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65화 (165/346)

165.

“왔냐?”

“예.”

조회장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투였다. 뭐, 합병건으로 당연히 내가 보고하러 올 것쯤은 예상했을 것이다.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마무리라······.”

합병건에 대해 나와 조회장이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파벌······. 아니, 이제 이런 것은 집어치우자.

굳이 겸양하려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는 내 주변의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양실장은 너무 오랫동안 방패막이로 삼아왔다. 물론 이것은 일종의 전략이고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사용하겠으나, 이제와서 굳이 조회장 앞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겠지.

어쨌든 나 개인의 행보가 아닌, 파벌 자체의 일이라는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나 보다는 양실장이 대신 조회장과 협상이랄지, 보고랄지······.

어쨌든 나와 조회장이 이 건에 대해 직접 논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나만 묻자.”

“예.”

“회사의 일각을 통째로 떼어 삼킨 저의가 뭐냐?”

그래, 회장님의 입장에서는 이번 행동이 회사의 일각을 내가 흡수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허락한 이유는 오직 하나.

내가 예비 사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내가 주가를 올리고 있다고는 해도 허락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삼켰다는 말은 듣기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뭐라고 할까? 접수했다고 할까? 좀 깡패 같지 않나? 뭐······. 어쩐지 너는 영화에 나오는 겉보기 번지르르한 깡패 캐릭터 같은 느낌도 있다만······.”

“헛! 예비 사위에게 말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예비 사위니까, 이런 농담도 하는 것 아니냐. 그리고 원래 깡패영화는 항상 잘생긴 캐릭터가 주연 하지 않냐? 나름 칭찬아니냐?”

“······저 같은 녀석에게는 그런 농담 곤란합니다.”

“알긴 아는구나······.”

아,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네. 왜 안하던 농담까지 던지시지?

아, 설마 나름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고 농담하신 건가?

“어쨌든 걱정하시는 일 같은 것은 없습니다.”

“걱정? 내가 뭘 걱정하는 줄 알고?”

“지난번에 직접 말씀드렸잖습니까. 부부라도 함께 일하다 보면 이런저런,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그 갈등의 싹을 본인은 아주 폭발시킬 생각까지 하셨지 않습니까?

그때도 그랬지만 나에게 회장직을 제안한 것은 등골이 오싹한 일이다.

“이런 말씀은 사실 낯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못하지만······.”

“그렇게까지 엄포를 놓으니 뒷말을 듣기가 겁이 나는구만.”

“저에게는 맥베스 회장직 보다 연아가 백배 천배 소중합니다.”

“훗, 이런 부분은 젊어 아직?”

“그럼 늙은 사위 원하십니까?”

“클클클.”

내 농담에 조회장은 클클 웃었다.

“전무군단 접수, 아니, 수습.”

나도 모르게 접수하는 말이 나와버렸다. 안되지 안돼.

동생놈에게도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지만, 우리 같이 체격 좋고 운동하던 녀석들은 남들 보다 한 번 더 필터링을 거칠 필요가 있다.

“외부계열사 통합. 이 모든 것은······. 제가 연아에게 바칠 프로포즈 선물입니다.”

“프로포즈?”

“예. 연아가 가장 바라는 선물은 회장님이 직접 주실테니······. 저는 일종의 포장 정도랄까요? 예쁜 포장지는 때로는 그 자체만으로도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아, 예전에 나도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하군. 늬양스는 반대였지만, 기껏 선물 잘 준비해놓고 포장을 제대로 못한다는 핀잔이었지.”

아무래도 이것은 회장님과 에머리의 과거사 인 모양이다.

조회장의 눈빛이 한층 아련해졌다.

“어쨌든 이게 연아에게 바치는 프로포즈 선물입니다.”

“하, 정말 웃기는 놈이로군. 그래서 내부정리를 싹 해치웠다?”

“해치웠다기 보다는 그냥 정리했다 선에서 끝내시죠.”

아까 깡패라는 단어가 언급된 것 때문인지, 자꾸 신경이 쓰인다.

저 정말로 그런 놈 아닙니다.

“너 정말로 웃긴 녀석이야 알지?”

“회장님도 유머러스한 성격이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별말씀 없으신 것을 보니, 이것이 연아를 기쁘게할 만한 선물이라는 것은 인정하시죠?”

