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00화 (200/346)

200.

오행전기의 출시연기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판데믹으로 인해, 국내 모든 기업들은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야 했던 것.

업무 인프라에 대한 고려부터 새로운 출퇴근관리 시스템까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모두가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이것 덕분에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개발 연기로 이득을 보는 상황이 올 줄은 몰랐어요.”

조연아는 모니터 속의 맥슨 주가를 확인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무리 표세인이라도……. 설마 여기까지 예상하지는 못했겠지.”

조양길 역시 얼떨떨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백용현이……. 큰일 났구만.”

미디어 공세를 앞세운 맹공격에 맥슨은 큰 타격을 받았다.

대규모 마케팅을 위해 중국 시장에서 서비스 중인 타이틀의 매출이 상승하는 상황에서도 불온한 전망들이 뒤따르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표세인은 마지막 쐐기를 박으려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추가증자……. 주가 반토막은 각오해야겠지.”

“오빠……. 아니, 표세인 부장은 이참에 쐐기를 박으려는 것 같더라고요.”

추가 증자 소식까지 발표되면 주가가 반 토막 날 것은 명명백백한 상황.

제임스는 운용 중이던 기둥 소프트의 투자금을 모조리 회수하고 바닥을 치게 될 맥슨의 주식을 깡그리 흡수할 준비에 돌입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건 원래의 표세인이의 수법과는 좀 다르단 느낌인데…….”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오싹한 기분이 들정도로 자비가 없는 공세.

물론 과거 백용현의 만행에 한 방 먹이겠다며 공언하기는 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모든 요소가 하나같이 우연에 기인한 것들일 텐데……. 이것들을 이렇게 이용할 줄이야.”

모두가 처음 맞이한 판데믹 시기에 대한 대비에 여념이 없을 때, 표세인의 주변만이 전혀 다른 세계인 것처럼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 우려가 되네요.”

“어떤?”

“갑작스러운 폭락이고, 맥슨의 기존 IP들은 건재하니, 주가는 회복되겠죠. 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판데믹 위기 상황에서 이런 대규모 투자라니…….”

만약 맥슨이 손쓸수도 없게 무너져버린다면, 표세인은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걱정스럽다면 말려보지 그랬나?”

“다른 거라면 몰라도, 지금 하려는 것은 기둥소프트의 업무죠. 제가 함부로 참견할 수는 없죠.”

조연아는 딱잘라 선을 그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그보다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 지침은 잘 준비되고 있나?”

“네. 이미 예전부터 조금씩 준비는 하고 있었고, 의외로 문이사가 미국지부에서 실행한경험이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미국은 재택근무가 그리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었다.

물론 이처럼 대규모적인 상황을 맞이한 적은 없었다.

“그래. 잘 준비하고 다소의 문제들은 과감하게 넘겨. 어차피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시기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조양길은 뒷짐을 진 채로, 유리 벽 앞에 섰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마천루의 윤곽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왜 그러시죠?”

“아무래도 감상적이게 되는군.”

무엇 때문에, 어떤 감상에 젖은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연아도 그것을 묻지는 않았다.

“저는 표세인 부장을 믿어요.”

또 한 번 오빠라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래. 나도 믿는다.”

조양길은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이 대답했다.

*

*

*

“직접 행차하실 줄은 몰랐군.”

“혼자가고 싶었나?”

내 말에 조연준이 피식 웃었다.

“재미있는 구경은 함께 해야 맛이지.”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네?”

뭔가를 나눈다는 개념이 이렇게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또 있을까?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괜한 시비는 걸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아니, 시비 걸 생각은 없었어.”

정말로 솔직한 감상이었을 뿐이다.

“어쨌든 가자고, 그 성질 불 같은 노인네가 혈압으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빠르게 정리하자고.”

“그러지.”

우리는 함께 맥슨 본사로 향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

예상은 했었지만, 설마 인사도 받아주지 않을 줄은 몰랐다.

백회장은 노기등등한 표정으로 우리를 씹어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앉으라는 말도 안하시는 겁니까?”

조연준은 그렇게 말하며, 그대로 백회장의 맞은편에 앉아버렸다.

“일단 앉으시죠.”

보다 못한 백회장의 아들, 백원성 이사가 자리를 권했다.

“우선 아시다시피 추가 증자라는 것이 말처럼 단칼에 처리될 성질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아암~”

조연준은 대뜸 하품을 터트렸다.

“……조금 무례하신 것 아닙니까?”

백원성이 눈을 가늘게 뜨고 조연준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무례라…….

“무례라고 하셨습니까?”

“네?”

정작 조연준이 아닌 내가 입을 열자, 백원성이 살짝 당황했다.

“저희는 지금 약속한 주식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뭐라고요? 단칼에 처리될 성질이 아니다?”

“그것이…….”

“단칼이 어려우면 두 번이든, 세 번이든 토막을 쳐서 주십시오. 그리고 그런 말은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에 전화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러니까 저희의 사정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만?”

이미 여론이 가라앉으면 주가가 회복될 것이라 생각한 맥슨의 일방적인 부탁으로 우리는 상당한 여유 시간을 보장해주었다.

물론 그것은 기둥소프트의 투자금을 회수하고 맥슨을 물어 뜯을 마지막 준비를 위해서였지만…….

“아주…….”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백회장의 무거운 입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기세가 등등하시군?”

“…….”

“우리의 추가증자를 기점으로 주가가 더욱 바닥을 치면……. 진짜 칼을 빼들 심산이겠지?”

