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im so sorry.
양실장은 대화를 잠시 멈추고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무슨 일이시죠?”
내 질문에 양실장은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홍기도 과장이 보낸 메시지입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의미일까?”
나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im so sorry.”
“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im so sorry······ too.”
“?”
그냥 전부 제가 죄송합니다.
어째 양실장과 만난 이후로 나는 그의 이름에 먹칠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혹시 이거······. 표세인 팀장님과 무슨 관련이 있으십니까?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메시지를 보내시는 것 같던데요.”
역시 양실장도 이제는 대충 우리가 하는 짓(?)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것 같다.
“맞습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어째서 죄송하다고 하시는 겁니까?”
“아마도 홍기도 녀석이······. 양실장님 이름을 팔아먹었겠지요.”
“제 이름을요?”
“네.”
부디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으면 좋겠다. 이런 건 설명하기가 참 까다롭다.
“전부 제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니, 벌은 제가 받겠습니다. 홍기도는 그저 제 지시에 따른 것 뿐이니······.”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 이름이 도움이 되었다면 그거야 말로 기쁜 일이지요.”
순간 양실장의 머리뒤에서 후광이! 등 뒤에서는 순백의 날개가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이거 인간적으로 너무 찔리는데······.’
나중에 꼭 양실장님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네.”
“합병과 합사는 이걸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앞으로 소소한 이동이 더 있을 수 있겠지만, 큰 소요는 없을 겁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합병과 합사 문제를 제임스와 양실장에게 부탁했고, 그들은 내 기대대로 더없이 깔끔하게 처리해 주었다.
당장 대표였던 이들의 역할을 개발실장으로 전환하고 본인들의 주축 파트대로 인재들을 새롭게 배치하는 것.
무엇하나 쉬운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고 깔끔한 일처리였다.
“어쨌든 이걸로 마무리입니다. 표세인 팀장님께서는 개발쪽만 신경써 주시면 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사실 실장 삼인방을 규합한 것은 내 독단적인 허슬플레이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게다가 양실장의 본래 포지션은 비서실장이다.
같은 파벌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나를 위해 이렇게 발 벗고 나서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내가 양실장을 위해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이 항상 마음에 쓰일 정도.
“아닙니다. 표세인 팀장님은 항상 본인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언제나 이런식이다.
대체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런데 정작 나란놈은 예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는 홍켓몬까지 합세해서 양실장의 이름을 마법 주문처럼 휘두르기만 하고 있다니······.
양심에 찔리기는 하는데, 이게 너무 효과적이라서 앞으로 그만하겠다는 결심도 못하겠다.
im so sorry.
언젠가 꼭 보답할게요.
그저 이 결심하나만 반복할 뿐.
*
*
*
“아, 문이사님.”
“안녕하십니까.”
나와 양실장은 복도에서 문이사와 조우했다.
“······.”
“?”
문이사는 가늘게 뜬 눈으로 양실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씩 웃었다.
“나는 아무래도 찾은 것 같아.”
“무슨 말씀이십니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경쟁하고 겨루게 될지를 말이야.”
“무언가 깨달음이 있으셨군요.”
문이사의 선문답같은 이야기에 양실장 역시 슬며시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그리고 대강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나는 그저 입맛만 다시면서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당장은 바쁘니 나중에 보자고.”
“예. 알겠습니다.”
문이사가 떠나가고 양실장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아마도 이거였던 모양이군요. 홍기도 과장의 메시지는······.”
“네, 그럴겁니다.”
“흥미롭군요.”
흥미롭다? 예상과는 다소 다른 반응이었다.
“설명해 드릴까요?”
이쯤되니, 설명해주지 않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양실장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이런 것은 스스로 파악해낼 때가 더 재미있는 법이지요. 예전부터 그랬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푸는 것 보다, 혼자서 해낼 때가 더 즐겁더군요.”
아, 이걸 이렇게 접근할 줄은 몰랐네.
