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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97화 (197/346)

197.

“조연준이 생각보다 일을 잘해주었군요.”

제임스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도발하는 재주 하나는 끝내주지 않습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특유의 이죽거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용처에 따라서는 그만한 인재도 없다는 느낌.

“정말 표세인 부장님은 놀랍습니다. 조연준 같은 인물까지도 이렇게 잘 다루시다니…….”

다름 아닌 자신의 친형. 그 인물의 됨됨이는 제임스가 나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가까운 사이이기에 그 인물에 대한 사고가 고정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그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서, 곧장 그를 이용할 수 있는 방편을 떠올린 것일 수 있을 것이다.

“다 나름의 쓰임새가 있기 마련이 아니겠습니까?”

“그 당연한 것을 보통은 못하니까요.”

“어째 요즘 칭찬이 과해지신 것이, 양실장님과 비슷해지신 것 같네요.”

제임스야말로 첫 만남을 떠올려보면, 이렇게 서로를 칭찬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않았나?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하! 이것도 우습다. 처음에는 나름 문이사 진영이라서 양실장을 살짝 고깝게 보는 느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문이사 보다도 양실장과 함께 다닐때가 더 많다니.

“어쨌든 조연준이 요청한 금액은 그대로 처리하면 되겠지요?”

“예. 그렇게 해주세요.”

“……솔직히 조금 다른 쪽을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표세인 부장님, 맥슨의 대주주가 되시는 것 아닙니까?”

“대주주까지 될 수 있을까요? 고작 이정도 돈으로?”

“순간적으로 주가가 폭락하고 인센티브를 이용해서 추가 증자 비율을 높이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맥슨 삼켜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내 말에 제임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맥슨을 삼킨다고요?”

“마침 끝내주는 마케팅 회사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맥슨이 보유한 IP들은 충분한 저력이 있지요. 무엇보다 이번에 그들이 준비한 마케팅 전략은 훌륭한 것 같으니…….”

“시간을 지연시켜 주가를 떨어트린 후에……. 매수하고 반등. 이거 되겠는데요?”

“그렇습니까?”

“표세인 부장님.”

“네.”

“기둥소프트 유보금……. 제가 어디까지 운용해도 되는 겁니까?”

“직원 급여 부분을 제외한 전부. 언제나 그렇듯이 제임스에게 맡길 뿐입니다.”

나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

그런데 뭐지? 제임스의 표정이 이상하다?

남자의 윙크에 당황한 걸까? 미국에서는 남자끼리 윙크하면 안되나? 하긴 한국에서도 딱히 멋진 그림이 아니긴한데…….

“무서운 분이십니다. 정말로…….”

“뭘 또 그렇게까지 말씀하십니까.”

“이 건은 제가 한 번 실행해 보겠습니다. 마침 조연준이라면 이쪽에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요.”

확실히 지난번 미국지사 공격을 위해 NFT관련 부정여론을 퍼트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제임스 스스로 조연준을 언급하다니!

“괜찮겠습니까?”

“일은 일입니다. 일에 사적인 감정 개입시키는 것 아니지요.”

캬~ 이런 부분에서는 정말 조씨가문의 가풍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들은 원수하고도 손 잡고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재력가의 사고방식인 것일까?

“다만, 한가지.”

“?”

나는 당장이라도 조연준을 찾아 나설 것 같은 제임스를 붙잡았다.

“실행시기는 저와 보조를 맞춰주셔야 합니다.”

“아, 물론입니다. 허가는 받아야죠.”

“아니요. 허가의 의미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달까요?”

“보조를 맞춘다고요?”

제임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하지는 않은데……. 홍기도 녀석이 중국에서 밥값을 한다면, 이건 성동격서에 가까운 작전이 될겁니다.”

“성동격서…….”

“물론 주공은 제임스와 조연준의 몫이겠지만, 그전에 가능하면 백회장의 이목을 좀 가리고 싶어서요.”

이미 덫에 걸린 상황이지만, 그래도 만전을 기해야 하지 않겠나?

