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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70화 (170/346)

170.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이······.”

조회장 일행이 떠나고도 한참 지난 상황. 그럼에도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백용현은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설동은은 속으로 반쯤 조소했다.

‘연세도 지긋하신데, 여전하시구나.’

공격적인 인수로 사업을 성장시킨 이들의 한가지 공통점이라면, 의외로 다혈질들이라는 것이다.

사업가라면 응당 냉정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은 것 같은 이미지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를테면 설동은 본인의 이미지처럼.

하지만 그것은 의외로 착각이다. 정점에 선 이들은 의외로 다혈질이며 감정이 앞서는 이들이 많다.

그 기질이 원동력이 되어 일반인들이라면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강력한 배팅을 가능케 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감정적이라는 것은 의외로 일반적인 계산을 뛰어넘는 동물적인 투자 감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법.

‘젊었을 때는 훨씬 대단하셨다지······.’

지금은 다소 달라졌지만, 과거에는 체격도 상당했고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으로 유명했었다.

근래에는 본인이 직접 회사를 이끌기보다는 자식들에게 각 파트를 쪼개 맡기고 칩거수준으로 회사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 부분도 조회장과는 정말 정 반대지.’

동년배인 조양길과 백용현의 스타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정 반대 성향이었다.

조양길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과는 별개로 백용현은 일찌감치 자식들을 입사시키고 각 파트별로 배치해 회사를 확고한 백씨가문의 영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뿐인가?

자체 개발은 최대한 자제하고 확고한 캐시카우이 될만한 게임들을 찾아서 인수 후 서비스한다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맥슨에 비해 맥베스는 개발 숫자로는 당연코 업계 최대였다.

‘젊었을 적에는 자주 붙었다고 했었지······.’

트랜드에 민감한 업계이다 보니, 우연히 비슷한 장르, 비슷한 출시일이 겹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경우, 언제나 승리는 맥슨이었다.

유저들의 시간과 자금은 무한하지 않다. 해당 시즌에 단 1개의 게임에 몰리면 자연히 그 이외의 게임들은 찬밥신세가 되는 것이다.

‘오랜만에 크게 한 판 붙겠군.’

설동은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설대표.”

“네.”

“하극상은 안 되는 거야. 이거 무슨 말인지 알아?”

“······네.”

마음 같아서는 아주 손 놓고 지켜보고 싶지만, 설동은의 입장에서는 마냥 그럴 수만도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업계 3위의 맥베스다. 그들의 약진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1위의 맥슨과 2위의 엠씨소프트다.

그렇기에 지금 백용현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어쩐지, 지금 백용현이라면 묻지 않아도 왈가왈부 자신의 속내를 고스란히 털어놓으리라······.

그리고 현재 신작 발표마다 주가 하락을 거듭하는 엠씨소프트 입장에서 반등을 꾀할 기회이기를 바랐다.

“어차피 이 업계는 적자생존이야. 공투가 가능한 것은 골목의 식당들뿐이야! 먹자골목 같은 개념이 통하는 업계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겠지?”

새삼 당연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 말대로라면 자신이 백용현과 보조를 맞출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백용현의 뜻은 단호했고 설동은은 그의 속내를 듣기 전에 섣불리 방향키를 틀 생각이 없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어차피 한 텃밭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니까요.”

“그래. 역시 설대표는 이해가 빨라.”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사실 지금 상황에서 저희가 낼 만한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만?”

맥슨도 엠씨소프트도 당장 중국에 출시할만한 게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국내 출시도 아니고, 중국 출시를 준비 중인 맥베스의 행사에 어떻게 초를 친단 말인가?

“우리는 중국에 서비스 중인 IP가 있지 않나? 그들의 출시에 맞춰 대규모 업데이트와 대대적인 마케팅이라면 그들에게 상당히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방법도 있겠지요.”

문제는 지금 눈이 뒤집힌 백용현이라면 모를까, 설등은의 입장에서는 그만한 투자가 뒷받침될 만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 하지만 이것은 우리 단둘이서 논의하기보다는 나중에······.”

“재미있는 말씀들 나누고 계시는 것 같네요.”

“유대표님. 가신 것 아니셨습니까?”

“아래까지 다른 분들 배웅만 했어요. 그런데 오늘 여러 이슈를 논의하시는 가운데, 백회장님과 설대표님은 유독 조회장님에게만 집중하시네요?”

유지현의 말에 백용현은 콧방귀를 뀌었다.

“신경꺼, 이쪽 일이다.”

