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와······. 이거······. 야······. 정말이지······.”
고부장은 모니터와 나를 번갈아 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내 예상조차 훌쩍 뛰어넘는 깨비몬의 성과에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으니, 고부장의 반응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이제 님자 붙여서 불러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인데······.”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고부장의 너스레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애초에 돈으로 서열 나눠서 불러야 한다면, 나는 홍켓몬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녀석에게 존칭을 사용해야 했으리라······.
“아무튼 상여금은 이런 식으로 부탁드립니다.”
“이거 기둥소프트에서 지출하는 거니까······. 말하자면 표팀장이 사비로 주는 거나 마찬가지네?”
고부장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법인은 법인이죠. 엄연히 분리해서 생각해야지요.”
세상에는 법인을 자신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오너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법인이란 엄연히 개인과 분리되는 별개의 개념이 아닌가?
결코, 회삿돈을 본인 지갑처럼 여겨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물론 법인의 소유권이 내게 있고 내 연봉을 내 맘대로 조율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원칙은 원칙이다. 흙수저가 갑자기 돈맛을 보면 사람이 바뀐다는데, 나도 조심해야지.
이런 부분을 착각해서, 인생 추락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뉴스에서도 단골 소재로 쓰이지 않는가?
“그런데 이거 좀 과하지 않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튼, 부탁드립니다.”
“그래······. 허, 이거 참······.”
고부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조만간 인사이동이 있을 거란 것은 알지?”
“인사이동이요?”
“그래. 뭐 쉬쉬하고는 있지만, 곧 알려질 테지. 조연아 실장님. 곧 부회장으로 취임하게 될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이것도 있었지. 여러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뭐 놀랄 일도 아니잖아. 어차피 지난번 실장 취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지. 오히려 조연아 실장님의 수완은 자네도 익히 경험하지 않았나?”
“그렇죠. 덕분에 제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죠.”
깨비몬 게임 성공에 캐릭터 상품의 인기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연아의 능력을 의심한 적은 없지만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어준 덕분에 현재 깨비몬은 순항 중이다.
아니······. 솔직히 나조차 얼떨떨할 정도의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 아직은 예상에 불과하지만 아마 틀림없을 거야. 이번 조연아 실장 취임과 동시에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발생하겠지.”
“그렇겠죠.”
함전무의 퇴진과 동시에 연아의 부회장 취임.
아무래도 일대 지각변동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이미 판호건을 이유로 대대적인 부서이동에 대한 건의를 올린 상황이다.
확실히 이런저런 이유로 대대적인 변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부장이 지금 그걸 언급하는 이유는 단순히 잡담이나 나누자는 의미는 아니겠지.
“준비는 되셨습니까?”
“준비야 항상 하고 있었지.”
고부장이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한팀장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재무팀의 수장으로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다.
그는 함전무 라인에 속해있으면서도 너무 깊게 발을 들이지 않았고, 동시에 이상무 라인과도 어느 정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기본적으로 훌륭한 처세술을 갖춘 인물로 일 잘하고 주변관계 돈독한 샐러리맨의 표상 같은 인물이다.
게다가 좋은 처세술의 기본은 인내심이 아니겠나? 이제 고부장은 임원직에 도전할 준비가 끝나 있었다.
“고부장님 이외에도 몇몇 승진 건의를 올릴 예정이지만······.”
“이지만?”
고부장은 여전히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이미 돌아가는 상황을 훤히 꿰고 있기 때문이겠지.
어쩄든 나와 한팀장의 부장 진급도 건의할 예정이긴 하지만, 사안의 중대함을 놓고 볼 때, 고부장의 임원 진급이야말로 메인 디쉬다.
“역시 고부장님의 안건이 메인이죠.”
“역시······. 표팀장이라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어.”
“별말씀을요.”
다름아닌, 황금 고블······. 아니, 고부장님의 임원진급이 달린 문제를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지.
“어쨌든 마음 푹 놓고 계십시오.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이미 실장 삼인방을 비롯한 재야세력(?)들의 기세는 눌러놓았고, 전무군단의 영향력도 약속 받았다.
더군다나 깨비몬이 이정도의 성과를 낸 이상, 고부장 진급 정도야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노파심에 하는 질문이지만, 임원진급이라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임원이라는 것은 결국 의자뺏기 싸움이나 마찬가지다.
빈자리가 나야, 새로운 인물이 앉을 수 있는 법.
일단 함전무의 의자가 곧 공석이 될 예정이지만,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연차만 놓고 본다면 가장 가까운 인물은 이상무 아니면 천이사.
하지만 이상무는 현재 연아를 서포트하기로 마음먹은 이래, 두문불출하는 상황.
게다가 천이사가 전무 자리를 꿀꺽 하기에는 몇계단이나 껑충 뛰어올라야 하기 때문에 마땅치 않다.
자리가 비니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정작 함전무의 빈자리를 누가 채울지는 나 조차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이 기회에 고부장은 임원직에 올라야 한다. 그것이 내 프로포즈 계획 중의 일부이므로······.
“어쨌든 마음 놓고 기다려 보십시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오케이! 내가 표세인 팀장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을까. 나는 얌전히 기다리고 있겠네. 상여금 건은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네. 부탁드립니다.”
*
*
*
“마침 잘 오셨습니다.”
