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96화 (196/346)

196.

합자회사건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쉬무빙의 보고를 받은 쉬린칭은 단칼에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해치웠다.

“솔직히 약간 시간을 끌 수도 있었을 텐데…….”

자신의 뜻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 탓에 쉬린칭이 강짜를 부릴 수도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작 쉬린칭은 조연아의 예상과는 다르게 신속하게 움직였다.

“양실장님 수완이 아닐까요?”

고학현과 표세인, 그리고 세 번째로 승진한 김인숙 실장이 중국으로 떠난 양실장의 이름을 언급했다.

“글쎄요. 어쩐지 동행한 홍기도 과장의 공이 아닐까 신경쓰이던데…….”

“아……. 그때는 정말 굉장했죠.”

김인숙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맞아요. 설마 회사 로비에서……. 그럴 줄이야.”

합자회사를 위해 중국으로 떠나는 양실장의 보좌로 지목된 홍기도는 회사 로비에 드러누워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싫어! 싫다고! 내가 무슨 심청이냐! 왜 만날 나를 보내는 건데!’

‘남들 다 보는데, 이러지 말자.’

라고 말하며 표세인은 홍기도를 번쩍 들어서 그대로 차에 실어 보냈다.

“홍기도 과장도 작은 키가 아닌데, 무슨 고양이처럼……. 표세인 부장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대단하죠. 가끔 말을 듣긴했는데, 홍기도 과장이 엇나가면 그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어린애 땡깡이라고 해야할까? 아무리 싫어도 설마 그렇게까지 행동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번 중국 진출의 최대 공로자 중에 한 사람이죠.”

김인숙의 말에 조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회사 최고 에이스 그룹의 일원이, 울며불며 땡깡이라니…….

“어쩐지 앞으로가 걱정이네.”

“네? 뭐라고 하셨죠?”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튼 일이 잘 진행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의외네요. 저는 이번에도 표세인 부장이 동행할 줄 알았는 데요.”

“국내에서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요.”

안 그래도, 표세인에게 물었었다. 홍기도라는 캐릭터를 표세인 말고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냥꾼은 덫을 준비해야지.’

표세인은 단칼에 거절하고 국내에 남았다.

*

*

*

“이게 지금 무슨 개소리야!”

백용현은 게거품을 물며 소리를 내질렀다.

맥베스의 약진에 비례해 떨어지는 주가를 방어할 목적으로 대규모의 마케팅을 준비했더랬다.

그 금액만 무려 천억이 넘는 수준.

터무니없는 금액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근래 새로운 마케팅으로 재기를 꾀한 사례가 없지 않다는 판단.

게다가 어차피 대형 개발사들은 이 금액 이상을 마케팅에 쏟아붓고, 맥슨의 경우에는 당장 신규 타이틀 출시도 없는 상황.

더욱이 한때나마 중국 시장을 잠식했던 인기 IP의 부흥을 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카이두가 서비스 채널에 TO가 없다는 이유로 그들이 보유한 미디어 채널 제공을 거절했고, 만트라라는 신생 회사에 문의하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제 투자금이 위험한 상황입니까?”

조용히 홍차를 홀짝이던 조연준이 넌지시 던진말에 백용현은 펄쩍 뛰었다.

“위험하긴 뭐가 위험해!”

어차피 피치 못할 상황에 대한 대비책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손해를 봐도 백용현 본인이 지는 것이지, 조연준의 투자금에는 일절 손해가 있을 수 없었다.

“일단 만트라라고 했던가요? 그 회사에 문의를 해보는 것이 우선 아닙니까?”

“이미 시켜뒀어!”

입다물고 잠자코 있으라는 뜻이 여실히 전해지는 호통이었다.

그 반응이 못내 우스웠기에 조연준은 슬쩍 고개를 돌려 자신의 비웃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썼다.

“아버지!”

순간 회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백용현의 아들 백원성이 들이닥쳤다.

‘회사에서 아버지라니……. 어느쪽이 콩가루인지, 나 원.’

조연준은 피식 조소했다.

“지금 만트라와 연락을 했는데……. 이거 보통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요점을 말해! 요점을!”

“앞으로 국내게임 마케팅 채널은 모조리 그 쪽에서 관리 한답니다.”

“뭐?”

“휘우~”

조연준은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표세인…….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거지?’

단순히 국내 게임 한정이라고는 했지만, 결국 마케팅 채널 전부를 컨트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건 엄청난 일이다.

“쉬린칭이 세운 회사랍니다.”

“아니, 아무리 카이두 대주주라지만……. 광파총국의 부국장이라도…….”

“그녀가 네 개로 나뉜 총국 전체를 삼키고 총국장에 부임했답니다.”

“뭐?!”

중국 정부기관의 소식은 외부에서 소상히 들여다 보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큰 일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게다가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럼 바이젠은…….”

맥베스가 부국장인 쉬린칭과의 꽌시가 있었다면, 맥슨은 국장인 바이젠 라인이라 할 수 있었다.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는 중이랍니다. 그 사이에 쉬린칭이 모조리……. 이제는 그가 돌아와도 아마 자리가 없을 지경이랍니다.”

“허허…….”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백용현은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현재 맥슨의 주가를 지탱하는 것은 다름 아닌, 중국 서비스 중인 과거의 IP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요한 꽌시를 잃어버린 것!

“어,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나?”

“애초에 불안요소는 있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어찌 그 어린 것이…….”

맥슨이 중국시장에 진출하던 시점만 해도 쉬린칭은 광파총국은커녕 중국에도 없었다.

