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내가 극비 정보를 입수해왔다!”
조회장의 말에 홍기도는 심드렁하게 물었다.
“혹시 표세인 부장이 만들려는 게임 컨셉인가요?”
“그렇지!”
“어제 다들 들었어요. 그만 앉으세요.”
“……흠, 흠. 다들 들었다고?”
조회장은 머쓱하게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 아니……. 이게 대체…….”
한팀장.
아니, 이번에 부장으로 승진한 한부장은 조회장을 대하는 홍기도의 태도에 놀란 나머지 말문이 막혀 입만 벙긋거렸다.
“한부장님.”
“어?”
“이 팀에 직급 없습니다.”
“그, 그래…….”
그렇게 듣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조회장에게 그만 앉으라니…….
“그래. 이 녀석 말이 맞아. 자네도 신경 쓰지 말고 스스럼없이 대해주게. 나도 지금은 그저 한 명의 개발자야.”
“맞아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 뿐!”
“그렇지.”
그 한 가지가 뭔지는 말하지도 않았건만, 조회장은 옳다꾸나 맞장구를 쳤다.
“여, 여기 분위기가 원래 이런가?”
순간 자신이 홍기도에게 호통이라도 쳐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한명수는 의외로 조회장과 죽이 척척 맞는 모습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부장님. 긴장하지 마세요. 홍과장이잖아요. 사소한 것 신경쓰면 여기서 일 못해요.”
함송희가 한명수를 이해한다는 듯이 다독였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뭐지?”
한명수의 질문에 홍기도와 조양길은 뭘 그런 당연한 것을 질문하냐는 눈빛을 보냈다.
“당연히!”
“표세인에게 이기는 거지.”
“제가 처음에 말쓴 드린 것 잊으셨어요?”
“그, 그렇지. 분명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
한명수는 그제야 머리를 긁적이며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그래. 기억나는데……. 진짜 그게 목적이야?”
표세인에게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높게사서 합류하긴 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한부장.”
“네!”
“의외로 패기가 없구만……. 항상 패기 넘치는 인재라고 생각했더니, 부장 달았다고 벌써 변했나?”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조회장의 핀잔은 너무나 강력한 것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상대가 상대이지 않습니까. 쉬운 상대가 아니니…….”
“쉽지 않으니까 재미있지. 자네도 여기에 참가했다는 것은, 나름 끓어오르기 때문이 아닌가?”
“자신있다고는 말씀 못드리지만……. 내심 그렇습니다.”
“클클, 좋아. 좋아.”
조회장은 클클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함송희는 팬을 입에 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전 딱히……. 그런 생각은 없는데.”
“음? 이 친구는 의욕이 없구만.”
“그래도 어쩔수 없어요. 쟤가 우리 에이스니까요.”
“그래?”
“네. 표세인 부장에게 붙일 수가 없어서 강제로 커팅해왔어요.”
“히잉……. 저 지금이라도 부장님 팀에 가면 안돼요?”
“안돼!”
“클클. 그렇게는 안 되지.”
홍기도와 조회장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막아섰다.
“그래도 마냥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야.”
“?”
“표세인이는 곧 무척 바빠질테니까.”
“표세인 부장에게 새로운 미션이라도 떨어졌나요?”
“그래. 그 녀석 곧 방송 출연하게 되었거든.”
“방송이요?”
“방송?”
“무슨 방송이요?”
조회장의 말을 듣고 있던 세 사람 모두 일제히 질문을 던졌다.
“게임 제작 다큐라고 들었지.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다들 알다시피 리더가 카메라 같은 것을 달고 다니면서, 일에 제대로 집중이 가능하겠나?”
“오호!”
홍기도는 즉각 반응했다. 하지만 한명수가 즉시 손을 뻗었다.
“자, 잠깐!”
“?”
“왜그러시죠?”
“지금 표세인 부장이 리더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그럼?”
“거기 리더 김순영 차장입니다. 표세인 부장은 벌써 공을 넘겼어요.”
“어?”
“표세인이 리더를 넘겨?”
이건 또 무슨 소리란 건가?
“그 녀석은 정말이지…….”
조회장은 짧게 신음하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대체 뭐 하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이 없지 않나?
