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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04화 (204/346)

204.

“그러지 말고 나도 좀 껴줘.”

건방지게 동료 운운하던 윤현창은 내가 단박에 거절하자, 거머리 모드로 돌변했다.

“내가? 너랑? 왜?”

“……진짜 이러기냐?”

“어허, 부장님께 못하는 소리가 없네.”

“표세인 부장님 부탁드립니다. 저도 인사고과 좀 쌓게 해주십시오.”

“이번 건에 인사고과가 얼마나 평가될지는 모르는데?”

“회장님까지 직접 참여하는 프로젝트인데, 인사고과에 반영이 안될 리가 있나.”

안타깝게도 내 생각은 반대입니다.

근래 맥베스는 숨쉴틈 없이 내달렸다.

게다가 판데믹이 겹쳐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업무 환경까지 적응해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나는 이번 이벤트는 일종의 숨 고르기라고 생각한다.

겉보기에는 어쨌든 연아는 이제 막 부회장 직에 취임했다.

조양길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가 인수인계를 준비하는 와중에 당장 큰 일을 벌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프로젝트는 질책도 적고 고과도 적은 이벤트성 프로젝트라는 느낌이다.

“그러지 말고 껴줘! 어차피 너 왕따라고 소문 났어.”

“…….”

이 자식이!

안그래도 살짝 신경쓰고 있었는데……. 홍켓몬이 하는 양이 귀여워서 어드벤티지 좀 주려고 했는데, 이 녀석의 움직임이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조회장까지 포섭하고는 내 주변 인들을 꽁꽁 묶어 두었다.

“어차피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것 아니냐. 그리고 막말로…….”

“?”

“내 코딩실력 알잖냐.”

윤현창이 대단한 스킬은 없어도 나름 견실하게 제 할몫은 해내는 녀석임은 잘 알고 있다.

과거에는 단짝처럼붙어서 손발을 맞추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잡아야할 사람이 있지 않은가?

“한팀장님 어디계시냐?”

“아마 하부장님하고 식사하러 가셨을걸? 다음 달 부로 하팀장님 옮기시고 한팀장님 부장진급하시잖아.”

“바쁘시겠네.”

“그래! 엄청 바쁘시지. 게다가 어차피 한팀장님은 홍기도 과장하고 손잡았잖아. 너 팔다리 다 잘렸어. 가만, 내가 가만히 있어도 네가 내 바짓가랑이 붙잡아야 하는 거 아냐?”

“과장이 부장한테 너무 오래 말거는거 아니야.”

“……팀장 달고서 할만큼 했는데, 그 레파토리 안지겹냐?”

“짜릿해! 늘 새로워! 승진이 최고야!”

“너가 아무리 그래도 정우성급은 아니지.”

그래. 그건 맞는 소리다.

“제가 좀 건방졌습니다.”

“……그래. 보는 눈도 많으니, 조심하자. 너 SNS에 올라가는 수가 있어.”

“SNS?”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정우성 드립치는 부장님.wav?”

“와, 그건 좀 무섭네.”

SNS 같은 것에는 손도 안대고 살다보니, 상상만해도 섬뜩한 기분이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내가 장난으로 고개를 숙일 때였다.

“요즘은 부장이 과장에게 고개숙여 인사까지 하나?”

“이, 이상무님! 안녕하십니까!”

윤현창은 목청껏 소리 높여 90도 인사를 했다.

“하하, 입사 동기라서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보기 안 좋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요즘 세상에 너무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지. 나도 농담이었으니 신경 쓸 것 없네.”

이상무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렸다. 묘하게 요즘 살까지 붙어 후덕해진 몸매라서 더욱 인자해 보였다.

“마침 잘 됐군. 잠깐 시간 되나?”

“없어도 만들어야죠.”

“그럼 커피 한잔할까?”

“알겠습니다.”

“그럼 내 방으로 가지.”

나는 금붕어처럼 입맛 벙긋하는(내 제안 잊지 마라! 너 지금 나뿐이다!) 윤현창을 무시하고 이상무의 뒤를 따랐다.

“요즘은 좀 어떤가?”

