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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76화 (176/346)

176.

모든 사업은 정부와 외교 상황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국 만큼 강한 영향을 받는 시장은 달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쉬린칭.

국가광파전시총국의 부국장이며, 동시에 카이두라는 세계 1위의 게임회사의 대주주.

중국 게임시장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그녀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만약 그녀가 마음먹고 우리 일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심각한 위기로군.”

조회장조차 긴장을 감추지 못할 정도의 상황.

홍켓몬은 반쯤 장난처럼 이야기했지만, 이 사안의 위험성은 그 정도가 아니다. 이미 전사 차원에서 모든 맨파워를 판호 프로젝트에 집중시켰다. 이것은 그 외의 모든 기회비용을 철저히 배제한 필살의 계획.

이것이 불발되면 그저 시간 낭비였다는 말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클클클······. 그래 이런 일도 있어야지. 안 그래도 너무 잘한다, 싶었다. 이런 사고도 가끔 쳐줘야. 인간미가 있는 법이지.”

“진심이십니까?”

“‘가끔’이라고 했다.”

그렇죠.

어쩌다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일이 있는 법이고, 어쩌다 한 번 벌어진 사고는 귀엽게 보일 순 있지.

“흠······.”

“할 말 있냐?”

“해도 돼요?”

“아니.”

“그래서 조용히 있었어요.”

“그래······ 그런 눈치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홍켓몬 뿐만 아니라, 우리 기획팀 전원이 일으킨 사고 전부 내 책임이다. 그러니 내가 감당해야 한다.

그것에 불만은 없지만······. 더이상  키우지는 말자.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자. 그래서 쉬린칭과는 어떻게 알게 된 거냐?”

조회장은 의외로 쉽게 마음을 가라앉혔는지,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것은 산전수전 다 겪은 대기업 회장의 관록이란 것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그냥 내가 어떻게 이 일을 수습하는지, 즐겁게 지켜보겠다는 심산이란 느낌이 느껴진다.

“그래. 그건 들어보자. 대체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거냐?”

“대학교 때 잠시 만나서 사귀다가 헤어졌죠.”

“얼마나 나쁘게 헤어진 거냐. 너 설마 바람폈냐?”

외도로 인한 이별 같은 것은 평생 잊히지 않는 상처로 남는 경우도 있다. 물론 대학교 시절의 풋풋한 연애 정도야 시간 지나면 웃음 밖에 안 나오는 그런 치기 어린 연애로 기억되는······ 그런 거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저는 그런거 안합니다.”

“그래. 네가 거기까진 아니지. 그래. 아니라고 해줘서 정말 고맙다.”

“.....뭔가 저 지금 공격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신경 쓰지마. 진짜 공격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으니까..”

“아무튼 바람 같은 것은 아니었어요.”

“그럼, 어린 나이이니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이별로 이어진 뭐 그런 거냐?”

나는 내 바람을 한껏 담아 말했다.

“아니요.”

그래. 이래야 홍켓몬이지.

진짜 스프링필드에 사는 호머 가족의 비기, 목잡고 흔들기를 시전하고 싶은 기분을 꾹꾹 눌러 참았다.

“걔가 뭘 착각했는지 모르겠는데, 어느 날 저에게 결혼하자고 하더라고요.”

“겨, 결혼?”

이건 내가 아니라 조회장의 반응이었다.

“자네 쉬린칭의 배경을 몰랐나?”

“모르죠. 무슨 여자친구를 집안 보고 만나나요?”

“그, 그렇지. 그러는 거 아니지.”

나는 홍켓몬의 말에 찬성하며 슬쩍 조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저도 그런 거 아닙니다. 저 연아 아버지가 회장님이라는 것 따위는 까맣게 몰랐었던 거, 아시죠?

“젊구만. 젊어.”

“아무튼 그래서 그게 다야? 싫다고 한 것이 전부야?”

“아니요.”

언제까지 아닐거니···.. 학창 시절 꼬꼬마들 연애에 이 이상의 스펙터클한 이벤트는 없어도 되지 않니?

“결혼할 생각 없으니 헤어지자고 했죠. 그러고 며칠 후에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자, 잠깐.”

