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199화 (199/346)

199.

엄폐물 뒤에 숨어 있던 남자는 조심스럽게 검을 뽑아들었다.

-투타타타!

적이 엄폐물 위로 총탄을 갈기며 서서히 접근한다.

하지만 남자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기다리던 만큼의 거리가 좁혀진 순간, 남자는 즉각 벽을 밟고 갈지자로 뛰어올랐다.

“!”

-스걱!

휘둘러지는 검의 궤적을 따라 현란한 궤적이 그려진다.

적의 총구가 남자를 쫓아 정신없이 움직였으나, 벽을 딛고 사선을 피해 배후를 잡은 남자는 결국 승리를 쟁취했다.

“물리 엔진 좋고! 손맛 좋고!”

남자는 짧은 감탄과 함께 다른 사냥감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이 모든것을 화면 너머로 지켜보던 표세인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역시 프로게이머라 그런지, 적응력이 장난이 아니네.”

게임을 테스트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런 움직임을 선보인단 말인가?

“부장님도 게임 좀 하시지 않아요?”

“저건 다른 세상 레벨이지.”

게임 좀 하는 사람과 프로게이머를 어찌 같은 수준에 놓을 수가 있겠나?

“이제 다음은?”

“B구역에서 한타 붙었어요! 곧 오행시스템 트리거 터질 것 같아요.”

“아! 터졌다!”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리자, 부서지는 건물 이펙트와 붉은 안개가 주변을 휩쓸었다.

“아, 이, 이게 이렇게 되는 구나!”

총을 쏘던 테스트 플레이어가 자신의 총탄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카캉캉캉캉!

선풍기처럼 휘두르는 검에 튕겨 나가는 총탄 세례 중에 분명 적중하는 탄환이 적지 않음에도, 오행 중 금기 폭주로 인해 방어력이 미친 듯이 치솟은 덕분인지, 근접 캐릭터들은 겁 없이 내달렸다.

그리고 시작되는 일방적인 학살!

“원딜 지켜!”

상대측 근딜들도 달려왔으나, 이미 판세는 기울었다.

“오행 터지면, 바로 물러나야겠네! 이거 그런 시스템이네!”

상대의 한탄과 함께 접전은 마무리 되었다.

“밸런스 조절이 필요할까요?”

남궁원이 조심스럽게 표세인에게 물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이번 밸런스 조절을 끝으로 세상의 평가를 받게 된다.

요즘 남궁원의 상태는 농담으로라도 좋다고 할 수가 없었다.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로 인한 다크서클, 거기에 더해 화장까지 하지 않은 탓에 더욱 초췌해 보였다.

“아직 모르지.”

표세인은 피식 웃으면서 남궁원의 어깨를 붙잡았다.

“겁먹지 마라, 너 남궁원이다.”

“네?”

“우리팀 에이스가 공을 들인 게임인데, 별로일 턱이 없지. 밸런스 조절은 테스트 결과를 모두 지켜본 다음, 생각하자고.”

“네. 그렇죠. 아직 경공 시스템도 더 검토해봐야 하니.”

이제 겨우 금기폭주만을 확인한 상황, 당장은 금기 속성 적용이 올바르게 적용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우선.

이제 차례로 다음 속성들의 적용상태와 버그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이었다.

무엇보다 남궁원의 말대로 순간적으로 물리값을 낮춰, 캐릭터의 체공 시간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경공 시스템과 같은 새로운 기능들도 아직 수 없는 테스트가 필요했다.

“게다가 문제는…….”

“?”

“우리가 아무리 잘 만들어도……. 플레이어들이 한국인이니…….”

“?”

“어떻게든 꼼수를 찾아내겠지.”

해외 게임 테스트에 한국인 플레이어들을 초청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와, 저걸 저렇게 이용한다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자, 잠깐 저게 돼?”

역시랄까, 차츰 시스템에 적용했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 한국 테스터들은 곧바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시스템의 허점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아……. 이건 나도 예상 못했네.”

표세인은 낮게 중얼거렸다. 아니, 예상은 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라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까드득……. 이 새끼들이…….”

“워워, 쟤들 우리 편이야.”

“넌 꺼져!”

