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이제 곧 출시인가?”
조양길은 드물게 초조한 모습이었다.
“기대되시는 모양입니다?”
양성태는 의외라는 듯이 조양길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맥베스가 출시한 게임이 대체 몇 개이던가?
출시 타이틀이 늘어갈수록 조양길이 출시 전날 기대에 찬 표정을 짓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고, 근 몇 년간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물론이지. 이래저래 맥베스 창립이래 최대의 기대작 아닌가?”
이미 출시 전부터 캐릭터 상품만으로도 열풍을 일으킨 타이틀이었다.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면, 향후 기나긴 시간 동안 맥베스의 핵심 브랜드가 되어줄······.
아니, 그런 말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게임사에 한 획을 긋게 되는 타이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개발쪽 분위기는 어떻던가? 별다른 차질은 없어 보였나?”
“네. 문제없어 보입니다. 표팀장도 근래에는 깨비몬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판호도 그렇고······.”
깨비몬에 판호······. 거기에 더해 에머리가 준비하고 있는 모종의 일까지······.
표세인에게 엮인 일들은 너무나 많다.
“보약이라도 한 채 지어줘야 하려나?”
“보약이요?”
“그래. 근래 표세인 그 녀석 하나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하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조양길의 말에 양성태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재 맥베스의 거대 프로젝트들은 하나 같이 표세인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이토록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일들이 아니라면······.
아니, 그렇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표세인이라는 남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던가?
이 시점에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양성태 본인부터가, 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문상훈 등의 인재들을 포섭하는 강수까지 동원해가며 물심양면 지원하고는 있지만······.
과연 그것들이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일지, 자신하기 어렵다.
“보약······. 좋죠.”
“음? 의외로군. 자네는 철저한 양약파 아니었나?”
과거 자신이 몇 차례 몸에 좋은 장어 즙이나 홍삼 따위를 권했음에도, 자신은 한방약에 딱히 관심이 없다며 거절하던 양성태였다.
그런데, 표세인의 이름이 나온 것 만으로도 태도가 일변한다.
“솔직히 표세인 팀장이, 보약 같은 것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사람의 몸상태라는 것은 겉보기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클클클, 정말로 많이 변했단 말이지.”
“이제 다 변했습니다. 더이상 변화는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양성태의 말에 조양길은 피식 웃었다.
“연아 취임건도 잘 진행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양성태에게 있어 현재 가장 중요한 업무는 다름 아닌, 조연아의 부회장 취임 관련이다.
조연아의 취임은 단순한 직책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분문제와 상속까지 엮인, 복잡한 제반 사항들을 문제없이 깔끔하게 처리하기 위해 양성태는 법무팀과 재무팀을 조율해가며 고군분투 중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조금 빠르지 않습니까?”
“빨라? 뭐가?”
“회장님께서는 아직 정정하시고 조실장은······. 아직 젊지 않습니까?”
하마터면 어리다는 표현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그것은 조양길 본인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부회장 앉힌다고 해서, 내가 바로 물러나는 것도 아니잖나. 하지만 그 녀석 나이와는 별개로 내가 젊지 않은 것은 사실이야.”
“······아직 정정하십니다.”
“말이라도 고맙군.”
조양길은 한번더 클클 웃었다.
그 메마른 웃음이 묘하게 뇌리에 박혔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에 양성태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조만간 중국에 다녀와야겠어.”
“중국에요?”
“판호건과 관련해서······. 표세인 그 놈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지. 중국의 노회한 너구리들을 상대하려면은 나도 함께 가는 편이 나을 거야.”
원래라면 함전무를 동행시켰겠으나, 이제 곧 함전무는 회사를 떠날 사람이다.
그렇다면 표세인이 온전히 중국의 꽌시를 흡수 하고 그가 함전무의 후계자이자, 맥베스의 전권대리인이라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직접 발걸음해야 한다.
“그렇다면 저도 동행을······.”
“아니······. 자네는 남아야지. 그쪽 파벌 컨트롤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쯤은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나?”
