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너 여기서 뭐하냐?”
홍기도는 자리에 앉아있는 남궁원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보면 모르냐. 일하지.”
“너 이번 주 재택이잖아?”
현재 맥베스는 조연아 부회장의 지휘 아래, 절반의 인력들이 교대로 재택 근무에 돌입했다.
“그거 불편해.”
출퇴근 시간이 없는 만큼 편한 부분도 있지만, 남궁원 같은 워커홀릭 타입에게는 업무 인프라가 잘 구축된 사무실이 훨씬 좋았다.
“그런데 너 꼴이 왜 그러냐?”
홍기도의 말대로 남궁원의 현재 모습은 심상치 않았다.
머리띠로 대충 뒤로 넘긴 머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화장은커녕 씻지도 않은 모습에, 푹신한 수면 바지와 수면 양말을 걸치고 있는 모습…….
“요즘 회사 사람들 없어서 한가하니까, 한동안 여기서 지내려고.”
“왜?”
“그게 편하니까.”
“아니, 너만 편하면 다냐?”
“그럼 너도 편해져!”
남궁원의 윽박에 홍기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좋은 아침입니다. 일찍들 오셨네요?”
“어? 송희, 너도 출근했어?”
“네.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헤헤.”
함송희는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나름 너 같은 상황도 많을 것 같기는 하다.”
이제 막 시행된 재택근무 제도기 낯선 것은 비단 함소희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 니들 왜 출근했어?”
때마침 표세인이 등장했다.
“부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그래. 송희는 언제나 활기차서 좋구나.”
처음 기획팀에 배정되었을 때는 다소 음침해 보일 정도였지만, 이제는 어떤 의미로 팀에서 가장 밝아 보였다.
“너 집에 안 갔구나? 설마 주말 내내 여기서 지냈니?”
“네. 잔소리는 패스하겠습니다. 부장님도 예전에는 종종 이러셨잖아요.”
“……그래도 나는 옷은 제대로 입었던 것 같은데?”
“우리 회사 드레스코드 따로 없잖아요.”
보통 게임 회사들은 특별한 복장 규정 같은 것은 없는 편이었다.
오히려 양성태나 문상훈처럼 정장만 고집하는 이들이 독특한 것.
“아니, 잔소리가 아니라. 걱정 돼서 그렇지. 몸 챙겨야지. 또 다크 서클 생겼는데?”
“이젠 거의 판다죠. 뭐. 중국 시장용 게임 개발한다고 판다가 되다니…….”
“시비 걸지 말고 꺼져라.”
남궁원과 홍기도가 또 한 번 으르렁거렸다.
“그래서 뭐 하느라고 주말까지 반납하고 틀어박혔던 거야?”
“지난번 대규모 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최종 밸런싱 좀 조율하려고요.”
“그걸 혼자한다고?”
밸런싱은 무척이나 까다롭고 손이 많이가는 작업이다.
그런데 그것을 혼자서 끙끙 대고 있다니…….
열정이 넘치는 것은 알겠지만, 조금 과하지 않나? 하고 표세인은 우려섞인 눈빛을 보냈다.
“너 일을 왜 그렇게 무식하게 하냐?”
“남이야, 무식하게 하든 말든.”
“혹시 지난번에 문이사님이 너 강제 퇴근 시켜서 열 받은 거냐?”
“…….”
홍기도가 곧장 상황을 파악했다. 표세인 역시 긍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에 열정이 있는 것은 좋지만, 지나쳐도 곤란해. 너 퇴근해.”
“또요?!”
“그래. 그리고 재택근무 기간중에 회사에 얼씬도 하지마. 이거 어기면 네 업무 이관한다.”
“이관…….”
말이 이관이지, 사실상 표세인 본인이 다시 받아서 처리하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이것은 업무열의가 과도한 남궁원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 없는 말이었다.
“그, 그런 법이 어디있어요?”
“나 이제 부장이잖아? 부서 내에서는 내 말이 법이지.”
