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80화 (180/346)

180.

식사가 끝나고 쉬린칭은 비서와 함께 차에 올랐다.

“설마 정말로 그들의 선택에 맡기실 겁니까?”

비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반면 쉬린칭은 상큼하다 싶을 정도로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건 도박이라고 밖에는······.”

“시장 상황과 권력의 이동에 대한 배팅이 도박 아니라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떠한 컴퓨터도, 아무리 대단한 전문가들 조차 매번 틀리는 문제가 아니던가?

어차피 정답을 모른다면, 결국 도박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지난번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건 그저 내 방식이야. 그러니 너무 신경쓸 것 없어.”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뭐 일단 지켜보자고.”

게임은 영혼의 아편이다! 라는 선언이래, 중국 정부는 현재 게임산업에 막강한 제제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곧 그들의 사업 가부를 결정하는 광전총국의 권력과도 직결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임컨텐츠 사업은 마르지 않는 황금향이다.

그렇기에 4개로 쪼개진 부서들의 집권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힘을 합쳐 변혁을 꾀하고 있다.

“어차피 오리무중이야.”

4개 부처 중에서 권좌를 차지할 유력 후보는 단둘뿐.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비서는 납득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누가 그녀를 탓할 수 있을까?

쉬린칭 본인 조차도 이번 일은 그저 도박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일단 지켜보자고······. 그 남자가 또 한번 하늘을 움직일 수 있을지.”

“그런데 기대하시는 쪽이 정말로 홍기도입니까? 표세인이 아니고요?”

“지금 상황에서 그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분리한다고요?”

“홍기도는 정말로 야생동물 같은 남자야. 통제가 불가능하지만, 반대로 그런 단점이 무색할 정도로 이해 불가능한 감각의 소유자지. 그런데 표세인이라는 남자는 그 홍기도를 완벽히 길들였더군.”

“······.”

“그런 두 사람이니, 어찌 기대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실제로 맥베스에서의 성적은 너도 봤잖아?”

이 이상한 믿음에 비서는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그것을 보며 쉬린칭은 피식 웃었다.

홍기도란 남자가 그렇다.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불가한 존재다.

하지만 그 이해불가의 영역 너머에는 이따금 주변을 경악시킬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도 보여 달라고······.’

비서는 쉬린칭의 담담한 표정을 보고 더 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결정은 그녀의 몫이다. 자신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될 뿐.

“그보다 조금 묘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묘한 보고라니?”

“지난번 사스와 마찬가지로, 일부 지역에서 묘한 전염병 징후가 있다고 합니다.”

“제 2의 사스 사태라도 되나?”

“일단 조짐이 심상치 않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이 해당 사태에 발표하려는 것을 정부가 막았다고 합니다.”

“이번 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대책 방안을 준비해야겠군.”

팬데믹의 두려움은 지난번 사스와 메르스와 같은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경험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누구도 곧 닥쳐올 미증유의 사태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

*

*

중국 정부기관들의 힘은 막강하다.

더군다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 검열 시스템을 보유한 중국에서 컨텐츠를 검열하고 유통의 가부를 결정하는 국가광파전시총국의 힘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광전총국, 국가신문출판서, 국가판권국, 국가영화국.”

“이름도 복잡하군.”

식사가 끝난 후, 우리는 쉬린칭이 남긴 모종의 미션 수행을 위해 인터넷을 통해 대상자들의 간단한 인적사항을 조사했다.

“총국의 바이젠과 판권국의 리차오텐. 이 두 사람 중에 하나를 선택해라 이거지?”

조회장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우리 일도 아닌데, 대충 정해도 되는 것 아니에요?”

홍기도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거 진짜야.”

“네?”

“진짜 꽌시 맺자는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국가광파전총국의 진짜 수장이 될 사람에게 배팅을 하자는 거잖아. 만약 쉬린칭이 이번 배팅에 실패하면 그녀의 입지도 지금과 같지는 않겠지.”

“맞다. 그리고 그녀가 영향력을 잃으면 우리도 치명적이지.”

쉬린칭이 보유한 꽌시가 바로 우리가 공유하게 될 영향력 자체인바.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은 실수조차 용납될 수 없는 기로의 선상.

“그러고 보니 판단이라고 했었지.”

“네?”

“아까 쉬린칭이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었잖아.”

“아, 그렇죠.”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듣게되니······. 나름 그녀도 사정이 있었다는 느낌이네.”

내가 중국 역사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숙청이라는 단어가 이곳처럼 빈번한 곳도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줄 한 번 잘 못 서면, 정말로 목이 날아가는 세계.

