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42화 (142/346)

142.

도경우 이사로 말하자면, 다소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었다.

본래 중국어를 전공하고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에, 함전무의 눈에 띄어 맥베스 중국지부의 운영팀장으로 입사.

덕분에 그는 긴 시간 동안 본사가 아닌 중국에서 근무했다.

중국 게임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그의 직급 역시 덩달아 상승했다.

만약 함전무가 조연준을 만나, 갑작스러운 은퇴를 결심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잇는 것은 도경우 이 사일 거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도이사와······. 별로 마주친 적이 없어.”

문이사는 뺨을 긁적이며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문이사가 본사에서 활약하던 시기에 도이사는 중국에 있었고, 도이사가 본사로 들어왔을 때는 반대로 문이사가 미국으로 떠난 모양.

“예. 두 분은 마주치실 일이 별로 없으셨지요.”

“뭐, 그렇지. 그래도 이야기는 간간히 들려왔지.”

“네. 약간 경쟁자 구도였으니까요.”

“경쟁자는 무슨······.”

문이사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결코, 자신의 상대가 아니다. 뭐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두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볼 때, 이상무에게 문상훈이 있다면, 함전무에게는 도경우가 있다, 뭐 그런 느낌의 이야기들이 종종 귀에 들렸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말은 아니라고 해도, 문이사 성격이라면 내심 의식하고 있었을 거라는 느낌이다.

“도이사님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견실한 샐러리맨 타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견실한 샐러리맨?”

“예. 문이사님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맡은 업무를 항상 정확히 기대한 만큼의 성과로 처리하는 분이랄까요? 게다가 주변과도 척을 지지 않는 성격이죠.”

“결국, 색이 옅다는 거잖나.”

양실장의 평가에 문이사가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색이 옅다······. 그건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 특성상 충직한 샐러리맨 타입이 많지도 않으니까요.”

“흥.”

아무래도 문이사는 도이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의외군요. 표세인 팀장님에게 접선하리란 것은 예상했지만, 저희 셋을 모두 부를 줄은 몰랐습니다.”

전무군단에 입질을 넣기 위해 작은 기만전술까지 펼쳤음에도 별다른 소용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외부 스튜디오 대표 삼인방과 동시 접촉했을 때의 일이 새어나간 것일까?

“삼인방 쪽에서 흘러나간 정보는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제가 따로 언질을 두었으니까요.”

“나도 나중에 따로 녀석들에게 당부했어. 나중에 크게 터트릴 예정이니, 입 조심하라고.”

양실장과 문이사가 입단속을 지시했다면, 확실히 그쪽에서 새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우리와 손을 잡는 것에는 긍정적인 상황이니까.

“어쨌든 도이사님이 함께 보자고 했으니, 그래야겠지요.”

“네. 아직 저쪽의 상황을 모르니, 일단 응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데 굳이 그쪽의 요청을 받을 필요가 있나? 이젠 정면으로 짓밟아도 우리 쪽 입김이 더 세지 않냐 이거야. 차라리 함전무님과 단판을······.”

“사람 마음이란 것은 묘한 법 아니겠습니까? 괜한 반발심이 나오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함전무가 아무리 내 손을 들어준다고는 해도, 전무군단이 순순히 그 말을 따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새파랗게 어린······. 그것도 삼인방에 비하면 나는 직급조차도 한참 아래다.

가장 좋은 그림은 일단 나중에 그들이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더라도, 판호건이 마무리되는 순간까지는 나를 지지하는 그림이 가장 좋은 그림이겠지.

“저도 동의합니다. 이래저래 현재 상황에서 제 직급이 좀 우습기는 하지요.”

“맞습니다. 판호를 손에 넣는 즉시, 전무군단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바로 부장 진급건도 처리해 버리시지요.”

어느샌가, 승진이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단순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나도 참 많이 컷군. 새삼 감회가 새롭달까?

“그럼 별다른 일정 없으시면, 이후에 뵙지요.”

“알겠습니다.”

“그러지.”

양실장과 문이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도이사가 우리를 부른 것은 회사에서 다소 떨어진 작은 대포집이었다.

간판부터 인테리어까지,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남루한 정경.

