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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32화 (132/346)

132.

“문이사님과 양실장님이 너희에게 손을 내미셨다고?”

“맞아.”

“아쉽게도 내 쪽이 양실장님은 아니었지만······.”

보정훈의 질문에 최기환과 선진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너는 천이사님이라고?”

“그래······. 근데 이걸 천이사님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보정훈은 조연준을 떠올렸다.

오만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자신을 내려다보던 그 고까운 눈빛.

딱히 자신의 조회장의 아들이라거나, 투자자라서가 아닌, 그냥 사람 자체가 비호감이라는 느낌이었다.

“천이사님이 난데없이 조회장님의 아들이라는 사람을 소개하더군.”

“회장님의 아들?”

“회장님이 아들이 있었어?”

조연아의 정체가 드러난 것조차 최근의 일이다.

당연히 제임스와 조연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천이사님도 제법 강한 패를 준비하셨군.”

늙은 생강이 맵다고, 문이사와 양실장의 이름값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평가였으나, 연륜만큼의 영향력은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다름 아닌 회장의 아들이라는 강력한 패를 꺼내 들었다고 하니, 내심 자신들이 보정훈 보다 유리한 입장이었다고 생각하던 것이 살짝 우려되기 시작했다.

“그건 아닐 거야.”

“아니라고?”

“천이사님이 만남을 주선한 것이 아니라, 내게 접근하기 위해 조연준 그 작자가, 천이사님을 움직였다는 느낌이랄까?”

“그 작자? 별로 좋은 만남은 아니었나 봐?”

“건방지나?”

“호감상이 아닌 것은 100% 확실한데······. 건방지다라······. 그 단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군. 단순한 감상이라면 아마도 재수 없다는 느낌이 가장 강했지.”

“나이는 어느정도지?”

“우리와 비슷하거나 조금 아래? 아마 더 많지는 않을 거야.”

“네가 재수 없다고 할 정도면 상당하겠네.”

셋 중에서 가장 성격이 무던하다 평가 받는 보정훈이었다.

덕분에 함전무의 후계자 경쟁 같은 독특한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들 중 가장 먼저 임원석을 차지하는 것은 보정훈일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최기환과 성진규가 거기까지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건 대외적인 평가는 그랬다.

보정훈이 누군가를 나쁘게 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딱 잘라 재수 없다는 표현까지 사용할 정도라면 이건 의심할 여지 없는 팩트일 것이다.

“조연아 실장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사업부 실장자리를 꿰찬 이후에는 접접이 없었으나, 조회장의 전담비서 시절에는 안면이 있었다.

물론 그때야, 그저 일 잘하는 시크한 이미지의 미녀 비서라는 인상뿐이었지만······.

“조연아 실장과는 달라. 빈틈을 보이면 반드시 문다는 느낌이랄까? 아니다. 빈틈과는 관계 없이 그냥 죄다 물어 뜯을 생각밖에 없다는 느낌이었지.”

“그래서 용건은 뭐였는데?”

지금껏 회사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회장의 아들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뭐란 말인가?

“투자지. 제법 이름난 주식브로커라 하더라고.”

“주식브로커?”

요즘 세상에 반드시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으란 법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가들의 행보는 대동소이 한 법이 아닌가?

하지만 주식브로커라는 것은 상당히 생소했다.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직감인데······. 회장님과 사이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어. 뭔가 느낌이 쎄한 것이······. 곁에 있어서 좋은 꼴을 보진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더라.”

“그럼 손절하면 되지 않나?”

“전무 군단의 키가 현재 천이사의 손에 쥐어진 상황이라는 이야기는 너희도 들었잖아? 아······. 나 이거 나가린가?”

판호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상품이 바로 전무군단의 지지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곳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이번 경쟁에서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은 것은 불보듯 뻔했다.

“그래. 잘됐네.”

“하나 처리 됐군.”

“······나쁜 놈들······.”

위로는커녕,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참는 성진규와 최기환을 향해 보정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니들은 대체 뭐야?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둘이 붙어다니기 시작하는 거야?”

성진규와 최기환이 표세인을 만났다는 것은 보정훈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묻기 위해, 먼저 자신의 이야기부터 소상히 털어 놓은 것이다.

“음······. 이걸 말해야 하나?”

“어차피 아웃인 느낌인데······. 굳이?”

“그치? 이건 딱 봐도 나가리지?”

“그치, 저 녀석은 은근히 재수가 없는 편이니까.”

예전부터 문이사와 양실장을 언급하며 핏대를 세우던 녀석들이 오늘따라 부쩍 쿵짝이 맞는 느낌이다.

“이것들이······. 하려면 안들리게 말하던가.”

“그럼 재미 없잖아?”