기껏 조연아까지 동원해서 정보를 수집했더니, 스스로 다 퍼트리고 다니질 않나, 리더 자리를 대뜸 남에게 맡기질 않나.
“역시 표부장님은 너무 멋지신 것 같아요.”
“……너 우리 팀이야. 안놔줄거야.”
“히잉…….”
함송희는 정말로 울상을 지었다.
“나는 솔직히 남궁원 과장. 그 친구가 탐나던데.”
“남궁원 과장이 진짜배기죠.”
한명수는 오랫동안 남궁원을 지켜봐왔고, 젊은 세대 기획자중에서는 단연컨대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그래도 오행전기 버리고 여기에 합류하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드물게 홍기도가 정상적인 말을 했다.
“그래. 그게 아쉽지.”
“어쨌든 우리는 우리끼리 열심히 해보죠. 우리도 어디 가서 빠지는 사람들 아니잖아요.”
홍기도의 말에 조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 내가 어디 가서 빠지는 사람이 아니지.”
그리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디어는 가져왔겠지?”
“물론이죠. 회장님도 준비해오셨죠?”
“클클클. 놀랄 준비나 하라고.”
홍기도와 조회장은 서로 준비해온 패를 꺼냈다.
“핵앤슬레시!”
“횡스크롤 샌드박스!”
또 엇갈리는 두 사람.
“이거 왜 이러십니까.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인디게임이란…….”
“자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요즘 대세는 횡스크롤 샌드박스라니까. 날 믿어. 내가 스팀에 나오는 신작은 장르별 계정에 모조리 나눠 담는 사람이라니까?”
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또 이런 분위기네…….”
“그래도, 나쁘지 않군.”
“정말요?”
“그럼!”
회장과 일개 과장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놓고 팽팽하게 맞선다.
이 얼마나 건전한 구성이란 말인가?
“의외로 해볼만 할지도 몰라.”
조회장이야 자타가 공인하는 개발자 신화의 주인공이며, 홍기도는 가끔 모두를 놀라게 하는 한방이 있는 남자였다.
비록 현재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기대할만한 조합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아니, 제가 이렇게 자세히 설명 드렸잖아요!”
“그러는 너야말로 왜 이렇게 내 말을 못 알아듣지? 내 게임 개발 경력이 대체 얼마라고 생각하는 거냐?”
“어차피 대학생 때 회사 차리셔서, 경영자 경력만 기신 거잖아요!”
“임마! 그 후에도 죽어라 개발했어!”
기대할만한 조합이긴 한데……. 기대할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
“이거 드실래요?”
“고, 고맙다.”
한명수는 함송희가 넘겨주는 과자를 우물거리며, 홍기도와 조양길의 토론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
*
*
“애들 어디갔어?”
“미팅한다고 회의실 갔어요. 회장님과 한부장님도 함께요.”
“열심히 하고 있구나.”
“네. 좀 헛다리를 짚고 있긴 하지만요.”
남궁원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이, 피식 웃었다.
“어드바이스 좀 해주지?”
“부장님도 자신감 넘치시네요.”
“자신감?”
“저까지 참여해도 문제 없다. 뭐 그런 느낌으로 하신 말씀 아닌가요?”
“솔직히 맞긴 한데……. 그거랑은 별개로 회장님과 홍기도가 캐미스트리를 일으키려면 조금 윤활제가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지.”
“제가 윤활제다?”
“너 의외로 그런거 잘하잖아. 쓸데없이 회의 길어지거나 하는 것, 잘 컨트롤 하잖아.”
“쓸데 없이 길어지는 것은 어떻게 아세요? 보신 적도 없으시잖아요.”
남궁원이 흥미롭다는 듯이 의자를 돌렸다.
“흐음. 그냥 나는 제법 긴 시간 회장님과 홍기도를 관찰했잖아?”
관찰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그 관찰 결과로 사람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는 일은 의외로 많은 이들이 놓치는 부분이 아니던가?
오히려 서툰 판단에 이 사람은 이렇다! 라며 전혀 틀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회장님은 천생 개발자인데, 경영자 생활이 너무 길어서 지금 상황을 무척 반기고 계실거란 말이지?”