젊은 여성의 몸으로 이 만한 위치와 영향력을 손에 넣는 것은 아무리 부모의 지원이 있었다 한 들,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이런 살얼음판 같은 선택의 기로에서 사람들의 가치를 판단하며 생존해왔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나?”

조회장이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아마도 이번 일이 예상 외로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일단 장단이 뚜렷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점부터 듣지.”

“여러 사람을 만나서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이. 이번 일 하나로 모든 것이 정리되고······. 제 생각에는 이번 일이 무사히 마무리되면 오히려 쉬린칭에게 거스름돈도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호오······. 거스름돈이라······. 단순히 선택에 대한 조언 정도인데 그렇게까지?”

“물론입니다.”

나는 아까 쉬린칭의 표정에서 그 기류를 읽었다.

말했듯이 꽌시란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내가 주는 만큼 상대도 주는 것이다. 실제로 선택에 작은 조언을 해주는 정도가 뭐 그리 큰 일일이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상품의 가치라는 것은 유동적이기 마련이다.

사막에서의 물 한잔의 가치가 다른 나라에서와 같을 수는 없는 법 아닌가?

“물론 일이 잘 해결됐을 때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방법이 있나?”

“지금은 없죠.”

“그걸 뭘 그렇게 여유롭게 말해?”

내가 기지개까지 켜면서 한껏 여유를 보이자, 조회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곧 쉬린칭이 식사자리라도 마련하지 않겠습니까?”

아까까지야, 상대의 목적을 몰라서 눈치보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상대의 목적을 간파한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가 주사위라도 굴려서 선택하길 바라는 것도 아닐 테니, 조만간 그녀가 먼저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우리는 그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네 입장에서는 다행이겠다?”

“뭐가요?”

내 질문에 홍기도가 짐을 정리하며 되물었다.

“과거사 때문에 쉬린칭이 괜한 트집을 잡지 않아서?”

“전 오히려 앞으로가 더 귀찮아질 것 같은데요?”

“그래?”

“네. 그 녀석이 묘하게 4차원이라는 것은 말씀드렸죠?”

“어.”

그래. 그러고보니 4차원 운운하기는 했는데, 정확히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왜 이렇게 중요한 일을 제3자인 우리에게 맡겼다고 생각하세요?”

“뭐 너랑 알고 지낸 사이니까. 네, 괴상한 촉에라도 기대하려는 것 아냐?”

“······바로 맞추시네요.”

솔직히 홍기도의 이상한 촉이야, 나 조차 번번히 놀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왜?”

“만약에 이번에 우리의 선택이 녀석의 앓던 곳을 긁어주는 경우가 된다면······. 앞으로가 더욱 귀찮을 걸요? 팀장님을 포섭하려고 난리치지 않을까요?”

“나를? 네가 아니라?”

“둘을 세트로 볼지도······.”

“음······.”

중국 시장을 버릴 것이 아닌 바에야, 쉬린칭과의 관계는 돈독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쪽이 계속 포섭의사를 보인다면, 상당히 곤란할 것이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이번 출장 중에 다 털어야겠네.”

“그래야죠.”

“대책도 없다면서 자신감 하나는 대단하구만.”

조회장은 우리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다들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 스마트폰이 울렸다.

“양실장님?”

-네. 무사히 도착하셨습니까?

“죄송합니다. 공항에서 바로 쉬린칭이 마중나온 탓에 연락을 못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쉬린칭과는 어떠셨습니까?

“걱정했던 것과는 조금 일이 다르게 풀렸습니다만, 가장 우려했던 파국까지 치닫는 상황은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다만?

“미션을 내려주더군요.”

-미션이라······. 뭔가 그리운 단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다면 걱정할 것은 없겠군요.

갑자기 무슨 말이람? 무슨 내용인지 듣지도 않고선?

-표세인 팀장님에게 미션이라니, 고양이 앞에 생선 같은 느낌 아닙니까?

“하하하. 뭐, 노력해보겠습니다.”

-어쨌든 전달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조연아 실장에게 연락받고 조사를 시작한 것인데 현재 중국에 묘한 낌새가 있더군요.

“조연아 실장의 연락이요?”

-네. 그분도 정작 조연준의 연락을 받고 제가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자세히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양실장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난데 없이 조연준이 연아에게 연락하고는, ‘내가 늦었군’이라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기고 일방적으로 통화를 종료.

이를 꺼름칙하게 여긴 연아와 양실장이 부랴부랴 정보를 수집한 결과······.