표세인과 양성태가 동시에 자리를 비운다면, 문상훈 같은 인물이나, 천이사 같은 인물을 제어할 사람은 없다.
조연아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 상태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찍어 누르는 것 외에는 없다.
아직 힘을 휘둘러 주변을 제압하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를 남겨둔다.
“······알겠습니다.”
양성태는 그저 조양길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
*
*
“후우······.”
“긴장되세요?”
“팀장님은 긴장 안되세요?”
권태인이 오히려 나에게 반문했다.
“긴장되죠.”
“어머, 그렇게 상큼하게 웃으시면서 긴장되신다고요? 거짓말도 잘하시네요.”
미소라는 것은 전염이 되기 마련, 내 얼굴을 본 권태인 역시도 히죽 마주 웃었다. 조금은 긴장이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 시점에 긴장한다고 달라질 것 없죠. 마음 편히 드세요. 정 어려우면······. 상여금이라도 생각하자고요.”
“상여금?”
“그럼요.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당연히 상여금 기대해야죠. 안 그러세요?”
“표팀장님도 상여금을 기대하세요?”
“그럼요. 저도 맥베스 직원인데요.”
“하지만 이거 기둥소프트 지분이······.”
“에잇, 김새는 소리 마시고.”
네, 맞아요. 저 사실 상여금 별로 관심 없어요. 나중에 제가 따로 챙겨드릴 상여금을 받은 여러분의 기뻐하는 얼굴만 관심이 있죠.
나는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 자리를 이동했다. 권태인은 긴장이 조금 가라앉은 것 같으니, 이제는 프로그램팀 쪽을 신경써야지.
“어떠냐?”
“······어떻긴 죽을 맛이지.”
윤현창은 퀭한 얼굴로 입에 물고 있는 에너지 드링크 캔을 까딱거렸다.
“그래도 사람 좀 붙여줬잖아. 막판에 한 숨 돌린 것 아니었어?”
“저 것들?”
윤현창이 캔을 까딱거리면서 해병대 콤비를 가리켰다.
“차라리 네 동생이 낫다.”
“세종이가 그정도야?”
신입 프로그래머가 인정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함송희가 눈에 띄는 것이다.
“아니, 쟤들에 비하면이란 거지, 어쨌든 한솥밥 먹던 처지라서 코드 스타일은 우리랑 합이 맞잖아.”
“아······. 하지만 저 친구들도 예전에는 함께 손발 맞췄던 사이잖아?”
“하여튼 이래서 기획 떨거지는······.”
아, 프로그래머에게 이런 눈빛 받아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그래, 이게 원래 우리 사이의 참모습이지. 하지만 이 시점에 이 녀석을 건드리는 것은 폭탄 안전핀 뽑는 격이니, 내가 참아야지.
“게임이 다르면 말짱 다른 거지. 게다가 저 녀석들은 원래 파트가 달라서 서로 코드 들여다볼 일도 없었지.”
“괜히 붙였나?”
딴에는 도와주려고 한 일이었는데······. 별 도움이 안되었던 걸까?
“도움은 됐어.”
“그러냐?”
“응.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킥킥킥.”
뭔지는 모르겠지만, 킥킥 거리는 꼴을 보아하니 해병대 콤비 갈구면서 스트레스 좀 푼 모양이다.
용도가 그것뿐이면 곤란하지만······. 그거라도 된다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이 시점에 이 녀석은 깨비몬의 핵심 프로그래머중 한명이니까.
“야, 그리고 밥이나 한번 사라.”
“밥?”
“생각해보니, 너 이번에 돈 엄청 버는 것 아니냐? 이젠 뭐······. 월급쟁이 클래스도 아니지?”
“음······.”
“와, 이 새끼 진짜 양아치네. 그동안 정신 없어서 몰랐는데 너 지금 완전 잘나가······. 켁!”
내 멱살이라도 붙잡을 것 같던 윤현창이 돌연 머리통을 붙잡고 주저 앉았다.
“한팀장님?”
“마! 표팀장이 니 친구냐?”
“······동기고······. 친구 맞는데요?”
“······? 친구라고?”
