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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61화 (161/346)

161.

-이건 정말 예상 밖이군요.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은 한껏 격양되어 있었다.

에머리는 그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상대를 감탄하게 만드는 순간이야말로, 에머리는 자신의 업에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내가 말했지? 현 시점의 맥베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그 특별함은 표세인이라는 남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에머리는 굳이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쥐고 있는 히든 카드나 다름 없는 정보니까.

-맞아요. 당신이 말했죠. 그리고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정확했네요.

“나는 당신이 그렇게 말할 때가 참 좋더라.”

-언제나 이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요. 당신의 선견지명에는 언제나 놀랄 뿐이죠.

스마트폰 너머의 통화 상대는 결코 남들을 쉽게 칭찬하는 타입의 인물이 아니다. 그 역시 기본적으로는 남들의 감탄사 속에서 살아가는 부류의 인간이다.

연예인이 아닌 이상 언제나 사람들의 갈채와 환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드물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당장 그녀가 숨기고 있는 표세인이라는 남자 또한 그렇지 않은가?

그는 맥베스로 이직한 이래, 엄청난 기세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성공 신화라고 표현한다면 아직은 조금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앞으로 NFT라는 신생 분야를 논의할 때, 이 남자의 이름은 반드시 언급될 것이 틀림 없다.

지금까지 그저, 역사성과 희소성을 앞세운 미술 투자 같은 개념에 불과하던 NFT 시장에 연동과 확장성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물론 이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주지하고 있던 부분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모두가 알면서도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개인용 피씨를 만들거나 메신저를 개발하는 법이다.

“이번일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해?”

-역시 메타버스 시장의 문고리를 붙잡았다는 것이 주목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거야!”

남다른 안목을 가진 이들은 이미 깨비몬의 성장세가 불러올 새로운 여파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이것은 메타버스라는 이데아로 이어지는 문을 발견한 것이나 다름 없다.

물론 깨비몬 자체가 메타버스의 기술발전과는 아무런 연관은 없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기술이란 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 순간 번쩍 나타나 모두의 곁에 스며드는 법이다.

결국은 그 기술을 이용해 어떻게 자산을 창출할 것인가?

“가상자산과 현물자산의 완벽한 시너지. 이것이 현재 깨비몬의 진정한 가치지.”

자신이 디자인하거나 키운 깨비몬은 게임에서만이 아니라, 영상매체, 그리고 현실에서의 상품으로까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일부 사람들은 메타버스를 오직 가상현실, 즉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으로만 접근한다.

‘가상’이라는 단어에만 집중하여, ‘현실’이라는 개념을 놓치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 활동하는 것이, 현실의 삶과 연관성을 갖게 될 때, 비로소 메타버스는 가치를 인정 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화폐라는 종이 조각이 금본위제를 통해 실물 금괴에 의존해 발전했던 것과 마찬가지.

결국은 현실에서의 가치확보가 가장 큰 관건.

“VR과 메타버스. 이 두 가지 신기술의 이념적 결합도 어쩌면······.”

-그렇게까지?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무엇을 이해했지?”

-당신이 제게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요.

역시 눈치가 빠르다. 쉽지않은 상대다. 하지만 그렇기에 대화하는 맛도 있는 법.

“재미 없게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을 거지?”

-물론입니다. 당신의 텐션을 낮출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은 스스로 즐거울 때, 가장 업무효율이 높아지는 분이니까요.

“고마워. 어쨌든 기다리고 있으라고······. 대어를 낚아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자신의 자식뻘 나이의 상대가 노파심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자, 에머리는 퍽 우습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제가 당신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골드러쉬의 선두를 차지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고마워. 그리고 걱정 마.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 있으니까.”

-저는 한번도 당신에게서 자신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센 척하는 것이 아니야. 이번에는 정말로 느낌이 좋아.”

이것은 마치 과거 앰플이 신개념의 스마트폰을 제시하여 세계시장을 뒤흔들었던 그때를 연상케 하는 떨림이었다.

전에 없는 확신. 그리고 기대감.

그 모든 것들이 맞물려 에머리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업무에 이러한 떨림을 느낄 수 있는 성격이라는 것은 축복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 본인도, 스마트폰 너머의 통화 상대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기대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알고 있지.”

상대가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에머리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

*

*

“표팀장!”

“팀장님!”

아아······.

출근하기가 무섭게 사람들의 환호성에 정신이 없다.

“이거 어쩔 거야!”

한팀장을 비롯해 개발실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에 NFT 경매장 사이트를 띄워 놓고, 야단법석이었다.

“한 턱······. 아니, 아니지. 이건 한턱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그럼요. 이~야~ 표세인이 대박 났구나.”

윤과장도 한팀장의 말을 거들면서 호들갑이었다.

“조만간 여러분께도 보답하겠습니다.”

“오오오! 보너스? 이야~ 살다, 살다. 고작 팀장급에게 보너스 소리를 다 들어보네.”

한팀장이 껄껄 웃었다.

“권태인 차장님.”

“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에이, 별말씀을요. 저야 팀장님 지시에 따른 것 뿐인데요.”

권태인은 겸양했다. 나는 차례로 민슬해와 공주혁에게도 말을 건네며, 그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파티원들 차례. 차별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내 식구들에게 조금 더 정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다들 수고했다.”

