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41화 (141/346)

141.

“외부 스튜디오를 통합한다라······.”

조회장은 검지로 데스크 위를 톡톡 두드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국내 개발사는 소규모 모바일 게임을 개발해 동시다발적으로 출시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100% 흥행이 보장되는 카드란 없는 법이다.

그래서 국내 개발사들은 외국계 회사들이 한 스튜디오에 수천 명의 인력을 채워 넣기 급급한 시점에, 고작 수백 명 규모의 스튜디오들을 우후죽순 배출해냈다.

그저 하나만 걸려라!

하지만 현재 나의 행보는 명백히 그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려는 것이었다.

“체질 개선. 회장님께서도 누누이 언급하셨죠.”

체질 개선.

분명히 조회장이 곧잘 언급했던 단어다.

하지만 나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이건 어떤 의미로는 선조치 후보고에 가깝다.

이미 나는 외부 대표 삼인방에게 스튜디오를 통합하겠다고 선언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문이사와 양실장은 그들을 통째로 우리 파벌로 흡수할 것이다.

“이건 내 방식과는 다르군······. 차라리 조실장의 미래 청사진에 가까워.”

조회장은 무언가 껄끄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틀린 말은 아니다.

표면적으로 AAA급 개발을 위해 스튜디오를 통합하고 본사의 인력들까지 닥치는 대로 이번 프로젝트에 투입할 것이다.

이것은 개발의 규모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시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절대권력을 원하는 연아의 야망에 일조하는 계획인 것도 틀림 없는 사실.

세대교체란 이래저래 여러 가지 진통을 겪기 마련이다.

나는 그것을 최소화 하기로 결심했다.

불만의 싹들을 내가 모두 삼킨 다음, 모두 내 안에서 소화시키는 것.

굳이 꽃길만 걷게 하겠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 연아가 나에게 여러 귀찮은 일은 자신이 맡고, 내가 원하는 개발을 할 수 있게 해주겠노라, 말한 적이 있다.

너무나도 감사한 말이지만,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연애는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나대로, 연아를 위해 레일 위를 좀 청소하려고 한다.

“아니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회장이 업무에 사적인 감정을 섞는 것을 싫어하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숨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쨌건 현재 그가 바라는 체질 개선 또한 이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 시점에 조회장의 서포트는 필수 불가결하다.

“불순한 녀석······.”

다행히 크게 노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조금 기꺼워하는 기색인지도?

“어쨌든 그 말 안 듣는 망아지 같은 녀석들을 용케도 구워삶았구나······. 문상훈이 때도 그랬지만, 어쩌면 너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들을 다루는 쪽이 재능이 있는 모양이군.”

제 재능에 취해서 남의 조언을 귓전으로도 안 듣는 녀석들이라면, 운동하는 내내 주변에 득시글했었다.

확실히 그런 타입들과 오래 부대끼다 보니, 나름 노하우를 습득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때와 지금 상황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 시절에야, 힘에는 힘으로, 재능에는 재능으로!

내가 몸소 나서서 깨우치게 해주면 될 뿐인, 간단한 상황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어쨌든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선조치, 후보고 같은 상황이라서 다소 괘씸하기는 하다만······.”

허락할 듯 하면서도 끝내 말 끝을 흐린다. 뭐지?

지금 조회장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양성태에 이어, 문상훈까지 삼키더니······. 이제는 천둥벌거숭이 대표 삼인방까지······. 너 너무 컷군. 이제 곧 함성준이의 유산까지 손에 쥐면······. 정말로 대적할 자가 없겠는데?”

딱히 그 이후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 말대로였다.

맥베스 전체에서 이름난 인재들이 현재 내 주변에 한가득 모여있는 상황.

여기에 함전무의 영향력까지 손에 넣는다면······. 어쩌면 함전무님 본인의 영향력 이상의 힘을 손에 쥐게 되는 셈이 아닐까?

“걱정되십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오너 입장에서는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레벨 이상으로 성장한 고용인이란 것은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막말로 저만한 인재풀을 통째로 들고 외부로 나가버리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맥베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 아닌가?

“그동안 어쩌면 이런 그림이 완성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막상 정말로 이렇게 완성되고 나니, 다소 황당하군.”

