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68화 (168/346)

168.

“아침 식사요?”

“그래. 내일 뭐 없지?”

“없긴 합니다만······.”

프러포즈가 끝나고 며칠 뒤, 조회장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회장실에 도착하자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냥 식사는 아니죠?”

“그냥 식사야. 모이는 구성원도 항상 그 나물에 그 밥이고.”

구성원.

나와 단둘이 하는 식사가 아니란 것이다. 확실히 그런 거였다면, 굳이 아침 식사는 아니었겠지.

“딱히 긴장할 것 없어. 각 게임사 대표들끼리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야.”

“게임사 대표들이 모이는 자리라면 긴장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 하든지.”

순간 아주 조금이지만, 조연준이 왜 그렇게 엇나가는 성격으로 성장했는지를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예비 사위라는 것 덕분에 가까워지긴 했지만 역시 조회장도 곁에 두고 지내기에 마냥 마음 편한 타입이 아니다.

“혹시 뭐 교섭해야 하거나, 허실을 탐하거나, 조심해야 하거나······. 그런 것 없습니까?”

“없어. 그런 거······. 어차피 다들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다들 신세 한탄들만 하겠지. 뭐 나야 네 녀석 덕분에 간만에 기 좀 펴겠다만······.”

확실히 근래 불황을 거듭하는 게임 업계의 기조와는 정반대로 맥베스의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이다.

양실장은 깨비몬의 성공 이후, 맥베스 주주들에게 발 빠르게 다음 프로젝트인 판호 건에 대해 정보를 흘렸고, 그 노련한 솜씨는 활활 불타는 주가에 기름을 제대로 부어버렸다.

덕분에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맥베스의 주가는 내가 입사하기 전보다 벌써 2배 이상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3M의 막내라는 꼬리표도 곧 있으면 지워질 것이다.

더군다나 MC소프트는 이번에도 신작 개발 정보를 넌지시 흘렸다가, 전혀 발전이 없다며 게이머들의 원성을 샀다.

멕슨은 아예 신규 타이틀 개발 자체를 하지 않은 지 오래.

그들의 특기인 인수합병도 근래에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다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야에 투자, 개발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그럴듯한 게임이 나올 턱이 있나?”

조회장은 후련하다는 듯이 클클 웃었다. 개발은 오직 게임 관련만 하겠다며, 바로 사이프 바수와 업무협약을 맺어 버린 것은 확실히 좋은 수였다.

밖에서 보기에는 별것 아닌 시스템이고 이윤을 나눠 먹기 싫으니까 자체 개발에 나선 모양인데, 역시 게임 개발사는 게임 개발에 올인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연아도 함께 갈 거다.”

“아!”

내 머릿속에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쳐 가는 순간······.

“딱히 거기서 너희의 관계까지 말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네 얼굴 정도는 광고해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클클클.”

어? 이거 뭔가 느낌이 온다. 홍기도의 촉 같은 것이 아니라, 조회장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류.

장난기 가득한 이 표정을 보아하니······.

“혹시 저희를 이용해서 재미 좀 보시려는 겁니까?”

“하하, 뭐 나름 재미있지 않겠나? 다들 사경을 헤매는데, 우리는 이 녀석들 덕분에 승승장구하고 있다~ 배 아파 죽겠지? 뭐 이런 느낌?”

역시······.

우리 회장님이고, 내 장인어른이지만······. 빈말로라도 성격이 좋다는 말은 못 하겠다.

“아무튼, 그렇게 알고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양실장에게 가서 물어봐라.”

“알겠습니다.”

나는 대답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그렇군요. 오찬회, 오랜만이군요.”

역시 양실장은 조회장을 보필하며 오찬회에 나간 경험이 있는 듯했다.

“흥, 노친네들과의 식사 자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문이사는 아무래도 자신은 경험이 없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묘하게 평소보다 치기 어린 투덜거림.

“일단 회장님 말씀으로는 딱히 제가 신경 쓸 것은 없다고 하셨는데, 맞습니까?”

“당연히 아니지요.”

아······. 생글생글 미소 짓는 양실장을 보고 있으려니, 조회장과 양실장 둘 중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하아······. 요즘 바쁜데······.”