“오행전기 출시가 무사히 진행되서 한가합니다.”

“출시 이후도 중요해. 그걸 모르지는 않을텐데?”

“사실 이번 프로젝트는 저 보다 다른분들이 더 수고해주셔서요. 저는 아시다시피 중국출장이나, 기둥소프트 관련으로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 자네가 요즘 참 바쁘지.”

이상무는 커피를 살짝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창밖을 향해 아련한 시선을 보내는데, 뭔가 초연해 보인달까?

이상무와 딱히 자주 만난 사이는 아니지만, 이전과 너무도 크게 달라졌기에, 그점을 놓칠수가 없다.

“좀……. 변하신 것 같습니다?”

내 질문에 이상무가 껄껄 웃었다.

“좀 찌긴했지?”

“네. 하지만 인상은 더 좋아 보이십니다. 혹시 실례라면 죄송합니다.”

“그럴 리가. 요즘 집사람도 좋다고 하거든.”

“좋은 일이시군요.”

“그런데 자네는 결혼 안 하나?”

갑작스러운 이상무의 질문에 나는 순간 바짝 긴장했다. 물론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으나,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기운이 타고 흘렀다.

이 회사에서 나에게 결혼이란 주제는 그런 것이다.

물론 이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아니게 되었지만, 나는 그것을 오롯이 연아에게 맡기기로 했다.

부회장이란 그녀의 직책을 고려할 때, 부장급인 나와는 지닌바 부담이 다르다.

“왜 그렇게 놀라나? 설마 그 나이인데 만나는 사람도 없어?”

아! 다행이다.

이상무가 무언가 눈치를 채고 나를 떠보려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

“아닙니다. 만나는 사람은 있습니다. 상견례도 치렀고, 조만간 결혼……. 할 예정입니다.”

“그거 좋은 일이군. 요즘 사람들이 듣기에 이런 말이 고깝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결혼은 좋아. 마음에 안정감이 생기거든.”

“그렇습니까? 저도 사실은 그런 것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평생의 동반자를 맞이하는 일이다.

영원히 내 곁에서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생긴다니?

그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좋은 표정이군.”

“예. 생각만 해도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좋군. 좋아.”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과거 양실장과 문이사의 힘겨루기 당시만 하더라도 나와 이상무는 그리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차츰 주가를 올리는 동안에는 연아의 뒷받침을 위해 이상무는 최대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덕분에 얼굴을 본 것조차도 오랜만일 지경이다.

그렇기에 무슨 용건으로 나를 불렀는지, 의아한 상황.

“지난번 인디 게임 프로젝트에 대한 안건이 나왔을 때.”

아! 이상무님도 이 건에 관심이 있으신가?

“젊은 이사진들 사이에서 불꽃이 튀기더군.”

이건 누군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이미 양실장을 통해서 문이사와 도이사가 칼을 갈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은 바가 있다.

“그걸 보니까, 나도 슬슬 종지부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종지부요?”

설마 이미 은퇴한 함전무와? 아니, 그럴 리야 없겠지.

하지만 이상무가 겨룰 만한 사람이 함전무가 아니면 누가 있단 말인가?

“조양길 형님.”

“네?”

“사실 나도 함전무도 평생을 조회장님 밑에서 기를 펴지 못했지. 애초에 우리의 경쟁구도도 조회장이 등 떠민 탓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 말씀의 의도는…….”

아……. 뻔히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니…….

“자네 쪽에 내 자리 하나 마련해주면 좋겠군.”

“음…….”

“왜, 싫은가?”

싫다고 이상무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있겠나?

하지만 이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저와 팀이 되시는 겁니다.”

“그렇지.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그리고 저는 진짜로 이길 생각이고요.”

“믿음직하군.”

“그런데, 정말로 이상무님도 이기실 생각이십니까?”

“뭐?”

“저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길 생각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솔직히 내 목표는 조회장은 아니다. 그저 이참에 홍켓몬의 트레이너로서의 위엄을 다시 새겨야겠다는 생각 뿐!

그리고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홍켓몬에게 질 수야 있겠나?

파티원 선점?

한 발 앞선 움직임?

아무래도 좋다.