좋게말하면, 과거의 향수가 고스란히 살아있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낡았다는 느낌.

“하하,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에는 이런 곳이 좋지 않을까 해서 제 단골집으로 모셨습니다. 혹시 괜찮으십니까?”

“네. 막걸리 좋아합니다.”

“저도 좋아합니다.”

나와 양실장은 가벼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리고 문이사는······.

“음······.”

안 좋아한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고 보니 양주파였지.

“여기 껍데기가 괜찮습니다.”

-치지직.

연탄불의 화력에 금방 고기타는 냄새가 올라왔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모셨으니, 제가 해야지요.”

도이사는 싱긋 웃으며 집게로 껍데기를 꾹꾹 눌렀다.

아니, 그렇게 구으면 전체 고기들 익는 속도가 달라지는데······.

뭐, 입을 즐겁게 하려고 모인 것도 아니니, 오늘은 신경끄기로 할까?

나는 대신 막걸리가 담긴 주전자를 들어 모두의 잔을 채웠다.

“일단 한 잔씩 하지죠.”

“어이쿠, 감사합니다.”

가끔 먼발치에서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게 본 모습일까?

아니면 우리의 경계를 흐리기 위한 기만전술일까?

“요즘 사내 분위기가 뒤숭숭 하죠?”

“뒤숭숭이라기 보다는 다소 격양된 느낌인 것은 사실이죠.”

문이사가 연신 떨떠름한 표정인 덕분에 대화는 자연스럽게 도이사와 양실장이 주도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 시점에 문이사님과 양실장님이라는 탑스타들이 손을 잡은 것도 상당히 영향이 있겠지요.”

도이사는 은근한 미소와 함께 문이사의 얼굴을 훑었다.

“아직 완전히 한배를 탔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양실장은 노련하게 한발 물러섰다. 상대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캐내기 위해서라도 넙죽 말을 받지는 않으려는 모양.

“두 분께서 따로 최기환과 성진규를 찾아간 것도 그래서입니까?”

도이상의 질문에 양실장은 슬쩍 막걸리로 입을 축였다. 그리고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셈이지요.”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참으로 멋진 계획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전무님의 후계자건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 부분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그 말인 즉, 자신은 다르다. 이거로군.

“이런 별것 아닌 것 같은 움직임 하나, 하나로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참 멋있어요. 확실히 두 분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표세인 팀장님도요.”

여기서 갑자기 나를?

도이사는 잠시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나는 말 없이 도이사를 마주 바라보았다.

“표세인 팀장님은······.”

-탁!

도이사가 내게 무언가 질문하려 할 때였다. 문이사가 놋쇠로 만들어진 막걸리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의도적인 소리를 만들어 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호구조사? 간 보기? 사람 불러 놓고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문이사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도이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아무래도 좀처럼 뵙기 힘든 분들과의 술자리라서 조금 들뜬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양실장은 부드러운 미소로 도이사를 두둔했다.

“확실히 제가 바쁘신 분들 모셔놓고 잡이 길었습니다.”

“그럼, 이제 용건 좀 들어 봅시다. 신경쓰여서 술이 안넘어 갑니다.”

그러면서도 문이사는 막걸리를 털어 넣었다.

벌써 석 잔째······. 이 양반 의외로 막걸리 좋아하네?

나는 눈치껏 문시아의 잔에 막걸리를 채우고 종업원에게 새 주전자를 부탁했다.

“갑자기 제게도 한자리 달라고 해도 무리겠지요.”

한자리? 이 사람 엑셀과 브레이크를 연달아 있는 힘껏 밟아 대는 타입인가?

“저와 손잡으시죠. 전무군단의 힘을 고스란히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조력하겠습니다.”

“공짜로 해줄 것도 아니 신 것 같은데, 조건은 뭡니까?”

“천이사를 중심으로 걸리적거리는 몇몇 인사들을 쳐내는 일을 좀 거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

도이사의 말에 문이사와 양실장은 물론이고 나까지도 놀랐다.

나라고 점쟁이도 아닌데, 다른 그룹의 속사정까지 훤히 꿰고 있겠나?

다만, 도이사가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다.

“의외로 야심이 큰 양반이셨군.”