그런데 고작 십 수년 만에 무서운 기세로 힘을 기르더니, 이제는 아예 광파총국 전체를 집어 삼켜 버린 것.

“아직은 시기상조라 생각했거늘…….”

언제고 시류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의 폐해는 막심한 법이었다.

“그저 맥베스가 운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운도 실력이다.

주식 판에서 오래 굴러온 조연준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쉬린칭이 숨어 지내던 인물도 아닌데, 그저 바이젠이라는 인물 하나만 믿고 방심했던 것은 분명한 악수였다.

‘이제 슬슬 발을 뺄차례인가?’

조연준이 그렇게 자신의 다음 행보를 고려하고 있을 때였다.

-우우웅

스마트폰의 울음소리와 함께 도착한 메시지 하나.

-더 질러.

순간 등골이 오싹한 심정이었다.

‘이 녀석은……. 정말이지 무섭군.’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노닐던 손오공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누군가의 손아귀에 쥐어졌다는 느낌.

이 정도까지 모든 수를 훤히 내려다보는 상대이기 때문일까?

불쾌하다기보다 어이가 없어 유쾌하다.

과연 얼마나 계속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앞선다.

그리고 그것을 목격하려면……. 무대에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후의 각본을 계속 감상할 수 있을 테니까.

“백회장님.”

“뭐야?”

“이대로 포기하실 생각이십니까?”

“뭐?”

“아니시죠.”

“다, 당연하지!”

백용현이 어떤 인물이던가?

원하는 물건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주머니속에 넣어왔다. 그런 방식으로 국내 굴지의 개발사를 설립한 인물이 아니던가?

“쉬린칭을 잡죠.”

“어떻게?”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이두의 대주주야. 돈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백용현의 말에 조연준이 흰이를 드러냈다.

“……지금 나를 비웃는 건가?”

늙은 호랑이가 움찔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조연준의 계산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상대를 도발하는 것이라면 표세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회장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이 부족한 일이 있는 법이지 않습니까?”

“끄응…….”

“설마 이 시점에서 물러서시겠습니까? 그럼 저는 약속한 대로…….”

“그, 그럴 수는 없지!”

조연준의 투자금은 만약 일이 잘 못 되었을 경우, 추가증자를 통해 만든 주식으로 지불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그런 무리수를 감행했다가는 주가가 폭락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저도 난처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원래 투자라는 것은 결단력의 문제 아닙니까?”

조연준의 표정은 여전히 이죽거리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용케 참았다 싶을 정도의 본성.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는 예상 이상의 효과를 나타냈다.

백용현은 세상이 두쪽나는 한이 있어도 남에게 비웃음 당하고 물러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원성아.”

“네. 아버지.”

“비자금, 얼마까지 끌어 올 수 있냐?”

외국에 분산해놓은 비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금감원의 기세가 예전과는 다른 상황.

IT기업들의 비자금 꼼수는 오래된 기업들에 비해 그 노하우가 완벽하지 않다.

“아버지, 그것은 위험합니다.”

“예. 위험하지요. 저도 굳이 거기까지 권하지는 못하겠군요.”

“…….”

조연준의 이죽거림에 백용현은 까드득, 이를 갈았다.

천하의 맥슨 회장 백용현이 고작 수천억이 부족해서 난처한 상황에 빠지다니!

하지만 비자금 회수는 확실히 좋은 수가 아니었다.

“좋아. 내가 좀 흥분했었군. 이렇게 하지.”

“경청하겠습니다.”

“이번 결산에 추가증자 확정하겠네.”

“아버지!”

“넌 잠자코 있어! 이건 우리 맥슨의 사활이 걸린 일이야!”

백용현은 본능적으로 이 상황이 맥슨의 최대 위기라는 것을 직감했다.

맥슨의 기반 중심에는 중국시장이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개발에 손을 놓고 돈놀이에 열중한 탓에 새롭게 약동하는 중국 개발사들을 제칠만한 개발력을 키우지 못했다.

더욱이 알짜배기 소규모 개발사들을 무작정 흡수하고 그 인력들을 아무렇게나 흩뿌려 버린 탓에, 새롭게 투자할만한 국내 개발사도 남지 않은 상황.

새로운 타개책이 마련될때까지, 중국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이미 중국 개발사들과 힘 싸움으로는 어림도 없는 상황.

개미 투자자들의 눈먼돈이나마 지키려면…….

맥베스에게 밀려날 수는 없었다.

“원래 이야기 한 것 보다 인센티브를 더 얹어주지. 하지만 추가 투자금은 그쪽이 100% 감당하는 거야. 할 수 있겠나?”

“흐음……. 100%라…….”

“자신 없나?”

조연준이 쉽게 대답을 못하자, 백용현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하지만…….

조연준의 입장에서 이 모든 일에 자신의 돈은 동전 하나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인센티브는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 마케팅 영상부터 전략이 만만치 않게 준비했어. 채널만 얻으면 할만해.”

그 말은 진심이었다.

어느새부턴가 개발 보다 마케팅 노하우를 앞세워 세를 불려오지 않았던가?

십 년 넘게 그것에만 집중해왔다. 이 부분만큼은 맥베스도, MC소프트도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다.

“알겠습니다. 대신 쉬린칭 포섭은 전적으로 제가 맡아서 진행하겠습니다.”

“뭐라고?”

“바이젠의 실각도 파악하지 못하셨지 않습니까.”

“돈 계산에 장난치면 용서 없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그 계산은 자신이 할 것도 아니니까.

조연준은 자신만만하게 미소지었다.

여기 의자 참 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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