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그럼 결과 기다리도록 하지.”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바이젠과 리타오텐이 자리를 떠났다.
식사하는 내내, 그들의 시선은 쉬린칭에게 고정되어 있던 상황.
그녀는 먹는 둥 마는 둥, 식사시간 내내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해 보였다.
그리고 우리 세사람은 원래부터 이 일에 관련이 없는 제 3자였음을 깨달은 것처럼 맛있게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래도 너무 몰아세우는가 싶었는데, 저 친구 덕분에 적당히 분위기가 돌아갔군. 이게 자네들 방식의 케미스트리인가 보지?’
‘맞습니다. 이런 재주라도 없으면 못 데리고 다니죠.’
나는 조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카오루주(새끼돼지통구이) 괜찮네요. 전 원래 카오야(오리 구이)파인데······. 간만이라 그런가?”
마침 홍기도가 이를 쑤시며 배를 두드렸다.
‘정말 작전인 것 맞지? 우연 아니지?’
‘저도 가끔 의심스럽습니다만······.’
그러니까, 왜 항상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어쨌든 우리가 그렇게 맛난 음식을 즐긴 후, 포만감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식사 내내 눈치를 보고 있던 쉬린칭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건 한 방 먹었군요.”
쉬린칭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 상황을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여전히 표정에 변화는 없지만 뭐랄까 태풍전의 고요랄까?
당장은 너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어떤식으로 대응해야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도 할 것이다.
자신을 포함해 중국 서비스와 관련된 꽌시 전체를 책임지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화살 받이 역할을 부탁한 것인데, 이렇게 고스란히 화살을 자신에게로 돌려 버린 상황.
하지만 그녀가 섣불리 자신의 스탠스를 결정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호기심 때문이리라······.
우리가 미치지 않고서야, 갑자기 이런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틀림 없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는 다소 자신이 있었다. 처음부터 홍기도와 홍기도와 함께하는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가?
“식사하는 내내, 고민하는 것 같더니.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했나 보네?”
홍기도가 나보다 먼저 대답했다.
“상황 파악? 그냥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었나?”
“전에는 사람들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에 쓸데 없이 큰 의미를 부여하더니. 높은 자리 앉고서는 무뎌졌나 보네?”
“······.”
홍기도는 여전히 쉬린칭 앞에서만큼은 여느때와 다른 모습이었다.
언제나 여성과 함께 있을 때는 시시덕거리기만 하던 녀석이라, 나조차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음, 시작됐군.’
‘그러네요.’
쉬린칭과의 첫 대면 이후로 홍기도와 그녀의 대화가 시작되면, 나와 조회장은 자연스럽게 관람객 모드로 돌입하게 되어버렸다.
무슨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반사훈련 제대로네.
“어쨌든 결론은 났어.”
“따로 협의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뻔히 보이는 일에 협의씩이나 필요해? 그렇죠?”
“뭐, 그렇지.”
홍기도의 질문에 내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쉬린칭이 휙하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척하면 척이라, 뭐 그런가요?”
“그렇다기 보다는 워낙 답이 뻔해서.”
“상의 한번 없이. 같은 결과라니······. 궁금하군요.”
쉬린칭은 미심쩍다는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다소 귀엽달까? 나와 홍기도가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나도 답을 알 것 같군.”
이번 출장으로 알게 된 것인데, 조회장도 은근 우리와 주파수가 잘 맞는 느낌이다.
“한번 동시에 말해 볼까요?”
내 장난스러운 말에 조회장과 홍기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셋.”
“쉬린칭.”
“부국장.”
“쉬린칭 부국장님.”
우리 세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뭔가 단어가 통일이 안되서 그림이 안나오네, 아쉽네.”
“이럴땐 보통 이름 아닌가요?”
“클클, 직급이지.”
“함께 호명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걸 주파수가 맞다고 해야할지, 묘하게 어긋난다고 해야할지.
우리는 잠깐 호명 방식에 대해 실랑이를 벌였다.
“······일단 세 분께서 이토록 합이 잘 맞는 것은 놀랍습니다. 하지만 선택지가 저라고요? 저는 분명······.”