다가올 중국 출장건을 대비해 그 전에 내 손을 거칠 필요가 있는 서류작업들을 미리 쳐내느라고 정신이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 굳이 예정에 없던 개발사 오너들과의 식사 자리 같은 것에 끌려다니는 것은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서서히 변해가는 내 사내 입지와 양실장과 문이사를 거느린 강력한 파벌의 수장으로서 이런 부분에서 처신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

“회장님 관점에서야, 자신의 눈높이로만 생각하시니, 신경 쓸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어디 실무 인력 간의 관계가 그렇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죠?”

“단순한 기 싸움조차 수천, 수백억 단위가 움직입니다. 더욱이 현재 표세인 팀장님의 입지를 생각해보십시오. 맥베스의 최대 프로젝트인 깨비몬과 판호 프로젝트의 메인디렉터입니다.”

“예. 기싸움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출시일 같은 것 말씀하시는 거죠?”

“역시 이해가 빠르십니다.”

게임 업계에 있어, 출시일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다.

방학 시즌 같은 황금기에 경쟁 회사의 게임이 겹친다면 매출은 반토막 나기 마련이다.

게임 업계의 오랜 호황으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개발사들 덕분에 게임이야, 정신없이 쏟아지지만, 게이머들의 숫자는 정해져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타겟을 나눠 먹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일까?

얕잡아 보이면 곤란하다는 거다.

모두가 맥베스 신작 출시라는 단어만 들어도 오금이 저려서 출시일을 연기하거나 앞당기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맥베스는 언제나 3M의 신작과 출시일이 겹치면 언제나 한발 물러나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흥, 그렇게 자신들의 작품에 자신이 없으니, 만년 3인자 신세를 면치 못했지. 두고 봐, 나 문상훈이가, 그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을 테니까.”

“훌륭한 포부이십니다. 어쨌건 표세인 팀장님께서는 이번 모임에서 표세인이라는 이름 석자를 알리고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급선무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뭔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말 제대로 들은 것 맞아?”

“예. 훌륭한 포부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끄응······.”

천하의 문이사가 양실장 앞에서는 참 묘하게 기를 못 편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저렇게 산뜻하게 받아쳐 버리면 상대로서는 도리가 없다.

계속 떠들면 자신만 이상한 사람 되는 법이니까.

어쩐지, 이 두사람의 젊은 날도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다.

열폭하는 문이사와 그 앞에서 무덤덤한 양실장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다.

“이해했습니다. 그럼 조심해야 할 상대는 누가 있을까요?”

“기본적으로는 지난번에 만난, 설동은 대표겠지요.”

“아, 확실히 그분 만만치 않은 인상이셨지요.”

“그런 것 치고는 굉장히 능수능란하게 상대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양실장의 칭찬에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칭찬이라는 것도 나름의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양실장은 이런 부분에 확실한 재능이 있는 남자다.

“뭐야? 나 빼고 둘이서만 설대표 만난 거야?”

문이사는 당황과 서운함이 반반씩 섞인 다소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그랬습니다.”

“일부러? 설마 나를 따돌리고 혼자서 표세인 팀장에게 점수 따려고?”

“······무슨 그런 애들 소꿉장난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야?”

문이사는 머쓱한 표정으로 슬쩍 눈을 돌렸다.

“문이사님은 홀로 적을 상대할 때 빛나시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조만간 홀로 설대표를 상대하실 일이 있으실 겁니다.”

“내가? 단독으로 설대표를?”

양실장의 말에 천하의 문이사조차도 눈을 껌뻑였다.

맥베스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위세등등한 문이사지만, 상대는 3M의 선두를 다투는 MC소프트의 설동은 대표가 아니던가?

그와 견주기에는 문이사의 이름값이 다소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네. 조만간 그럴 일이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제가 뒤로······.”

“크크큭. 그래, 비밀병기는 숨겨둔다 이거지?”

순간 문이사의 머리칼이 빨간색으로 보인 것 같은 착시가 발생했다.

뭐, 뭐였지? 지금?

순간 어떤 농구 만화의 자칭 천재 캐릭터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하지만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역시 문이사의 머리칼은 여전히 검은 머리였고, 혼자서 천재 드립을 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판호 프로젝트······. 상당한 진전이 있어야겠지요.”

