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중국발 폐렴 전파력 심상치 않다!]
[메르스나, 사스 보다 전파력이 수백배는 강한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은폐해왔다는 정황 포착!]
[WHO 팬데믹 선언!]
연일 속보가 빗발치고 있었다.
“이거 까딱 잘 못 했으면 귀국도 못 했겠는데?”
중국 출장에서 돌아온 후, 연일 새로운 전염병에 관한 이야기로 매스컴이 시끄러웠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연아가 내 등뒤로 다가와 내 목을 감싸듯이 껴안았다.
“그러게 설마 이정도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조금 유난스러웠다는 감이 있었는데, 뉴스 보도를 보고있으려니, 이 정도도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회장님 괜찮으시지?”
“응. 멀쩡하셔.”
귀국 후 1주일이나 지나도록 별문제가 없었다니, 안심해도 좋겠지.
“그보다 정부지침이 내려왔는데······.”
“정부 지침? 재택근무를 장려해보라네?”
“재택근무라······. 가능할까?”
“우선 희망자 접수부터 시작해보려고.”
안 그래도 많은 외국계 IT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실험해 보고 있다는 말은 들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요원한 일이 아닐까 싶었는데, 판데믹 사태를 계기로 이런 변화가 찾아오려는 모양.
“역시 젊은 경영인 다우시네요.”
“아직 아니야.”
“하지만 내일이면 부회장님이시지. 부회장 조연아.”
내 여자친구가 국내 최정상급 게임 개발사의 부회장이라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실감이 안난달까?
“지금은 그것 보다는 예비 신부 조연아에게 집중해 주시죠. 팜플렛은 확인해봤어?”
“응.”
“소감은?”
“뭐랄까······, 너무 굉장하다는 느낌이랄까?”
연아가 우리의 신혼집으로 낙점 지은 곳은 올 겨울 완공 예정인 한강뷰 펜트하우스였다.
방이 무려 다섯 개나 있는 으리으리한 건물의 팜플렛을 훑어보고 있으려니, 현실감각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조만간 모델하우스 설명회가 있다니까, 한 번 가보자.”
“그래. 그러자.”
남들 다 한다는 주택청약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비싼 건물의 구입을 계획하고 있다니.
“표세인이 정말 많이 컷구만.”
“응? 지금 뭐라고 했어?”
“아니, 별것 아니야.”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연아를 들어 올려 내 무릎에 앉혔다.
“이렇게 여유로운 것도 오랜만이네.”
“그러게.”
원래도 우리 커플은 딱히 밖을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요즘은 시국이 혼란스러운 탓에 더더욱 호캉스로 데이트를 대신하고 있었다.
“아참, 제임스에게 깨비몬 사내유보금 운용을 전적으로 맡겼다면서?”
“응. 왜?”
뭔가 문제라도 있나?
당장 판호 프로젝트에 열중하고 있는 탓에 기둥소프트 자체는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어차피 깨비몬의 퍼블리싱은 맥베스의 소관이기에 더더욱 할 일이 없는 상황.
그렇기에 마냥 놀려 두는 것도 애매하다는 생각에 지난번 하비의 투자금을 유치할 때 만든 사내 투자 부서(라고 쓰고 제임스라 읽는다)에게 전권을 맡겼다.
“혹시 제임스가 부담스러워해?”
내가 부탁할 때는 그저 ‘알겠습니다.’ 한 마디가 끝이어서 부담을 느끼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더군다나, 제임스가 어떤 인물이던가?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든 겉모습은 만년설처럼 요지부동인 남자가 아닌가?
“아니, 언니의 말에 따르면 조금 신나 보인다던데?”
“언니? 아, 로렌스!”
아무래도 지난번 이후로 로렌스와 연아도 다소 가까워진 사이인 모양.
연아는 본인이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은 서툴러도 상대가 호의로 대하기 시작하면 적극적으로 호의로 갚아주는 타입이다.
우리 부모님과도 딱 그렇게 출발했었다.
