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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86화 (186/346)

186.

“이, 이럴 순 없어…….”

갑자기 저 놈은 또 왜 저러는 걸까?

-팀장님도 모르세요?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아?

-팀장님은 홍과장 일에 한해서는 뭐든 다 아실 줄 알았어요. ㅎ 사내 메신저로 들어온 메시지를 보니, 남궁원과 함송희도 전혀 짐작이 안가는 모양이다.

“용서 못해! 팀장님!”

어? 이 타이밍에 갑자기 나를 불러?

“왜?”

“잠깐 올라가시죠.”

뭔가 심각한 것 같은 얼굴로 옥상을 가리키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성큼성큼 올라가는 녀석.

-저도 가도 됩니까?

-저, 저도요!

그러시든지.

홍켓몬이 저렇게 심각하게 나올 때는 분명히 또 쓸데 없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옥상으로 향했다.

“너희는 왜 왔어?”

내 뒤로 옹기종기 따라 붙은 남궁원과 함송희를 보며 홍기도가 고개를 갸웃했다.

“옥상이 니꺼냐?”

“나 지금 심각하니까, 시비 걸지 마라.”

“왜 심각하냐? 뭔데?”

“양실장님이…….”

양실장?

갑자기 이 타이밍에 양실장을 언급한다고? 설마 내가 분위기를 잘 못 파악했나?

의외로 정말 심각한 문제였나?

“양실장님이 왜?”

애초에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내가 아니라 왜 홍기도 녀석에게 먼저 연락한 거지?

이런 저런 생각으로 순식간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듣고 놀라지 마세요.”

“양실장님 등판으로 이미 놀랐으니까, 그만 놀래키고 얼른 설명해.”

내 말에 남궁원과 함송희도 ‘응, 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실장님이 약속을 깼어요!”

“약속을 깨?”

“무슨 약속인데요?”

“니가 양실장님하고 무슨 약속을 하냐?”

우리 세사람의 속사포 같은 질문이 쏟아지는데도, 홍기도는 대답 대신, 머리를 부여잡고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래……. 범인이야, 뻔하지. 절대 용서 못해!”

“뭘 용서 못한다는 거야?”

“팀장님!”

또 한번 홍기도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지난번에 쉬린칭이 건방지게 회장님과 팀장님을 테스트했잖아요. 분하시죠?”

“음……. 갑자기 그 건으로 넘어간다니, 뒷이야기가 두렵구나.”

“회장님과 팀장님을 테스트했어요?”

“젊은 여성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건방지네. 팀장님 성격에 가만히 계셨던 것은 아니죠?”

이번에는 내가 선뜻 대답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톡톡 턱을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는 알겠다.

이거 딱히 들을 필요 없는 이야기다.

“나 내려간다.”

“!”

“?!”

“제 이야기 다 듣지도 않고서 내려가신다고요?”

“뻔히 쉬린칭하고 관련된 이야기네. 저는 긴급탈출 하겠습니다.”

“잠깐, 잠깐! 이대로는 못가! 공략법 하나 던져주고 가요!”

홍기도가 내 허리를 붙잡고 메달렸지만, 나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그냥 걸었다.

“팀장님, 진짜 힘 세시구나.”

“홍과장님도 작은 체격이 아닌데, 그냥 끌고 가시네요.”

등 뒤로 들려오는 다소 영양가 없는 감탄을 무시하고 그대로 계단으로 내려가려는데, 홍기도가 느닷없이 필살기를 던졌다!

“환상종!”

“?!”

“후훗, 세웠다.”

홍기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 몸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너 정말 괜찮겠냐?”

“……저도 너무 급해서 그랬어요.”

“아니, 안때릴거니까 긴장 안해도 되는데, 그런 빅딜 찬스를 여기서 써도 되냐?”

지난번 프러포즈 때, 폭죽을 보고 안 그래도 이 녀석이 배후에 있다고 예상은 했었다.

결국 이 녀석은 연아의 정체를 알아 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빅카드를 이렇게 쉽게 사용한다고?

폭죽건에 대한 고마움도 있어서, 내가 어지간한 일은 다 들어 줄텐데?

“잘 생각해봐. 나 정말 큰걸로 보답할 생각도 하고 있어.”

“어차피 기둥 소프트 지분이나 나눠주거나 하는 거죠?”

“임마, 기둥 소프트 비상장 주야.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제임스를 통해 들어온 제안들……. 액수 어마어마하다?”

