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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74화 (174/346)

174.

“좋은 아침입니다.”

“어, 그래. 좋은 아침이다.”

“음?”

홍기도가 갑자기 불쑥 한걸음 다가왔다.

“뭐냐?”

“표정을 보니, 어제 뭔가 음흉한 작전하나 성공하신 모양이네요?”

“······일단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둘째치고, 음흉하다니······. 작전이란 원래······.”

숨길 것은 숨기고, 상대를 내 의도대로, 상황도 내게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이 산뜻하기란 어려운 법 아닌가?

“그보다 너 출장 준비는 잘 되고 있냐?”

“준비랄 것이 있나요? 캐리어는 일찌감치 싸뒀는데요.”

하긴 원래라면 통역이 주 업무니, 이 녀석이야 별로 준비할 것은 없지.

하지만 그것은 원래의 계획에 불과하다. 지금은 전혀 예상 못 한 변수가 발동한 상황이다.

“이번 출장 회장님도 함께 가신다.”

“네.”

“······회장님 수행이라는 고난이도 미션이 추가됐는데, 반응이 그게 다야?”

“그거야, 담당자가 따로 있으니까?”

아! 그 담당자가 나다?

“웃기는 소리 말고 가서 양실장님께, 회장님 관련으로 신경 써야 할 목록들 받아서 확실하게 숙지해!”

“꼬실 수도 없는 남자의 정보를 숙지하라니······. 군대 수준의 가혹행위네요.”

“너 군대 생활 상당히 곱게 했나 보구나?”

원래 자대배치 받자마자, 선임들 관등성명부터 시작해서 부대 내 전체 인적 사항을 죄다 외우는 것이 군생활의 기본이 아닌가?

“저 취사병이라서 보급관님만 신경 쓰면 됐었어요.”

“제발 보급관이 여성이었다고만 하지 말아다오······.”

“당연히 우리 한주 누나는 미인이죠!”

“······시험 볼 거야. 틀리면 한 대 씩이다.”

“와! 팀장님 어렸을 때, 백원당 한 대, 이런 거 자주 해보셨죠? 각이 딱 나오는데요?”

“어릴 땐 밖에 나다니며 사람 만날 시간도 없었어! 퍼뜩 가라!”

끝까지 투덜거리는 홍기도를 돌려보내고 나는 다시금 출장 준비 중에 판호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잘 하고 있네.’

벌써부터 예정 속도 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

문이사의 역량이 여실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의외로 문이사가 택한 것은 크런치를 강행하거나 샤우팅을 연발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냥 간단하게, 각 파트단위로 포인트제를 제시했을 뿐이다.

기한 단축은 가점.

버그나 미스는 감점.

사실 말장난 같은 느낌이란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이게 삼인방에게 주요하게 작용했다.

사로 엎치락 뒤치락 열을 올리는데, 여기에 꼼꼼하기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남궁원이 중간에서 완벽하게 파이프라인 역할을 담당하면서, 이미 일정표에 있는 완료 가이드 라인 몇 개 중에서는 무려 일주일을 앞당겨 완료한 것이 있을 정도였다.

“남궁원!”

나는 파티션 너머에 있는 남궁원을 불렀다.

“네!”

“아~주 잘하고 있어!”

“훗, 감사합니다.”

그래. 남궁원은 이렇게 콧대를 세워줘야, 더 열을 올리는 타입이지.

홍기도와는 전혀 다른 타입이지만 난이도로 따지면 이쪽이 훨씬 편하다.

칭찬을 바라는 아이에게는 칭찬을 하라, 그렇게 감정의 잔고가 불어날수록 아이는 더 신나는 법이라고······.

얼마전 TV에서 봤다.

물론 남궁원이 어린애는 아니지만······.

“그런데 팀장님 중국 출장 언제 가세요? 다음 주.”

“알겠습니다. 중국에 계시는 동안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을 게요.”

이 얼마나 대견한 대답인가?

정말로 흐뭇하다.

“팀장님.”

“왜?”

순간 함송희가 손을 들었다.

“제 쪽 문서도 올렸는데, 확인해봐 주시겠어요?”

어? 이건 그건가?

언니가 칭찬 받으니, 자기도 칭찬 받고 싶어하는 막내의 심리 같은 건가?

“알겠어. 잠시만 기다려.”

나는 함송희가 인트라넷에 올린 자료를 훑어보았다.

이래저래 기둥 소프트 산하로 묶여서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대부분 그저 맥베스 소속으로 본사의 업무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인데, 현재 함송희의 업무는 결이 달랐다.