“황당하다고요? 처음부터 양실장 정도 되는 인물을 붙여주셨습니다. 저야 회장님이 깔아주신 레일 위를 내달렸을 뿐, 아닙니까?”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조회장 자신의 조력과 양실장의 설계가 있었다.

딱히 겸손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지 않았나?

“그 양성태 놈의 등을 떠밀면서 너처럼 해보라고 한 것이 몇 년째인지 모른다. 그 녀석 스스로 이런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면, 벌써 했겠지.”

“······.”

“세인아.”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조회장이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를 때는 나도 모르게 움츠리게 된다.

어째서일까? 조회장은 언제나 내게 호의 일변도였는데, 왜 나는 아직도 이런 상황에 놀라는 것일까?

보내지는 호감과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반작용일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묻겠다. 심사숙고해서 대답하기 바란다.”

“······네.”

이거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모양인데?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하고 허리에 힘이 확 들어간다.

“이 회사 물려받을 생각 없냐?”

지, 지금 뭐라고?

“네?”

연아라는 후계자가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곧 연아의 남편이 될 나에게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나를 그렇게나 눈 여겨봐 준 것은 고맙지만, 이건 뭔가 좀 아니지 않나?

아!

이제야 조회장이 친근하게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내 경각심이 깨어났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거다.

조회장이라는 인물의 매력이! 그가 내려주는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이 너무도 즐거운 나머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조회장의 이런 마음을 전혀 짐작하지 못 했냐고?

아니, 그저 외면하려 했던 것이 더 크다.

“······연아는 나쁘지 않은 인재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 아이에게는 몇 가지 우려되는 문제가 있어.”

“문제요?”

“너도 알다시피, 그 아이는 딱히 게임이라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생각해봐라, 술을 좋아하지 않는 주류회사 오너라던가······. 반드시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전문가인 편이 좋지. 그것은 언젠가 중대한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게임 개발사의 오너들의 엄청난 패착들은 게임 업계 전반에 걸쳐 무수한 사례를 양산한 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너에게 필요한 자질은 꼭 개발 쪽은 아니지 않나?

어째서 수많은 회사가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고 운영을 맡기는 것인지만 생각해봐도, 이 건은 반박이 가능하다.

“두 번째······. 그 아이는 인망이 넘치는 타입은 아니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보다는 고삐를 채우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 겉보기에는 당당해도, 속으로는 겁이 많은 녀석이야. 나는 이점이 못내 큰 걱정이다.”

“아직 시간이 부족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연아가 처한 상황도 그렇고······.”

“그럼에도 걸리는 것은 사실이지. 자네 생각은 다른가?”

다르냐고?

당연히 다르지.

“물론 전혀 다릅니다.”

“다르다?”

“회사의 오너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지요.”

물론 정치인이라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오너에게 인기란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다.

절대적인 권력자로서의 카리스마. 그것이 중요하며, 연아는 그것은 확실히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번 깨비몬 캐릭터 산업은 어떠한가? 이미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 않나?

“하지만 너 같은 녀석이 반기를 들면, 어쩌지?”

“제가요?”

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이신 걸까, 저 연아 남편 될 사람입니다?

“저 같은 놈이 연아에게 반기를 들려는 낌새를 보인다면, 그 전에 제가 부숴놓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맥베스 오너라는 야심은 없나?”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욕심은 있습니다.”

“뭐지?”

나는 혀로 살짝 입술을 적셨다.

“오너에게는 오너의 자존심이 있겠지요. 하지만 직장인에게도 직장인 나름의 자존심이 있습니다.”

“자존심?”

“설령 연아의 자질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니, 애초에 저마다 장단이 있는 법이지요. 저는 직장인으로서, 오너의 단점을 철저하게 보완할 겁니다.”

내 말에 조회장은 짧은 신음을 흘렸다.

“으음······. 자존심이라······. 어쨌든 내 말 잘 생각해보게.”

“생각해볼 필요 없습니다.”

“?!”

“그리고 회장님의 걱정은 접어두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접어둬도 된다?”

“고래로 집권자는 확실한 장수 하나를 손에 쥐고 있으면 만사형통이라는 통설이 있지 않습니까.”

내 말에 조회장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내, 클클 웃었다.

“클클, 그래. 그 장수가 바로 너다?”

