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이거 한 번 보시죠.”
제임스가 나를 회의실로 불러낸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이번 분기 수익 보고서입니다.”
“아, 그렇군요.”
기둥 소프트에서 현재 회사 이름으로 진행 중인 사업은 오직 제임스가 주관하는 투자 부문뿐이었다.
“20%?”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있기에 일단은 이 정도 성과면 괜찮을까 합니다.”
아무래도 제임스는 내 반응을 오해한 모양이다.
“아니요. 엄청난 것 아닙니까?”
분기 투자로 20% 수익이라면 굉장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내가 이 분야를 잘 모르지만, 어쨌든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말씀드렸다시피, 그렇게 엄청난 수익은 아닙니다.”
제임스는 뭐랄까, 칭찬하는 보람이 없는 타입이다. 부끄러워서 겸양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자신이 생각하는 범위에서 움직이질 않는 달까?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미심쩍은 상황에서도 주변이 칭찬하면 그런가? 하면서 들뜨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사고가 움직이질 않는다.
“그보다 어떠십니까. 투자 부분은 쪽은 재미있으십니까?”
“그전에도 개인 자산을 틈틈이 굴리긴 했지만……. 이렇게 정식 업무로 다뤄보니 알겠더군요.”
“무엇을?”
“저는 투자와는 맞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요.”
어? 연아에게 들었던 것과는 다른데?
“그래도 좋은 성과를 내신 것 아닙니까?”
“글쎄요. 투자라는 것은 원래보다 큰 기대수익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죠. 물론 회삿돈이니 보다 안정적인 운용이 고민이긴 합니다만, 투자 감각이랄까? 저는 큰 배팅은 할 수 없는 타입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달까요?”
“안정적인 운용이 중요하다면 그것이 장점 아닙니까?”
“물론 그렇지요.”
대체 무슨 소리야.
“오해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즐겁습니다.”
“즐겁다?”
“네. 즐겁습니다. 다만 이따금 조연준이 생각나더군요.”
“조연준이요?”
“네. 아무래도 투자에는 필연적으로 리스크가 동반되기 마련이죠.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이따금 큰 수익을 내서 전체 수익률을 조율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부분에서는 조연준이 낫다?”
“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군.
서로의 장단점을 떠올리면서 나름의 성과를 냈으니, 그것 자체가 재미있었던 걸까?
조연준 쪽이 더 낫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부족하다거나, 아쉽다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마 그 증거이리라.
일이라는 것이 그렇다. 자신의 적성에 맞든, 맞지 않든, 일단 주어진 역할은 충실히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성과를 달성한다면 만족감도 배가 되는 법.
지금 제임스의 생각도 아마 이런 것일 것이다. 다소 공격적인 성향은 부족하더라도, 리스크를 면밀히 검토하여 안정적인 운용을 하는 것은 제임스가 조연준보다 못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각자 나름의 비교 불가한 가치가 있는 법이다.
“어쨌든 하비의 투자금을 돌려주는 것은 어렵지 않겠군요.”
“처음부터 그것을 걱정한 적은 없으시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역시 돈 버는 데는 투자가 최고군요. 어째서 국내 대형 개발사들이 죄다 개발보다 투자에 목을 매는지 알 것 같습니다.”
“네.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는 시스템이니까요. 그런데 정말로 개인적으로 융통하실 계획은 없으신 겁니까?”
“융통이요?”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신다거나…….”
원래라면 맥베스 자체적으로도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어야 정상이겠지만.
현재로서는 판호 프로젝트 하나만 붙잡고 있는 상황.
모든 인력이 투입된 탓에 개발 자체는 압도적으로 빠르지만, 다소 여력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맥베스 오너가 고민해야 할 일이지, 실무진인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그런 것이라면 회장님이나, 부회장님이 결정하실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기둥소프트의 향후 운영방안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아! 그 이야기였어?
“하하, 어째 제임스가 더 기둥소프트 대표 같은 느낌이네요.”
아닌 말로 사실 나는 바지사장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회사 설립부터 운영까지 제임스와 양실장이 도맡아서 운영하고, 나는 그저 맥베스 소속의 개발자로 게임만 만들었다.
“제임스.”
“네?”
“혹시 돈 필요하시면 알아서 상여금 책정해서 가져가…….”
“컥!”
제임스가 사례라도 걸렸는지, 차를 마시다가 콜록콜록 기침했다.
“괜찮으세요? 왜 갑자기.”
“왜 갑자기는……. 제가 할 말 아닙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 이번 일도 잘 해주셨고, 실제로 기둥소프트 운영은 양실장님과 두 분이 다하고 계시잖아요.”
“지난번에 1억이나 쏘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출시 인센티브고, 이렇게까지 일해주시는데 뭐라도 챙겨드려야죠. 안 그래도 나중에 고생하신 분들께, 지분이라도…….”
“지분?”
순간 제임스가 눈을 날카롭게 치켜떴다.
“네. 모두 고생해주셨는데, 제가 보답할 수 있는…….”
“표세인 팀장님.”
“네.”
“이 이야기 연아나 회장님께 말씀드린 적 있으십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저도 그냥 생각만 한 수준이라서요.”
갑자기 왜 이렇게까지 진지하지? 오랜만에 절대 영도의 서늘함이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한가지……. 다소 건방진 조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절대 어떤 경우에라도 선심 쓰듯 지분을 넘겨주지 마십시오.”
“네?”
“차라리 수익금 전체를 떠 안겨 주더라도 지분 자체는 고스란히 쥐고 계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제임스의 눈빛에는 안타까움조차 배어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지분의 중요성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전부를 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 선물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나?
어차피 IT는 그런 식으로 옵션 계약이 흔히 이루어지는 업계가 아닌가?