“그런데 제임스가 신나 보이는 모습은 상상이 안 가는데?”
“워낙 티를 안 내는데, 집에 와서 이 이야기를 이 두 번이나 했대.”
집에 와서 두 번 이야기 했다는 것이 즐겁다는 증거라니······.
제임스 당신이란 사람은······.
로렌스의 위협적인(?) 청혼이 아니었다면, 결혼이 불가능했던 것 아니야?
“아무튼, 좋다는 거지?”
“그렇지. 다들 즐거운 것 같으니까. 참 신기하단 말이지.”
“뭐가?”
“오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행복해지는 것 같아.”
“행복해져?”
“응.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아니, 나는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손을 뻗어 닫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을 전달하는 것 정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을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알아봐 준다는 것이 무척 기쁘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
“부담 같은 것 갖지 않아도 괜찮아. 이미 과분할 정도로 해주었어.”
“아니, 이건 워밍업이지.”
“워밍업?”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상황에 불과하지 않은가? 결혼 후에는 연아의 가족들이 진짜로 내 가족이 된다.
더 화목하게! 더 행복하게!
나는 이 부분을 양보할 생각은 없다.
게다가, 이제 연아는 부회장이고 나 역시 기둥소프트라는 개발사의 대표다.
그 말은 이제 주변에 대한 영향력과 그 범위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어진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정말 큰 것을 목표로 할 수 있다는 거다.
“게임 유저들도 좀 더 기뻐할 수 있게 해야지.”
“그런 쪽으로는 정말 크게 기대하고 있어. 나는 그쪽은 잘 모르니까.”
라고 말하면서 연아는 내 무릎을 베고 누운 채로 서류철을 들어 올렸다.
“그건 뭐야?”
“에머리가 보내온 MOU(업무협약)관련 문서.”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와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 방문하고서는 한동안 보이지 않아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난번에 식사 한번 함께하자고 하셨는데.”
“에머리가?”
“응.”
“그렇구나, 하긴 그래야겠지.”
그래야 한다?
뭔가 평소 연아 답지 않은 대답이다.
“아무래도 그 MOU에 내가 관련된 모양이네?”
“그렇지. 뭐니 뭐니해도 표세인 팀장은 우리 맥베스의 기둥이잖아? 아참 이번에 오빠도 부장으로 승진한댔지?”
또 기둥이구나······.
입지가 달라지니 저 단어에도 묘하게 무게감이 더해지는 것 같다.
“응. 뭐 크게 변할 것은 없지만.”
아무래도 기둥 소프트 대표라는 입지가 더해진 탓에 나는 요즘 리베로로 활동하는 느낌이다.
“하긴 이제와 오빠에게 부장 정도 직급이 문제는 아니지. 이사, 아니 최소한 실장급으로는 올라야 하지 않겠어?”
연아의 말에 나는 잠시 음······. 하고 고민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답은 정해져 있다.
“일단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긴 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 포지션에서 너무 물러나기 싫어서.”
실장급부터는 아무리 생각해도 일선 개발자에서 너무 멀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부장도 일선 개발자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그래도 부장급까지는 실무진들과 함께 소통하는 역할이지 않나.
“조금 천천히 올라갈게.”
“천천히 올라간 다라······.”
“좀 건방지게 들립니까? 부회장님?”
“건방지다기보다는 역시 오빠의 사고방식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네.”
“그런가?”
“보통은 아등바등 올라가려고 안달이잖아?”
“보통은 여자친구가 부회장이 아니니까?”
“흠, 딱히 내 푸쉬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잖아?”
“무슨 말이야. 너야말로 내 비밀병기라고!”
내 말에 연아는 우습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었다.
“아무튼 이 문서는 오빠 메일에도 보내뒀으니까, 시간 날 때 한번 훑어봐. 어차피 금방 시작되는 프로젝트는 아니니까.”
“대충 뭔지라도 알려줄래?”