애초에 과장일 때도 기획팀 내에서는 법이나 다름 없었지만, 표세인은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퇴근할게요. 하지만 집에서 일 할거니까. 제 일 터치하지 말아주세요.”
“안 건드릴 테니까. 좀 건강 챙겨가면서 해. 이것만 개발하고 개발자 그만 둘거냐?”
결국 남궁원은 표세인의 지시에 따라서 집으로 돌아갔다.
“저도 가야할까요?”
“아니, 뭐 너는……. 편한대로 하렴. 출근이 문제인 것은 아니니까.”
출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너무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 같아서 건강이 걱정된 것이었다.
표세인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함송희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였다.
“쟤 저대로 집에 가봤자, 딱히 휴식도 안 취할 것 같은데요?”
“그러게 걱정이네.”
홍기도의 말에 표세인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출시 직후 초반 운영까지가 메인 디렉터에게 중요한 역할이다.
이후야 운영팀에게 어느 정도 역할을 분산시킬 수 있겠으나, 당장은 남궁원이 손을 놓을 수가 없는 것도 사실.
“역시 조금 일렀나?”
표세인은 남궁원을 떠올리며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부장님.”
“응?”
“아니에요.”
“그런거냐?”
“네.”
잠깐 남궁원에게 할당된 과중한 업무의 일부를 자신이 덜어줘야할까, 고민하던 표세인은 홍기도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업은 스스로 해야죠. 언제까지 부장님께 기댈 수는 없으니까요.”
“기, 기도야…….”
“네.”
“그럴듯한 소리는 늘어놓으면서, 뭘 슬쩍 나한테 내미는 거냐.”
표세인은 홍기도가 슬쩍 자신의 책상에 올려놓은 서류를 바라보았다.
“저 대신 재무팀에 결재 좀…….”
“정의의 철퇴!”
“끄악!”
그렇게 표세인이 악을 물리치고 있는 도중이었다.
“표세인 부장님?”
“응?”
“고이사님이 찾으십니다.”
낯선 재무팀 직원이 다가온 것.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네.”
“부장님 가시는 길에…….”
“적당히 해라.”
“이걸 가져가주신다면, 제가 다른 일을 돕겠습니다.”
“니가? 나를? 도와?”
표세인은 못볼 것을 봤다는 듯한 얼굴로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부장님이 남궁원 일을 거들면, 사실상 도움이 아니라 이관이지만, 저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차라리 그냥 재무팀에서 결재 받는 것이 편하지 않냐?”
“거기 남자뿐이고……. 재무이사님 무섭고…….”
“흐음…….”
표세인은 잠시 고민했다.
“오케이. 콜!”
“딜!”
두 사람은 손을 마주잡았다.
*
*
*
“부르셨습니까?”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군.”
고이사는 미안하다는 듯이 한 손을 들어올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사님께서 고작 부장 나부랭이에게 그런 반응하시면 안됩니다.”
“하하하, 부장 나부랭이라니! 우리 표세인 부장을 어디 그냥 부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나.”
“그냥 부장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그러기로 할까?”
“감사합니다. 하하.”
나는 가벼운 웃음으로 대꾸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별것은 아니고……. 회장님께서 그러시는데, 무슨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아! 네, 네. 그것 때문이셨군요?”
내가 지난번에 조회장에게 말한 좋은 일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가, 고이사의 귀까지 들어간 모양이다.
“정확히 무슨 계획을 갖고 있지?”
“별거 아닙니다. 그냥 요즘 시국이 시국이니, 우선 피씨방 업주분들 시름 좀 덜어들이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피씨방?”
“네. 아무래도 이번일로 극심한 재정난을 겪게 되지 않겠습니까?”
벌써 우리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고깃집부터 극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이들을 돕고 싶지만, 그정도 능력은 안된다.
그렇다면 손이 닿는 곳부터 하나씩 처리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불우한 아이들에게 노트북이라도 선물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언뜻 생각하기에는 요즘 세상에 노트북 없는 아이가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없는 아이들이 제법 있는 편이다.
“외출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노트북 하나 없이 이런 시국을 거쳐나가는 것은 무척 큰 스트레스겠지요.”
