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으으윽······.”
“형님, 진정하시죠. 여기 보는 눈이 많습니다.”
염종수의 말에 슬쩍 주변을 보니, 모두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살짝 혀를 차며, 권동현을 놓아주었다.
“와······. 힘이 그냥 쎄다 정도가 아닌데?”
옷깃과 소매를 당겼으니, 단순히 누르는 것 이상으로 제압 효과가 큰 것뿐이다.
“내가 실례를 먼저 했으니까네······. 없던 걸로 합시다.”
“······.”
변죽도 좋은 놈이다. 아니, 싱겁다고 해야할까?
나름 깡패랍시고 덤벼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구겨진 옷깃과 소매를 정리한 권동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염종수랑 회장님은 그짝 근처도 안 갈라고 몸 사리는데······. 나는 직접 본적이 없어서 나름 조사했었는데······. 내 조사가 부족했나 보구마잉. 창식이 형님부터 줄줄이 그짝한테 깨졌다드만······. 그거이 과장이 아니었는 갑네?”
조사?
이 자식이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거지? 지금 나를 조사했다고?
“혀, 형님. 그만 가시죠.”
내가 눈을 조금 더 가늘게 뜨자, 염종수가 백동현의 팔을 당겼다. 이번에는 조금 전 보다 확실히 힘을 준 모양인지, 백동현은 순순히 염종수의 팔에 끌려갔다.
“조만간에 또 보게 될 거요. 그짝 조만간 중국 간다지?”
백동현은 바를 벗어나면서 기어코 한마디를 더 던졌다.
중국······.
중국에 뭔가 있다는 건가?
예나 지금이나 부패와 치안 부재가 뒤섞인 중국은 조폭들의 좋은 시장이라는 말을 듣기는 했었다.
그런데······.
‘제깟놈들이 중국에서 뭘 어쩐다고.’
나는 애써 고민을 털어냈다. 지금 저런 시덥지 않은 녀석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이래서 직접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심기가 불편하면 사람은 예민하고 공격적이기 마련이다.
더욱이 상대는 그저 눈앞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심기에 거슬리는 건달이라는 족속들이 아닌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업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커피 한 잔 더. 그리고 저기 깨진 컵까지 변상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거기까지는 염부장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냥도 이따금 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쯧, 이미 소란 한번 피운 상태에서 더 고집을 부리면 나까지, 이상한 놈으로 보일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저 커피만 한 잔더 주문했다.
그리고 조연준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비를 빼돌렸는데도 도박에서 펑펑 돈을 쓸 정도는 되는가 보네.’
나도 이제는 남부럽지 않은 돈을 손에 쥐었지만, 역시 태생적인 문제랄지, 내 본성의 문제랄지······.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는 도박이라는 것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또 염종수가 다가왔다.
“조금 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보니까 너보다 윗줄인 모양이더만, 됐다. 건달 놈들이 다 그렇지.”
“······그보다 조연준이라는 사람에게는 무슨 용건이십니까? 혹시 그가 돈이라도······.”
“왜 도와주게?”
“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건수하나 잡았다는 듯이 표정이 활짝 밝아진다. 대체 이런 녀석이 어떻게 건달 생활을 하는 걸까······.
“헛소리 말고······.”
“형님. 나옵니다.”
“!”
염종수의 말대로 정말로 호텔과 이어진 카지노 출구에서 조연중이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늘어났네?”
지난번의 경호원은 한 명이었는데, 이제는 둘로 늘어났다.
뭐지? 그 사이에 신변의 위협이라도 느낀건가?
나는 조연준에게 다가갔다.
“돈 쓸데가 없으면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좋은 곳 소개해줬을 텐데······.”
“······그런거였나?”
조연준은 나와 내 옆에 있는 염종수를 슬쩍 바라보더니 뭔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뒷배가 없는 녀석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는데, ‘그쪽’ 업계 사람이었군. 이제야 납득이가. 하기사 처음부터······.”
“뭔 헛소리를 하고 있냐! 넌 인제 그만 꺼져!”
나는 당황한 나머지, 조연준의 경호원들과 눈싸움을 하고 있는 염종수의 옆구리를 팍 쳤다.
“크헉······. 형님 이런 것은 예고 좀 하고······.”
“주먹밥 먹는 놈이 이런 것도 못 참냐?”
“표중사님 주먹을 어떻게 참습니까.”
“표중사?”
“아, 죄, 죄송합니다.”
아니, 잠깐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씁쓸하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꽁트라도 찍는 건가?”
“아니, 신경쓸 것 없어.”
“어떻게 신경을 안쓰나. 그쪽 업계 사람과 엮이는 것은 사양이야.”
나도 사양이다. 설마 조연준과 뜻이 통할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아무튼 따라와, 대화 좀 하지.”
내가 살짝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조연준의 경호원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물러나시죠.”
“그쪽분들이야 말로 물러나······. 아욱!”