쉬린칭의 표정이 이제는 당황에서 곤혹으로 변해버렸다.
“정말로 설명이 필요할 줄은 몰랐네.”
홍기도는 이렇게 말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하기 귀찮다고 자연스럽게 나에게 바통을 넘기다니!
하지만 이 부분은 그나마 내가 설명하는 것이 낫겠지.
쉬린칭을 대하는 홍기도의 태도를 고려하면 확실히 그렇다.
“쉬린칭 부국장님이 원하시는 바는 명확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냥, 부국장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쉬린칭의 말에 조회장이 ‘그거 봐라’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네. 어쨌든 부국장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소속부처의 성장과 향후 영향력 확대라는 점에서 저 두분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죠? 솔직히 대단히 눈에 띄는 점은 없어도 상당히 무난한······.”
“네. 그 무난함이 문제죠. 그냥 하위 부처장급 정도라면 무난히 수행할 만한 인물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 그리고 변화가 빠른 IT업계를 주도할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군요.”
“짧은 대화 한 번에 거기까지 판단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요?”
“그럴까요?”
물론 내가 단순히 오늘의 대화만으로 그들의 됨됨이를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심각한 문제까지 내포하고 있다.
“부국장님.”
“네.”
“그들의 자리싸움에 부국장님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밖에 다른 이들의 음을 사는 것도 중요하겠죠?”
“네. 그렇습니다. 더욱이 패배했을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자신 쪽 사람들을 많이 포섭해두는 편이 좋을 테니까요.”
“그러면 그들은 앞으로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겠군요.”
“네. 맞습니다. 한국도 비슷하리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은 식사와 술 그리고 차가 동반되지 않으면, 모욕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
“왜 그러시죠?”
내가 갑자기 말을 멈추자 쉬린칭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까지 듣고도 설명이 더 필요하십니까?”
“······설마 지금 들려오는 전염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하늘을 움직인다는 거창한 비유까지 하신 분 답지 않으시군요.”
“아······.”
“과거에 홍과장과 어떤 추억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는 정말로 하늘이 움직였습니다.”
“!”
“처세라는 단어를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곳 처에, 대세.
시간과 장소, 지위고하에 맞추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의미다.
단순이 신분고하를 넘어 때로는 이렇게 전염병과 같은 예기치 못한 상황까지 찾아오는 법이다.
“결과론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결국, 처세에 기반은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입니다. 이 상황이라는 것은 언제든 유동적으로 변하기 마련이지요. 더군다나 우리는 바로 얼마전 메르스나, 사스와 같은 강력한 전염병이 횡횡하던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경쟁자들의 처세능력에 문제점이 포착된 상황입니다.”
“경쟁자······.”
“어차피 계속 그들 밑에 있으실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쟁쟁한 상급 관료들 조차 눈치를 보아야할 정도의 입지를 지닌 젊은 여성.
이런 인물이 야망이 없을 리가 없다.
아무리 배경이 출중하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야망이 없이 이 정도 성과를 이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숨죽이고 움츠려 지내도 위험한 것이 팬데믹 사태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활발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녀야할 처지지요.”
“······그렇지요.”
드디어 쉬린칭도 차츰 상황을 이해하는 것 같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 보죠. 부국장님.”
“네, 네.”
무언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던 쉬린칭은 내가 호명하자, 화들짝 놀란 것처럼 대답했다.
“본인의 비전을 말해보십시오.”
“제가 그들을 제치고 나서기로 결정한다면 제 비전은 관계 없지 않습니까?”
“아니요. 전혀요.”
“?”
“만에 하나 그들이 별일 없이 없을 수도 있고, 어쨌든 이번 경쟁에서 상급자인 그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그러니, 부국장님의 비전에 따라서 저희의 선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다 안정적인 반향으로요.”
“!”
“그러니, 우리의 선택이 바뀌지 않도록. 한번 본인의 비전에 대해 들려주시겠습니까?”
꽌시를 미끼로 우리를 테스트해보려고 시도한 것은 쉬린칭이 먼저였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나와 홍기도는 다소 경력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니, 백보 양보해서 인정한다 치자.
