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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98화 (198/346)

198.

“살다보니, 이런 일이 다 있군.”

한적한 바에서 마주한 두 사람.

조연준은 자신의 동생 제임스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웬일로 나에게 연락을 했지?”

“온더락으로…….”

제임스는 대답대신 술을 주문하며 조연준의 옆에 앉았다.

-짤랑.

두 사람은 서로 얼굴도 보지 않은 채로 입을 열지 않았기에, 그들 사이에는 얼음이 잔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맴돌 뿐이었다.

“말도 못 꺼낼 정도로 속이 타나? 안 그래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어때? 동생 밑에서 일하는 느낌은?”

“그렇게 사람 속을 긁지 않고는 말을 못 하나?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니, 썩 편하지는 않은 가봐?”

조연준이 특유의 이죽거림으로 대꾸했다. 어릴 때부터 한결같았다.

정말로 정이가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뭐든 쓰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표세인과 나눈 대화가 생각나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러고보니, 키는 내가 더 컸었지.”

조씨집안에서 가장 키가 큰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새삼 그것이 실감이 난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아니, 별것 아니야. 한잔더.”

제임스는 술잔을 비우고 새잔을 주문했다.

“계속 죽치고 술이나 먹자고 불러낸 것은 아니잖아?”

“요즘 잘하고 있는 것 같던데.”

“잘하고 있어?”

“백회장 꼬드기는 것 말이야.”

“아아, 그래. 처음 들었을 때도 재미있다 싶었는데……. 옆에서 실제로 지켜보니 더 재미있더군. 그 양반 반응이 시시각각 달라서 말이지.”

조연준도 피식 웃었다.

언제나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던 백용현이 덫에 걸린 것도 모르고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표세인, 그 녀석 정말 웃긴 놈이야.”

“웃겨?”

“그래. 안 웃겨? 내 성격까지 바로 읽어내서 일을 떠넘기잖아. 그것도 거절할 수도 없는 제안을 가지고 와선 말이지…….”

자신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지만, 그것조차 표세인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투자금 제안과 함께 백용현에게 한 방 먹인다는 그럴듯한 일거리를 가져오지 않았던가?

“웃기다기 보다는 무섭지.”

“그래. 무섭지.”

조연준이 맞장구치자, 제임스가 깜짝 놀랐다.

“뭘 그렇게 놀라?”

“세상에 무서운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죽거리다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당당한 건 너겠지. 나는 나름 재고 행동하는 타입이야.”

원래 빈수레가 요란한 법.

겁없어 보이는 사람일수록 내심 두려움이 많은 타입이 많다.

“그런 인간적인 면이 있는 줄은 몰랐군.”

“많지는 않아. 거의 없어. 너 그거 알아?”

“?”

“표세인 그녀석 앞에서 조폭들도 꼼짝 못하는 거?”

“조폭?”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순간 제임스가 불쾌하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설픈 수작은 부리지 말지? 이간질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수가 너무 얕지 않아?”

“수작 같은 소리하고 있네. 본인더러 물어봐라. 카지노 관리하는 조폭 두목 같은 녀석에게 대뜸 주먹부터 날리는데, 정작 조폭은 굽신굽신하기 바쁘더라.”

듣고보니, 표세인이라면 그럴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조폭 같은 인물들과 뭔가 연이 있을거라는 느낌은 아니지만…….

“…….”

“그렇게 그림이 안 그려지나?”

조연준의 물음에 제임스는 순간적으로 표세인과의 첫만남을 떠올렸다.

미국지사를 방문했을 때……. 거구의 마커스를 단번에 쓰러트려버리던 그 모습.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짜고 치는 장난처럼 마커스가 뒤로 넘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싸움을 잘하다 보니, 그런 거겠지. 운동하던 사람이잖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치고 태권도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있나?”

“아무튼 허튼소리 퍼트리고 다닐 생각마.”

“내 경호원을 단박에 쓰러트리는 녀석 이야기를 내가 어디에서 하고 다니겠나? 증권가에 마피아 없는 줄 알아? 나는 그런 쪽은 절대 안 건드려.”