“팀장님.”

“어?”

“제가 돈 욕심이 있었으면, 이 회사 안 다닙니다.”

“오! 가진 남자!”

“……좀 재수는 없는데, 있어 보이긴 하네.”

함송희와 남궁원이 흥미롭다는 듯이 물개박수를 쳤다.

“뭔가 굉장히 재수 없긴한데, 좋아. 결의는 알겠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죠. 누구와 쓰느냐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떡볶기 하나 놓고도 웃음꽃이 끊이질 않는가 하면, 비싼 코스 요리 두고도 인상 쓰고 깨작이는 경우도 있잖아요!”

어? 왜 갑자기 그럴듯한 소리를 늘어 놓는거지?

“너 병원 가야하는 것 아니냐? 요즘 신종폐렴 테스트기 나왔다던데. 이참에 같이 가자.”

아무래도 안 좋은 시기에 중국에 다녀온 탓에 검진 시스템이 나오면 바로 병원에 달려갈 참이었다.

“저 완전 멀쩡합니다.”

“아니야. 안 멀쩡한 것 같아.”

“그러게요. 듣고보니 좀 이상하네요.”

“아니지, 결국 여자 타령인거잖아. 멀쩡한 것 같은데?”

“듣고보니, 그것도 맞는 것 같네요.”

함송희는 이 말, 저 말이 나올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기에 바빴다.

“제 정신감정은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도와줘요!”

“아니, 그건 알겠는데 생각해보니까. 지난번에 하극상 어쩌고 하지 않았냐? 내 도움 안 받아야 하는 것 아냐?”

“그건 그거! 이건 이거! 지금 연애 문제가 걸렸는데, 그따위 것이 문제입니까!”

“지난번에는 자아실현이니 뭐니, 허풍은 잔뜩 늘어놓더니…….”

남궁원이 한숨을 쉬었다.

“정확히 양실장님이 무슨 약속을 깨신거고, 쉬린칭이 뭘 어쨌다는 건데?”

“양실장님 여동생 엄청 이쁘거든요?”

“그런데?”

“저 소개팅 해주신다고 했어요!”

“헉! 야, 양실장님이? 왜? 뭐 때문에? 너 양실장님 약점이라도 잡았냐?”

“……저도 몰라요. 그냥 해준다고 했어요.”

대체 양실장님이 뭐가 아시워서……. 여동생이랑 사이가 나쁜가?

“그런데 거기에 쉬린칭이 왜 나와?”

“양실장님이 이 타이밍에 급히 약속을 취소할 이유가 쉬린칭 말고 더 있어요?”

“에이, 그건 너무 억측 아니냐? 중국에서도 뭐 이미 지난 일처럼 괜찮아 보이던데?”

나는 곰곰이 중국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약간 정도 앙금이 남아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홍켓몬 연애사까지 훼방을 놓을 정도라고?

“제가 지난번에 쉬린칭이 어떤 사람인지 말씀 드렸을 텐데요?”

“어떤 사람인데?”

“맞아요. 우리에게도 정보 공유 좀 해주세요.”

“좋아. 잘 들어봐.”

홍기도는 이와중에 갤러리(?)들에게 제반 사항에 대한 브리핑까지 시작했다.

이럴거면 그냥 카페가고 하지 그랬냐.

“와, 무섭네요.”

“정말 그게 다야? 니가 바람피고 다닌 것 아니고?”

“넌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홍기도라고 생각하지. 넌 딱 바람 피고 다녀서 와이프 맘고생 시킬 상이야.”

“홍과장님이 좀 그런 이미지가 있죠.”

“……니들은 이제 그만 내려가.”

홍기도는 세상 억울하다는 얼굴이었지만, 마음이 다급한 것인지 굳이 그 문제를 붙들고 넘어지지는 않았다.

“팀장님 이제 주세요! 공략법!”

“판호가 걸린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고작 너의 연애 문제 때문에 액션이 들어가야 한다니…….”

“앗! 고민하지마! 커밍아웃 같은 것 고민 말고 이럴 때는 의리 같은 개념이 튀어나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의리 때문에 뒤통수를 아주 크게 맞은 적이 있어서 말이지.”

“그러면 더더욱 좋은 기억으로 덮어씌울 필요가 있겠네요!”

“그 좋은 기억이 너에게만 좋은 기억 아니냐?”

“제가 행복해지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법이죠!”

“……그냥 쟤 망가진 모습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팀장님?”