“그래. 저녀석 사실 재미도 별로 없지. 그래서 만드는 게임도 겉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는 별것 없고······.”

“거기까지 하지?”

“······아직 더 남았는데.”

“원래 아웃되면 벤치에서 입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 아냐?”

“······알았으니까, 이제 썰 좀 풀어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보정훈의 거듭된 재촉에 최기환과 성진규는 이제 장난을 멈출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표세인 팀장이 제안을 하나 하더군.”

“제안?”

서로 경쟁하는 와중에 무슨 제안할만한 것이 있단 말인가?

설마 담합이라도 하자는 건가?

“경합에 앞서 우리끼리 결과를 취합해보고, 가장 높은 성과를 낸 사람에게, 아예 몰아주기를 하자더군.”

“햐~ 패기 넘치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자신이 먹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제안이 아닌가?

“좀 끓어 오르셨겠어들?”

보정훈은 슬며시 최기환과 성진규의 면면을 훑었다.

‘이거 생각 보다 더 흥미로운데?’

최기훈은 몰라도, 성진규까지 의욕으로 타오르는 얼굴인 것은 의외였다.

어쩌면 같은 기획이기 때문일까?

파트가 겹치는 개발자끼리는 아무래도 남다른 경쟁심리가 발동할 수 밖에 없는 법.

더군다나, 성진규가 롤모델로 생각하는 양실장의 총애를 받는 표세인이 아니던가?

이래저래 경쟁심이 싹트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단 겉모습은 시원시원하고 호탕한데······.”

“그치, 힘도 엄청 세고. 그거 아냐? 이 녀석 표세인 팀장과 팔씨······.”

“그 이야기를 왜 하냐?”

“윽!”

최기환이 성진규를 팍, 밀치자. 성진규가 넘어질 듯 휘청했다.

“표세인 팀장한테는 쨉도 안 되는게, 여기서만 힘 자랑이냐!”

“······힘 자랑 한 적 없다. 그리고 쨉도 안된 건 아니지 않냐?”

“맨날 지 운동한다고, 우리더러 운동 안 한다고 타박한 주제에······. 1초 컷, 안 부끄럽냐?”

“그, 그 정도는 아니지!”

“1초도 후하게 쳐준 거다! 곧장 깨갱하고 넘어간 주제에!”

“······이 이야기 계속 할거냐?”

“그래, 쟤 저러다 진짜 힘자랑하게 생겼다 그만해라.”

“흥.”

최기환에 이어 보정훈까지 만류하자, 성진규가 콧방귀를 뀌며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표세인 팀장의 제안을 어떻게 생각해?”

“나쁠 것은 없지.”

“그래, 그렇게 하면 괜히 노인네들 판결에 놀아날 필요도 없이, 우리 선에서 판가름 나는 셈이긴 하지.”

성진규와 최기환은 표세인의 제안 자체에는 찬성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정당당하게 붙을 필요까진 없지.”

“······그래.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니까.”

“휘유~ 이 사람들이 진짜 무슨 바람이 분거람?”

성진규가 경쟁심에 타오르고, 최기환이 계략에 동조까지 하는 상황.

오랫동안 굳어져 온 자신들의 사고방식까지 내던질 정도로 표세인이라는 인물로 인해 발생한 파문의 여파는 지대했다.

“그래, 의외로 사람이란 것이 작은 계기 하나로 큰 변화를 맞이하기도 하지.”

학교에서 학년이 올라가거나, 군대에서의 진급, 회사에서의 승진······.

사람의 행동 양상이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때로는 작은 계기하나에 딴사람처럼 변모하기도 하는 법.

개중 가장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인 보정훈이기 때문일까? 성진규와 최기환의 변화에 잠시 놀라기는 했어도, 빠르게 적응했다.

“들어나 볼까? 무슨 꿍꿍인지?”

“뻔하지. 일종의 파트너쉽이랄까?”

“파트너쉽? 담합을 잘도 둘러대는군.”

성진규의 말에 보정훈이 피식 웃었다.

“담합은 듣기 좀 그렇잖냐.”

최기환이 떪떠름하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두사람이 손을 잡으시겠다?”

“그래. 그러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어차피 오랫동안 없던 판호잖아. 스튜디오 공동 프로젝트로도 나쁘지 않지.”

“어차피 개발 일정 빠듯하면 서로 품앗이 해줘야할 판인데, 차라리 손발 맞춰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지. 어쨌건 규모가 규모니까.”

아직 명확한 계획이나 투자 금액이 정해진 것도 아니지만, 이미 그들이 지금껏 소화해본 적 없는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가 되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아니,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판호를 따내지도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듣고 보니, 그렇네. 우리 규모라야 뻔하니까.”

“너도 우리쪽에 붙어.”