월가에서 이름난 브로커치고, 자금 세탁 쪽에 한 번쯤 연루되지 않을 수는 없다.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이후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정말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정말로 왜 불렀는지, 용건 말 안할거야? 너는 술상대로도 빵점이야.”

“걱정 마. 그런 쪽은 취미 없어. 일 이야기야.”

“그래. 말해 보라고.”

어차피 예상하던 일이다.

이들 형제가 일 이외에 다른 용건으로 얼굴을 볼일은 없으니까.

“지난번 미국지사의 NFT 여론 조장. 한국에서도 가능하겠어?”

“크크크크큭.”

제임스의 질문에 조연준은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웃기 시작했다.

“못 본 사이에 더 이상해졌군.”

“……이 미친 자식들…….”

“갑자기 무슨 소리지?”

조연준은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럼에도 얼굴에는 아직 큼직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냥 한 방 먹이는 계획이라더니……. 백회장을 통째로 구워 먹으려는 거냐?”

“표현이 좀 그렇지만……. 기회가 보인다면야. 회사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움직여야지.”

이득이 보인다면 행동한다. 그것은 당연한 원칙이다.

하지만 마케팅까지 이용해 경쟁자의 힘을 깎고 송곳니를 박아 넣는 것은 어떤가?

“저~언혀! 문제없지. 아주 마음에 들어. 솔직히 아버지 작품일 리는 없고……. 표세인 그 녀석 참 인물이군.”

조회장이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만한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배후가 좁혀질 수밖에 없다.

“딱히 거짓선동을 할 필요는 없어. 진실만 말하면 돼.”

신규 개발 없이, 기존 IP에 막대한 마케팅에 힘을 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표세인은 무언가 한 가지를 더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보면 대강 예측은 가능하다.

중국발 외신이 게임업계를 흔들고, 자신들의 손으로 쐐기를 밖게 될 것이다.

“어차피 이미 휘청대는 상태야. 자업자득이지.”

개발 보다 투자에 열을 올린 지 오래. 이후 신규 사업에 대한 전망이 신통치 않은 탓에 작은 파도에도 휘청거릴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맥슨을 집어삼켜서 뭔가 해볼만한 것이 있나?”

“그걸 내가 말할 것 같아? 그러고보니, 아까 한 말에 대해 대답을 못했네.”

“아까 한 말?”

“나는 연아 밑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기둥소프트의 재무이사로 취임할 예정이야.”

“하!”

제임스의 말에 조연준은 짧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 정도 관계였나?”

“그렇게 되더군.”

“하지만 굳이…….”

어차피 맥베스 내에서도 서로 손발을 척척 맞춰가고 있지 않았던가?

지난번 조연준 자신을 공격하던 때에도 표세인이 조연준을 상대하는 사이, 제임스는 하비를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표세인 부장이 제안했을 때……. 솔직히 기쁘더군.”

“기쁘다?”

“지금 그의 휘하에 있는 쟁쟁한 인물들을 제치고 내가 가장 먼저 기둥소프트에 이사 자리를 꿰찬 셈이니까.”

양성태, 문상훈을 포함한 쟁쟁한 이들 속에서 표세인이 가장 먼저 자신에게 권유했다는 사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우스운 일이다. 내심 경쟁심이 있었구나 싶은 느낌.

그것이 살짝 재미있다.

덕분에 아내를 설득하는 것도 쉬웠다. 자신도 모르게 비집고 나온 미소 덕분에 로렌스는 흔쾌히 동의했다.

물론 타냐가 한국의 친구들을 좋아하는 것과, 새로 가입한 테니스 동호회가 즐거운 덕분도 있겠지만…….

어쨌든 설득조차 필요가 없었다.

“……네가 웃을 때도 있군.”

“가끔 있었어. 우리가 함께 하지 않을 때는 나도 웃지.”

제임스는 이내 평소의 냉막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어.”

조연준도 흥, 하며 고개를 돌려 술을 홀짝였다.

“어쨌든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냐고?”

제임스의 말에 조연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잔을 쾅 내려 놓았다.

“니들은 흉내도 못내. 표세인에게 전해, 약속한 보상이나 제대로 준비하라고, 이건 추가 업무야. 보너스가 있어야 할거야.”