“네! 팀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뭐지? 갑자기 왜들 이렇게 기합이 빡 들어가 있어?

“니들 뭐 잘 못 먹었냐?”

“아닙니다! 그저 항상 팀장님을 존경하고 동경하며, 영원히 보필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 뿐입니다.”

세 녀석이 경례까지 할 기세로 한 입으로 떠느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그래, 상여금 이야기가 새 나간 모양이구나.

범인은 아마도······.

“누구에게 들었냐?”

“왜 저라고 생각하십니까?”

홍기도는 내 질문을 듣지도 않고, 곧장 자신이 상여금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린 범인으로 지목되었음을 간파했다.

그리고 그 점에서 더욱 의심도가 치솟는다.

“그냥 말하지?”

“제임스입니다!”

주먹을 들기도 전에 냅다 진실을 투척하는 홍켓몬.

“······의리란 개념은 없냐?”

“형법 제22조 긴급피난! 첫째.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둘째.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워워······. 갑자기 형법 드립은 좀 과하다.”

“후우······. 10년 이상 묵혀두었던 법 지식이 여기서 빛을 발하는군요.”

“그런데 그거 아냐?”

“뭐요?”

“주먹은 법보다 빠르다?”

“가깝다, 아닙니······. 윽!”

“정의의 철퇴!”

“이게 정의랑 무슨 상관입니까?”

“제임스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죄랄까?”

“크윽······.”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찔리는 구석이 있었는지, 홍켓몬은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에요?”

남궁원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함송희 역시 주먹을 불끈 쥐며, 동조하고 있었다.

“니들 쪼들리냐? 여기 연봉이 낮은 것도 아닌데?”

“그건, 그거!”

“이건, 이거!”

“표세인은 직장인의 마인드를 잃었다!”

기어코 홍켓몬이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요즘 마음이 약해져서 주먹에 힘이 안 들어가나?

“아무튼 이렇게 된 것 알려주세요.”

“흠······. 내가 왜 최소 시작가를 1억으로 정했을까?”

“헉! 설마?”

“다들 통장에 0 여덟 개씩 찍어줄게. 그동안 고생 많았어.”

“맙소사······.”

“표세인! 표세인!”

갑자기 주변에서 내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다들 듣고 있었던 모양.

그만들 하세요. 저 겸손하기로 했단 말이에요.

어쨌든 흐뭇하다.

*

*

*

“바라는 것이 딱히 없다고?”

“네. 곤란하게도······.”

조양길의 질문에 양성태는 난처하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하지 않는가?

본인이 딱히 원하는 것이 없다는데야, 굳이 몰아 붙일 수가 없다.

“아예, 아무것도?”

조양길은 굳이 채근했다. 이것은 오너로서의 위기감 같은 것이었다.

표세인을 만족시킬만한 카드가 없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예비사위이고, 언젠가 연아가 회장이 될 것이기에 일반적인 오너와 직원의 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이다.

조양길 본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만의 경영철학과 오너로서의 의무가 있는 법이다.

“아예 없지는 않은데······.”

“그, 그렇지 뭔가 있기는 하겠지.”

양성태의 말에 조양길은 퍼뜩 반응했다. 그래, 아무것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뭐라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조양길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양성태의 말을 기다렸다.

“다음번 프로젝트는 온전히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하고 싶다더군요.”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지?”

세상에 표세인처럼 터치 받지 않고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이 어디에있단 말인가?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회사 사정을 봐가면서 그에 맞춰 프로젝트를 설계했는데, 한 번쯤 아무 제약 없이 개발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음.”

이미 표세인은 자신의 스튜디오를 갖고 있다. 게다가 깨비몬을 통해 어마무시한 자본력도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본사의 사정에 맞춰 굳이 양해를 바란다?

조양길의 머리가 전에 없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간 표세인이라는 인물을 접하며 얻은 그에 대한 정보와 조양길 본인의 연륜만큼 쌓여온 인간을 보는 안목이 결합되며 일련의 해답을 추적한다.

“이 놈······. 진짜 미친 놈인가?”

“네?”

조양길은 결코 함부로 거친 말을 사용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더욱이 표세인에게 보내는 애정은 모두가 놀랄 정도이지 않았나?

그런데 갑작스럽게 미친놈이라니?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평소 조양길의 속을 꿰뚫는 양성태라고는 해도, 이번에는 전혀 짐작가는 구석이 없었다.

오히려 표세인의 생각은 일견 기특하게 여겨져야 마땅한 것인 아닌가? 하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더욱 의아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조양길의 구겨진 얼굴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크크큭.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

이런 상태일 때의 조양길은 좀처럼 자기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결국, 양성태가 조양길의 생각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조양길이 이후에 취할 행동으로 추측하는 것뿐이다.

양성태의 예상대로, 조양길은 스마트폰을 꺼내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나야. 그래.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래, 해보라고. 내가 허락하는거 맞아. 내가 허락한다니까? 내가 회장인데, 누구 허락을 받아?”

조양길의 말만 들어서는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가 이어졌다.

“좋아. 한판 붙어보자고······. 클클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 하지만 한가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표세인 팀장을 향한 말이란 것은 확실한데······.’

양성태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창밖을 바라보는 조양길의 시선에는 풍경 대신 표세인의 얼굴이 떠올라 있으리라는 사실뿐이었다.

< 제발 잊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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