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지금, 엄마가 한국에 온다고 하신 거에요?”
“그래.”
조양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요? 왜요?”
조연아는 살짝 가시 돋친 말투였다. 그 모습에 조양길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조연아가 엄마를 기꺼워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것은 조양길의 가장 큰 아픔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나도 모른다. 그저 네가 결혼한다니, 그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는 거겠지.”
“왜요? 결혼식 때만 살짝 보면 되잖아요.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이 있었다고?”
미움이 아니라 두려움일 것이다. 원래도 창백할 정도로 투명한 피부인데, 입술까지 한층 파랗게 질린 탓에 보기 안쓰러웠다.
“네가 이러니까, 없던 호기심도 생겼겠지.”
조양길은 조연아가 명품 브랜드에 보낸 콜라보 기획을 툭 내밀었다.
“그게 왜요?”
다소 공격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달리 보면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명품 브랜드들과 캐릭터 상품들과의 콜라보는 오래전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게다가 서서히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모두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게임업계와의 협업도 빈번해진 상황.
“현 상황에서 충분히 제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깨비몬의 파급력은 굳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니까요.”
“네 엄마가 원래 어디서 일했었는지를 몰라? 이렇게까지 이슈를 만들면 당연히 귀에도 들어가겠지.”
“······.”
반박할 말이 궁색했다. 조연아는 입을 앙다물었다.
“처음 맡은 대형 프로젝트이고, 전례 없는 이슈를 낳았다. 그래. 너 아주 잘했다. 그래서 내심 엄마 귀에 들어가길 바랐던 것 아니냐?”
“···거기까지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보다는 오히려 어머니가 몸을 담았던 업계이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다 공격적인 스탠스를 취했던 것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행동과 표정 하나, 하나가 평소의 조연아 답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네가 아니지.”
“네?”
“세인이를 만나려고 하지 않겠냐. 우리가 함께라면 모를까, 둘이서만 만나면······.”
“음······. 그건 좀 그렇죠.”
제임스나 조연준과는 상황이 다르다. 에머리는 무려 예비 장모가 아니던가?
표세인에게는 가장 어려운 상대다.
“아무튼 그 녀석에게 언질 정도는 해둬라. 갑자기 만나기라도 하면 얼마나 놀라겠냐?”
조양길은 입맛을 다셨다.
이미 자신이 슬쩍 언질해두기는 했지만, 조연아와 둘이서 대화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당부했다.
자신의 전부인인 에머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인물이었다.
애초에 미국에서 자란 덕분일까?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자유분방하다.
매력적이고 활발한 덕분에 사랑받는 유형지만, 가끔은 다소 지나치다는 느낌 덕에 주위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오빠를 먼저 만나는 것은 좀 달갑지 않네요.”
사실은 함께 만나는 것도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
엄마 앞에서 상기될 자신의 얼굴을 표세인이 목격하는 것 자체가 탐탁지 않았다.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한다만, 어쨌든 가족이 될 사람이다. 언제고 경험은 해야지. 그리고 조연준 그 녀석도 제법 잘 다루지 않았냐?”
다루었다기보다는 짓밟은 것에 가까웠지만, 그 점은 연아 역시 동감하고 있었다.
표세인이라면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페이스를 잃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꼭 이성적인 판단과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쯧, 오너가 회사에서 감정을 드러내면 안된다고 한 것, 벌써 잊은 거냐?”
“그러는 아버지는 왜 회사에서 엄마 이야기를 꺼내시는 거에요?”
“그럼 이런 일을 비밀로 할까?”
“누가 비밀로 하랬나요?”
“어쭈? 그 태도는 뭐냐? 여긴 회사고 난 회장이야.”
“흥, 얼마나 남았다고······”
“끄응······.”
부녀지간이 되어버린 이상, 회장이라는 직급으로 다 큰 딸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이야기 하시려고 부르셨나요?”
“아니, 겸사겸사지.”
“뭔데요?”
“이건 일 이야기다.”
당연히 그럴거라고 생각했기에 조연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금 부녀지간이 아닌, 회장과 후계자로 돌아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이번 일 아주 잘했다.”
“아직 정식 출시는 하지도 않았는데요?”
조연아의 말대로 깨비몬은 아직 정식 출시를 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정식 출시도 전에 캐릭터 사업만으로도 막대한 매출을 달성하고 있으며, 장차 가속될 흐름이 엿보인다.
이만한 실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표세인의 아이디어가 사업적으로 훌륭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디어는 어디까지나 아이디어다.
적어도 이 업계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
“결혼 전에 부회장 취임부터 처리하자.”
“?!”
부회장이라는 말에 조연아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기다리고 있었고,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이 날을 맞이한 것이다.
이제 명실공히 진정한 후계자가 된 것이다. 승계 작업이 시작되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빠르네요?”
“미룰 필요 없지. 이미 검증 끝났는데, 시간 끌어서 좋을 것이 뭐가 있나?”
관록을 붙여야 한다.
자신의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어린 딸이 어엿한 입지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상무쪽 사람들은 잘 만나고 있냐?”
“솔직히······. 너무 바빠서 그럴 틈이 없었네요.”
“부회장 자리에 오르면 본인이 직접 움직일 틈이 없을 거다. 너는 사람 쓰는 법을 배워야해.”
“······.”
조연아 스스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자신의 유일한 지지기반은 이상무가 다져놓은 인맥이 전부였다.
“굳이 옛날 방식대로 충성서약까지 받으라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발밑이 단단하지 않으면 언제고 큰 문제가 되는 법이다.”
“······.”
“표세인이를 봐라, 그놈은······. 천성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막상 또 표세인을 언급하려니 말문이 막혔다.