“그렇지.”

맨입으로 상대 회사 대표와 입씨름할 일이 뭐가 있겠나?

“아! 기싸움······. 출시일!”

나는 양실장의 속내를 눈치챘다.

“바로 그렇습니다.”

“뭐가 바로 그렇습니다야! 나만 따돌리지 말고 똑바로 설명하라고! 나 문상훈이야! 이런 취급 옳지 않아!”

문이사의 호통에 나와 양실장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확실히 지닌바 기질의 문제도 있겠으나, 문이사는 우리와 손발을 맞춘 것이 비교적 최근이라서 척하면 척이라는 느낌까지는 아직 무리다.

“모두가 궁핍한 시기에 맥베스만이 유독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중국시장 공략까지 나선 상황······. 적들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지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무슨 수를 낼 수 있다는 거지? 당분간 판호는 더이상 없어.”

“하지만 이미 서비스 중인 게임들은 있지요.”

“아! 설마? 그렇게까지 한다고?”

아마도 양실장이 우려하는 부분은 상대가 이미 서비스 중인 게임의 대규모 업데이트나 패치를 통해서 우리의 성공적인 출시를 방해하는 것이리라.

신규 게임 출시만큼의 파급력은 없겠지만 이 악물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거듭한다면, 한 시즌 유저 몰이를 통해, 우리에게 일격을 가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한번 자리 잡은 랭킹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입니다. MC소프트와 멕슨. 이 두 기업이 우리에게 순순히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랭킹은 중요하지, 어차피 IT업계 투자자들 명부만 뽑아도 거기서 거기니까.”

각 업계마다 전문 투자자들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게임 업계 역시 그렇다.

더욱이 근래에 개미투자자들이 게임 산업에 비전을 높게 보지 않고 있는 현실이니까.

고로 어딘가가 올라가면, 어딘가는 반드시 하락하는 법.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법이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총력전입니다.”

“클클클, 그거 마음에 드는군.”

확실히 양실장은 책사 타입이다. 명확한 비전과 대안을 준비하고 그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끌고 온다.

이러면 함께 손발을 맞추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사기가 끌어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 내가 이럴때가 아니군, 삼인방 녀석들 엉덩이를 걷어 차줘야 겠어.”

“예. 부탁드립니다.”

“맡겨두라고!”

결국 이 것은 시간 싸움이다.

적들의 예상보다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대의 노림수를 회피하거나 대처할 수 있는 여유를 찾게 된다.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제가 이래저래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사실 별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 역시 그 말을 끝으로 양실장의 방을 벗어났다.

*

*

*

국내 게임 회사들은 동시기에 우후죽순 성장했다.

같은 부침을 겪고 같은 시류를 타고 성장한 탓에 내심 그들 간의 견고한 연결고리를 지녔다.

때로는 외국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매입에 맞서 주식교환 등으로 주가 방어에 나서거나, 연구협약 등의 행위도 빈번했다.

그리고 그런 결정들은 대개 비정기적으로 시행되는 오찬회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러게 오랜만이군.”

조회장은 설동은을 보며 씨익 웃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와 똑 같이 번듯한 느낌.

외모 자체는 양실장과 닮은 구석이 없는데, 묘하게 겹치는 이미지.

우수한 비즈니스맨의 표상 같은 느낌이랄까?

“처음뵙겠습니다. 조연아입니다.”

“하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쪽에 계신 표세인······. 팀장님?”

“예. 이렇게 빨리 다시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반갑습니다.”

“사실 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의미로도 반갑군요.”

“그렇습니까?”

“네. 준비는 좀 하고 오셨습니까? 양실장이 그냥 보내지는 않았을 테니까.”

내가 지난번 정론을 늘어놓으며 일침을 가했던 것을 되새기는 것인지, 설대표는 묘한 미소와 함께 나의 허실을 살피려는 듯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지난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 뭔가 있었어? 지난번에는 별일 없었다며?’

연아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눈빛을 보냈다.

‘상관없어. 오늘은 뭔가 있을 예정이니까.’

지금 나는 지난번과 달리 연아의 버프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리 사과드립니다. 설대표님.

여친 앞에서는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는 경향이 있어서요.

< 단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