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39화 (139/346)

139.

“자, 회의 시작해볼까?”

오랜만의 기획 회의였다.

한동안 외부 업무가 많았던 탓에, 기획팀 내부 회의는 그간 권태인이 진행했었다.

“이제 출시 초읽기 상황입니다. 저를 비롯한 시나리오 파트는 솔직히 레벨 점검에 만전을 기하는 것 정도가 한계입니다.”

“이번 주부터 QA팀 전원 우리 쪽에 붙을 수 있도록 조정하겠습니다.”

“전원이요?”

“필요하다면, 외부 QA 업체 섭외하셔도 무방합니다. 무엇보다 권태인 차장님은 점검보다도 전체 컨트롤에 신경 써 주셨으면 합니다. 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지원이든 할 테니, 말씀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권태인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자신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전해지는 말이 아니겠나?

QA팀 전체를 붙여주고도 외부 업체까지 동원해도 좋다는 사인을 내렸으니, 내 신뢰가 전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권태인에 대한 믿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무리 단계로 바쁜 줄은 알지만, 아시다시피 개발 마무리 단계에 기획은 다음을 준비해야합니다.”

“넵.”

모두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그런 시스템이지만, 이번에는 함전무의 후계자니, 뭐니하며 부산스러웠지 않나?

그들도 판호 건으로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을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어차피 개발은 마무리 단계이며, 궤도에 오른 상황.

최종 마무리 단계는 권태인과 한팀장을 믿고 응원하는 수 밖에 없다.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전념해야 하므로······.

“홍기도.”

“네.”

“시스템 파트 컨트롤 함송희에게 전부 넘겨.”

“네?”

오히려 놀란 것은 함송희였다.

“할 수 있지?”

나역시 함송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어차피 이제 남은 것은 점검뿐이고······. 체크리스트도 전부 나온 상황이라, 가능합니다!”

함송희가 힘차게 대답했다.

“좋아.”

“다 넘기면 쟤는 뭐하나요?”

남궁원이 살짝 볼멘소리를 했다.

지난번 권태인의 말대로 요즘 들어 홍기도에 대한 경쟁심리에 바짝 독이 오른 모습이다.

“너는 당분간 내 쪽에 붙어라. 이것저것 네 도움이 필요하다. 너 중국어 가능하지?”

“당연하죠.”

다른 곳도 아닌 싱가포르에서 유학하지 않았나?

중국어를 못하면 이야기가 안 되지.

가만 보면 이 녀석 언어 특기는 근래 게임 시장 상황에 최적화되어 있다.

“판호 건으로 중국어 가능자가 필요해. 너는 당분간 중국 담당자와의 허브를 담당해야 할 것 같다.”

“······흠, 알겠습니다.”

홍기도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대답했다. 이 녀석이 뜸을 들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너무 훤히 들여다보여서 살짝 헛웃음이 났다.

아마도 개발과 허브 역할 중에서 뭐가 더 품이 적게 들어가는 지를 계산하고는 허브쪽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남궁원.”

“······네.”

홍기도가 새 프로젝트에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것에 곧장 풀이 죽어버렸다.

조급하기는······.

이번에는 진짜로 피식 웃음이 나버렸다.

“너도 권태인 차장에게 전부 넘겨.”

“네?”

일말의 당황과 기대감. 남궁원의 표정을 반으로 쪼개면 딱 그 두 가지 단어로 분리될 것 같다.

“너 AOS 장르 좀 아나?”

내 질문에 남궁원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한국 사람 치고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좋아. 거기에 하드소울 장르 알지?”

“네?”

보통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탑뷰나, 쿼터뷰 시점인 것이 AOS 장르의 특징이다.

빠르고 섬세한 조작 컨트롤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러한 시점이 선호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숄더뷰에 근거리와 원거리의 밸런스를 잘 살리면서 속도감을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다.”

“숄더뷰? 근접전?”

“물론 원거리 기술도 있겠지. 도사가 부적 던지거나, 장수가 활을 쏘거나, 자객이 단검 정도 던지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패링과 회피에 역점을 둬야겠지.”

“잠깐, 지금 무슨 게임을 만드시려고?”

“음······. 아시아풍 하이퍼 FPS?”

“아!”