조연아의 심정을 걱정해서?
아니었다. 조양길은 그런 섬세한면에 관심이 없는 타입이었다.
그가 말꼬리를 늘린 이유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기 때문.
“문상훈이 녀석을 포섭했을 때도 어이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보정훈과 성진규, 최기환이라니······. 놀랄 노자라는 말 밖에 안 나오는 군.”
조양길의 말에 조연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예비 신랑이기에 항상 표세인에 대한 평가를 후하게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상식 밖이다. 게다가 이미 조양길의 퀘스트 같은 것과는 관계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런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너는 표세인 그녀석을 100% 신용할 수 있냐?”
가족이라도······. 아니,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신뢰할 수 없는 가슴 아픈 가족사를 공유하는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조양길의 질문이 갖는 무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믿어.”
“믿고 싶은 거야? 아니면, 정말로 믿는 다는 거야?”
“믿고 싶고, 믿고 있어.”
“잘 판단해야 한다.”
조양길 입장에서 표세인과 함께 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예비 사위로서도, 개발자로서도, 어느 하나 부족함 없는 인물이었기에 각별한 애정이 생겼다.
하지만 경영자이자, 후계자에게 자신의 유산을 물려주려는 이 시점에 지나치게 뛰어난 인재라는 것은······.
조양길 스스로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
“아빠는 오빠를 몰라.”
“내가 모른다고?”
“기껏해야 직원으로서는 알겠지.”
“그래. 그 외에는 모르지.”
“애인으로서, 그리고 미래의 배우자로서, 표세인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빠는 몰라.”
“하지만 사람은 변하는 법이다. 돈과 권력이 손에 들어오면······. 대개 대동소이하게 변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까지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과거 황금기의 급성장을 기록했던 국내 게임개발사들과 대동소이하게, 맥베스 역시 유저들의 어마어마한 원성을 샀었더랬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조양길 본인의 의지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돈이란 그 자체로 마력을 지닌 물건이다. 누구도 그것에 취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덧 전성기가 훌쩍 지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 현 시점에서야, 자신의 지난 행보가 본래의 자신과 얼마나 큰 괴리가 있었는지를 스스로 깨닫고 놀랄 정도가 아니던가?
“오빠는 나를 위해서라면 다 포기할 수 있어. 작은 치킨집을 운영하더라도 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야.”
왜 아니겠나?
맥베스로 이직하기 전, 표세인은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며 치킨집 노래를 부르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의지와 각오 만큼은 고스란히 전달 되었다.
그 만족감이란 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조연아가 생각하는 연인으로서의 표세인은 마치 술과 같은 남자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득한 향기로 자신을 취하게 만든다.
“내가 부탁할 것도 없이, 만약 나에게 스스로가 방해가 된다면, 모든 것을 내팽겨칠 거야.”
표세인은 정작 조금 다른 의미에서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조연아는 나름의 방식으로 표세인의 사고방식을 해석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그렇다 치고, 그러는 너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일방통행일 뿐인 애정은 빨리 식는 법이야.”
조연아는 기본적으로 야심이 있는 타입이다.
권력욕과 지배욕 모두에 관심이 있다. 아마도 어린 시절 화목하지 못한 가정의 막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그런 욕구를 싹틔웠으리라······.
조양길 역시 그 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려되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꼭 그래야 한다면, 나도 그렇게 할 거야.”
“······그러냐?”
조연아의 굳은 눈빛을 마주 바라보며 조양길은 피식 웃었다.
“어쨌든 알겠다. 이제 사업쪽은 적당히 분산시켜.”
“아니, 당분간 이대로 끌고 갈 거야.”
“첫 사업이라서 애착이 가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네 기반을 닦는 일이다. 실적은 이미 충분해.”
“실적 때문만은 아니야.”
“?”
조연아는 조양길 앞에 놓인 문서를 들어 올렸다.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 커질 거야. 게다가 기틀이 더 잡히면, 누구 손에 쥐어져도 성과는 보장되겠지.”
“······.”
“이런 좋은 프로젝트를 그냥 남의 손에 쥐여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 좋은 포섭카드가 될 거야.”
조연아의 말에 조양길은 낮게 키득거렸다.
“클클클······. 많이 컸군.”
“나라고 아무 생각 없는 것은 아니야.”
“그래. 그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라.”
“사업부에 내 후임은 내가 알아서 정해도 되지?”
“생각해 놓은 인물이라도 있나? 어차피 네 곁에는 김비서 뿐이잖아?”
“맞아. 인숙 언니에게 줄거야.”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던 계약에 가까운 관계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조연아는 부회장이 되어도 사업부에 대한 영향력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같은 방식으로 하나씩 삼켜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장기말이 필요하고, 깨비몬 사업 아이템은 더없이 훌륭한 포섭용 미끼가 될 것이다.
“그런데, 김비서를 사업부로 보내면 네 개인 비서는 어쩌려고?”
조연아는 좀처럼 쉽게 자신의 곁을 내주는 타입이 아니다.
그런 그녀가 새로운 비서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너 오래전에 개인비서를 고용한다, 어쩐다 하지 않았었나?”
순간 조양길의 뇌리에 해묵은 기억이 스쳤다.
“그, 그건······. 아무튼 새로 구할거야.”
표세인과 만나게 된 발단이 되었던 작은 헤프닝을 떠올리자, 조연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직까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한 적이 없는 둘만의 작은 비밀.
언젠가 웃으며 말할 기회가 오겠지만, 아직 그렇게 되려면 조금은 더 숙성이 필요할 것 같은 수줍은 기억이었다.
< 싫으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