“무슨 용건이 있으셨습니까?”
양실장을 방문하자, 양실장이 나를 반겼다.
“예. 안 그래도 제가 표세인 팀장님을 방문하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무슨 일로요?”
“음, 그래도 먼저 찾아오셨으니, 표세인 팀장님 용건부터 들어보죠.”
“별건 아닙니다. 고부장님 임원 승진건에 대해서 여쭤보려고요.”
“아, 그건이라면 별 문제 없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지난번 도이사님께서 방문하셨던 것 기억하십니까?”
“기억할 수 밖에요.”
자신을 세일즈하기 위해 방문했음에도 가격 제시를 우리쪽에 떠넘겼던 도이사.
내심은 나를 치켜세워주는 듯 했지만, 그것은 자신이 내게 손을 내밀어 주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는 인상이 두드러졌었다.
때문에 나는 평소 보다 조금 강한 스탠스로 그를 상대했었다.
“도이사가 함전무님께 허락을 득 한 이후, 전무군단의 물갈이를 시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갈이요?”
“예. 천이사처럼 함전무님의 마지막 뜻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걸러내는 것이지요.”
“걸러낸다는 말씀은······.”
어째 상당히 살벌하게 들리는 어감이다.
“천이사님을 필두로 몇몇 임원들은 이번 분기를 끝으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게 되실 겁니다. 아시겠지만, 임원이야 계약직 아닙니까? 퇴직금에 해약 보상금까지 제법 두둑하게 챙겨드릴 예정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말을 산뜻하게 내뱉는 것도 양실장의 전매특허 같은 것이겠지.
“임원이라는 직급을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상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그들에게 고액의 연봉과 각종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단순히 보상차원만이 아니지요.”
“그렇습니까?”
나라고 임원을 경험해 본 적은 없기에 이런 대목에서는 순순히 양실장의 강의(?)를 들어야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단순히 파벌싸움에 밀려 내쳐지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생각 보다 복잡한 속 사정이 있는 법이지요.”
“경청하겠습니다.”
“회사의 입장에서 임원이라는 이들은 해당 업계,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입니다. 그리고 향후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그들의 안목과 경험에 의존해야할 필요가 있지요.”
한 분야에서 수십년의 경력을 쌓고 주위를 놀라게 하는 실적을 연거푸 이루어낸 이들만이 결국 임원이라는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다.
당연히 그런 이들의 안목과 경험에 회사는 많은 기대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각자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히려 그편이 건전하지요. 그렇게 견제와 반목······. 이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러한 갈등을 거쳐, 원석을 깎아내듯이······. 보다 확실하며 안정적인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
견제와 반목······.
경쟁과 토의라는 말로 표현하고는 하지만, 사실상 본질은 아마도 저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사회라는 것은 결국 다수의 인간군상들의 집합을 이른다.
단 두 명의 인간만 존재해도 갈등은 싹트기 마련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며, 회사란 이러한 현상을 보다 올바르게 유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조회장의 경영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회사의 장래 비전 보다 자신의 사리사욕이 앞서는 것은 곤란하지요.”
“그렇죠.”
경쟁이 허락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회사에 이득이 되는 선까지다.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회사로서는 더이상 용인할 수 없게 된다.
“······그 말씀은 여기에는 조회장님의 뜻도 개입되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물론입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은 조회장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내가 지금까지 맥베스에서 이룬 모든 실적들 조차, 그 저변에는 조회장님의 배려와 지원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들이 대부분이다.
“조직을 이끈다는 것은 이런 것이죠.”
질식 하지 않을 정도로 숨통을 열어주되, 칼을 들어야 할 때는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오랜만에 시작된 양실장의 강의는 언제나 내게 큰 도움이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실, 표세인 팀장님은 이미 이 모든 것을 너무나도 훌륭히 해내고 계시지만요.”
양실장은 슬쩍 어깨를 으쓱했다.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항상 양실장님의 가르침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정말로 과찬이다.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하며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 들이 많다.
배움으로 얻어지는 지식은 어찌보면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귀를 여는 법을 잊어버린 인간이란 순식간에 다른 존재로 변해버리기 마련이다.
언제나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어쨌든 덕분에 몇몇 자리가 공석이 될 예정입니다. 고부장님의 진급도 문제 없을 겁니다.”
“어? 여러자리라면······.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양실장님도 임원직 다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장 직급으로만 봐도 부장 보다는 실장이 위가 아닌가?
더군다나, 양실장은 너나 할 것 없이 왜 아직도 임원직에 오르지 않는 것인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저는 아직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크으······.
역시 양실장 답다.
무리라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마음이 아직 내키지 않는 다니!
“회장님께서 은퇴하시기 전까지는 저는 그분을 모시는 일이 저의 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쪽이 표세인 팀장님을 지원하는데, 유리한 부분도 많고요.”
라고 말하며 양실장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어쨌든 잘 진행되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러면 이제 양실장님 용건을 듣고 싶군요.”
“사실 제 용건은 별 것 없습니다.”
“?”
“혹시 뭐 필요하신 것 없습니까?”
갑자기 이게 뭔 소리지?
“갑자기 그게 무슨?”
“아니면 원하는 것이라도?”
“네?”
“정말 뭐라도 없으십니까?”
무 무섭게······.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 자신감을 가지라고요! 환상종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