나는 그녀에게 따로 별도의 업무지시를 내려놓았는데, 이것은 당장 판호 프로젝트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판호 프로젝트 이후, 오랫동안 꿈꿔왔던 진짜 나를 위한 게임을 개발할 예정이니까.

함송희에게 내린 미션은 이를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이거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송희야······.”

“네?”

“이거 뭔말인지 모르겠다.”

함송희의 보고서는 코딩 정도 레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건 어지간한 프로그래머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일개 기획자 따위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일단 2/3가 영어지 않나.

“아, 죄송해요. 이런 쪽은 저도 처음이라.”

“아니야. 일단 문서 쪽은 무시하고 실무에 집중해. 이 부분은 나중에 내가 사람을 더 붙여줄 테니까. 그때 여유가 생기면 천천히 신경써 보자고.”

“네!”

“암튼 잘하고 있겠지. 너만 믿는다. 함선임.”

“헤헤.”

함송희는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정말이지 이 팀 정말로 좋은 팀이다. 이쁜 우리 팀원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보너스뿐이니, 이번에도 왕창 벌어서 다음에는 더 크게 보답해줘야겠다.

지난번 고부장은 내 보너스 계획에 혀를 내둘렀지만, 사람마다 돈쓰는 법은 다양한 법이다.

나는 내 주변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좋다. 그들의 웃는 얼굴과 함께 일을 하고 싶다.

행복이란 것이 뭐 별 거 있겠나?

연아가 곁에 있고, 팀원들이 웃는 얼굴로 일하고······. 욕심 조금 더 보태서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유저들도 좋아하면······.

나는 그거면 된다.

“그럼 나는 잠시 회장님 뵈러 다녀올게.”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고작해야 엘리베이터 한 번 타고 다녀오면 끝인데 조심할 것까지야······.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고나 할까? 나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길에서 뜻하지 않는 사람과 마주쳤다.

*

*

*

“······.”

“······안녕하세요?”

마팀장은 나를 향해 고까운 시선을 보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뭐지? 이 분위기는?

아무리 그래도 인사까지 했는데, 대답도 안하나?

“이 회사가 다 네 손 안에 있는 것 같지?”

갑자기?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착각하지마. 넌 그냥 줄 하나 잘 잡은 것 뿐이야.”

“예. 감사합니다.”

“?”

뭘 당황하지? 줄 잘 잡았다는 것은 최고의 칭찬 아닌가?

예전 회사에서도, 그리고 지금 내 주변에서도, 그 좋은 줄 하나 잡으려고 아등바등 기를 쓰고 줄타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뻔뻔하군.”

마팀장은 정말이지 내가 미워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평소에도 마팀장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은 다소 낯설다.

살짝 비틀어서 조소를 보내거나 하는 정도가 이 남자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

그 순간 일전에 문이사가 남궁원을 보호하기 위해 샤우팅(선조의 분노)를 시전했던 일이 기억났다.

그때 분명 천이사를 배신하는 발언을 했었더랬지?

설마 그게 천이사의 귀에 들어갔나?

“아! 혹시 천이사님께 한 소리 들으신 겁니까?”

물론 그 사실이 천이사의 귀에 들어갔다면 고작 한소리 정도로 끝났을 리는 없다.

제임스와의 첫만남에서도 마음에 안든다고 대뜸 패드립부터 시전하는 천이사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원래 약 올릴 때는 부풀리는 것 보다, 살짝 약소한 레벨로 언급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야 자신이 겪은 일을 곱씹으며 열폭할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마팀장의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요동치기 시작했다.

좋아. 제대로 먹혔군.

“그러게 언제나 말 조심하셔야죠.”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솔직히 말해서 마팀장은 처음부터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해는 한다.

굴러들어온 돌이 갑자기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눈꼴시렸을 것이다.

과장으로 입사해서 곧바로 차장, 팀장까지 달아버렸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처음에도 그렇고 지금도 똑같다.

나는 마팀장을 한 번도 내 상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조만간 내가 부장으로 진급한다면, 내 아래에 위치할 사람이다.

“마팀장님.”

“뭐야?”

평소라면 적당히 비웃음 한번을 끝으로 등을 돌렸겠지만, 지난번 남궁원에게 무례했던 그의 행동이 떠오른다.

그때는 마침 문이사가 나 대신 나서주었기에 그냥 넘어갔지만······.

