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03화 (203/346)

203.

붉은 안개 속에서 황색의 빛나는 점들이 명멸했다.

“오행 터졌다!”

“속성 뭐야?”

주변을 휩쓰는 안개를 본 유저들이 다급히 속성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히 의견을 나누었다.

“화속성이다!”

“걸렸다! 쓸어버려!”

화기로 무장한 그룹들이 근접 캐릭터들을 향해 총탄을 쏟아부었다.

-파파팍!

총탄에 맞은 엄폐물들이 서서히 깎여 나간다. 평소에는 총탄쯤은 거뜬히 버텨내던 엄폐물이지만, 속성의 영향을 받은 총탄은 야금야금 엄폐물들을 부숴가기 시작했다.

“와하하! 진짜 대박이다!”

*

*

*

오행전기는 출시와 동시에 무서운 기세로 중국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

거기에 한국 개발자들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담았으니, 성공을 예정된 수순이었다.

“역시 훌륭하시네요.”

쉬무빙은 다짜고짜 내 방을 방문해서 치하의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 있네?”

내말에 쉬무빙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저야 맥베스에서 발급해준, 비즈니스 비자가 있잖아요.”

그 비즈니스 비자를 이용해서 놀고만 있으니, 신기하단거다.

하지만 정작 요즘은 클럽들도 모두 문을 닫아서 좀 심심할텐데?

내가 그렇게 질문하자, 쉬린칭은 걱정 없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제가 뭐 클럽에 미친 사람인가요? 그거 아니더라도 놀 것은 많아요. 기도 오빠가 이것저것 추천해줬고요. 그리고 벌써 친한 친구들도 많이 생겼어요.”

“그거 다행이네.”

쉬무빙은 쉬린칭과는 달리 천성이 해맑고 붙임성이 좋다.

중국에서 봤을 때는 그래도 업무 모드였던 탓인지, 이런 성격인줄은 몰랐었다.

“언니도 기뻐하고 있어요. 나름 본인이 강력하게 추진한 프로젝트라서 여러모로 신경쓰고 있었거든요.”

“그거 다행이네.”

오행전기는 순조롭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의 기세로 접속자를 불려가고 있다.

게다가 쉬린칭의 영향력 덕분인지 출시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임에도 카이두에서는 E스포츠 종목으로 밀어붙을 계획까지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어차피 중국 시장 밖에는 딱히 출시할 계획이 없기에 그것이 얼마나 파급력이 있을까 싶지만…….

“축하파티 같은 것은 없나요?”

“파티?”

“네.”

“축하는 하겠지만 딱히 파티는……. 중국개발사는 출시하면 파티를 하나?”

“그럼요! 지난번에는 큰 유람선을 빌려서 선상파티를 했는 걸요!”

“으음……. 그건 좀 과하네. 더군다나 요즘 시국에 그건 무리야.”

판데믹으로 인해 출근까지도 재택근무로 전환하는 이 시국에 선상파티?

이건 감당이 안될 문제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선상파티까지는 할 생각 없지만…….

“요즘 한국 사정 알잖아? 선상파티가 아니라, 항구로 우르르 몰려가기만해도 난리가 날걸?”

“알죠. 중국이라면 전부…….”

쉬무빙은 손으로 목 앞을 그엇다.

“중국사람들도 그런 농담하는구나…….”

“농담 아닌데요?”

농담이 아니라니……. 진짜 무서운 나라구나.

“어쨌든 언니는 다음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있다고 하셨어요.”

“다음 프로젝트?”

오행전기가 출시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음프로젝트란 말인가?

“딱히 뭐 없는데?”

“있잖아요. 인디게임.”

“아! 그런데 그건 딱히 중국시장과는…….”

“어머? 카이두는 세계적인 기업이고 언니는 개인적으로도 투자를 많이 한다고요? 그리고 저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요! 이래 봬도 용돈 충분히 받아왔지요!”

용돈으로 투자를 운운하다니, 뭔가 이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 현실감각이 이상해지는 느낌이다.

“일단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아쉽게도 이 건에 한해서는 논의 상대를 잘 못 고른 것 같아.”

“왜요?”

“알고 있잖아. 이번 프로젝트 담당자는 홍기도 과장이야. 나는 모른다고.”