“그리고 아예 감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묘하게 그립고 친근한 느낌도 들고요.”
“그립고 친근하다고요?”
“네. 경쟁을 통해서 맨파워를 극대화한다. 조회장님의 스타일이 연상되어서 조금 기쁘군요.”
순간 양실장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마도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기억들을 회상하는 것 같았다.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저도 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나는 양실장에게 살짝 목례하고 서둘러 팀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곧바로 홍켓몬을 찾았······.
“오호! 팀장님 발견!”
마침 이 놈도 나를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옥상으로 가시죠.”
“그래. 그러자.”
표정이 밝은 것을 보니······. 아니, 조금 전 문이사님의 반응만 봐도 대강 성공했다는 것은 알고 있겠다.
우리는 그렇게 옥상에 도착했다.
“남궁원은 어때?”
“어떻긴요. 아직 얼떨떨한 상태죠. 결과를 봐야지, 실감하지 않겠어요?”
이런류의 작전을 처음 경험한 것이니,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대체 무엇을 한 것인지, 대체 이런 일이 무슨 쓸모가 있다는 건지, 하고 얼떨떨한 상태일 것이다.
“하긴 처음에는 너도 그랬지.”
“······전 다르죠.”
“하긴 너는 처음부터 엄청 시끄러웠지. 대체 이게 뭐냐, 뭘 한거냐, 이래가지고 무슨 효과가 있다는 거냐.”
“······옛날 일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것은 늙었다는 증거! 스스로 아재임을 시인하는 겁니까?”
“아재?”
“네!”
“뭐, 내가 아재지 아가씨겠냐? 아재가 나쁜 말도 아닌데, 겁낼 필요가 있나?”
“큭! 실수다.”
홍켓몬은 정신공격이 통하지 않았음이 상당히 분한 모양이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다른 변수는 어떨 것 같냐?”
이번 프로젝트에서 남궁원이 보다 수월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문이사를 공략했다. 하지만 이런 작전들이 늘 그렇듯이, 때때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나, 변수를 야기하기도 한다.
“대충 예상되지 않으세요?”
“그건 그렇지만, 나라고 너희와 문이사님 사이에서 나눈 대화를 전부 아는 것은 아니잖아.”
대강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었을지, 정도는 예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다르고 어다른법 아니겠나?
“남궁원이랑 문이사님의 공통점을 집중 공략했어요. 그것을 위해서 스마트폰에 각자 양실장님과 문이사님 사진을 배경으로 해놓고서······.”
“크크큭. 이 미친놈.”
배경화면까지는 나도 생각을 못 했다. 하지만 평소 양실장을 예의 주시하는 문이사라면 확실히 걸려들지 않을 수 없는 함정이었으리라.
게다가 사내정치보다는 개인 커리어에 집중하는 두 사람의 공통점을 정확히 찌른 한 수.
이건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도 이제 많이 컷구나.”
트레이너의 기쁨이랄까? 홍켓몬의 성장에 가슴이 뭉클하다.
“하지만 저보다는 이번 일로 남궁원이 배우는 배우는 점이 많겠죠.”
“그렇지.”
배운 것을 실천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적어도 이번 일로 남궁원이 무언가 큰 것 하나를 배우게 되리란 것은 확실하다.
“일단 뚜껑이 열릴때까지 지켜보기로 할까?”
“그래야죠.”
우리가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누군가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팀장님.”
“민대리 무슨 일이지?”
한 눈에도 민슬해 대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서둘러 권태인 차장에게 가보셔야겠습니다.”
아무래도 무언가 일이 생긴 모양이다. 나는 서둘러 기획팀으로 향했다.
*
*
*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 요청이네요. 게다가 가격이 너무······.”
“가격은 저희 소관이고 갑작스러운 것은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쪽이 진행하던 일이 극적 체결을 이루었기에 발생한 일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쨌든 이번 출시와 동시에 추가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기획팀에 도착하자,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권태인 차장과 물러설 수 없는 기세를 온 몸으로 표현중인 김비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팀장님.”
