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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48화 (148/346)

148.

“오랜만이군요.”

“네. 오랜만입니다.”

하비와 제임스는 짧은 악수를 나누었다.

우리는 하비가 머무는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우리는 어제 봤지요.”

“예.”

하비는 나를 향해 싱긋 미소지었다.

“그런데 굳이 방문하신 이유는 뭡니까? 대부분의 일은 그쪽 담당자와 거진 처리가 끝난 상황인데요.”

“앞으로 한동안 한배를 탈 사이인데, 얼굴이라도 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하비는 나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쳤다. 확실히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표정이 다채롭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번에 중국 시장을 겨냥한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네. 인력들을 재정비하는 단계이지만, 전망은 좋다고 보고 있습니다.”

AOS 방식이 접목된 FPS.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형의 장르를 복합한 것.

물론 단순히 요소들을 한데 섞었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컨셉과 기믹에 대한 아이디어 모두 현재로서는 나쁘지 않다.

“제가 게임 쪽은 모르지만, 중국 시장에서 성공한다면 굉장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수익성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수익성?”

“한 10배 정도 수익을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10배라니요.”

“10배는 너무······.”

“아, 10배는 너무 큽니까? 게임 산업이 근래 상당히 핫한 시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하비의 말에 나와 제임스가 동시에 피식 웃어버렸다.

“반대입니다.”

“반대?”

하비가 고개를 갸웃했다.

“투자금 천억 정도는 월매출만으로도 회수하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월매출만으로도 회수할 수 있다고요?”

하비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게임 업계의 무서움을 아직 잘 모르는 건가?

게임이란 일단 발매 후 출시하면, 딱히 큰 유지비나 원가가 들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고수익이 보장되는 산업이다.

그 어마어마한 매출은 이후, 순수익 비율이 엄청난 금광으로 변모하게 되는 법.

물론 출시 이후 매출은 차츰 하락하겠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히트작의 매출은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중국 시장의 거대함은 누구나가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중국시장을 집중 공략하려는 AAA급 게임은 많지 않습니다. 그저 글로벌 트랜드에 맞춘 게임에 중국적 색채를 조금 더해서 서비스하는 정도가 고작이죠.”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노력으로도 일단 중국 시장에 발을 들이면, 어마어마한 돈을 쓸어 담게 됩니다. 괜히 황금향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죠.”

거대한 인구와 게임에 돈을 사용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는 국민성이 더해진 덕분에, 중국에서의 성공이라는 것은 세계 게임 시장 전체에서 긁어모을 수 있는 수익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일단 원대한 비전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비는 일단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이건 아마도 에머리를 우리에게 떠넘긴(?) 것을 말하는 거겠지.

“에머리와는 정확히 무슨 관계이십니까?”

지난번에는 투자 파트너 정도로 둘러대기는 했지만, 이미 그것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드러난 상황이다.

“제 아내의 친구입니다. 그녀가 모델을 하던 시절에 에머리와 친분을 쌓게 되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좋은 친구로 지냈습니다.”

“아, 그랬군요.”

“에머리가 표세인씨를 너무 난처하게 한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아닙니다. 염려하실만한 일은 없습니다.”

에머리가 나를 난처하게 한다고 해도 내가 하비에게 기분이 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쨌건 내게 에머리는 무려 예비 장모님 신분이 아니겠나?

“······조연준은 지금 어떻습니까?”

하비가 제임스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글쎄요? 딱히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라서.”

도저히 형제라고는 보이지 않는 대답이었다. 더군다나 제임스 특유의 냉담한 표정이 더해지니, 하비가 당황했다.

“저희 어머님과 오래 알고 지내셨다고 하셨는데, 저희 가족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네. 딱히 가족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네. 어머니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 대부분이 딱히, 가족사를 언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제임스는 그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후, 나와 하비는 간단한 인사와 향후 투자금의 사용 방향성 등의 간단한 논의를 끝으로 미팅을 종료했다.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혹시 추가 투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비는 예상보다 높은 기대수익 때문인지, 추가 투자를 언급했다.

“아쉽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이 이상의 투자를 받아서 수익률이 쪼개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사실 함전무의 미션이 아니었다면, 굳이 외부에서 투자금을 마련해올 필요는 없었다.

맥베스 내부의 자금력만으로도 충분한 상황에서 굳이 수익률을 나눌 필요는 없지 않겠나.

더욱이 곧 있으면 맥베스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이 예상되는 깨비몬이 출격한다.

더욱이 여러 프로젝트가 중단된 상황이기에, 돈이 나갈 곳도 특별히 없다.

고로 자금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 지경.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하비.”

나는 하비와 악수를 나누었다.

*

*

*

“표세인, 그 친구에게 한 방 먹었다고?”

“네.”

도이사는 산뜻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것 치고는 뭔가 시원한 표정인데?”

함전무가 힐끔 도이사의 얼굴을 훑어보고는 말했다.

“처음에는 좀 당황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저만한 인물이 전무님의 뒤를 잇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도이사는 문이사와 양실장을 좌우에 포진시킨 채로, 자신을 품평하듯이 바라보던 표세인의 눈빛을 떠올렸다.

애초에 큰 체격에 날카로운 눈매였다. 그런데 거기에 묘한 관록이 더해지니, 놀라울 정도의 압박감이 전해졌다.

“전무님께서는 아직 문이사와 양실장을 대동하고 있을 때의 모습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표세인 팀장······.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보이더군요.”

애초에 IT업계라는 곳은 20대에 세계적인 규모의 회사를 창립하는 인물도 나타나는 업계가 아니던가?