이쪽 일.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무척이나 오만하고 무례한 발언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어쩌겠나, 3M이라 불리며 국내 게임업계의 선두주자를 차지한 이들 회사와 다른 회사 간에는 당장 극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규모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백용현은 그런 것을 은연중에 숨기지 않고 내비치는 편이었다.

그것에는 다소 독특한 그만의 열등감의 발현이기도 했다.

나는 게임회사 회장이 아니다!

나는 대기업 회장이다! 재개서열 20위 안에 발을 들인 IT업계의 선구자다!

한때, 정치계가 게임 업계를 유해지정 사업으로 간주하며 맹공을 펼치던 시기에 백용현은 업계 대표 주자로 지목되어 갖은 고초를 겪었다.

이때, 백용현은 신생업계의 대표주자인 자신과 건설이나, 자동차 등의 역사 깊은 산업의 기업인들 사이에 상당한 차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 그는 더더욱 선민적 사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너무 그렇게 매몰차게 구실 필요는 없잖아요.”

“자네는 조회장 편 아닌가?”

딱히 편 가르기 같은 것을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백용현 보다는 조양길과 좀 더 돈독한 사이인 것은 맞다.

물론 그렇다고 조양길이 마냥 곁에 두고 싶은 타입은 아니지만, 상대가 백용현이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조양길의 손을 들 것이다.

하지만 사업적인 판단이라면, 게임 업계에서 맥슨이 지닌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더군다나 백용현의 성격상 자신과 척을 진 이들을 곱게 놓아두지도 않는 성격.

“사업에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나요?”

“글쎄? 나는 있다고 보는데?”

백용현이 고까운 눈초리를 던졌다.

‘참 까다로운 노인네야.’

유지현은 내심 얼굴이 굳어질까 우려하며 억지 미소를 끌어올리기에 집중했다.

“음······. 그럼 지금 시점에서 저는 다른 편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게다가 같은 편이라고 해도, 겜포스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지? 사실 상관도 없잖아. 이건 업계 최상위권 관계자들의 갈등이야.”

또 한 번 카스트 제도와도 같이 견고한 선민사상이 튀어 나온다.

유지현은 몰래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연 매출 천억이 넘는 탄탄한 기업이라고는 해도, 맥슨이 소유한 핵심 IP 하나의 연매출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

“알겠습니다. 제가 괜히 주제넘었네요. 물러나겠습니다.”

“너무 언짢게 생각 말라고.”

꼭 상대를 언짢게 만들어 놓고서는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는 타입들이 있다.

꼰대라고 불리는 이들의 행동은 대개 이런 식인 법.

“그럼 말씀들 나누세요.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유지현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

“유대표도 나름대로 영향력이 있는데, 차라리 좀 더 다독여 두는 편이 낫지 않았겠습니까?”

“영향력? 그따위 것 때문에 내게 반기를 들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하나?”

반기라는 단어에 설동은은 씁쓸하게 웃었다. 정말이지, 일 때문이 아니라면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일단 맥베스의 출시일에 맞춰서 마케팅 전을 펼친다는 것이 전부입니까?”

“그럴 리가.”

“?”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이번에 맥베스의 핵심인재인 외부 계열사 삼인방의 회사가 흡수됐어.”

“네.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노망났는지 모르겠지만 그 흡수한 회사의 대표가 아까 그 건방진 녀석이더군.”

백용현은 다시금 표세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분노도 체력싸움인 법이다.

이 정도 연배에도 이토록 분노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정력이 남아 있다니.

설동은은 내심 감탄했다.

“이건 조회장 녀석의 큰 실수야. 애초에 인재라는 것은, 별것 없어. 결국은 회사라는 시스템 덕분에 날개를 펴거나, 접거나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동의합니다.”

일정 부분이라는 단어는 삼키고 설동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대단한 인재라도 회사 밖에서 날개를 펴지 못하고 추락하는 것을 너무도 많이 지켜보았다.

“그 건방진 놈 하나 키워주겠답시고, 그렇게 일을 벌인 모양인데······. 아마 그 삼인방들 속이 말이 아니겠지.”

백용현은 이렇게 말을 하는 와중에도 기둥 소프트의 지분이 고스란히 조회장의 손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단위로 운영되는 게임 업계에서, 설마 직원에게 과도한 지분을 몰아주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더군다나 그 스튜디오의 첫 번째 프로젝트가 역대 최고 투자를 요하는 프로젝트였다?