자고로 사냥이 끝날때까지 사냥꾼은 방심해서는 안 되는 법!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

“대체 어느 시점부터, 어디까지 계산하신 겁니까? 쉬린칭의 제안만하더라도 예측외의 상황 아니었습니까?”

제임스의 굳은 표정에 나는 웃음이 났다.

양실장도 그렇지만, 요즘 다들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다.

“하하하. 저를 너무 대단하게 보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 주변 흐름에 편승에서 바둑돌을 하나씩 옮겨봤을 뿐입니다.”

내가 뭐라고 앞날을 꿰뚫어 보겠는가? 그냥 흘러가는 흐름에 맞춰서 내게 도움되는 액션을 하나씩 취해보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계속 웃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제임스의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 한 방울이 보였다.

“제임스?”

“역시, 제가 아버지의 뒤를 잊지 않기로 한 것은 틀림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조연준을 좀 만나고 와야겠습니다.”

제임스는 그렇게 방을 떠나버렸고, 나 혼자 남았다.

“이 기회에 형제간의 앙금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았으면 좋겠네.”

결혼식장에서 연아의 가족들이 적어도 싫은 기색 없이 한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건 정말 멋진 장면일 것이다.

나는 잠시 연아의 환한 미소를 상상하며, 생각에 잠겼다.

*

*

*

“……그래도 나름 공적인 자리인데, 표정이 너무 어두운 것 아닌가?”

나름이 아니라, 대놓고 비즈니스미팅이지만, 쉬린칭의 말대로 홍기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아무래도 홍기도 과장이 요즘 머리가 복잡한 모양입니다. 맥베스의 차기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의 담당자로 지목되었으니까요.”

양성태는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중국 출장 내내 홍기도는 이런 상태였다. 딱히 화났다는 것이 아니라 뭔가 고민에 잠긴 것 같은 모습.

‘뭐 본사 로비에서 벌인 퍼포먼스를 고려할 때, 이정도면 무척 양호한 편이지.’

홍기도가 본사 로비에 드러눕던 모습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양성태에게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퍼포먼스, 범상한.

만약 표세인이 이 단어들을 들었다면, 역시 양실장님이라며 감탄할만큼 대단한 순화능력이었다.

“약간 약한 것 같아요.”

회사설립과 기타 협의과정 내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만 지키던 홍기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아니, 애초에 상식적으로 과장급 인사가 입을 열 자리는 아니었다.

만약 홍기도가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면 침묵을 고수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어쨌든 쉬린칭과 양성태는 홍기도의 말에 주목했다.

“단순히 상대측의 마케팅 일정을 뒤로 미루는 것만으로는 밋밋해요.”

“그렇긴 합니다만, 일단 이 건은 저희 오행전기가 방해 받지 않고 성공적인 론칭을 하는 것이…….”

“표세인 부장이 저를 여기로 보냈잖아요.”

“네? 아, 네.”

확실히 홍기도의 이번 중국행은 쉬린칭의 요청 조차 아니었다.

하지만 표세인은 굳이 양성태에게 홍기도를 딸려 보냈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홍기도는 표세인의 그림을 훤히 꿰뚫어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표세인이 무엇을 바라는 가?

표세인에게 무엇이 더 도움이 되는 가?

오직 그 하나만을 고민하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핵심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다.

“표세인 부장의 생각이라면 꼭 좀 들어보고 싶네. 조연아 부회장도 그렇고……. 맥베스에는 참 인재가 많단 말이지.”

“너가 모르는 인재도 많아. 양실장님이나 제임스도 굉장해!”

“……네 직원도 아닌데 뭘 그리 자랑스러워하지?”

“동료잖아.”

아니, 상사겠지.

하지만 양성태는 굳이 그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어쨌든 하려던 말이나 계속해봐.”

“미운 놈에게 한방 먹일 때는 가장 아프게 때려야지. 아마 표세인 부장님은 이 기회에 맥슨이 다시는 수작을 부릴 엄두도 낼 수 없도록 짖밟고 싶을 거야.”