문이사는 재미있다는 듯이 흰 이를 드러내며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호의 보다는 적개심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역시 마찬가지.

도이사와 손을 잡고 천이사를 밀어내면, 그 후에는? 천이사 없이 전무군단을 손에 넣은 도이사를 어찌 제어한단 말인가?

정치라는 것은 결국 수 싸움이다. 전무군단 전체가 우리와 각을 세운다면, 우리라고 그들을 감당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 제안 자체가 크게 매력적으로 들리지는 않습니다만?”

양실장이 넌지시 운을 뗐다.

패를 더 보여라. 그리고 우리에게 넘겨줄 카드를 제시해라.

그래.

지금 상황에서 우리의 이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도이사와 손을 잡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천이사와 함께 도이사까지 함께 쳐내는 편이 나을 수도······.’

‘나는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었어.’

문이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손에 넣어야할 전무군단의 영향력이 다른 이의 손에 쥐어 줄 수는 없다.

그 키를 손에 넣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라면, 장래에는 그저 걸림돌에 지나지 않는다.

“양실장님은 회장님의 사람이라 알려져있습니다. 그렇지요?”

“모두가 회장님의 사람 아니겠습니까.”

“아니요. 저는 명백히 함전무님의 사람입니다.”

“허허······.”

천하의 양실장 앞에서 회장이 아닌, 함전무의 직계라인임을 주장한다니, 이것도 정말 의외다.

“양실장님 같은 행운을 누구나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물론 저 역시 함전무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까지가 딱 제가 오를 수 있는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위치가 한계다. 그러니 자신은 더 욕심이 없으니, 믿어도 된다.

설마 이런 뜨뜻미지근한 이야기가 전부라는 것은 아니겠지?

“전무님의 은퇴 선언으로, 저는 제 마지막 소임이 전무님의 후계자를 보필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전무님께서는 내심 표세인 팀장님을 후계자로 낙점하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낙점이라······.”

문이사가 살짝 께름칙하다는 눈빛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모두의 위에서는 사람은 자잘한 손익보다는 그저 배포로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표세인 팀장님?”

결국, 공이 내게로 넘어왔다.

자, 어쩐다.

도이사를 믿을 수만 있다면, 이 제안은 나쁠 것이 없다.

하지만 반대로 믿을 수 없다면 이건 독이든 성배다.

천이사 무리를 소탕해낸 이후, 도이사는 치명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배포라······.’

어느샌가 내 주변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확실히 한 그룹을 이끄는 처지가 되면, 배포랄까, 그릇이랄까.

그런 것도 신경 써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뭐랄까, 지금 한가지가 빠져있지 않나?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톱니 하나가 빠진 것 같달까?”

“톱니가 빠졌다?”

“도경우 이사님께서는 지금 본인을 세일즈하러 오신 것 아닙니까?”

“세, 세일즈?”

순간 도이사는 당황했고, 문이사는 킬킬 웃었다.

양실장 조차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도이사님 도움 없이 전무군단을 컨트롤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함전무님의 역량 부족 아닙니까?”

“지, 지금 무슨······.”

갑자기 함전무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도이사의 당황은 더욱 커졌다.

“함전무님께서는 본인의 입으로 공언하셨습니다. 자신의 영향력을 고스란히 전해주겠다고,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 도이사님은 함전무님의 일 처리를 믿지 못하시는 것 같군요?”

“······.”

당신이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당신들이 내부정리를 끝내고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지 않았나.

스스로가 함전무의 심복을 자처한다면 더더욱.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함전무의 심복이라는 사람이 외부의 도움 없이는 내부 정리도 못 한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도이사님.”

“···예.”

“함전무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마지막 소임이라고 하신 것 치고는······. 조금 너무 몸을 사리시는 것 아닙니까?”

함전무의 출장 중에 모두가 천이사와 도이사가 접전을 치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도이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야, 함전무님을 배신할 뜻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이야기는 전무군단 내부가 정리된 후에 다시 논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때쯤이면 도이사님의 가치를 제가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크크크큭.”

문이사는 벌게진 도이사의 얼굴을 보며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음을 흘렸다.

< 개성적이지?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