한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차마 출시를 코앞에 둔 프로그래머 멘탈 박살 낼 수는 없으니, 여기서 고개를 가로저을 수는 없겠지.
“뭐, 동기고 동갑이고······. 네, 친구라고 할 수도 있겠죠.”
차마 떨떠름한 대답까지 온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
“아, 팀장님 저도 이래봬도 과장인데 미사일 쏘기 전에 확인이라도 한번 해보시면 안 됩니까?”
“과장이 팀장하고 맞 먹는게 잘하는 일이냐? 그런건 둘이 있을 때나 하는 거지. 여기 회사야.”
한팀장의 정론에 윤현창은 본전도 못찾고 깨갱했다.
뭐, 이 두 사람은 의외로 궁합이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다.
“그쪽에서 보낸 테이블, 이게 마지막이지? 빌드하면 되지?”
“네. 그렇습니다.”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이제 서버 올라간다. 오픈은 예정대로 11시야.”
“넵.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 같은 소리 하네, 원래 내 일이야. 내가 알아서해.”
퉁명스러운 대답과는 별개로 한팀장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야말로 믿음직스러운 모습이다. 마치 험난한 작전에 투입되는 파일럿의 모습 같달까?
이 시점에서 기획이 할 일은 그저 프로그래머들을 응원하는 일 뿐이다.
출시 직후라면 모니터링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나는 프로그램팀을 떠나 다시금 기획팀으로 복귀했다.
“다녀오셨어요.”
“응. 체크리스트 인트라넷에 올라와 있지?”
“네.”
홍기도는 나를 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도 서버가 올라가면 즉시 테스트에 돌입할 준비를 하느라고 분주하다.
“좋아. 시작해볼까?”
나는 자리에 앉아 체크 리스트를 켜고 스마트폰과 PC 모두에 접속 준비를 마쳤다.
“서버 올라갔습니다. 개발자 계정 진입 가능합니다.”
권태인 차장이 테스트 시작을 알렸다.
“좋아. 테스트 시작이다.”
유저에게 전달되기 직전, 마지막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
*
*
귀여운 블록 스타일의 픽셀로 가득한 세계. 푸르름과 녹음으로 가득한 세상.
그곳에 3등신의 캐릭터가 발을 딛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오브젝트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세계.
캐릭터는 분주히 주변의 블록형 자원들을 부수고 채집하여 자신의 터전을 가꾸는 한편, 도구이자, 펫인 깨비몬들을 육성하며 자신만의 낙원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이 일련의 작업들을 지루하지 않게 인도해주는 것은 잘짜여진 퀘스트 설계와 동선.
그저 멍하니, 시키는 대로 캐릭터를 움직이는 사이에, 어느새 주변에 하나둘씩 자신의 손으로 일궈낸 텃밭과 오두막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몰입감을 깨부수는 어설픈 캐시 아이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참 게임에 빠져 힐링하다보면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펫 육성, 교배 그리고······.
미용!
염색약과 가위질을 통해 자신만의 유니크한 디자인의 펫을 만들게 되면서부터, 게임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다.
그저 자신의 손으로 길러낸 펫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애착이 가고 사랑스럽기 이를데가 없지만······.
쿠션이나 휴대폰 케이스를 비롯한 깨비몬 캐릭터 상품과의 연계성까지 이어지는 친밀감에 유저들의 기분은 더더욱 업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잠깐 경매사이트에······. 1, 1억?!
-유니크 디자인······. 안사도 그만이긴 한데······. 1억은 너무 큰 것 아냐?
-그런데······. 지금 이거 숫자가······.
깨비몬 게임의 출시와 동시에 오픈된 경매사이트.
그곳에 올라온 일반 깨비몬 디자인과 명품 브랜드 콜라보 디자인.
그것들의 가격은 고작 게임의 스킨 아이템이라고 하기에는 황당할 정도의 가격······. 아니, 황당하다고 치부하는 것도 우습다.
시작가 1억에서 출발한 깨비몬 상품의 입찰가는 이미 그 10배를 향해 치솟기 시작했다.
< 필살기는 봉인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