“잘 할 수 있다니 다행이군.”

제임스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추가보상? 다른 것은 몰라도 돈 문제라면 지금의 표세인은 전혀 문제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둥소프트에 쌓여가는 막대한 자금을 쳐다도 안 보는 남자가 아니던가?

“역시 작아…….”

“지금 뭐라고 했지?”

“표세인 부장은 참 큰 사람이라고…….”

“단어가 바뀐 것 같은데?”

“…….”

제임스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

*

*

-홍기도 과장은 역시 홍기도 과장이더군요.

양실장의 음성에는 감탄과 일종의 체념 같은 것이 반반씩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어째서요?

“너무 무책임하게 홍기도 녀석을 떠맡긴 것 같아서요.”

-하하, 재미있었습니다. 나름…….

나름에서 멈추면……. 그냥 인사치례인거잖아요.

저도 다 안다고요.

-어쨌든 쉬린칭도 동의했습니다. 자신도 마침 맥슨에 지분 보유율을 늘리려고 했다는군요.

“원래도 보유하고 있었군요?”

-맥베스나 엠씨소프트도 보유중일 겁니다. 카이두 대주주아닙니까. 보통 그녀의 개인자금도 함께 움직일 겁니다.

카이두야 요즘 굵직한 개발사들 중에 투자하지 않은 곳이 없기는 하겠지.

-아무튼 이제 곧 출국할 시간입니다. 나머지는 도착해서 대화하시죠.

“퇴근하셔서 쉬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법 긴 출장이었는데……. 아내, 분께서도…….”

-저희 집사람은 저보다 더 바쁩니다. 지금은 아마, 프랑스에 있겠군요.

역시 양실장의 아내분 정도면 뭔가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모쪼록 조심히 오십시오.”

-네. 그럼 이만.

짧은 통화가 끝났다.

“양실장님?”

“응. 이제 귀국하신다고.”

“표정을 보니, 잘 진행되는 것 같네?”

“물론이지. 양실장님이잖아.”

“그래도 중국쪽 건은 홍기도 과장 지분이 더 크지 않아?”

흠……. 그렇긴 한데 어차피 아직은 혼자서 내돌릴 수 없는 카드니까.

서브는 서브지.

“그보다 정말 괜찮겠어?”

“뭐가?”

“홍기도에게 인디 게임 개발 부문을 맡긴 것 말이야.”

“많이 걱정되나봐?”

연아는 룸 풀장에 몸을 반쯤 담근채로 피식 웃었다.

“그래도 나름 최측근이잖아?”

“녀석과 내 사이에 측근 같은 무게감 있는 단어는 좀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내심 양실장님과 문이사님도 오빠의 최측근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느낌이던데?”

“뭐? 그분들이?”

“그렇게나 홍기도 과장과 차이가 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 분들은 내 상사잖아. 포지션상 내 뒤를 받쳐주고 계신거지. 측근은 좀 그렇지.”

“나이 이야기라면 나는 할 말이 없네.”

“부회장님은 직급이 깡패시지 않습니까!”

내 말에 연아가 나에게 물을 뿌렸다.

“여친에게 깡패가 뭐냐!”

“흠흠, 죄송합니다.”

“더욱 신경쓰도록.”

우리는 그렇게 잠시 동안 킬킬 거렸다.

“어쨌든 마케팅이나, 백회장님의 방해공작은 그렇다치고 판호 프로젝트 자체는 어때?”

“지난번에 프로토타입 플레이 안 해봤어?”

“해봤는데, 사실 이쪽 장르는 워낙 이해가 잘 안되니까.”

그럴만하다, 유저간 경쟁게임을 혼자서 플레이해서 완전히 가늠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나는 팀원들과 테스트를 해봤지!

“그래서 어떤데?”

“부회장님.”

“응?”

“중국 시장을 바치겠습니다!”

“어? 나 지금 살짝 떨렸다.”

“……들어가시죠.”

나는 연아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

“바닥 젖어!”

“우리가 청소할 것도 아니잖아?”

나도 이제 나름 부자 마인드 생긴 것 같지?

프로 도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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