나는 이긴다! 홍켓몬

“……그런데 자네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 나야 그렇다치지만…….”

“세상에는 절대로 지고 싶지 않은 상대가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저도 회장님 진영에 있는 어떤 녀석에게는 절대로 질 수가 없거든요!”

연아가 지켜보는 앞에서 후배에게 패하고 망신 당할 수야 없지!

조회장님! 죄송하지만, 겸사 겸사 물리쳐 드리겠습니다.

“좋아. 좋아. 믿음직하군. 나도 전력을 다해 임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상무님.”

“응?”

“정말로 코딩 가능하세요?”

따지고보면 일선에서 개발자로 활동한 것 보다 임원으로 활동한 시간이 더 길지 않나?

“훗, 나 도트도 찍을 수 있어. 이래 봬도 만능 개발자야. 옛날에 맥베스 개발 내가 다 쳐냈다고!”

“좋습니다. 한번 해보죠.”

물론 이상무에게 전성기 같은 개발스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그것은 조회장도 마찬가지.

오히려 그들의 연륜과 노하우가 더 요긴하다.

어쨌든, 이걸로 시작이다.

[마왕 토벌 파티 결성!]

*

*

*

“그런데 정말로 표세인 부장님에게……. 되겠어?”

남궁원은 불안하다는 시선으로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되게 해야지. 나름 비장의 무기도 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다른 것도 아니고……. 게임 개발인데…….”

홍기도의 말에 넘어가 홍기도에게 붙은 함송희가 불안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딱 봐도 왕창 깨지고서는 울면서 뛰쳐나갈 게 보이는 것 같은데?”

“넌 우리팀도 아닌데, 왜 여기 있냐!”

“지금 한가해.”

남궁원은 새로 출신한 오행전기의 핸들링을 맡아야 하기에 인디게임팀에는 참여할 수가 없었다.

“문이사님도 실장님들과 뭔가 준비하는 것 같던데…….”

“그쪽은 신경쓸 것 없어. 우리 목표는 표세인 하나다!”

홍기도는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또 반말하다가 혼나려고.”

“……지금 없잖아. 너 가서 이를거 아니지?”

“그렇게 무서우면 하질 말던가…….”

“그래도 해야지.”

“……너 그런거 좋아했었냐?”

순간 남궁원이 못볼 것을 봤다는 눈빛으로 홍기도를 바라보았다.

“어, 언니……. 취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거니까요.”

함송희는 억지 미소로 홍기도에게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헛소리야. 이게 다 표세인 부장님을 위한 거라고.”

“100% 헛소리란건 알겠는데……. 묻지 않을 수가 없네. 설명해봐.”

홍기도의 묘한 재주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뜬금없는 헛소리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이 아닌가?

알고도 당한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상황은 달리 없을 것이다.

남궁원과 함송희는 이 점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다 무료한 회사에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지!”

“……됐고 비장의 무기가 뭔지나 말해봐.”

“아, 그건 아직 비밀.”

“뭐야, 사람 궁금하게 해놓고서 입을 다무는 거냐?”

남궁원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홍기도는 콧노래를 부를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에요?”

“팀원 기다리지.”

“팀원이요?”

그러고보니, 함송희는 다른 팀원들에 대해 들은바가 없었다.

“누구죠?”

-똑똑.

“마침 왔네. 들어오세요.”

-끼익.

문이 열리고 절대로 이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초로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 회장님?”

다름아닌 맥베스의 회장 조양길 등장!

“내가 좀 늦었군.”

“아니에요. 그렇게 늦지는 않으셨어요.”

“……당연하지. 메시지 받고 10분만에 내려왔는데…….”

그저 예의상 한 말인데, 홍기도가 진지하게 대꾸하자, 조회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너 대체 무슨 미친 짓을 한거냐.”

“비밀병기가 설마 회장님이었어요?”

“무슨 말씀을! 조회장님은 그냥 팀원이야. 비밀병기는 따로 있어! 하지만 이제 알겠지?”

“뭘?”

“표세인과 한판 해볼 만 하다니까?”

“클클클, 당연히 우리가 이겨야지.”

홍기도와 조양길은 승리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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