연공서열 문화가 짙은 한국에서야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표세인의 젊음 때문에 그의 본질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미혹이 걷어진 그 순간을 도이사는 똑똑히 목격했다.

“솔직히 경험이 부족한 젊은 상사를 보필하며 성장시키는 즐거움을 찾아 볼까 생각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겠지.”

함전무 자신이 도이사의 입장이었다고 하더라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가능성 있는 젊은이의 성장을 돕는 것은 연장자의 가장 큰 즐거움이니까.

“하지만 이렇게되니 뭐랄까······.”

“갑자기 왜 말을 멈추지?”

“죄송합니다. 아직 완전히 정리가 된 것은 아니라서요. 오히려 표세인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눈 이후, 반대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습니다.”

“반대?”

“그에게 저의 연륜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저에게 젊음을 되돌려 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젊음을 돌려준다?”

함전무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그의 곁에 있는 문이사와 양실장. 언뜻 아주 가까워 보이지만, 그 친구들 사이에 있는 묘한 긴장감. 전무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오랬동안 경쟁자로 지내온 두 사람이다. 그것이 일순간 사라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마 표세인 곁에 있는 지금도 서서히 경쟁의 불씨는 거세지리라······.

“저도 그 친구들과 한판 붙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판 붙어? 아아, 그렇지. 자네도 그 친구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

전무 군단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도이사였다. 그렇기에 문이사와 양실장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연배.

피가 끓는다고 한다면, 조금 과장 섞인 표현이겠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함전무님 파벌 출신 인사로서, 그 흔적은 제대로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크큭, 그렇게 말한다니,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군.”

함전무는 키득거렸다. 하지만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묘한 생각에 표정이 굳어졌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그래. 설마 그럴라고······.”

아랫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주물러서 서로를 경쟁시키는 방식.

이건······.

다름 아닌 조회장의 방식이 아닌가?

함전무는 그 밑에서 일평생을 함께 했다. 이상무등과 겨루며 성장해왔다.

그런데 지금 표세인 주변의 구도가 묘하게 조회장의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설마 양실장이 숨겨둔 그림인가?’

차라리 양실장의 생각이라면 그럴듯하다. 그는 조회장의 수족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조회장의 모든 것을 지켜봐온 인재.

“하지만 그건 좋은 수가 아닌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경쟁이라고 하니 말하는데······. 솔직히 말하지. 그런 식으로 서로 경쟁하는 방식이라면······. 문이사, 그 친구 감당할 수 있겠나?”

“확실히 그런 구도에서 문이사는 감당하기 쉬운 상대가 아니죠.”

타고난 공격성과 상대의 약점을 놓치지 않는 체력까지······.

단순 경쟁 체제에서라면 문이사의 타고난 기질은 극도로 위험하다.

‘양실장 그 친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함전무는 표세인의 그릇도, 양실장의 본성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군요.”

양성태의 질문에 문상훈이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응? 하하하, 그런가? 솔직히 요즘 좀 즐거운 것은 사실이지.”

염원하던 센터장 취임에 이어, 문제아 삼인방을 통솔하는 역할까지.

표세인과 손을 잡은 이후, 하나같이 즐거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기회를 제공하고 간섭도 하지 않겠다는 듯 말했지만, 결국 경쟁을 통해 최고의 성과를 거두겠다는 의미가 아닌가? 표세인 팀장도 수가 보통이 아니야.”

나이 답지 않게 노련한 인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곁에서 지켜볼수록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삼인방의 고삐를 쥐는 역할이라 치고, 자네는 무슨 역할이지?”

문상훈은 슬쩍 양성태의 눈치를 살폈다. 삼인방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자신이야 말로 2인자 자리를 두고 양성태와 끊임없이 싸워여 한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저야, 합병 준비에 매달리고 있는 처지지요.”

“안됐군. 눈에 띄는 역할이 아니라서.”

개발의 실무를 담당할 삼인방을 통솔하는 일에 비해, 합병과 신규 사옥을 준비하는 것 같은 일은 업무량에 비해 딱히 눈에 띄는 역할이 아닌 것이다.

결국 게임 개발사의 꽃은 개발이 아니겠나?

“누구든 맡아야 하는 역할이기는 하지요.”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담백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양성태라는 인물의 매력······. 아니, 두려움이다.

문상훈은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가늘게 떳다.

“하지만 뭔가 묘하군.”

“무슨 말씀이신지?”

“흠······.”

자신이 경쟁심에 불타는 반면, 양성태는 딱히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마치, 묵묵히 자신의 할 일만 하면 그만이라는 듯.

“아니야. 그럼 나는 먼저 가보지, 곧 미팅이 있어서.”

“컨셉 미팅인 모양이군요.”

“맞아. 벌써부터 세녀석들이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각자의 파트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자 두뇌를 풀가동할 것이 틀림 없다.

문상훈은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들의 열정을 더욱 북돋기 위해, 어떤 성원과 질책을 터트려야 할지······.

그것을 생각하며 문상훈은 콧노래와 함께 미팅장소로 향했다.

‘문이사님은 이런 상황에서 가장 빛나는 분이시지요. 잘하고 계십니다.’

분명 문상훈은 삼인방에게 적절한 독려와 다그침을 선사하며 최고의 성과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양성태 본인을 향한 경쟁심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성태는 자신의 경쟁자를 순순히 응원했다.

그것이 자신이 섬기기로 결심한 표세인을 위해 가장 좋은 길이니까.

‘그렇다고 이쪽도 순순히 지켜보기만 하진 않을 테지만······.’

경쟁자는 문상훈 하나가 아니다. 양성태는 문상훈 이상으로 피치를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 이제 원, 투 펀치 좀 구경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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