“두 사람은 텔레파시로 대화하시는 것 아니었어요?”

얘는 참 이상한 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때였다.

“마침 계셨군요.”

연아가 내 방을 방문했다.

“부회장님. 오셨습니까.”

나는 즉시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네. 좋은 아침입니다. 표세인 부장님. 쉬무빙씨. 아무래도 제가 대화를 방해한 모양이군요.”

“아니에요.”

쉬무빙은 실풋 웃으며 말했다.

“제가 나중에 다시 올까요.”

“아닙니다. 그러실 수야 없지요. 쉬무빙 잠깐 자리 좀 피해줘.”

“네.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쉬무빙은 의외로 공손한 인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무슨 이야기 중이었어.”

“가벼운 칭찬과 후속투자…… 뭐 그 비슷한 이야기? 그보다 잘 진행되고 있는 거지?”

“뭐가?”

“인디게임.”

“글세?”

“뭐?”

“그 건은 홍기도 과장에게 일임했고, 당장은 테스트에 가까운 일이라서, 크게 신경은 쓰지 않고 있어. 오히려 그쪽에서 사업계획서가 올라와야 내가 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손 놓고 있는 것 아니야? 네 방식답지 않은 느낌인데?”

“말했다시피, 최대한 간섭을 배제하고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싶으니까.”

연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정말로 이 건에는 최대한 간섭하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질문있습니다!”

나는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뭔가요? 표부장님?”

“당분간 인디게임 외에 신규 프로젝트는 없는 것이 확실합니까?”

“네. 지난번에 말한 엠플측의 제의를 포함해서 몇 가지 검토 중이기는 하지만, 당장 명확한 목표는 없습니다.”

“그럼 저도 이제 슬슬 인디게임 쪽에 발을 들여도 되는 겁니까?”

“흠……. 오빠가 나서면 몇몇 사람들이 기죽지 않을까?”

연아가 우려된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짚으며 고민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거지?”

“응. 홍기도 녀석이 대놓고 도전장을 보냈기도하고.”

“귀엽게 생각하는 것 아니었어?”

“표씨집안의 귀여워해주는 방법은 좀 남다른 면이 있지. 내가 내 동생놈 얼마나 귀여워하는데…….”

“때릴거야?!”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이건 진짜로 살짝 서운하다.

*

*

*

“부장실 배정 받으셨는데, 굳이 일은 여기서 하시려고요?”

“왜? 신경쓰이냐? 어차피 자리도 남아 돌잖아?”

우리팀이 다소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덕분에 어차피 빈자리가 제법 많은 편이다.

“아니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흠흠, 인디게임 준비는 잘 되가냐?”

내 질문에 홍기도는 벌떡 일어났다.

“후후후……. 그렇지. 신경쓰일 수 밖에 없겠지.”

“신경쓰는거 아닌데. 그냥 물어 본건데.”

“거짓말! 굉장히 신경쓰이시는거 다 압니다.”

“어차피 지금 뭐 해놓은 것도 없잖아. 뻔히 보이는구만.”

“……지금은 파티 모집 중이거든요!”

“열심히 모아라. 파이팅.”

“잠깐! 이 느낌 뭐지?”

왜 또, 뭔데 느낌 타령이실까. 불안하게.

“표세인! 시작했…… 으악!”

나는 유교딱밤으로 홍켓몬을 자리에 앉혔다.

“소리 너무 큰거 아니에요?”

“원래 소리만 요란해.”

“근데 아직도 못 일어나는 것을 보면……. 소리만 큰 게 아닌 것 같은데요?”

함송희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두사람 만담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요.”

남궁원이 피식 웃었다.

재택근무 교대로 오랜만에 기획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래. 내가 요즘 이래저래 바빴지. 그동안 고생 많았어. 특히 남궁원.”

“네?”

“너는 조만간 재계약 협상 들어갈 거다.”

“오오! 한턱쏴!”

“언니! 축하해요!”

홍기도와 함송희가 다소 요란한 박수로 남궁원을 축하했다.

“그런데 저만요?”

“다른 사람들도 뭔가 있겠지만, 이번에 네가 제일 공을 세웠잖아. 당연히 좀 쎈거 받아야하지 않겠어?”