마침 이렇게 본인 스스로가 꼬투리를 만들어 줬으니, 이참에 경고해두는 것도 좋겠지.

“팀장은요. 팀원을 챙기는 직책인 겁니다.”

“고작 팀장단지 얼마나 됐다고, 나한테 팀장직에 대한 충고까지 하는 건가? 정말 건방지······.”

나는 슬쩍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마팀장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걸 아는 놈이······. 내 팀원을 건드려? 나도 너 한 번 건드려 줄까?”

“지, 지금 뭐 하는······.”

“주제 파악해. 팀장 별것 아니야. 그냥 자기 팀원들 잘 다독이고 업무 분배 정도가 전부야. 건방지게 남의 팀원들에게 시비 걸지마.”

“어, 어쩔건데? 설마 회사에서 폭력이라도 쓰겠단 거야? 한팀장도 지난번에 김차장 멱살을 흔들었다더니, 그 나물에 그 밥이구만.”

한 눈에도 겁에 질린 것이 똑똑히 보이는데 그래도 오기는 남았는지, 제법 맞받아치려고 아등바등한다.

“차라리 폭력을 바라게 될 거야. 그래도 어렵게 팀장까지 올라왔는데······. 여기서 회사 생활 끝내는 것도 좀 그렇잖아?”

“미쳤군. 네가 요즘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봤자 고작 팀장······.”

그때였다.

일련의 발소리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오, 표팀장님.”

“안녕하십니까, 도이사님.”

나는 도이사와 그가 대동한 전무군단 이사진들을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도이사님.”

“흐음······. 그래도 마팀장도 오랜만이네요.”

“네? 간간히 천이사님과 함께 뵈었지 않습니까?”

“제대로된 인사를 받는 것이 오랜만이라고요. 항상 천이사님 뒤에서 슬쩍 까닥거리는 것이 전부였잖아요.”

“그, 그것은 아무래도 위계 질서상······.”

“아, 그렇지. 질서. 질서 중요하죠.”

도이사는 위계라는 단어를 쏙 빼고 질서라는 부분만을 강조했다.

뭐지? 마침 뭔가 이 부분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도이사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질서 바로 잡았습니다. 이제 몇몇 문제소지가 있는 인사들은 정리될 겁니다.”

정리······.

짧은 단어지만 묵직한 의미가 담긴 단어였다.

“구체적으로는?”

“베트남 사업장으로 보내질 겁니다.”

베트남은 스튜디오가 아닌 간단한 서비스 운영만을 위해 만든 소규모의 법인이다. 직원이 아마 5명도 안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시점에 정리라는 단어에 가장 합당한 인물은······.

“처, 천이사님이 동남아로······.”

나보다 한 발 먼저 마팀장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천이사를 입에 담았다.

그래, 아마도 천이사뿐이겠지.

천이사의 현재 입지와 연배를 고려할 때······. 아마도 이제 더는 그와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럼, 정식으로 논의하는 것은 이후에 함전무님과 함께 하는 것으로 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살펴 가십시오.”

나는 도이사에게 다시 한번 깍듯하게 인사했다.

함전무의 후계자니 뭐니해봤자, 현재 사내에서 나의 입지는 고작 팀장.

여기서 연륜 지긋한 이사급 인물들에게 고개 빳빳이 세우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더군다나 내 모든 배후에서의 일은 가급적 물밑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를 바란다.

이것은 전무군단의 일원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일일 것이다.

새파랗게 어린 나에게 고개숙여 인사하는 것까지는 그들도 바라지 않을 테니까.

“나중에 따로 식사 한 번 할 수 있으면 좋겠군.”

“언제 술이라도 한잔.”

“골프 좋아하나?”

도이사의 뒤를 따르던 이사들은 하나 같이 나에게 무언가 한마디씩을 던지고 갔다.

아마도 작은 연이라도 만들려는 심산일 것이다.

나는 하나씩 최대한 예의바르게 대답하며 모두가 떠날 때까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유지했다.

그에 반해 마팀장은 거의 넋이 나간 수준.

“너,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뭐긴, 기둥서방 지망생이랄까? 하지만 내가 마팀장에게 굳이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는 없지.

“제가 그걸 당신에게 설명해야 합니까?”

나는 양실장이 첫 만남에서 김순영에게 날렸던 명대사를 이용해 먹었다.

“우리 팀이든, 누구 팀이든······. 행실 똑바로 하세요. 마팀장님은 고작 팀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렸다.

< 야, 이 미친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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