“나까지 손 잡자고?”

보정훈의 말에 성진규와 최기환이 잠시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가,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산을 바로 하셔야지.”

“누가 손 잡자고 했냐. 붙으라고 했잖아. 나가리 신세가 어디서 맞먹으려 들어?”

“······이것들이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아무리 자신의 입장이 묘하게 되었다고는 해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4:4:2 정도면 괜찮지 않나?”

“2도 좀 과한 것 같기도······.”

“때려 쳐! 이것들아!”

“우리 쪽에 안 붙으면 승산은 있고? 조연준 별로라며? 그리고 너도 우리만큼이나 본사 노인네들 안좋아 하잖아?”

누가 동기 아니랄까 봐, 그들의 지닌바 입지에 비해 뚜렷한 파벌조차 없는 것은 본사 중역들의 들러리 신세가 되고 싶지 않다는 공통된 심리 덕분이었다.

하지만 셋중에서 가장 정치감각이 좋다는 평을 받는 보정훈이었다.

항상 이런 저런 꼼수를 고려하는 성진규와는 달리, 보정훈은 감각 자체가 센스가 있고 번뜩이는 타입.

“왜 내가 붙을 곳이 니들 뿐이라고 생각하냐?”

“어?”

“뭔소리야?”

“내가 표세인 팀장 쪽에 붙을 수 있다고는 생각 안하냐?”

“어?!”

“가만있자, 기획 파트야 두말할 것도 없는 최고레벨에, 한팀장도 일 하나는 똑 부러지니, 프로그램 파트도 문제 없고······. 어라? 마침 그래픽 역량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네?”

“야, 야! 지금 표세인 팀장에게 붙겠다는 거냐? 너 자존심도 없냐?”

“니들쪽에 붙는게 더 자존심 상할 것 같은데?”

“야, 우리야 농담한거지! 동기사랑 모르냐?”

“생각해보니, 나는 너희를 딱히 사랑한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집사람 게거품 물만한 멘트는 삼가자. 징그럽다.”

“흠흠, 사랑까지는 아니고······. 의리?”

“그래! 의리 좋다!”

“니들이 의리가 넘쳐서, 나만 쏙 빼고 표세인이랑 짝짝궁 하고 온 거냐? 어느 나라 의리야, 그게?”

“절름발이 같은 놈······.”

성진규가 반전의 묘미로 유명한 어느 영화의 메인 캐릭터를 언급하자, 보정훈이 피식 웃었다.

“고맙다. 그렇게 말해주니, 내 마음이 한결 편하네. 가는 길에 꽃까지 뿌려주다니······. 안 그래도 풍선 같은 무게가 가슴을 누르던 상황이었는데 말이지.”

“3:3:3하자. 그거면 돼지?”

“표세인 팀장이 듣기로 윗사람들에게는 참 깍듯하다 하더라고, 그쪽에 붙으면 잘하면 6:4는 가능하지 않을까?”

보정훈은 성진규와 최기환에서 고개를 돌리고는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두드리며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만지작거렸다.

“와! 이 미친놈 진짜 표세인 팀장에게 붙으려는 모양이네?”

“아니지, 너 이미 붙은 거 아냐? 지금 우리 정보 캐내려고 우리 보자고 한거지? 지금 뭐 무간도 찍냐?”

“세상에! 이거 진짜 좋은 정보잖아? 니들이 담합하려 한다는 정보를 가지고가면······. 정말로 6:4 가능하겠는데?”

“와! 이 유다 같은 놈!”

“앞으로 이 몸을 보유다라고 불러주시길, 그럼 친구들 그동안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잘 지내던가, 말던가. 나는 가보겠다!”

보정훈은 정말로 콧노래를 부르며 자리를 떠났고, 덩그러니 남겨진 성진규와 최기환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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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시각 표세인은 고부장을 방문했다.

“무슨 일이야?”

한껏 밝아진 얼굴이었다.

더이상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고부장는 진짜배기 재무팀의 수장이 되었고 하루하루 출근이 즐거울 정도였다.

“개발팀 전체를 깜짝 놀라가 해주고 싶어서요.”

“깜짝? 아아, 그렇군. 그래 슬슬 준비해야지.”

“제가 스튜디오 대표니 뭐니 해도, 아직 본사에 묶여있는 신세이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 사실 이런 식의 일 처리는 우리도 처음이라서 가끔 놀란다니까?”

“아무튼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래, 내가 뭘 해주면······. 이, 이거 정말인가?”

“그럼요.”

황금고블린도 놀랄만한 포상. 나는 깨비몬 출시와 함께 개발진 전체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다.

벌써부터 놀라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다들 기대하세요.’

기획자가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쓰겠나!

< 한번 아니라고 해 보시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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