이런 여가 시간에도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스마트폰에 손을 뻗는 대신, 연아게에 물었다.
“VR사업을 비롯해서 차세대 게임 디스플레이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것이 골자인데.”
“아, VR······.”
“뭔가 반응이 예상과는 좀 다르네? 재미있어할 줄 알았는데?”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차세대 게임패드나 차세대 휴대용게임이 같은 물건들의 정보를 전해 들을 때마다, 내가 과도하게 흥분하며 열광하는 것을 연아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VR은 나 정도 골수 게이머들을 만족시킬만한 수준은 아니랄까?”
“흐음, 어떤 부분에서?”
이런, 괜히 연아의 업무모드 스위치를 건드려버렸다.
“탁월한 몰입감이라는 장점을 제외하고 본다면, 실제로는 부족한 그래픽 구현도를 비롯한 게임 본연의 재미를 제한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지.”
이것은 딱히 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라, 현시점 VR기기 사용자들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VR기기를 만들고 팔아야 한다면?”
연아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 떠오르는 것은 하나뿐이다.
“당장 가정용 게임보다는 아케이드 적인 접근방식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 물론 지금도 그런 시도가 있지만, 나는 보다 라이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PC 방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VR카페 레벨까지 접근성을 높이지 않으면······. 당장은 좀 어렵겠지?”
“흐음······.”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확실한 피드백과 조작감이 더해지는 차세대 콘트롤러가 필요하겠지. 이미 장갑이나 의류 형태의 콘트롤러를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는 많잖아? 가정용으로는 비용이 너무 부담될 수 있지만, 업소에서 시간 단위 체험이라면 단가를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그렇군. 오케이. 참고 할게.”
연아는 펜을 들어 문서 하단에 간략하게 메모했다.
“엠플도 VR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구나?”
“스마트폰도 게임기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엠플은 세계 최대의 게임회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둔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었지.”
“그러네. 그런데 묘하게 느렸네?”
“맞아. 이 부분에서 만큼은 엠플답지 않게 느려. 아마도 내부에서 정리가 안 된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정리가 안 되었다고?”
“VR이냐, 게임기냐, 컨트롤러냐. 어떤 파트를 주역으로 삼아서 어떻게 사업을 전개해갈지. 전혀 의견이 통합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그렇군. 별일이네. 개인PC 사업의 폭발적인 성장의 뒷배경에는 게임기로서의 역할이 상당했을 텐데······.”
개인용 PC 사업으로 출발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앰플은 아직까지도 게임 산업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VR관련 업무 협약이었던거야?”
“아니.”
“아니라고?”
“VR을 시작으로 각종 사업이 중구난방인데······. 에머리는 이것들을 싹 정리하고, 자신이 게임산업을 총괄하길 원해. 그리고 자신과 보조를 맞춰 이 사업을 주도할 파트너도 원하지.”
스케일이 크다. 게다가 접근하는 방식 역시 공격적이다.
연아가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표현이지만······.
역시 연아의 엄마라는 느낌이랄까?
조회장이 의외로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타입임을 고려할 때, 연아의 이런 공격적인 성향은 에머리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앰플의 게임 사업이라······.”
“솔직히 우리쪽에는 매력적인 제안이야. 요즘 대형 IT기업들이 게임 개발사들에 굉장히 후한 러브콜을 보내거나, 아예 인수합병을 벌이는 케이스가 많잖아? 하지만 이 제안은 그 이상이야.”
“어쩐지 신임 부회장님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결정된 것 같다는 느낌이네요?”
“아직은 저쪽도 준비가 다 된 것은 아니니, 의향 조율 정도지만······.”
그렇군. 우리 부회장님께서 관심이 있으시다면야, 부장 표세인은 마땅히 열과 성을 다해 굴러야지요!
“눈치 보지 말고,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부회장님.”
“나는 오빠가 이럴 때가 참 좋더라.”
나는 네가 좋으면, 그냥 좋더라.
< 나는 네가 좋으면, 그냥 좋더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