“네?”

나는 조회장 옆으로 다가갔다.

“회장님 저 옆에 좀 앉겠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냐?”

“현기증이 나네요.”

대화 맥락상 싫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필시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 사고가 있었을 거라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충격에 대비해서 좀 앉아야겠다.

“말 끊어서 미안하다. 그래서 무슨 이상한 짓?”

내 말에 홍켓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숙소 앞으로 스포츠카를 보내거나, 콘도입주권을 보내기 시작하더라고요.”

“아······.”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 홍켓몬과 만났던 여성 다운 느낌이랄까? 액션 수준이 남다르다.

“그런데 스포츠카 다음에 콘도입주권? 콘도를 사서 주는 것도 아니고?”

“아, 싱가포르 땅값 잘 모르시나 보네요. 장소에따라서 한국은 귀여운 수준이에요. 차 값 보다 콘도 입주권이 훨씬 비싸요.”

“세상에 그런 인세지옥이 또 있다고?”

“네.”

“허허······. 요즘 젊은이들은 통이 크구만.”

아니, 홍켓몬도 홍켓몬이지만, 쉬린칭을 요즘 젊은이라는 카테고리로 묶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어쨌든 그 정도까지 열렬히 구애하는데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던가?”

“네.”

그래. 너도 일단은 금수저라 이거지···.. 솔직히 저 정도였다면 나도 100%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기 어려운데? 하긴 오히려 때가 덜 묻은 20대였기에 더욱 그랬으려나?

“어쨌든 거기까진 귀찮아도 참았는데, 점점 문제가 심각해지더라고요?”

“잠깐, 그 시점에 엑셀을 더 밟는다고?”

일반인들은 평생 구경도 못 할 스포츠카와 그보다 더 비싼 콘도입주권이라는 것을 선물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보다 더한 일을 벌이다니······.

대체 이 녀석은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이것이 금수저의 삶인가? 순간 연아의 학창 생활도 궁금해진다. 워낙 과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라서 나도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스스로 두꺼운 안경에 공부벌레였다는 말을 하긴 했었지만···..

“흥미진진하군. 계속해보게.”

조회장은 차를 홀짝이며 홍켓몬을 채근했다.

“저랑 친한 친구들이 하나씩 다른 나라의 대학으로 유학가거나, 귀국 혹은 취업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

“......”

일단 한가지는 알겠다. 홍켓몬이 녀석답지 않게 중국을 못 가겠다며 떠든 것이 엄살은 아니었다는 거다.

“집착이 보통이 아니군.”

“그렇죠? 그냥 단순히 좋아한다는 것 정도 수준이 아니네요.”

“그런데 정도가 너무 지나친데? 우연 아니야?”

“제 친구들은 모두 저를 차단해서 연락이 안 됐었지만, 쉬린칭 본인이 말하더라고요. 자기가 한 것 맞다고. 어차피 서민들의 관계란 것은 그만큼 얄팍한 거라고.”

“그러니 나만 바라봐라?”

“대사는 좀 달랐는데, 뭐 그런 느낌이었죠.”

“그래서 넌 뭐라고 했지?”

“넌 진짜 매력 없는 사람이고 다시는 보지 않길 바란다고 했죠.”

그래. 그랬구나.

“회장님 아무래도 출장 인원 변경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정도 레벨의 문제라면야, 이야기는 끝난 셈이 아닌가? 이 시점에 홍켓몬은 그냥 핵폭탄에 불과하다.  타이머가 활성화된 해체 불능의 핵탄두인셈.

“그러는 것이 좋겠군. 양실장에게···”

-똑. 똑. 똑.

그 순간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또 뭐지?

“실례하겠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때마침 양실장이 등판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홍기도 과장의 사연을 들으신 모양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홍과장은 제외하는 것으로···..”

“그것이 곤란할 것 같습니다.”

“?”

“얼마전 쉬린칭 쪽에서 숙소를 수배해준다고 해서 명단을 보냈는데······ 조금 전 연락이 왔습니다. 홍기도 과장이 ‘반드시’ 동행하길 바란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어쩌면 누가 각본이라도 쓴 것처럼 상황이 이렇게 돌아간담? 애초에 보통 그쪽에서 숙소까지 수배해주나?