“안그래도 나도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야.”

나는 남궁원의 의견에 냉큼 동의했다.

“이 배신자들! 같은 파티 운운하더니! 이제는 성공했다 이거지?”

“누가 성공했냐. 우리 중에 성공한 사람 팀장님 뿐이잖아.”

“나도 아직 성공 못했다. 내가 원하는 게임은 아직 개발도…….”

그때였다.

“마침 모두 이곳에 계셨군요.”

“양실장님?”

“양실장님! 다시 한 번만 생각해 보시죠. 쉬린칭 같은 악당의 요구에 순순히 굴복하면 안 되는 거잖습니까!”

“악당?”

양실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녀석 말은 신경쓰지 마세요.”

나는 슬쩍 홍켓몬을 옆으로 치웠다.

“어쨌든 무슨 일이십니까?”

“쉬린칭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 정말로?”

사실 진짜로 쉬린칭이 이런 어이없는 일에 손을 썼을까? 하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정말로 쉬린칭이 연락을 취했다고?

“중국 서비스에 있어 판호의 중요성이 최우선인 것은 사실이지만, 퍼블리셔의 지원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지요.”

“네. 그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 시장의 특수성이랄까? 카이두는 서비스 레벨에 등급을 매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A급 지원이면 트랜드에서 한 참 벗어난 B급 게임 조차 대박이나고, 반대라면 AAA급 게임 조차 기를 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역시 표세인 팀장님과 회장님이십니다. 쉬린칭이라고 한다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인물인데, 그녀가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대체 무슨?”

“카이두의 최고 VIP 파트너쉽 서비스를 약속하겠다는군요. 중국 게임 개발력이 지금 수준에 이르기 전에만 가능했던 서비스죠. 이건 정말로 엄청난 약속입니다.”

양실장이 평소답지 않게 들뜬 얼굴이었다.

“VIP 서비스…….”

“표정이 별로 밝지 않으시군요. 이건 굉장한 일입니다.”

“아니요. 좋은 일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다만…….”

“다만?”

“거기에는 뭔가 조건이 있을 것 같은데요?”

“네. 그렇습니다. 다소 모호한 조건이긴 한데…….”

“모호한 조건이라고요?”

“네. 홍기도 과장과 제가 개인적으로 약속한 일을 취소하라고 하더군요.”

지, 진짜였구나!

쉬링칭 정말로 무서운 캐릭터구나……. 홍켓몬에게 들었을 때는 살짝 과장도 섞였겠거니 했는데…….

“쉬린칭……. 사이코메트릭스소이소패스 같은 녀석…….”

“이것은 분명 홍기도 과장님의 공로가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홍기도 과장님이라면 소개팅 따위 전혀 문제 없으시지 않습니까. 더욱이 표세인 팀장님 관련이라면 홍기도 과장님은…….”

어? 예전부터 양실장이 뭔가 홍켓몬이라는 캐릭터를 크게 오판하고 계신다고는 생각했는데, 그 어긋남이 이정도였나?

이건 완전히 잘 못 읽고 계시는 건데?

“표세인 따위와 소개팅을 비교하시다니요!”

그래. 그래야 홍켓몬 답지.

그런데 반말에 따위라니……. 이 녀석이…….

하지만 오늘은 불쌍하니 봐준다.

“홍기도 과장님?”

홍켓몬의 절규에 양실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껌뻑였다.

“다들 미워! 반드시 복수한다!”

후다닥!

홍기도는 진짜 눈물을 글썽이면서 달려가 버렸다.

“지금 제가 잘 못 본 건가요? 눈가가 상당히 촉촉했던 것으로 보였는데…….”

저 정도 눈물양이 촉촉한 정도로 보였다면, 잘 못 보신 것이 맞습니다.

“이거 오래가겠는데요?”

“걱정이네요. 쉬린칭인가 하는 분 회사에 중요한 VIP 같은데, 혼자서 전쟁이라도 하겠다고 하시는 것 아니에요?”

아마 맞을 걸?

의외로 함송희가 앞으로의 일을 정확히 예측했다.

“이거 제가 실수한 걸까요?”

“아니요. 옳은 판단이셨습니다. 어차피 처음부터 리본 묶어서 제물로 바칠 예정이었는데……. 이 정도면 거스름돈까지 잔뜩 챙긴 수준이죠.”

미안하다. 기도야.

생각해보면 첨부터 너는 제물이었어.

어차피 부하직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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