“그래. 정말이지······. 내 자식 놈들이 하나 같이 독특한 녀석들이라서, 어디가서 제짝들을 구해올지 걱정이었는데······. 다들 잘도 찾아왔구만, 그것도 하나 같이 제놈들 못지 않은 녀석들로······. 클클클.”

의외로 조회장은 나도 알지 못했던 로렌스의 독특한 성격 조차 간파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제임스와 연아는 그렇다치고 조연준의 아내도 독특한 캐릭터라는 걸까?

그것 좀 궁금하면서도······. 살짝 걱정이라는 느낌인데?

어쨌든, 조회장이 기분이 나빠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막판 뒤집기랄까? 호응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정말로 다행이다.

“그런데 너 아직도 프로포즈 안했냐?”

“······.”

그래, 결국 내 실책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지 않을 수가 없지.

“그게······. 어쩌다보니, 아이디어가 늦게 떠올라서······.”

정말로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재벌집 딸에게 프로포즈하는 법이랄까?

나라고 마냥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들처럼 비싼 반지 같은 물건을 덥썩 내미는 것 보다는 좀 더 우리에게 어울리는 우리만의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기획자의 서글픈 숙명같은 것이랄까?

추진.

그렇다.

말 그대로 추진해버렸다.

“어쨌든······.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아무튼 잘해라. 회사의 일각을 접수한 것이 고작, 제 약혼녀에게 줄 선물 준비였다니······. 이걸 화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조회장은 다소 난감하다는 듯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공과사를 철저히 구별하는 조회장 아닌가?

나의 목적이야 괘씸하더라도, 그 결과는 더없이 회사에 이로울 것이다.

어쨌든 세대교체는 회사에 크고 작은 진통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내가 중간에서 위험 요소들을 한 우리에 가두고 고삐를 쥐었다.

이것으로 연아는 한결 더 편안하게 회사를 물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곧 중국에 가야지?”

“예. 그렇겠죠.”

판호건을 진행하기 앞서 중국 출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판호 발급이야, 끝났지만 해당 유통과 여러 제반 사항들을 위해서라도 담당자들과 만나 함전무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꽌시들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것.

이것은 개발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요동치는 국제정세와 외교 관계의 영향을 크게 받는 중국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자면, 이 부분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도 같이 가자.”

“어? 회장님도 가시려고요?”

“왜? 늙은이 수발들게 할까 봐서 걱정이냐?”

“에이, 그보다는 나름 가족여행 같은 느낌 아닌가요?”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니까? 이 놈이 그새 머리 좀 굵어졌다고, 정신 못 차리는구나.”

“여행가서 일만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대개의 출장이 그렇듯이 실무자 미팅이랑 의외로 길지 않은 법이고, 대부분의 시간은 여유롭기 마련.

“제 나름대로 궁리 좀 해보겠습니다?”

“네가 궁리를해? 너 중국 가본 적이나 있냐?”

물론 없죠.

애초에 미국행부터가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으니까요.

“회장님은 중국 많이 가보셨나요?”

“게임 업계 대기업 오너치고 한때, 중국 뻔질나게 드나들어 보지 않은 인물 없을 거다.”

“아! 하긴 그렇겠네요.”

모바일 시장의 대두와 중국 시장의 성장. 이 모든 격류를 스스로 개척해온 업계의 산 증인이 아닌가?

업무 특성상 꽌시 자체를 함전무에게 일임했었더라도, 조회장 본인 역시 적지 않게 중국을 방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느낌이라면 연아도 동행하는 편이 낫지 않나요?”

“진짜 가족 여행으로 만들어볼 심산이냐?”

“아니요. 농담이 아니라, 후계자 아닙니까?”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연아가 이 자리를 지켜야지. 그 녀석에게는 나름의 시험의 장이 될 것이다.”

확실히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회사를 단속하는 것은 이 시점에 연아에게는 중요한 역할이다.

“이해했습니다.”

“그래, 네 녀석은 영악스러울 정도로 이해가 빠르지. 연아 그 녀석도 이해력은 좋은데, 은근히 아집이 있어 가지고······.”

“막상 그래도 연아가 쓸데없는 고집을 길게 가져가지는 않지 않습니까?”

“어쭈? 지금 내 앞에서 편드냐?”

