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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53화 (153/346)

153.

“경매······. 그건 생각도 못했네요.”

“네. 현재 많은 NFT 상품들이 희소성과 미래 투자자산으로 인정받고 있으니, 확실히 그쪽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설득당해버렸어.”

김인숙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정작 표세인 앞에서는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조연아 앞에서는 한껏 후련한 얼굴이었다.

“표세인 팀장······. 사업부로 끌어와도 일 잘할 것 같다는 느낌이네요.”

김인숙의 말에 조연아는 피식 웃었다.

“게임에 관해서는 이 회사에서 표세인 팀장만한 사람이 없는 것은 사실인 것 같네요. 하지만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과 실무를 처리하는 일은 전혀 별개의 것이죠.”

적어도 실무처리라는 카테고리에서 김인숙은 부족한 점이 없다. 누구나 가진바 역량이 빛날 수 있는 영역이 다른 법이다.

개발자 출신인 표세인이 사업부 일을 담당한다?

법무와 회계 쪽에는 완전히 문외한인 그에게 사업부 실무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건 그렇죠.”

“오히려 표세인 팀장 같은 사람은 임원직에 어울리는 타입의 인재 같아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명확한 비전과 시장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지닌 인재. 거기에 인재 장악능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확실히 이만한 임원감이 없다는 느낌.

“그런데, 저는 그렇다치고 실장님은 분하지 않으신 것 같네요?”

“네?”

“아, 하긴 세부기안 작성은 실장님이 하신건 아니었죠.”

김인숙의 말대로 조연아는 브랜드 콜라보 성사까지만을 맡았고 이후의 일은 김인숙에게 맡겼다.

“아니에요. 저도 김비서님과 별다른 생각은 없었는걸요.”

“그렇죠? 제가 잘 못 생각한 것은 아니죠?”

“맞아요. 이제 막 오픈된 시장이죠. 거기에 즉각 대응하기란 쉽지 않죠.”

“그런데, 표세인 팀장은 어쩜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걸까요?”

“애초에 NFT 사업 자체가 미국지사 주도하에 이루어진 일이고, 그는 그 시발점부터 미국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봤죠. 우리 보다 그쪽 사정에 밝은 것은 당연하겠죠.”

그리고 그런 표세인의 움직임을 자신은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 그 덕에 이번 일도 연아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표세인 팀장의 아이디어를 통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리고······.”

“네? 뭔가 더 하실 말씀이라도?”

“이번 깨비몬 출시 이후, 저는 부회장으로 취임합니다.”

“드디어······.”

김인숙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조연아의 후계자 선언 이후, 드디어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 이에 발 맞추어······.

“이제 비서 직함 버리실 때가 왔습니다.”

“아······.”

“우선은 사업부 부장으로 시작하시죠.”

“흐흐흐. 역시 줄을 잘섰군요.”

“일을 잘 하신 거죠.”

이번 깨비몬 캐릭터 사업에 있어 자신 다음으로 공을 세운 사람은 다름 아닌, 김인숙이 아니던가?

충분히 보상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깨비몬 출시 이후에, 또 한번 사내에 바람이 불겠군요.”

“네.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존의 함전무와 이상무 양강 체제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이상무를 등에 업은 차기 회장인 자신과 함전무의 영향력을 계승한 표세인.

이제는 새롭게 달라진 양강구도 체제.

“그러고보면 슬슬 양실장님 파벌에 대한 견제도 필요하지 않은가요?”

아차, 하는 사이에 문이사와 외부 계열사 삼인방 거기에 표세인까지······.

양실장 파벌의 면모는 눈에 띄게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아니, 이미 이 시점에서 거진 완성에 가까운 상황이 아닌가?

함전무도 이상무도, 그 격변의 시기를 격던 와중에도 이렇게나 빠른 성장세를 보이지는 못했으리라······.

“견제?”

“왜 놀라세요? 당연하잖아요.”

견제라는 단어에 연아가 짐짓 당황하자, 이번에는 김인숙이 살짝 놀란 눈을 떴다.

“아, 해야죠. 생각해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김비서님은 당장 신경쓰실 필요 없으세요.”

“흠······. 다 계획이 있으시겠지만, 당장만해도 저희쪽이 맨파워에 있어서 불리하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당장 양실장 진영을 정탐하는 것조차 불가한 상황.

