다.’
그저 자신이 맡은 역할만 묵묵히 수행하면 될 뿐이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관심 없다.
게다가 자본가를 상대하는 어려움? 그런 것은 평생해온 일이다.
제임스의 친부인 조양길의 재산은 눈앞에 있는 하비를 능가한다.
아마 표세인은 이것까지 염두하고 자신을 보냈으리라······.
그렇기에 자신은 그저 맡은 일만 하면 제대로 수행하면 그뿐.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7년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저는 평생을 조연준을 지켜봤습니다.”
“평생?”
“소개 순서가 잘못되었군요. 사과드립니다. 제 한국식 이름은 조연호, 조연준의 동생입니다.”
“도, 동생?”
7년간 단 한 번도 개인사를 언급한 적이 없던 조연준이었기에 형제 따위는 없는 외동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와 조연준은 맥베스의 오너인 조양길의 친아들입니다.”
“!”
“이번 건에 있어서 조연준은 단순한 투자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증거를 보여드리죠.”
제임스는 스마트폰을 꺼내, 표세인에게 전달받은 녹음파일을 재생했다.
‘크크큭.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절하지. 그리고 수익? 내가 고작 투자자들 배나 불려주려고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조연준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순간, 하비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띠링!
[표세인의 필살기 ‘블록 버스터’가 발동되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격파 수련 끝에 획득한 비장의 한 수!
표세인의 각본은 서서히 흥행 가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 이 몸을 속일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