권태인은 나를 반갑게 맞이했고,
“표세인 팀장님······. 마침 잘 오셨네요.”
김비서는 살짝 탐탁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지난번 영상제작 관련 회의에서 내게 한 방 먹은 일 때문에 나를 대하는 것이 조금 께름칙한 기분인 모양.
하지만 그럼에도 마침 잘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어차피 최고책임자인 나를 거쳐야 하는 일일테니까.
“명품브랜드 회사들과의 전격 콜라보 협상이 체결되었습니다. 따라서 해당 콜라보 상품을 깨비몬 출시때 함께 런칭하고 싶습니다.”
“그건 프로그램팀과도 논의를······.”
권태인이 힐끔 나와 김비서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아니죠. 그런 일정 컨트롤은 기획팀의 역할이잖아요.”
김비서는 다소 얄밉게 말했다.
사적으로는 권태인과 굉장히 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업무적으로는 양보가 없구나, 무척 바람직한 관계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진짜 문제는 김비서가 한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는 거다.
일정을 조율하고 컨트롤하는 것은 기획의 주된 임무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윗선이나, 타부서에서 들어온 요청을 우리가 먼저 판단해야 하는 것 때문에 기획자들이 개발실 내부에서 공공의 적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일단 그 제품이 무엇인지, 그리고 생각하시는 단가와 판매 방식까지 들어본 다음에 판단하죠.”
“아, 여기 있어요.”
권태인은 김비서에게 받았던 기획안을 내게 넘겨 주었다.
“흠, 세계 10대 브랜드 중에서 7개씩이나······. 어? 그런데 이걸 개당 수백만 원에 판다고요?”
내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치켜들자, 권태인은 마치, ‘그렇다니까요.’라는 눈빛을 보냈다.
반면 김비서는 강고한 표정으로 이번에야말로 물러날 수 없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상점에 메인배너 달고 수백만 원짜리 상품을 올린다······.”
“일반 아이템도 아니고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 단순 치장성 아이템이니까, 유저들에게 반발도 적을 것 아닙니까?”
김비서는 상당히 방어적으로 말했다.
“게다가 그 가격은 현재 판매되고 있는 깨비몬 캐릭터 상품들과 이후 출시될 브랜드 콜라보 상품들, 거기에 더해 향후 메타버스 시장까지 고려해서······.”
아직 개발 예정도 없는 메타버스 이야기까지 들이대는 것을 보면, 상당히 이번 콜라보 아이템에 대한 열의가 상당한 모양.
아니,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라 향후 사업부에서 밀어 넣어야 할 아이템들을 고려할 때, 첫 단추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겠지.
따라서 이해는 한다. 개발 일정을 고려하는 것은 그들의 임무가 아니다.
어쨌든 사업성 있는 아이디어와 아이템을 밀어넣고 추진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
그리고 그것을 끊고 때로는 수용하면서 개발을 리드하는 것 역시 기획자인 우리의 역할이지.
하지만!
“이거 이렇게는 안됩니다.”
나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기획안을 책상 위에 툭 내려놓았다.
“······너무 빠른 결단 아닌가요? 다소 급박한 요청이긴 하지만,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데요?”
김비서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지난번처럼 한걸음 떨어진 상황이 아니라서 일까?
확실히 그녀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뭔가 오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네?”
“수백만 원 너무 쌉니다. 그리고 판매 방식도 틀려먹었어요.”
“네?”
싸다는 말과 틀려먹었다는 말 중에서 무엇이 더 김비서를 놀라게 했을까?
하지만 아마도 내 뒷말이 그보다 훨씬 파급이 클거란 것은 확실하다.
“제가 생각하는 가격은 최소 1억, 그리고 판매방식은 게임 외 별도 사이트에서의 경매입니다.”
“시작가 1억에 경매?”
순간 주변 모두가 나를 미친놈처럼 바라보기 시작했다.
< 내가 결정 하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