쓸데 없이 또 끼어드는 염종수 녀석이 어이가 없어서 이번 꿀밤은 나도 모르게 발사되어 버렸다.
이건 오발 사고다.
“혀, 형님.”
“그만 가라.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럼 보중하십시오.”
염종수는 쓸데없이 깍듯한 90도 인사를 했고 나는 그것을 모른척했다.
“갱스터가 아닌데, 갱스터에게 주먹을 휘두른다라······. 이게 대체 무슨 그림이지?”
“꿀밤 정도에 과장이 심하네.”
“소리가 무슨 벽돌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는데?”
달라, 내가 깬 벽돌이 몇갠데······.
“어쨋든 잠깐 시간 좀 내지. 보아하니, 딱히 바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내 신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나?”
신변의 안전?
“일단은 예비 가족인데 뭘 그렇게까지······.”
“보장할 생각 없는가 보군.”
“아, 아니. 보장한다.”
누가 보면 전에 한 대 때리기라도 한 줄 알겠네? 지난번에 함전무님을 먼저 공격한 것은 네 경호원이었거든?
물론 도청을 해버렸으니, 할 말은 없지만······.
결국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와 조연준은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럼콕······. 얼음 없이.”
“이 시간부터 술을?”
“이미 마셨어. 어제부터······.”
이 녀석 밤새도록 술 먹고 카지노에서 시간을 때웠구나······. 상태 안 좋은 것 같은데 대화할 수 있을까?
“비즈니스 관련 내용인데, 그 상태로 괜찮겠나?”
“물론이지. 난 지금 상태 최고라고······. 그런데 우리가 비즈니스적으로 역일 만한 일이 있던가? 설마 연아를 밀어내고 맥베스를 내게 쥐여 주겠다는 것도 아닐 테고······.”
“그래. 그건 꿈 깨.”
맥베스에 네 몫은 볼펜 한 자루도 허락할 수 없어.
네가 손에 넣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아가 직접 너에게 허락한 것들 뿐이다.
그리고 연아는 결코 그럴 마음이 없지.
“오만하군. 그런데 뭔가 지난번과는 좀 분위기가 다른 것 같은데?”
“한국에서 나고 자랐을 텐데, 그걸 모르나? 지난번에는 당연히 함전무님과 함께였으니, 혼자일때와는 분위기가 다르지.”
“······그런 것으로 해두지. 그래서 뭐지? 한번 들어나 보자고.”
조연준은 단번에 럼콕을 들이키고는 한잔 더 주문했다.
꼬라지를 보니, 정말로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인사불성이 될 것 같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이번에 우리가 판호를 손에 넣은 것은 알고 있겠지?”
다른 사람도 아닌 조연준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맥베스 내부의 정보를 캐내고 있을 터.
더욱이 얼마전에는 천이사를 이용해 보정훈에게까지 손을 뻗지 않았던가?
“당연히 알고 있지. 자랑하러 온 것은 아닐 테고? 그래서 뭐지?”
“맥슨의 백회장이 움직일 것 같다.”
“호오······.”
백회장이 언급되자, 한 순간이지만 흐리멍텅하던 조연준의 눈빛에 생기가 감돌았다.
맥베스를 노리고 있다면 당연히 경쟁사들의 상황 정도는 이해할 터······.
그가 백회장의 캐릭터를 얼마나 파악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의 성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 정도는 업계 내에 파다하니, 그도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못 본 지 오래됐군.”
“아는 사이라고?”
업계 정보 정도가 아니라,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고?
“뭘 놀라지? 어릴 적에는 가족끼리 함께 여행도 가곤 했었어.”
“연아도?”
“그때는 연아가 태어나기도 전이야.”
“그렇군. 어쨌든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빠르겠네.”
“빠르다고?”
“너 백회장 진영에 붙어라.”
“!”
내 말에 조연준은 럼콕이 담긴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적어도 눈에서 만큼은 취기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좋아.
이래야지. 이래야 일 이야기 할 맛이 나지.
“한가지만 묻지.”
“뭐든지.”
“이거 백회장 엿먹이려는 수작이냐?”
“······그래.”
뭐지? 설마 백회장과 돈독한 관계라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
생각해보니, 성격파탄자라는 느낌은 비슷한 것 같은데······.
독과 독은 서로 통한다, 뭐 이런건가?
“크크큭······. 그건 재미있겠군.”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나보군.”
“별거 아니야. 나는 날 무시하는 인간들이 싫어. 내 아버지도, 백회장도······.”
“회장님이 딱히 누구를 무시할만한 성격은 아닌데······. 그렇군.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너를 높게 봐주지 않는 다는 의미인가?”
“지금 도움을 청하는 상대를 도발하는 건가? 솔직함이 미덕이라는 것은, 큰 착각이야. 아시아인들만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것이 아니야. 미국인들의 가면은 그 이상으로 두터워.”