“표세인 부장이 그런 느낌이었던가?”

쉬린칭이 슬쩍 천장을 바라보며 표세인에 대한 인상을 떠올렸다.

훌쩍 큰 키에 당당한 체격.

다소 눈매는 날카롭지만, 그러면서도 언제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함께하고 있었다.

적이라도 대범하게 포용할 것 같은 큰 그릇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아니야. 그 사람 그릇은 무거운 장독 같은 느낌이라서, 안에 안 담긴 것은 무게로 짓눌러 버리는 느낌이지.”

“그렇군. 그거 기억해야겠군. 하지만 그래서 정확히 뭘 어쩌라는 거야?”

“카이두가 손에 쥐고 있는 카드 중에서 한국시장에 서비스 중이거나, 곧 출시예정인 타이틀이 있지?”

“물론이지.”

다름 아닌,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회사 카이두다.

당연히 수많은 IP가 서비스 중이거나, 출시 준비 중이다.

“그쪽 프로모션을 차라리 키워버리는 거지. 반대로 이쪽 마케팅 일정을 당기는 거야.”

“흐음……. 그게 당장 어떻게 맥슨을 공격하는 루트가 된다는 거지?”

“중국발 게임의 호황은 한국 게임 개발사들의 주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그런데 이런 시점에 신규 타이틀이 아닌, 옛 IP들을 위한 대규모 마케팅이나 준비하고 있다?”

“그렇군요. 그런식의 여론몰이가 된다면, 맥슨에게는 치명적이겠군요.”

“우리가 딱 여기까지만하면! 나머지는 표세인 부장님이 알아서 국내 여론을 뒤흔들어 놓을 거야.”

홍기도의 말에 쉬린칭과 양성태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마 홍기도 과장을 보낸 것이……. 처음부터 여기까지 내다 보고 계획된 것이었습니까?”

“아니, 애초에 내 제안 자체가 그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었을 텐데? 대체 그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거기까지?”

양성태와 쉬린칭의 감탄에 홍기도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걸 어떻게 일일이 계획해? 척하면, 척인거지.”

“…….”

“…….”

홍기도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짧은 침묵이 주위를 감쌌다.

“대체 뭐가 너와 표세인 부장을 그런 관계로 이끈 거지?”

한때 쉬린칭이 홍기도에게 바랐던 것. 아니, 그 이상의 관계를 구축해버린 표세인과 홍기도에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너는 남자라면 질색하지 않았나?”

“그건 당연하지.”

“표세인 부장이 여자는 아닐텐데?”

겉모습부터 성격까지 남자답기로 그만한 사람이 또 있을까?

오래 지켜보지 않은 쉬린칭 조차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

“이건 좀 다르지.”

“?”

“나랑 표세인 부장은……. 뭐랄까, 운명 같은…….”

“니 요우 삥아?(너 돌았냐)! 표세인 부장이 왜 너의 운명이냐! 남자끼리 결혼이라도 할 생각이냐!”

“갑자기 결혼드립은 뭐야? 정신나갔냐?”

갑자기 흥분한 쉬린칭과 그에 지지않고 중국어로 화내기 시작하는 홍기도.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양성태는 넥타이를 슬쩍 풀고 쇼파에 등을 기댔다.

‘회장님께서 중국 출장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등받이의 포근함이라고 하셨더랬지……. 그게 이 뜻이었구나.’

조회장과 표세인이 그랬던 것처럼 양성태는 느긋하게 등을 기대며 따뜻한 차를 음미했다.

끼지 않을 곳에는 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처세술이 아니던가?

맥베스의 수완가 양성태.

그 정도 처세술 요령이 없는 남자가 아니었다.

두 사람의 투덕거림에서 눈길을 돌린 양성태는 창밖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며 차를 음미했다.

‘이런 꼴로도 성과 하나는 흠잡을 곳이 없다니……. 나도 늙은 건가? 그나저나, 의자 참 편하군.’

자타공인 맥베스 최강 동안 양성태는 스스로의 나이를 실감했다.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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