“실장님의 입지야 흔들릴 수 없다지만, 오너라고 해서 무조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제어하지 못할 세력은 어느 정도 가지치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인숙의 말은 옳다. 하지만 지금 표세인은 가지치기가 아니라, 물줄기를 통째로 움직여 버렸다.

‘오히려 걱정해야할 것은······.’

그들은 표세인과 자신의 관계를 모른다. 현재 표세인은 그들을 담아내는 둑이나 다름없는 상황.

만약 그 둑이 터진다면······.

오히려 걱정해야 할 지점은 그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

*

“윤과장님.”

“어?”

표세종의 질문에 윤과장이 고개를 돌렸다.

“이 부분 좀 봐주시겠어요?”

“어디 보자. 음······.”

윤현창은 표세종의 코드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깔끔하게 정리했네······. 뭐가 문제지?”

“여기, 이 부분이요. 좀더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 그건······.”

이렇게 한번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나면······.

“윤과장님, 저도······.”

“윤과장님?”

여기저기 질문의 홍수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한팀장이 장급회의나 이런저런 일로 자리를 비우면 여지 없이 쏟아지는 질문 세례.

“가만, 이쪽은 김순영 차장님이랑 함께 작업하는 부분이잖아. 그쪽에 질문을 해야지?”

윤형창의 말에 팀원들은 살짝 난처한 눈빛을 나누며 입맛을 다셨다.

“왜들 그래?”

“윤과장님도 요즘 김순영 차장님 상태 아시잖아요.”

요즘이라는 말도 우습다.

이 팀으로 불려온 시점부터 김순영은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한차례 대립한 전적이 있는 한팀장 밑으로 오게 된 상황.

거기에 더해,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 있던 문이사와의 라인이 박살 나고, 한팀장은 표세인의 흥행 가도에 한발 걸친 상황.

저울이 기울어도 너무 기울었기 때문일까? 김순영 차장은 언제나 생기 없는 모습으로 그저 눈앞에 주어진 코딩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이건 좀 너무 망가진 것 아닌가?’

고작해야 시말서 하나.

당시 문상훈이 흥분해서 길길이 날뛴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에는 시말서로 마무리되었다.

윤현창의 생각에 그 자체가 나름 문상훈의 배려였다고 생각하지만, 김순영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이제 슬슬 정신 차려야지.’

솔직히 이 팀으로 합류하기 전에 자신이라고 김순영과 좋은 사이였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일은 지난일이고, 앞으로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자신 역시 문상훈에게 현재 찬밥 신세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부터, 현재 본사에 복귀한 시점까지 문상훈은 자신을 불러주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김차장님.”

“무슨······.”

김순영의 얼굴에는 짙은 경계의 기색이 완연했다. 그 모습에 윤현창은 혀를 찼다.

“담배 한 대 태우시죠.”

윤현창은 손가락으로 옥상을 가리켰다.

“······나는 담배 안피우는데?”

“예전에는 잘만 다니셨잖습니까. 올라가시죠.”

윤현창은 김순영의 대답도 듣지 않고 옥상으로 향했다.

“후우······.”

“······.”

윤현창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고, 김순영은 그저 묵묵히 윤현창의 말을 기다렸다.

‘이해 못할 것은 아니야.’

개발2실에서 김순영은 그간의 행패에 대한 댓가를 치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온갖 눈총에 시달렸었다.

그를 한팀장 밑으로 보낸 것은 눈엣가시를 빼내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보다못한 한팀장이 그를 거두워간 이유도 있을 것이다.

‘뭐 나라고 다를 것도 없지.’

자신 역시 처음에는 김순영 밑에서 손바닥을 비비다가, 막판에는 문상훈의 눈에 들었다가 결국은 내쳐졌다.

“김차장님.”

“······.”

“사람이 때로는 실수도 하고 잠깐 삐딱선도 타고······. 뭐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

윤현창의 말에 김순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 지금 이직 생각하고 계십니까?”

“!”

“학벌 좋고, 코딩 실력도 부족함이 없는데······. 문제는 애매한 직급. 맥베스급인 회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차장급이면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도 않으니······. 난처하시죠?”

“······.”

정곡을 찔렀다. 그것은 김순영과 윤현창 모두가 아는 사실.

애초에 어설픈 중간관리자 레벨부터는 이직도 쉽지 않다.