“쟤도 중국협상에서 큰건 해낸거 아니에요.”

웬일로 남궁원이 홍기도를 지목했다.

“그……렇지?”

“뭔가 굉장히 망설이시네요.”

“부하직원의 공로를 순수하게 칭찬하지 못하다니! 그릇이 작으시군요!”

“내 그릇보다는 네 그릇이나 걱정하지? 인디팀 잘 이끌 수 있겠어?”

“제가 왜 이끌어요?”

“어? 니가 모았다며? 니가 팀장 포지션인 것 아니야?”

“팀장은 이끌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며, 뒤에서 엄지척 한번씩 해주는 역할 아닌가요?”

“이거……. 내 잘 못일까?”

나는 남궁원과 함송희를 바라보며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내가 팀장으로서 제대로된 본보기를 못보인 거려나?

하지만 다행이도 남궁원과 함송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렇지? 내가 잘 못 한 것 아니지?

“게다가 우리팀에 회장님 있는데요?”

“너는 회장님에게 엄지척할 생각이냐?”

“왜 못해요? 직급 없이 하자고 했잖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미친놈아! 회장님께 뭘 어쩌려고!

“클클클, 여전히 시끌시끌하구먼.”

“회장님 오셨습니까?”

갑자기 조회장이 등판했다.

뭐지? 무슨 일로 여기까지?

“홍기도 과장 말이 맞아.”

“네. 알고 있습니다.”

홍기도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저거 대답하라고 한 말 아니야.

“직급 없이 해보자고, 우리 나름 개발자 나부랭이들이잖나. 즐겁게, 즐겁게 해보자고.”

“설마 회장님이 직접 코딩하십니까?”

조회장이 모니터에 머리를 박고 코드를 짜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노력은 해보겠지만, 이제는 눈도 침침해서 그쪽으로 기대하면 좀 곤란하지.”

“그럼 기획?”

“그렇지. 내가 안그래도 아주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기각합니다.”

“?”

“?”

“!”

지금 내가 뭘 들은 건가? 기각?

지금 조회장에게 이 정신나간 녀석이 기각이라고 한 것이 맞나?

“기각이라고? 들어보지도 않고?”

“제가 리더이니, 제 아이디어로 가는 겁니다.”

“아니, 그래도 같은 팀이잖나. 아이디어는 각자 논의해봐야지.”

“회장님.”

“응?”

“절이 싫으면 누가 나가야하죠?”

너……. 요즘 이직 준비하니?

*

*

*

“그렇군요. 역시 홍기도 과장 답다는 느낌이네요.”

“제가 그 녀석 때문에 평생 경험한 적 없는 위통이 다 생길 지경입니다.”

“평생 위통을 경험한 적이 없으세요?”

“네. 안 그래 보이나요? 건강해보인다는 말은 종종 듣는 편인데요.”

“아니……. 아무리 건강해도…….”

표세인의 말에 양성태는 생각했다.

사실 홍기도 옆에 있으니, 표세인이 그나마 정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번에는 인디게임입니까?”

“네. 모처럼 좋은 아이디어잖습니까. 재택근무로 업무 환경도 불규칙한데, 이거라면 나름 쪼개져서 진행이 가능할 것 같으니까요.”

“네. 저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양성태는 표세인에게 차를 권하며 대답했다.

“그래서 말인데…….”

“아쉽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앗! 설마 홍기도 녀석이 벌써 양실장님에게까지 손을 뻗었습니까?”

“아니요.”

양성태는 실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문이사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이번에는 각자 실력 겨루기를 한번 해볼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표세인 부장님과 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표세인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가만, 이런 느낌이면…….”

“왜 그러시죠?”

“뭔가 저 따돌림 당하는 것 같은데요?”

기획팀 전원도 각자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성태와 문상훈까지 전부 따로 움직이는 상황.

“뭔가 따돌림당하는 느낌인데…….”

양실장을 만나고 돌아가는 표세인은 뭔가 찝찝한 표정이었다.

“앗! 표부장!”

“?”

때마침 윤현창이 표세인을 발견하고 냅다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너 내 동료가 되라!”

선자불래, 내자불선

오라는 사람은 안 오고 웬 이상한 녀석이 달라 붙었다.

“거절한다!”

표세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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