“팀장님은 앞으로 더 큰 성공을 거듭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스스로에게 족쇄를 걸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지분이란 나누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
“마침 표세인 팀장님 주변에 계신 분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당신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이런 행운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해서라도 지분을 나눈다는 위험한 생각은 삼가시길 바랍니다.”
아마도 이 말 속에는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더 많은 위험한 경우의 수들이 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제임스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확실히 맞는 것이겠지.
“언젠가 원하지 않더라도 지분이 나뉘는 일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재고하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일단 지분에 관한 생각은 거두도록 하겠습니다.”
“네. 모쪼록 그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회장님이나, 연아. 그리고 양실장님에게도 조언을 구하시면 좋겠군요. 아마 그들 모두 저와 같은 생각이실 테니까요.”
제임스는 자신의 의견이 틀릴 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없을 거라는 듯이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튼 제 용건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이제 제 용건을 꺼낼 차례군요.”
“네?”
내 말에 제임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를 불러낸 것이 본인이니, 아마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방금 생긴 용건인 것을…….
“제임스님.”
“네.”
“기둥소프트 재무이사로 부임해주시죠.”
“!”
“원래도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제임스가 필요합니다. 부디 저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달콤한 말로 사기를 북돋는 것 이상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도 필요한 법이다.
“…….”
제임스는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확실히 이것은 내게도 쉬운 말은 아니었다. 제임스는 자그마치 조회장의 차남이다.
원한다면 회사 승계를 노려볼 수 있던 입장임에도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며 깨끗이 포기한 남자.
어째 홍기도도 그렇고, 제임스도 그렇고, 내 주변에는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의 소유자들 뿐이라는 느낌이다.
게다가 제임스는 엄연히 맥베스 아메리카 소속이고 그의 아내와 딸을 위해, 다시금 미국행을 택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임스가 내 곁에서 나를 도와주길 바랐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네.”
“이것은 혹여 제가 연아의 걸림돌이 될까 봐서입니까?”
아, 이걸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기야……. 나부터가 전무군단부터 실장 삼인방까지 연아의 원활한 인수인계를 위해, 팔걷어부치고 교통정리에 나섰던 참이다.
당연히 제임스의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다.
“만약 제임스가 연아와 대립하겠다고 나선다면…….”
“…….”
“저는 그 문제 만큼은 두 손 들고 물러나서 결과를 지켜볼 생각입니다.”
“표세인 팀장님 답지 않은데요?”
“하지만 진심입니다. 그리고 만약 제임스가 그렇게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연아가 무언가 실수를 했거나……. 혹은 연아 본인을 위해서겠지요. 저는 제임스를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뭣하지만 믿음직스럽기로는 조씨가문 제일이 아닌가?
물론 비교대상들의 성향이 다소 애매하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까지 지켜본 제임스의 됨됨이를 믿는다.
“흠……. 그렇다면 그점은 믿겠습니다.”
“망설여지시는 모양이군요.”
“네. 오해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표세인 팀장님의 제안이 무척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집사람과도 상의를 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실겁니까?”
“네. 물론입니다.”
“다행이네요. 격파시범이라도 보여야하나 생각했었는데.”
“격파요?”
“제임스는 의외로 완력을 동반한 제안에 약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왜 지난번 프로포즈 이야기했을 때…….”
“……그건 비밀로 해주기로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하하, 남들에겐 말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격파시범이라 궁금하긴 하군요.”
“이거 비싼 건가요?”
“……표세인 팀장님 재력에 뭐가 문제겠습니까? 하지만 회사 비품은 안 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
“정말 그 책상을 부수는 것이 가능합니까?”
“해본적은 없는데…….”
아마 되지 않을까요? 이거 뭐 두께도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말씀드렸다시피, 비품은 안 됩니다. 특히 표세인 팀장님은 정말 부숴버릴 것 같아서 걱정이군요.”
“에이, 저를 뭘로 보시고…….”
“…….”
“잠깐, 여기서 입 다무시면 안되죠! 제가 뭐가 됩니까? 평소에 저를 어떻게 보신겁니까?”
“크큭. 크크큭.”
“?”
제임스가 웃었다?
“역시 유쾌하군요. 표세인 팀장님과 함께 일하는 것은 즐겁습니다. 모든면에서 모시고 싶은 분이시죠.”
“모신다기 보다, 함께 일 한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번 해볼까요?”
“네?”
“한번 로렌스를 설득해 볼까요?”
나는 제임스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감사는 로렌스의 대답을 듣고 하기로 하죠.”
“뭔가 축배라도 들고 싶은 기분이군요. 하지만 회사에서 술을 마실 수는 없으니…….”
내 말에 제임스는 피식 웃었다.
“그거 아십니까?”
“그, 근무 시간에 음주는 안된 다는 것 쯤은 알고 있습니다.”
“아니요. 그 반대입니다.”
“?”
“미국에서는 개인 사무실에 위스키나 샴페인쯤은 상비해 두는 것이 보통입니다. 축하할 일이 있으면 축하를 해야지요.”
“오오! 그럼 혹시?”
“제 사무실에는 없습니다.”
“아쉽군요.”
뭐야 괜히 기대했네.
“하지만 문이사님 사무실에는 반드시 있을 겁니다.”
“아? 하지만 지금 문이사님은…….”
문이사는 요즘 삼인방을 직접 통제하기 위해 외부 스튜디오에 상주하고 있지 않나?
“한번 털어 볼까요?”
“하핫! 제임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요.”
“저 그렇게까지 융통성 없는 사람 아닙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작전은 문이사의 사무실을 약탈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한가지는 분명히 하죠.”
“?”
“이거 제임스 아이디어입니다.”
“……벌써부터 책임전가입니까?”
그래도…….
혼나는 것은 무섭잖아요.
다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