더욱이 국내처럼 서로 간의 속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업계 특성상, 김순영의 이야기는 알음알음 퍼져있는 상황.

“보니까 한팀장님······. 솔직히 사람 괜찮지 않습니까.”

“······.”

“눈 한번 딱감고 한팀장님께 붙읍시다. 보니까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사람, 뿌리치는 타입도 아닌 것 같던데요.”

“······.”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 김순영을 보고 있으려니, 답답함에 애가 탄다.

“이대로 계속 기죽어 계시면 앞으로 더 힘들어지십니다. 그거 본인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

모를 리가 없다. 하다못해 한팀장을 상대로도 공공연히 진급 누락 예정자라며, 고주알미주알 사회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어대지 않았던가?

“······난 이제 뭘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오랜 침묵 끝에 털어놓은 말치고는 너무나도 맥빠지는 답변이었다.

“그런거 알면서 사는 놈이 어디 있답니까? 그리고 살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엎어지기도 하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표세인 팀장을 보십시오.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예전에 송부장에게 찍혀서 빌빌거리던 놈도, 여기서는 날아다니지 않습니까?”

“······.”

표세인이 거론되자, 김순영은 다시금 입을 닫았다.

자신도 생각했었다. 만약 표세인만 아니었더라면······.

어쩐지 이 모든 것이 그와 엮인 것부터가 잘못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하하. 그땐 진짜 웃겼지.”

“맞아. 맞아.”

그때,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김차장님?”

“······윤과장님.”

한때는 긴밀한 관계였던 해병대 콤비였다.

“······니들은 좋아보인다?”

어찌보면 저 둘이야 말로 자신들보다 사회생활에 훨씬 능숙한 유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줄창 의리 같은 것을 입에 담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적당히 눈을 돌리는 것부터, 틈틈이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을 정도의 처세도 발휘한다.

물론 아직 직급이 낮은 덕분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지만······.

“네, 뭐.”

“저희야 늘 잘 지내죠.”

묘하게 ‘저희’라는 부분이 거슬렸다.

“그런데 김차장님은 담배도 안태우시면서 왜 여기까지 올라오셨나요?”

콤비 1호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무슨 뜻이냐?”

정작 윤현창이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솔직히 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담배도 안피우시는 분이 항상 옥상에 올라오시고······.”

“아직도 대장 놀이 못끊으신건가요?”

“하······.”

윤현창은 순간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과 김순영이 실끊어진 연 신세가 되었음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래도 한때나마 붙어지내던 녀석들에게서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몰랐다.

“기세가 아주 등등하신데? 새로운 줄이라도 잡았냐?”

“훗, 마팀장님 아시죠? 천이사님 라인.”

“아······. 그러냐?”

마팀장이 천이사 라인이며, 함전무의 부재중 천이사가 부장급 인사들을 회유하거나 하는 등의 발빠른 움직임을 보인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애석한 점은 그 뒤로 천이사의 입지가 극속도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그래도 차장과 과장 앞에서 건방이 너무 지나치지 않냐?”

“지난번에 김차장님은 한팀장님과 멱살잡이까지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쩝······.”

김순영의 어깨가 바르르 떨리는 것을 본 윤현창이 입맛을 다셨다. 그간 김순영 본인이 저지른 업보가 있는 탓에 이런 부분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저희가 딱히 뭘 한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 너희 지금 뭐하는 거냐. 왜이렇게 가깝게 들이대?”

체격 좋은 두 사람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대자, 김순영과 윤현창이 움찔 당황했다.

하필이면 김순영과 윤현창 두 사람 모두 호리호리한 체형이기에, 건장한 해병대 콤비 앞에서는 그 왜소함이 두드러졌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희는 누구처럼 윗사람 멱살은 안 잡······. 꺼흐흐윽······.”

이죽거리던 두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날아든 꿀밤에 머리통을 부여잡고 주저앉고 말았다.

세상에 꿀밤이 이렇게나 아플 수가 있다니! 너무 놀란 나머지 눈물까지 찔끔한 채로 고개를 돌리자, 그 곳에는 그들 보다도 훌쩍 큰 키의 그림자가 있었다.

“이것들이 돌았나. 지금 상사 앞에서 뭐 하는 거야.”

표세인은 잔뜩 성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 하극상을 꿈꾸는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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