근래 FPS 장르는 크게 올드 스쿨 방식의 하이퍼 FPS와 근대적인 밀리터리 FPS로 구분된다.

간단히 말해서 밀리터리는 보다 현실적인 면에 치중한다면, 하이퍼는 초현실적인 스킬이나, 내구도, 기믹이 있는 주변 오브젝트를 이용하는 것이 특징.

“동양풍 하이퍼 FPS······. 대충 그림은 그려지는데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AOS 장르를 언급하신 것이 좀 와닿지 않는데요?”

“진지 점령과 적 본진 분쇄 요소랄까?”

“그렇군요. 대충 이해가 되네요.”

“맵 오브젝트 기믹 부분은 차후에 신경 써도 되니까, 우선은 전체적 컨셉을 잡아줘.”

“컨셉을 제가 잡아요?”

순간 남궁원이 당황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 의외라는 느낌으로 나와 남궁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컨셉 키를 제게 주신다고요?”

프로젝트의 시작 컨셉을 잡는다는 것, 그것은 오직 메인 디렉터에게만 허락되는 역할이 아닌가?

“응. 나는 여러모로 바쁠 것 같아서.”

“그, 그래도 되는 거에요?”

“자신 없어?”

“······그건 아닌데.”

“남궁과장.”

“네.”

“믿는다.”

나는 남궁원의 어깨를 살작 붙잡았다.

“그리고 이거 일종의 테스트다.”

“테스트요?”

“그냥 그렇게 알고 있어.”

나는 싱긋 웃어주고 다시금 회의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방금 말했다시피, 홍기도와 남궁원은 차기 프로젝트에 우선 차출, 깨비몬 마무리는 권태인 차장을 중심으로 잘 해결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모두 힘차게 대답했다.

이로써, 깨비몬 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

남은 것은 권태인과 팀원들이 잘 마무리해주길 바랄 수 밖에.

그럼 나는 판호를 손에 넣으러 가 보실까?

*

*

*

“안돼. 이거 어림도 없어.”

“내쪽도야. 다들 지분부터 내놓으라고 난리인데?”

“맞아. 지분 없이는 이야기가 안돼.”

보정훈, 성진규, 최기환은 저마다 한숨을 내쉬며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판호를 앞세운다고는 해도, 프로토타입 조차 없는 프로젝트에 외부투자자를 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저마다 스튜디오의 수익 배분 이야기에는 콧방귀를 뀌며, 지분을 내놓지 않으면 투자는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결국, 이래저래 90억인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과 인맥을 총동원해서 마련한 투자금.

우습게도 정말로 세 명이 정확히 30억씩을 구해왔다는 점이 다소 황당한 포인트.

물론 각자 30억이라는 거금을 마련한, 자체가 대단한 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판호라는 아이템에 비해서는 다소 빛바래는 감이 없지 않은 금액인 것도 사실이지 않나?

“역시 양실장님이······.”

“문이사님께 도움을 청하는 편이······.”

“아니, 우리끼리만 생각할 일은 아니지.”

“?”

“무슨 말이야?”

보정훈은 턱을 매만지며 입맛을 다셨다.

“게임업계 투자가 말라붙은 거야,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어쨌건 표세인은 우리보다도 경력이 짧아. 게다가 혼자잖아. 다소 액수가 크다해도 50억 정도 아니겠어?”

보정훈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우리도 우리지만, 이 경우에는 상대 상황도 중요하지.”

“맞아. 그건 그렇지.”

세사람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았다.

“부를까?”

“어차피 슬슬 볼 때 되지 않았나?”

어차피 함전무 앞에 서기 전에 미리 사전조율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

모두가 표세인을 호출할까, 고민하던 순간 본인이 제 발로 찾아온 것.

“가, 갑자기 무슨 일로?”

모두가 경계심과 긴장이 섞인 눈빛으로 표세인을 바라보는 순간.

표세인의 뒤에서 낯익은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문상훈과 양성태.

“무, 문이사님.”

“양실장님?”

표세인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문상훈과 양성태의 모습에 최기환과 성진규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서 저들끼리 계획을 구상하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자, 자리를······.”

-성큼, 성큼.

문상훈은 먼저 테이블 우측 끝에, 양성태는 좌측 끝에 앉았다.