하지만 조회장이 어떤 인물인가?
맨손으로 국대 3대 게임 개발사를 일궈낸 분들이다.
요즘 중국 개발사들의 자본력과 기술력이 한국을 넘어섰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도 하지만, 그 배후에는 한국 게임들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카피한 것이 출발선이 아닌가?
새삼 그것을 문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것을 답습하고 트렌드를 쫓는 것은 게임업계의 주요한 개발 프로세스중에 하나니까.
하지만 업계의 선두주자로서 게임 시장을 선도해온 연륜 있는 기업인을 테스트한다?
고작 나이 서른 초반에 불과한 어린 애송이가?
나는 이 점이 계속 거슬렸다.
그렇기에 판을 새로 짜기로 했을 때, 내가 비중을 둔 것은 우리의 역할을 통째로 뒤바꾸는 것이었다.
“훗······. 후후후.”
뭔가 한 마디씩 뱉어내는 것 같은 독특한 웃음이었다.
‘왜 저래?’
‘쟤 웃음이 원래 좀 별나요.’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또 무슨, 용의 구슬에 집착하는 우주 최고의 모범 상사(개인적으로 존경한다)처럼 3단 변신이라도 하는 건 줄 알았네.
“조금 늦은감이 있지만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제가 여러분께 상당히 결례했다는 느낌이군요. 사과드립니다.”
“클클, 뭘 사과 씩이나.”
조회장이 클클 웃으며 손사라레를 쳤다.
“하지만 그래도 들으셔야겠지요?”
“네. 이건 비즈니스니까요.”
쉬린칭에게 살짝 고까운 기분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정말로 중요한 문제였다.
만약 그녀에게 명확한 비전이 없고 다른 국장들과 마찬가지로 얼토당토않은 생각뿐이라면, 어떤 의미에서는 기존의 국장들이 나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나?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중국 시장은 정부의 비호 아래 너무 유약하게 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결국, 근래 차츰 외국 시장에서도 성과를 내기 시작하는 작품들도 존재하지요.”
근래 일본풍 카툰랜더링 기반의 다중 플랫폼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한 사례를 언급하는 것이리라······.
엄청난 자본이 몰려 있는 시장이다보니, 중국의 고질적인 약점인 컨텐츠 부재까지도 극복한 괴물같은 IP도 결국 탄생해버렸다.
물론 그 게임도 문제는 많지만······. 어쨌든 더 듣지 않아도 쉬린칭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 것 같다.
“저는 판호라는 제약 자체가 보다 순화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정부가 요구하는 검열이나, 시장성에 맞춘 변화 포인트는 유지하겠지만 보다 자율경제체제에 발맞춘 시스템의 구축을 바랍니다.”
“정부 부처 관계자로서는 다소 위험한 발상 아닙니까?”
“아닙니다. 중국은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엄연히 시장은 자본주의적인 시스템으로 개방한 상황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아직 과도기에 있기에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소 전문적인 정치지식까지 등장하자, 나는 이제는 그저 경청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구은 지금까지 좋은 시장으로서 기능해왔기에, 외부의 압력에 로비와 시장 가치라는 무기로 대응해왔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서방사회를 중심으로한 세계 시장의 강력한 제제가 들어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확실히······. 그것은 시간 문제지.”
조회장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그러한 세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국가광파전시총국 역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오직 제제 성 발급에 연연했다가는 이후에 판호를 발급할 외국 콘텐츠 자체가 중국 시장을 찾아오질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오히려 총국의 위상은 완전히 추락하게 되겠죠.”
실제로 이것이 얼마나 정확한 안목인지는 이 상황에서는 그리 중요치 않다.
포인트는 그녀가 확실히 상생의 기조를 중점으로 향후 우리와 좋은 파트너가 될만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쉬린칭 부국장님.”
“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후우, 저 합격한거군요?”
뭘 그렇게 안도의 한숨까지 쉬십니까? 저 따위에게 인정받는 것이 무슨 대수라고······.
하지만 그녀의 미소가 너무도 후련해 보여서 그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 지금 여자 친구 없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