당연히 표세인은 바지사장에 불과하다고······. 백용현은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그 세 놈이 뭔가 조회장의 심기를 거슬렀겠지. 그러니 합병하고 그 망나니 같은 문이사가 귀국해서 놈들의 고삐를 직접 쥐고 있는 거겠지.”

문상훈이 그들의 고삐를 쥔 것도 표세인이 바지사장에 불과하다는 것의 반증.

“그렇습니까?”

양성태의 정보 통제를 뚫지 못했던 자신과는 달리, 백용현은 보다 소상하게 맥베스의 내부사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단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삼인방을 포섭하자고.”

“포섭······.”

“내가 이사 자리쯤은 제안해야겠지. 그러니 3명 모두는 힘들고 내가 2명, 자네가 1명. 어떤가?”

“그렇군요. 맥베스는 이번 판호 프로젝트도 전사차원으로 개발에 임한다고 했으니······. 핵심 인력인 그 셋이 이탈하면······.”

게임 업계에서 개발이 중단되거나 크게 연기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인재의 이탈이다.

게임은 각 파트별 지휘자의 역량이 크게 두드러지는 분야였다.

백용현의 계획대로 일이 굴러간다면, 확실히 이것은 맥베스에 상당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거, 아니라는 유명한 격언도 잊어버린 것이지. 뭐 친구가 엇나갈 때, 바로 잡아주는 것도 역할 아니겠어?”

맞는 말이다.

국내 게임 업계는 지금까지 딱 백용현의 말대로 성장했다.

한 게임에 큰 투자를 하기보다는 자잘한 게임 여러 개를 던져서 그중 하나에 입질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

무척 안정적이고 어찌 보면 당연한 접근 방식······.

하지만 뭐랄까.

‘게임회사는 게임만 잘 만들면 됩니다.’

표세인이라는 남자의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더군다나 자신이 주목하는 양실장이 직접 소개하지 않았던가?

불황을 거스르는 성공 가도의 배후에 그 남자가 연관되어 있단 것도 찜찜하다.

“그래서, 자네도 내 손 거들 생각이겠지?”

“······예.”

탐탁지 않지만, 이대로 등 떠밀려 물러날 수도 없다.

업계 순위에서 밀려나면 투자자들의 마음도 달라지는 법이다.

설동은은 착잡한 심정으로 백용현의 손을 잡았다.

*

*

*

“그래서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판을 벌이신 거에요?”

“뭐가?”

무슨 말인지, 뻔히 알면서도 조회장은 짐짓 모른 척했다.

연기 진짜 못하시네.

“백회장 성격 아시잖아요. 가뜩이나 판호건으로 우리에게 뒤처진 상황이라, 속 끓이고 있을 텐데, 오빠야 그렇다 쳐도, 아빠는 상황이 다르잖아요?”

“그럼 이놈 갈구는데, 가만히 보고 있어? 내가 거기서 이놈 편 안 들면, 이 녀석 체면이 어떻게 되겠어?”

······회장님.

뭔가 찡한 울림이 온다.

그런데, 사실 저 딱히 체면 같은 것에는 관심 없는데······.

그런 쟁쟁한 인사들 사이에서 고작 마흔도 안된 팀장 나부랭이가 체면 구길일이 뭐가 있겠나?

“대책도 없이 그렇게 행동하신 거라고요?”

“대책이라기보다는······. 어차피 그놈이 손을 써올 것은 뻔했어.”

“하지만 그런 만큼······.”

“연아야.”

“네.”

“피할 수 없을 때는 싸우는 것도 필요하다.”

“으음······.”

조회장의 말에 연아는 입을 앙다물었다. 100% 수긍은 못 해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

“그런데, 너는 어쩌자고 백용현이 앞에서 날을 세워?”

“아하하, 그간 쌓인 것이 있다 보니.”

“쌓인 것? 네가 그놈 만난 적이나 있나?”

아니, 그저 게이머의 마음이랄까? 일종의 컴플레인 같은 것이죠.

“그래서 너야말로 아무 대책 없이 일 벌일 녀석은 아닌데······. 뭔가 생각한 바가 있나?”

“네. 있습니다.”

“있다고?!”

내가 정말로 대비책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조회장은 물론 연아까지 화들짝 놀랐다.

에이, 뭘 놀라고 그러세요.

안 그러면 정말 제가 미친놈도 아니고 맥슨 회장님 앞에서 그렇게 했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우리 게임 성공시키기 위한 계획 중의 하나입니다.”

“아까는 게임만 잘 만들면 된다며?”

연아가 아까 내가 말한 것을 콕 집었다.

음······.

그렇게 오래전의 일 따위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 폭탄 투척 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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