“어?!”

그 다음에 벌어진 일에 보정훈, 최기환, 성진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어있는 상석에 표세인이 앉는 것이 아닌가?

“아니 지금 이게 무슨······.”

“기다려. 뭔가 이상하다.”

표세인에게 한마디 하려는 최기환을 보정훈이 붙잡았다.

‘정작 두 분 모두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성진규는 문상훈과 양성태의 표정을 살폈다. 표세인이 상석에 앉은 상황을 두 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그만 부산 떨고 자리에 앉아.”

“설명 드리겠습니다.”

문상훈의 엄포와 양성태의 미소.

보정훈 일행은 잠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우물쭈물 자리에 앉았다.

“성진규······. 생각 보다 제법 강단 있어? 이 문상훈이의 손을 안 잡았다, 이거지?”

“그, 그게 아니고······.”

문상훈의 이죽거림에 성진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제안은 거절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이겠지요?”

“그, 그게······.”

최기환이라고 상황이 다를 것도 없었다. 양실장의 부드러운 눈빛에 실린 묘한 무게감에 절로 고개를 숙이고 쩔쩔매는 상황.

‘쓰읍······. 뭐지, 이거······. 뭔가 계속 선수를 놓치고 놀아나는 느낌인데?’

보정훈은 묘한 상황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따지고보면 하나하나, 의심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함전무가 미션을 내리기가 무섭게, 문이사와 양실장이 동시에 움직여 최기환과 성진규를 흔들었다.

그 덕분에 자신은 자연스럽게 천이사의 눈에 들었고, 조연준이라는 인물까지 소개받았다.

하지만 하나 같이 미심쩍인 상황, 그 덕분에 세명은 독자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잠깐! 어쩌면······.’

사내에서의 자신들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 지는 본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대세에 편승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협조성이 부족한 인재들······.

사실 수긍할 수 밖에 없는 평가였다. 하지만 그런 자신들이 서로 손을 잡았고······.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 순간, 득달같이 이 순간을 노리고 방문해온 세사람.

그리고 그 중심에 앉아 있는 표세인.

-꿀꺽.

보정훈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정체가 뭐냐?’

이미 표세인이 일개 팀장 레벨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본사 직급을 무시하면 그 역시 자신들과 같은 외부 스튜디오의 대표였다.

그렇기에 맞수로서는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 조차 나름 자신들이 한 수 접어준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 이 그림은 뭐란 말인가?

자신들 조차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세울 수 없는 문이사와 양실장을 좌우에 포진시킨 표세인은 대체······.

‘설마 숨겨 놓은 자식이 또 있나?’

조회장의 아들 정도가 아니라면 대체 이게 무슨 그림이란 말인가?

도저히 추리가 이어지지가 않았다.

“얼마야.”

“네?”

“얼마 모았어.”

문이사의 태도는 여전히 거침이 없었다.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탐탁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밝혀야 하나?’

‘어차피 숨겨봤자, 곧 공개할 수 밖에 없잖아.’

‘자신을 갖자, 90억이야.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야.’

성진규, 최기환, 보정훈은 잠시 눈빛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끄억였다.

“90억입니다.”

“각자? 아니면 합산으로?”

“!”

각자라는 말이 처음에 언급된 순간, 세 사람은 동시에 눈을 부릅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문상훈과 양성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들의 한계는······. 결코 저들의 여력을 넘어설 수 없었다.

“합계입니다.”

“고작 그 정도가 한계인 주제에······. 하여튼 아직도 멀었어. 너희는······.”

문상훈의 말에 살짝 오기가 생겼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럼 게임은 끝났고······.”

“예. 향후의 일을 논의해야겠지요.”

양성태가 문상훈의 눈빛을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잠시만요.”

“뭐지?”

“아직 표세인 팀장의 액수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보정훈의 말에 성진규와 최기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도 상대의 패는 구경해봐야하지 않나?

“저는······. 한 천억?”

“처, 천억?”

터무니없는 금액에 세사람의 입이 떡 벌어진 순간.

“겸손하기는······.”

“그게, 표세인 팀장님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문상훈과 양성태는 피식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하비에게 약속받은 금액은 천억을 훌쩍 넘은 액수였으니까!

< 서열정리 좀 해주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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