백회장은 이제야 나의 계획을 간파한 모양. 물론 소도 잃고, 고칠 외양간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지만.

“글쎄요? 무슨 말씀이신지?”

“크크큭.”

나는 어깨를 으쓱했고, 조연준은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니들 뜻대로는 안 될 거다.”

“제 뜻은 그저 약속한 것만 받을 수 있길 바랄뿐입니다만?”

“……이 시건방진 놈.”

백회장은 치아 건강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이를 까드득 갈았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진 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내가 잠깐 눈이 멀어서 네 녀석들의 장난질에 놀아났지만, 절대 두 번은 없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절대’라는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다시금 백회장은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하는군요. 그래서 어쩌시겠다는 겁니까? 더 기다려달라 그 말씀입니까? 그러면 저희 쪽은 계약 불이행으로…….”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저들쪽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꺽인 주가는 회복될 기미가 없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받아야할 몫은 계속 커질 뿐이다.

“조양길이 이 일의 배후냐? 설마 조연아 그 새파랗게 어린 것이 이런 일을 벌였을 리는 없고…….”

“백회장님. 말씀 조심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회장이야 친구 같은 관계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감히 연아까지 함부로 부르다니!

“조심하지 않으면?”

“한번 맥베스 자회사로 만들어 볼까요?”

“크하하하!”

내 말에 조연준은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 이 자식이!”

-덥썩!

흥분한 백회장이 내 멱살을 잡으러 들었지만, 그보다 한발 먼저 내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나는 부드럽게 백회장을 자리로 돌려보냈다.

“좋아. 이번에는 네놈들이 이겼다. 하지만 반드시 다음번에는 반대 상황이 될 거다.”

“기대하겠습니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백회장은 그대로 방을 빼져 나갔고, 자리에 남은 백원성은 수심 가득한 얼굴로 우리가 가져온 서류에 순순히 서명했다.

“생각보다 순순히 내주는군.”

“어차피 위반하면 감당이 안될테니까.”

“그렇긴하지.”

“그래. 아무튼 잘 해줬어.”

나는 조연준을 칭찬하는 한편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예.

“시작하시죠.”

-알겠습니다.

통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름아닌 제임스다. 긴말할 필요가 어디에 있나?

“제임스. 녀석도 변했어.”

“변했나?”

“물론 나야 그 놈에대해 잘 모르지만.”

“좀 관심 좀 가져보라고.”

“그럴 필요가 있나?”

그래.

순간 내 대화 상대가 조연준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일에 대한 대가는 언제쯤 받을 수 있지?”

“작전 종료와 함께 즉각 처리해주지.”

“오래 걸리지 않겠군.”

그렇다. 오래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돈도 좀 벌었는데, 다음 계획은 뭐지?”

“흠……. 너에게 말을 해줘도 되나 싶군.”

“그 정도로 비밀인가?”

“아니, 맥슨 주가 차익으로 번 돈이라면 어차피 쓸 곳은 하나뿐이지 않나.”

“은근히 선문답을 좋아하는 성격이군.”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로 어려운 대답이 아니다.

이번 수익으로 해야할 일은 하나.

국내 유저들을 만족시킬만한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야겠지.

*

*

*

“수고했다.”

“아닙니다.”

조회장의 짧은 치하. 무언가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백회장, 그 녀석……. 어때 보이던가?”

“이대로 끝이 아니라고 엄포를 놓으시더군요. 오히려 저에 대한 복수심으로 한동안 기운이 펄펄 나지 않으실까요?”

“그렇군. 그래, 늦었지만 그 녀석도 한 대 맞는 법도 배울때가 되긴 했지.”

조회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나?”

“네?”

“지금 기둥소프트 자금으로 맥슨의 주식을 미친 듯이 긁어 모으고 있다면서?”

“네.”

“주가가 금방 회복 되지는 않을텐데? 돈이란 것은 의외로 묶여 있는 것 자체로 손해인 경우가 많아.”

“맞는 말씀이십니다.”

내 대답에 조회장은 피식 웃었다.

“영악한 놈이니 생각은 있겠지만, 나는 이런 시국이라서 더욱 걱정이군. 판데믹……. 산전수전 다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것은 정말 처음이야. 한치 앞도 예측이 되지 않아.”

“저도 그렇습니다.”

“뭐라고? 나름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었어? 이러다가 정말로 맥슨에 투자한 돈이 그대로 물리기라도 하면…….”

“그럴일은 없을 겁니다.”

“마스크를 쓰고 집에서 일하는 시기야. 투자심리도 당연히 위축되지 않겠나?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저는 이번 일이 몇몇 업계에는 굉장한 호황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호황?”

“예.”

조회장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듣지 않을 수가 없군.”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알겠으니, 그만 뜸들이고 말해봐.”

갑작스러운 판데믹 상황에서 조회장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별거 아니라는데도, 귀를 쫑긋세우며 기대 가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집에 틀어박혀서 뭐 하겠습니까?”

“뭘 하겠냐니……. 아!”

“곧 모든 게임사의 주가가 폭등할 겁니다. 게다가 투자심리 위축? 어차피 주가가 오르면 따라오는 것이 투자자들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걱정하실 것 하나 없습니다. 오히려 이 기회에 우리 좋은 일이나 하면 어떨까요?”

“좋은 일?”

조회장이 흥미롭다는 듯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은혜 갚는 부회장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