-현재 중국에서 과거 사스에 비견될 만한 전염병이 창궐할 조짐이 있다고 합니다.

“아······. 하지만 정작 이곳에는 그런 징조가······.”

-중국 정부가 해당 자료를 발표하려는 연구진들을 급히 구속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직 언론에도 나오지 않은 정보입니다.

고작해야 게임 개발하는 것만 할 줄 아는 나에게는 전염병이나 중국 정부의 움직임 같은 거대한 이야기는 너무 스케일이 커서 좀처럼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가급적 빨리 중국에서의 일을 마치고 조속히 복귀하시길 권합니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솔직히 저희도 급히 조사한 것이라서 자세한 상황은 모릅니다. 어쩌면 조연준은 더 많은 정보를 쥐고 있겠지요. 월가의 정보력은 때로는 CIA를 능가한다는 평이 있을 정도니까요.

“네. 그건 제가 조연준에게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급히 통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냐?”

내 표정이 굳어있자, 조회장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나를 향해 물었다.

“회장님. 사스 기억하십니까?”

“그걸 기억 못할 수가 있나.”

“그런 일이 또 한 번 벌어질 수도 있다고, 중국에서의 일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복귀하라고 합니다.”

“허······. 것참 별일이군. 하지만 일단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 너희도 답답하겠지만, 관광 같은 것은 포기하자. 이럴 때는 얌전히 움츠리고 있는 것이 최고야.”

“네. 그래야죠.”

사태가 심각하다 보니, 홍기도 역시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염병 이야기가 나도는 와중에 관광이니, 뭐니 할 때가 아니다.

나는 조연준에게 급히 전화했다.

-웬일이지?

“중국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제 알아낸 모양이군. 연아도 제법 컸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헛소리 말고 정보나 내놔봐. 그리고 알고 있었으면서 왜 중국 출장 전에 말하지 않은 거야?”

-내가 말했다면 안 갈 수 있는 출장이었나? 그리고 확신한 것은 아니야. 중국 정부는 대규모 전염성이 있는 질병의 존재를 파악했고, WHO와 손잡고 사전 은폐를 도모하고 있지.

“WHO? 왜 그곳이 중국과 손을 잡아?”

-유명한 이야기인데, 모르는가 보군. 중국이 10년간 매년 1조원의 투자를 약속으로 현 WHO 회장의 취임을 도왔지. 그들은 일종의 상생 파트너야.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나 같은 일반인이 어떻게 알아?”

-본인을 일반인이라고 말하다니 우습군. 어쨌든 내가 아는 것은 그게 다야.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지?”

-내 정보통에 따르면 사스보다 최소 2배 이상 위험할 것으로 예상한다. 주가가 춤출 시기라는 거지. 월가는 지금 축제 분위기라고······. 물론 다들 정보가 새나갈까 봐 쉬쉬하고는 있지만, 다들 다리가 보도블록 위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라지?

이 미친 자식 정말로 정신이 나갔구나? 전염병 창궐이라는 위기를 앞에 두고, 희희낙락이라니······.

-어쨌든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나는 이미 백회장에게 접선 끝냈어.

“그래. 기다리고 있어라.”

그렇게 짧은 통화가 종료되었다.

“조연준, 그 녀석이 뭐라더냐?”

“아무래도 손 놓고 기다리면 안 되겠습니다. 하루빨리 일을 마치고······. 아니, 일단 회장님이라도 귀국하시죠.”

“헛소리 마라.”

“네?”

“직원들 사지로 보내고 속 편히 있을 수 있겠나? 내 회사 키워준다고 고군분투하는데, 옆이라도 지켜줘야지. 그리고 국장급들 앞에서는 내 명함 정도는 필요할 거다.”

하필이면 맞는 말이라서 반박할 말이 없다.

걱정과 동시에······.

내가 이렇게 멋진 분을 모시고 있구나하고 새삼 감탄하게 된다.

“기도야.”

“네.”

“쉬린칭에게 연락해. 일단 후보자들의 신상명세부터 달라고해, 그리고 일단 그들과 만나는 것은 미뤄.”

“알겠습니다.”

속전속결. 그래.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뿐이다.

전염병이라는 말을 듣게 된 이후로 뭔가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 덕분에 묘수도 하나 생겼고······.

“그런데 서두르려는 것은 알겠는데, 뭔가 뾰족한 수도 없이 서둘러도 되나?”

“뾰족한 수 생겼지 않습니까?”

“생겼다고?”

네. 생겼지요. 다소 너무 뾰족해서 걱정이지만요.

< 장난기가 좀 발동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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