“장수일지, 아이템일지. 뭐 아무래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연아는 저를 쥐고 있다는 점입니다.”

연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름의 방식을 자신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우리가 만날 수도 있었고.’

사실 우리가 만나고 이렇게까지 연인 관계가 된 것은 다소 행운이라는 요소가 첨가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로또도 사러 나가야, 당첨이 되는 법이지 않나?

조회장이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연아는 연아 나름의 돌파구를 찾고 있고, 결과적으로 나라는 패도 손에 쥐게 되었다.

나는 연아가 조회장이 걱정해야 할만큼 연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부부란 때로는 타인들 보다도 더 심각한 갈등에 휩싸이기 마련이지.”

이건 섣불리 반박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해묵은 추억이 배어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제는 자네도 대강 우리 집 사정은 알고 있겠지.”

“자세히는 모르지만요.”

“그래. 자네도 곧 알게 될 거야.”

곧 알게 된다?

“내, 전 부인이자, 연아의 친모가 자네를 좀 보고 싶다더군.”

“아······.”

뭐랄까,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다.

“요즘처럼 바쁜 상황에 자네의 시간을 뺏질 않기 바란다고 말은 했지만, 도통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거야, 회장님댁의 가풍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언제쯤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걸 알아낼 수 있는 상대였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애먹지는 않겠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없구나.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어쨌건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는 대충 흘러간 모양이다.

곤란한 이야기가 지나가서 다행이다. 이런 이야기가 연아의 귀에 흘러가기라도 했다가는, 우리 사이에 앙금이 쌓일 수도 있다.

“내가 허락해 준다고 하면······. 돈은 표대표님이 감당해주시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나야 할 말 없고 나머지는 전무군단······. 우리 늙은 잔소리쟁이들을 설득하는 일만 남은 건가?”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쪽에도 손을 써두었나?”

“아니요. 손쓸 필요가 없죠.”

“그게 무슨 말이지? 그들 하나하나가 임원들이야. 다 같이 목소리를 내면······.”

흐흐흐, 그들은 다 같이 한목소리를 낼 겁니다.

물론 그것은 제 이름 석자겠지만요.

나는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

*

*

“보정훈이는 입을 다물었군.”

“그 놈 지켜보고 있던 것 아니었습니까?”

“양성태 짓이겠지. 교묘하게 내 입김이 닿는 친구들이 이런저런 일로 불려 다니는 통에 전혀 지켜볼 수가 없어.”

천이사와 전무군단 일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양성태와 문상훈이 각각 최기환과 성진규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상황.

마침 손에들어온 조연준이라는 패까지 사용해서 마지막 남은 보정훈을 설득해보려 했지만, 그날 이후 보정훈은 연락 한번 없는 상황.

“설마 이 시점에······. 제놈들 몸값높이기라도······.”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군.”

모두가 돌아가는 상황에 탐탁지 않은 상황, 고작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를 자신들 손으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건만, 함전무의 은퇴선언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도이사, 자네는 남의 집 불구경인가?”

“그래, 여기서 가장 귀가 밝은 것이 자네 아닌가?”

모두의 이목이 구석에서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던 도이사에게로 향했다.

달칵.

도이사는 폴더블폰을 접으며 입을 열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

“보정훈, 최기환, 성진규. 이 세사람이 담합하기로 했답니다.”

“뭐?”

“그건 반칙······.”

“처음부터 힘을 합치지 말라는 규칙따위는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들이 만약 힘을 합쳐서 판호를 따내면······.”

그렇다면 자신들은 그대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방법은 이제 하나 뿐입니다.”

“?”

“표세인 팀장을 만나러 가봐야겠습니다.”

“아!”

도이사는 나머지 임원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서는 벌떡 일어났다.

그의 행동에 상황의 절박함이 더욱 절절하게 전달되었다.

“잠깐, 왜 자네가······.”

“천이사님.”

“어?”

“이번엔 도이사를 믿고 기다려 보죠.”

천이사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 속에 더이상 신뢰가 남아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표세인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보정훈 건은 실패하셨으니, 이제는 지켜보실 차례입니다.”

자신들에게 남은 희망은 오직 표세인 하나.

드디어 각본의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세일즈하러 오신 것 아닙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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