“그럼요. 제가 연아편 안들면 누구편 들겠습니까.”

“아이고, 골치야······. 내가 이런 꼴 안보려고 공사 구분을 그리도 강조했건만······. 이제 다 컷다고 내 앞에서까지 이러는구나.”

“걱정 마십시오. 우려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오너인 연아와 내부 실권을 장악한 내가, 서로를 두둔하기 바쁜 관계가 된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중요한 안건을 일사천리로 해치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않겠나?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고, 균형잡기 나름이다.

“그런데 굳이 중국에 직접 가시는 이유가 뭔가요?”

“요즘 중국의 동향이 묘해.”

“묘하다고요?”

“그래. 그래서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무엇보다 중국에 연고하나 없는 너에게 무턱대고 꽌시 인수인계를 받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냐.”

회장이 직접 챙겨야 할 정도로 꽌시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고려할 때, 조회장이 중국에서 묘한 동향을 감지했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다.

나 역시 다소 장난스러웠던 태도를 벗어던지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정부가 기침만해도 홍수가 발생하는 것이 중국시장입니다. 많이 우려되는 상황입니까?”

“확실치는 않지만······. 아니 이건은 좀 더 알아 본 후에 이야기하기로 하지. 무엇보다 오늘 너는 프로포즈에나 신경써라.”

“알겠습니다. 하지만 뭔가 잡히는 것이 생기면 부디 제게도 공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히 회장에게 정보 공유를 요구하는 것도 우습지만, 지금 나는 판호 관련의 총책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연아가 모를 수는 있어도, 내가 몰라서는 안 된다.

작은 변수 하나가 거대한 스노우볼링을 일으키는 법인데, 중국은 특히나 그런 기류가 강한 시장이다.

“하루 빨리 인도 게임 시장이 커져야 하는데······.”

“오랜 바람이지요.”

새로운 거대 시장의 대두는 업계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오래지 않아 다가올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중국시장 위에 발라진 아직 먹음직스러운 꿀이 마르기 전까지는 모조리 핥아버려야지.

“그래. 아무튼 내 용건은 이것으로 끝이다. 가봐라.”

“알겠습니다.”

나는 거침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회장님께 보고도 끝났으니, 이제 정말로 연아에게 프로포즈할 일만 남았다.

“······세인아.”

“네?”

아, 나는 왜 이렇게 조회장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놀라는 걸까?

아무래도 내 안에 예비 장인과 회장이라는 위치가 완전히 공존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다.

“말씀하시죠.”

답지 않게 조회장이 뜸을 들인다. 뭔가 머뭇거리며 시선을 불안하게 돌리는 것이 영찜찜하다.

“혹시 제가 모르는 큰 일이라도 있습니까? 설마? 건강에 문제라도?”

안그래도 너무 갑작스럽게 연아의 부회장 취임을 준비한다고 할 때, 불안한 감이 있었다.

“뭔소리하냐. 원래 나 같은 타입이 오래가는 법이다. 마른 장작이 오래 탄다? 이런 말 못들어봤냐?”

아······. 들어보긴 했는데, 보통 그런 느낌으로 사용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럼 뭡니까?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세요. 사람 불안하게?”

“어쭈? 이제는 언성까지 높혀?”

“건강 관련은 가족사입니다. 함부로 회장 직급 들이대지 마시죠. 건강검진 같은 것은 잘 받고 계시는 거죠?”

“니들 복지로 나가는 건강검진 누가 해준다고 생각하냐? 나야 걱정 없다.”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서 뭡니까?”

“······음. 그것이, 네가 조금 전에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했으니 말인데······.”

“?”

대체 뭔데 이렇게까지······.

“······연아, 잘 부탁한다.”

아······. 다 늙은 노인에게 심쿵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이건······.

좀 감동이다.

“아쉽네요.”

“뭐가?”

“녹음했어야 하는데······. 왠지 두 번 다시 못들을 것 같다는 예감이······.”

“관짝에 못박을 셈이냐! 이제 됐어! 가봐!”

“넵! 알겠습니다.”

나는 다소 과장스럽게 경례를 붙이고 회장실을 벗어났다.

후우······.

어쨌든 이제 프로포즈하러 갈 수 있겠구나.

기다려라, 조연아!

내가 간다!

< 원래 돈은 이렇게 쓰는 거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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