“그렇군요.”
“그렇기에 다소 강력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실거야. 그런 반면 홍기도 그녀석은 이번에 나에 대한 의식이 너무 커서 시야가 좁아져 있을 가능성이 크지. 그래서 두 사람이 각자의 의견을 고집하는 그림은, 뭐 어렵지 않게 예측 가능하잖아?”
“와! 진짜 무서운 분이세요.”
“뭘 또 그렇게까지.”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금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밸런스 패치는 좀 필요하겠네요.”
“밸런스 패치?”
“부장님은 너무 쎄니까요.”
“에이, 이런건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모르는 거잖아.”
“정말 모르세요.”
“응. 왜냐하면 난 이번에 매출 신경 안쓸 거거든.”
“네?”
“인디게임이잖아. 그리고 우리는 개발자야.”
“?”
“그동안 생각했었지만, 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실험들……. 그걸 실험해볼 기회를 맞이했는데, 이번에도 매출에 연연하면 너무 아깝잖아? 그리고 의외로 인디게임이란 매출을 고려하지 않을 때, 대박이 나는 시장이라고도 생각하는데?”
“흐음…….”
내 말에 남궁원은 뭔가 고민에 잠긴 모습이었다.
“왜 그래?”
“그렇게 말씀하시니, 확실히 이거 문제가 있네요.”
“문제?”
“밸런스 패치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판을 새로 짜지 않으면 안되겠네요.”
“너 살짝 끓어오르는 모양이네?”
“네. 부장님 부탁이 있어요.”
무슨 부탁일지가 너무 훤히 들여다 보여서, 나는 피식 웃었다.
“우리 에이스도 리프레쉬가 필요하지. 오행전기 운영건은 내가 한 손 거들어 줄게. 어차피 운영팀으로 차츰 이관해야 하기도 하니까.”
“정말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지.”
애초에 내 일정 때문에 무리하게 남궁원에게 떠맡긴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와 함게 프로젝트를 지탱하는 이들이 바로 실장 삼인방이 아닌가?
그들이라면 사실 이 정도 시점에서는 알아서 척척 일처리를 해줄 것이다.
“아무 걱정말고 가서 기강 좀 바로세워줘.”
“회장님이 계신데 제가 어떻게 기강을 세우나요.”
“회장님이라는 생각은 버려. 같은 팀원에 불과하고 프로젝트는 사공이 많아서 산으로 가고 있는 상황. 너는 우리 기획팀 에이스 남궁원. 이상!”
“감사합니다!”
남궁원은 웬일로 과장된 몸짓으로 경례를 하고는 후다닥 달려갔다.
아무래도 자신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해서 신이 난 것 같다.
“아니, 신이 난 것은 남궁원뿐만은 아니지.”
나는 이메일로 보내온 김순영 차장의 리스트를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백단위를 훌쩍 뛰어넘은 웹소설 리스트를 보고 있으려니, 절로 한 숨이 나온다.
그때였다.
“야, 너 김순영 차장님이 보낸거 봤어?”
윤현창이 질린 얼굴로 다가왔다.
“어. 지금 봤다.”
“와, 이건 좀 과하지 않냐?”
“아니라곤 못하겠네?”
내가 글을 좀 빨리 읽는 편이긴 하지만, 이건 좀 과하긴 하다.
“네가 좀 브레이크 걸어줘야 하지 않겠어?”
“네가 하면 되잖아?”
“옆에서 콧노래 부르면서 신나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하냐?”
“나 보고 총대 매라 이거냐?”
“부장님 아니십니까.”
“…….”
뭔가 살짝 멕이는 느낌이긴 한데…….
확실히 다른 팀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우리 팀 단속이 먼저지.
“알겠어. 내가 처리할게.”
“좋아. 가자.”
“지금 말고.”
“응?”
“일단 검토는 해봐야지. 나름 열과 성을 다해 리스트를 뽑아냈을 텐데, 거들떠보지도 않고 브레이크 밟으라고 하면 안 되지.”
“그럼 진짜 다 읽자고?”
“어느 정도만 읽어보자.”
다는 무리지…….
아~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