남궁원의 으르렁에 홍기도는 후다닥 달아났다.

“테스트 잘 진행되고 있나?”

“문이사님, 오셨습니까.”

문이사의 등장에 모두가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어떤가?”

“물리엔진과 시스템 전반적으로 호평입니다. 하지만 밸런스를 비롯해서 버그들은 아직 개선해야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거야 원래 그런거잖나.”

“네. 원래 그런거죠.”

“그런데 우리 남궁과장 얼굴이 왜 이래?”

남궁원을 발견한 문상훈이 화들짝 놀라 그녀의 곁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요즘 화장에 신경 쓸 겨를이…….”

“누가 화장 같은 걸 말하나, 안색이 안 좋잖아. 우리 소중한 메인디렉터가 이 시점에 이러면 쓰나. 표세인 부장.”

“예.”

“남궁과장 퇴근시켜도 되지.”

“아! 그렇네요. 그게 좋겠습니다. 남궁원 과장. 일단 오늘은 퇴근하자. 너 얼굴이 너무 안좋아.”

안 그래도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표세인은 좋은 생각이라는 듯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첫 테스트에서…….”

“남궁과장 그렇게 안 봤는데, 일 너무 대충하는 것 아니야?”

“네?”

남궁원이 황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몸 상태가 어떻든 이악물고 악착같이 지금껏 버텨왔는데, 일을 대충한다니?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말만은 그냥 넘어 갈 수가 없었다.

“몸 관리도 일이야. 막말로 자네가 쓰러지면 우리는 어쩌나? 메인디렉터 없이, 그냥 우리더러 알아서 하라 이건가?”

“그, 그런 일이 없도록…….”

“그래. 그런 일 없도록 가서 쉬라고 내가 괜찮다고 할때까지 출근하지마. 이거 어기면 디렉터 사임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겠어.”

“헉!”

문상훈의 강수에 주변 모두가 숨을 들이켰다.

“쯧……알겠습니다.”

대놓고 혀를 차다니!

남궁원은 짜증스럽게 혀를 차고는 그대로 일어나 인사도 없이 휙 나가버렸다.

“남궁원 성격 아시죠?”

표세인이 슬쩍 문상훈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훗, 자기 일에서 손 떼게 했는데, 기뻐하면 더 문제 아닌가?”

문상훈은 남궁원이 박차고 방향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나중에 미국으로…….”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훗날 미국에서 자신의 오른팔이 되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문상훈은 그 말을 입밖에 낼 수 없었다.

어쨌건 남궁원은 표세인의 직계 라인이 아니던가?

“그럼 테스트 계속하지.”

테스트는 계속 되었다.

*

*

*

[몰려오는 중국발 대형 게임들!]

[국산 대형 개발사들 신작 소식 잠잠]

[끝없는 주가 하락! 국산 게임계의 미래는?]

“이, 이게 대체 무슨…….”

백용현은 아침부터 시작된 기사 속보들을 접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주, 주가가…….”

백용현의 아들이자, 사내이사인 백원성 역시 주가동향을 주시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물밀 듯이 밀려오는 중국발 게임들의 침공!

물론 이미 국내 출시 초읽기에 들어간 타이틀이었지만, 이렇게 동시에 달려들다니?

원래라면 서로 눈치작전을 펼치며 차례로 들어오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앞뒤 안가리고 동시에 쏟아지다니?

“오히려 일본이나 국내 게임들이 출시를 미루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

안 그래도 신작 출시 발표 때마다 떨어지는 주가가 두려워서 차일피일 미루던 국내 개발사들의 행보였다.

이것이 못 미더워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려하는 상황인데…….

“만약 이 타이밍에 우리가 중국 서비스 중인 게임들에 대규모 마케팅을 감행한다면…….”

국내 유저들의 성토가 가장 먼저 터져나올 것이고…….

그것이 또 한번 투자자들의 심리를 뒤흔 들 것이다.

이미 국내 게임 업계의 투자자들 중 상당수가 국내보다 중국계 개발사에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지 않던가?

“머, 멈춰야해!”

백용현은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 마침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조연준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멈춰! 멈추라고!”

-무슨 말씀이신지?