“확실히 그렇지.”
“이 부분은 가전제품 회사와 연계해서 다소 할인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면 좋겠네요.”
“그렇군. 이해했어. 좋은 계획이야. 요즘 국내 개발사들에 대한 여론도 따가운데, 이런 미담 하나쯤 퍼트리는 것도 좋겠지.”
“네. 물론입니다.”
굳이 비밀스럽게 선행을 쌓을 필요는 없다. 기업은 자본을 추구하는 것이 대의 명제이며, 그것으로 다소 이득을 꾀한다고 하더라도, 노트북을 선물 받은 아이들의 기쁨이 퇴색하는 것도 아니겠지.
“그럼 이 일은 자네가 진행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나?”
“아니요.”
“응? 아니라고?”
“이건 조연아 부회장님께서 진행하실 일입니다.”
“자네 아이디어라고 들었는데?”
누구 아이디어인지가 무슨 상관인가? 칭찬받는 일이라면 당연히 연아의 몫으로 돌려야지.
하지만 지금 그걸 곧이 곧대로 말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맥베스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일입니다.”
“기둥소프트 돈도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네. 반반이죠. 하지만 정작 제가 맥베스 직원이지 않습니까.”
“흐음……. 자네 정말 통도 크군. 솔직히 손해보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손해 아닙니다.”
“아니야?”
“네. 제 나름의 노림수가 있습니다. 일단은 그렇게 생각해주세요.”
“뭐, 자네가 그렇다면야…….”
연아가 칭찬받는 일이다.
이 이상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나?
*
*
*
[맥베스 판데믹 사태로 힘겨워하는 PC방 업자들과 불우 청소년들을 지원하기 위해 천억원 투척!]
[이 선행의 배경에는 새로 취임한 조연아 부회장이 있다!]
[젊은 차세대 부회장의 믿기 어려운 선행!]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뉴스 속보를 지켜보던 조연아는 그저 웃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표세인 부장은 무슨 생각일까요?”
조연아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김인숙 실장은 모든 공을 조연아에게 넘긴 표세인의 의도를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번 선행에 투입된 자금 절반은 기둥소프트에서 출연했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름은 쏙 빼고 모든 공을 조연아에게 돌렸다.
덕분에 조연아의 이름은 단숨에 메스컴을 타고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금 부끄럽다는 느낌?”
자신의 아이디어도 아닌 것으로 칭찬 세례를 받게 되니, 다소 어안이 벙벙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것은 사업적으로 도움이 된다.
“덕분에 우리가 맥슨을 공격한 것에 대한 기사는 모두 묻혀버렸군요.”
[맥베스. 같은 국내 개발사의 등뒤에 칼을 꽂다?]
[맥베스의 강력한 공격에 휘청이는 맥슨. 과연 이래도 좋은가?]
아마도 이 기사의 배후에는 백회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전에 여론에 몰매를 맞은 맥슨의 불행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없었다.
‘쉬린칭은 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쉬린칭은 표세인의 능력을 하늘이 내린 천운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조연아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물론 운이라는 요소는 중요하고, 표세인에게는 분명 큰 행운이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물흐르듯 이어지는 사건을 반전시키는 능력을 보라!
과연 이것을 단순히 운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이건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어요.”
“그 말씀은?”
조연아의 말에 김인숙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송출연 제안. 그거 진행해보죠.”
“오! 좋은 생각이세요.”
얼마전 방송사에서 들어온 제안. 당연히 거절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연아가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 줄은 몰랐다.
“부회장님 정도 되는 마스크면……. 난리도 아닐걸요?”
“제가 아닙니다.”
“네?”
“표세인 부장으로 진행합니다.”
“네?”
기본적으로 은혜든 원한이든……. 갚아주지 않고서는 못 참는 성격이다.
‘이 빚은 톡톡히 갚아줄게.’
게다가 마스크라면 표세인 역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내 이름을 매스컴에 띄워줬으니, 나는 오빠 얼굴을 띄워줄게.’
맥베스 부회장 조연아.
그녀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쉽지 않은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