페르소나와 같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한 나라가 미국이 아니던가?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물론 페르소나라는 단어를 만든 융은 스위스 사람이지만······.
어쨌든 조연준에게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괜히 시비 걸어서 좋은 것은 없겠지.
“조언 고마워.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나? 생각 있어?”
“일단 노림수의 상세 개요, 그리고 내가 얻을 것은 뭐지?”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개요는 간단해. 백회장은 아마도 우리를 방해하기 위해 중국 서비스 중인 게임에 대규모 마케팅을 시행할 거다.”
“나는 마케팅 전문가가 아닌데?”
지난번 미디어 선동까지 실행한 녀석치고는 별일이다 싶은, 말이었다.
오히려 잘난 척하면서 전문가라고 나설 줄 알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조연준에게 기대하는 부분은 그쪽이 아니다.
“너는 월가에서도 제법 이름난 브로커잖냐. 당연히 투자로 움직여야지.”
“마케팅이라면서 투자?”
“국내 출시작에도 마케팅 비로 수백억씩 쏟아붓는 세상이다. 하물며 중국이라면 어떻겠나?”
“그렇군. 백회장 성격에 고작해야, 너희 발목을 잡는 것이 목적인 계획에 생돈을 쓰고 싶지는 않겠지.”
“그렇지. 그래서 네 역할이 주요하다.”
“그렇군. 하기사······. 어차피 내가 아버지에게 이를 갈고 있다는 것쯤은 백회장도 익히 알고 있으니, 의심을 사지 않고 접근할 수 있겠군. 그렇군. 너는 판을 이런식으로 설계하는 군.”
조연준은 내 머릿속을 들여다봤다는 것이 조금 즐거운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그리고 네 역할은 50% 투자를 조건으로······.”
“맥베스에 대한 증오를 내비치며 계속 판을 키워라?”
역시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곧장 상대에게 최대의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방향으로 머리가 굴러간다.
“정확해. 잘 아는군.”
“거기에 맞춰서 너는 찔끔찔끔 정보를 흘리겠지? 전례 없는 대규모 마케팅을 준비하는 것처럼 꾸며서, 상대의 애간장을 녹인다?”
“맞아. 그리고 사실 그것은 팩트지.”
나는 이미 중국 시장을 통째로 삼키겠노라 선언했다.
그것을 위해 한국 정서와 글로벌 트랜드를 철저히 무시한 오직 중국인들을 홀리기에 충분한 방향으로 게임의 초안을 잡았지 않나.
당연히 마케팅 역시 전례 없는 규모로 때려 박을 것이다.
오히려 이것을 숨겨야 한다.
너무 큰 배팅은 상대를 겁먹게 한다. 먹잇감이 방심하고, 승리를 확신하게 해야 만이 단번에 모든 칩을 손에 쥘 수 있는 법이 아닌가?
“하지만 결국······. 투자는 없던 일이 되겠지?”
“당연하지. 그리고 백회장 성격에 그 상황이 되면 열이 머리 끝까지 뻗쳐서, 혼자서라도 강행하겠지.”
“······넌 진짜 위험한 녀석이군.”
음······. 조연준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정말 찝찝한데?
“좋아.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내가 얻을 것만이 남았군.”
“그래. 그리고 그것도 간단하지.”
“간단하다?”
“네가 잃은 하비의 투자금, 그와 같은 액수를 맡길 수 있는 클라이언트를 소개하지.”
“······어쩐지 그게 너라는 느낌인데?”
“돈에 이름표 붙었나?”
“······그럴리 없지.”
딱히 우스운 멘트가 아니었음에도 조연준은 클클 웃었다.
“그런데 나를 믿을 수 있나? 내가 이대로 쪼르르 백회장에게 달려가서 이실직고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러기 위한 대비와 징벌성 조치가 준비되어 있기는 한데······.”
“······생각보다 훨씬 치밀한 타입이었군.”
뭔지는 묻지 마라.
그리고 웬만하면 그냥 내 손바닥 위에서 약속된 안무대로 춤을 춰라.
어긋났다가는······.
아무리 미움 받는다고는 해도, 연아의 친오빠를 부숴버리는 것은 좀 그러니까.
필요 이상 가까울 필요도 없다. 견제 속에서도 필요하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까지만 유지하자.
아마 우리가 완전히 마음을 터놓고 손을 잡는 일은 없을 테니까.
사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조연준에게 나에대한 공포를 조금 심어줄 계획이다.
맥베스에 대한 되도 않는 야심은 버려라.
연아와 맞서겠다는 생각도 버려라.
그냥 내가 가끔 던져주는 먹이에 만족해라. 그 이상은 안 된다.
아마 이번 작전의 끄트머리에서 조연준의 뇌리에 이것이 확고하게 자리 잡을 것이다.
띠링!
[마왕 전용기, 정신 지배를 획득하셨습니다.]
< 제가 그걸 당신에게 설명해야 합니까? 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