“쉬린칭에게 로비하지마! 우리 마케팅은 미룬다! 원래 계획 보다도 한참 뒤로!”

이렇게 된 이상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아니, 지켜볼 것도 없이 발을 빼야 한다.

-죄송하지만 이미 협상 끝났습니다. 애초에 우리쪽 사정을 강요한 것이라서 위약금이 엄청날 것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위, 위약금…….”

중국은 절대로 양보하는 법이 없는 나라가 아닌가?

더구나 상대는 카이두의 대주주인 쉬린칭이다.

그녀에게 밉보여서는 앞으로 중국에서 사업을 할 생각 자체를 접어야 한다.

그러니 피눈물이 나더라도 위약금을 물어내야 할터…….

“너 대체 로비를 얼마나 했지?”

-기존 투자금이 두 배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명세서는 메일로 보냈습니다.

“이, 이 미친 자식!”

-듣기 거북하군요. 반드시 해내라고 하신 것은 백회장님이셨습니다만?

-쾅!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백용현의 주먹이 책상을 강타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건만, 막상 할 말이 없다.

사실상 자신이 동의했고, 예상한 수준의 금액이었다.

-어쨌든 저는 제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예정보다 훨씬 앞당겼다니까요?

“예정보다 훨씬 앞당겨?”

-그럼요. 우리보다 맥베스가 앞서면 안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게는 한데……. 뭔가 불안하다.

너무 큰일이 연이어 벌어지는 와중에 사고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뭐지? 대체 내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지?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오행전기는 출시일을 연기하기로 했답니다.

“뭐?”

-좋은 결과 아닙니까? 우리가 그 전에 모조리 흡수해 버릴 수 있게 된 셈이지 않습니까.

맞다. 맞는 말이고 이상적인 그림이다. 그럼에도 아직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신작이 아닌데…….”

아들 백원성의 나직한 한마디에 백용현의 머릿속에 한 줄기 벼락이 번쩍였다.

“마, 맙소사…….”

현재 국내에 불고 있는 불온한 여론의 흐름. 이 상태로라면 중국발 게임들이 날뛰는 혼란 속에서 맥슨은 국내 유저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중국만 신경쓰는 꼴이 된다

“설마……. 처음부터 덫이었나?”

-저를 지금 의심하십니까?

“의심 안 할 수 있는 상황인가?”

백용현의 목소리게 깊게 가라앉았다. 빠른 흥분은 그만큼 빠르게 가라앉는 법이다.

차츰 머릿속에서 하나씩 퍼즐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게임 회사는 그저 게임만 잘 만들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이번 대규모 업데이트 열심히 준비하셨잖습니까?

“아악!”

‘게임 회사는 게임만 잘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난번 표세인이라는 남자가 읊었던 바로 그 대사였다.

“너 이 개자식!”

-정말이지, 품위라고는 한 점도 없으신 분이시군요. 뭐, 원래 그런 줄은 알고 있었지만…….

“감히 네깟놈들이 나를 가지고 놀아? 맥슨 회장인 나를?”

-가지고 놀았다니,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군요.

끝까지 조연준은 발뺌했다. 그러나 특유의 이죽거리는 말투가 의미하는 명백했다.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죠. 참, 이메일에 첨부된 다른 자료도 보셨습니까?

“다른 자료?”

순간 백용현은 오싹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아, 아버지! 이, 이거…….”

“비켜봐!”

백용현은 거칠게 아들을 밀어내며 모니터를 확인했다.

-곧 발표될 후속 보고입니다.

[중국발 게임들의 침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 시장만을 바라보는 맥슨의 행보!]

[신작은 없다! 언제까지 기존 IP에만 메달릴 것인가?]

[개발비 보다 비싼 마케팅의 연속! 국내 개발사들 이래도 좋은가?]

“이, 이건 네놈들에게도 좋을 것이 없을텐데?”

신작을 중국에 먼저 서비스하는 것은 맥베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네놈들이 누구를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번에 우연히 들은 정보인데……. 개발사는 개발만 잘하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아! 이미 말씀드렸던가요?

표세인의 생각대로, 조연준은 국제 공인 프로 도발러의 면모를 유감 없이 선보였다.

좋은 일 한 번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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