“그거 반드시 수락해야 하는 요청입니까? 홍기도가 어디 보자······ 갈비뼈 쪽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제 갈비뼈 보면서 말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웃으면서 넌지시 의향을 물었더니, 불가라고 딱 잘라서 말하더군요.”

“그렇다는 것은 홍과장과 동행하지 않으면······”

“이미 발급한 판호 조차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쉬린칭이 가진 영향력은 충분히 그것이 가능한 수준이니까요.”

중국은 참새가 해로운 새라는 유력자의 한 마디에 유례없는 대기근을 일으킬 정도의 나라가 아니던가?

쉬린칭이 그 정도 권력자는 아니지만, 판호뿐만 아니라 카이두의 유통망을 이용하지 않으면 중국에서의 성공적인 서비스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우리는 쉬린칭의 요구라면 홍켓몬을 꽃단장해서 상납해야 하는 처지인 것.

“기도야.”

“......이럴 때마다 목소리 깔고 말하는 버릇 좀 고치시면 안 되나요? 그거 더 긴장되거든요?”

“긴장해야지. 이거 일이다. 알지?”

“......”

“개발자들은 보통 경험할 일 없지만 원래 바이어 접대도 샐러리맨의 중요한 업무다. 알지?”

“......”

아무래도 이거만큼은 제아무리 홍켓몬이라 할지라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직 그 결말을 듣지 못한 것 같은데, 결국 그 말을 던졌을 때 어떻게 된 거지? 그녀가 순순히 물러나던가?”

“저는 모르죠.”

“몰라?”

“네. 저는 그 후 바로 귀국해서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쉬린칭이 졸업한 이후였거든요.”

“그 이후로는 만나거나 연락한 적 없나?”

“네. 없어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의외로 별일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막상 지금 이 친구를 지목한 것도, 뭐랄까······. 성공한 자신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않나?”

“하하하. 쉬린칭에 대해서 잘 모르시네요. 그 4차원이 그런 평범한 감정으로 움직일 타입이 아니죠. 게다가 걔는 100년 묵은 원한도 어제 일처럼 간직하는 꽁한 성격이에요.”

쉬린칭에 대해 잘 알아서 참 든든하구나······.

그래서, 정말 이걸 어쩐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홍켓몬 속은 알아도 쉬린칭에 관해서는 그저 이름밖에 모른다

.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 작전을 구상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군. 그래 무슨 상황인지 잘 알겠네. 어쨌든 출장은 다음 주이니. 잘 해보게.”

조회장은 나를 보며 말했다.

잘 해보게?

설마 그냥 저에게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하실 생각이십니까? 회장님, 이번 판호 프로젝트의 중요성은 알고 계시죠?

“안 그래도 말도 잘 안 통하는 바이어들에게 시달리며 따분한 시간 보낼 거라 생각했는데······ 이거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어. 적어도 심심하진 않겠구만.”

조회장은 클클 웃으며 힘내라는 듯이, 내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진짜로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하려는 마음인 것 같다.

“표세인 팀장이라면 잘 해낼 겁니다.”

양실장 역시 나를 향해 근거 없는 무한한 신뢰가 담긴 눈빛을 보냈다.

아니, 이건 치정극입니다. 제 전공 대본은 장르가 달라요. 저는 액션, 스릴러 전문이에요.

멜로물은···...

“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되겠죠.”

그게 네가 할 소리냐? 차마 회장님 앞이라서 정의의 응징은 못 하겠고 나는 그저 눈빛 레이저를 쏘았다.

하지만 홍켓몬은 얄밉게도 마치 자신은 보고했으니, 할 일 다 했다는 듯이 느긋한 얼굴이었다.

회장님 앞이라서 내가 응징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서 이러는 거겠지.

이 얄미운 놈.

가만, 생각해보니 굳이 멜로가 아니라도 상관없겠는데?

홍켓몬을 제물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이거 호러물로 가도 되지 않을까?

“위험한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너나 내 속 들여다보지 말아주세요.

제물몬씨.

< 이거 그런거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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