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너희들에게 이거 하나는 말해 둬야겠다.”
문상훈은 실장 삼인방을 바라보았다.
다른 누구보다 최기환이 좀 더 움츠러들었다.
모두는 지금 문상훈이 무슨 말을 할지를 대강 짐작하고 있었으므로…….
“최기환이.”
“예.”
“너 보정훈이랑 그림으로 승부 볼 수 있겠냐?”
“네?”
“아니면, 성진규와 퀘스트 만들기로 승부가 가능하냐?”
프로그래머인 자신이 어찌 그들과 그들의 전문영역에서 승부가 가능하겠는가?
“아!”
한발 늦게 문상훈이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최기환이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지난번에도 이것에 대해서 내 생각을 말했던 것 같은데, 영 재미가 없군.”
“죄송합니다.”
최기환은 그저 녹음기처럼 했던 말을 반복하는 수 밖에 없었다.
“너희에게는 너희의 경쟁이 있다.”
문상훈의 말대로 실장 삼인방은 이사 진급이라는 경쟁선상에 놓인 상황.
“나에게도 나의 경쟁이 있다.”
문상훈은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내 경쟁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나 문상훈이를 욕하는 것이 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나는 그 꼴 못 본다. 이 점 명심해라.”
문상훈은 그말을 끝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삼인방 중에서 그마나 눈치가 가장 빠른 보정훈이 문상훈의 복잡한 심정을 간파했다.
“무슨 말이지?”
“이 상황은 말씀하신대로, 최기환이 마치 저와 그림으로 경쟁하겠다고 나선 상황인데…….”
개발자가 아닌, 양성태가 개발로 승부를 벌여서 문상훈을 찍어 누르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문상훈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상처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도경우와 최기환에게 필요이상의 분노를 표출했던 것.
“그래. 맞다.”
문상훈은 솔직히 인정했다. 얼마전의 그라면 결코 있을 수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표세인을 만나고 양성태를 곁에서 지켜보며, 그들의 가치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모든 면에서 그들을 이길 수는 없고, 오히려 자신의 장점을 살려 아등바등 버텨야만 그나마 양성태의 경쟁자라는 포지션을 지킬 수가 있다.
이것은 양성태 역시 마찬가지.
그가 갑자기 인디 게임 개발에 뛰어든 것 역시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오랜 적수였기에 오히려 그 속내를 추측할 수 있게 되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두려웠다.
“엠씨 소프트라니……. 쉽지 않군.”
아직까지도 개발력 자체만으로는 엠씨 소프트가 국내 제일이라고 평가 받는다.
게다가 설동은이라는 수완가의 솜씨는 어떠한가?
시류를 잘못 읽은 것은 사실이지만, 강력한 소수의 IP를 통해 최대 매출을 창출해내는 솜씨는 여전히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주목 받는다.
“하지만 그래도 지지 않으실 거잖습니까?”
최기환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오래전부터 흠모해왔던 남자였다.
게다가 근래 그의 휘하에서 한층 더 동경심이 부풀어 오른 상황.
문상훈이 양성태에게 패하는 모습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이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나? 나 문상훈이야.”
이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대답이 또 있을까?
*
*
*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양실장은 잔잔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예. 경쟁은 좋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아마도 이런 감정 싸움은 인위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법이다.
“저에 대해서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예상했던 반응이고 처음부터 감수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은 의외로 오래가지 않는 법입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대로 사그라들 작은 불씨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는 굳이 이것을 두고 왈가왈부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내 질문에 양실장은 가타부타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랑 좀 나가시죠.”
“나가요?”
“예.”
“무슨?”
나는 영문도 모르는 상태로 엉겁결에 양실장의 뒤를 쫓았다.
“물건을 하나 감별해야 할 것 같은데……. 표세인 부장님의 안목을 조금 빌리고 싶어서요.”
“으음……. 제가 그런 쪽에 조예가 있다고는 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딱히 살면서 안목 관련해서 칭찬을 들어본 일이 없다.
“걱정 마십시오. 이 부분은 전공 과목일테니까요.”
전공?
제 전공 태권도인 것은 아시죠?
나는 그런 의문을 품은채로, 양실장의 차에 실려 어디론가로 향했다.
“이곳입니다.”
도착한 곳은 서울대입구역 인근의 한 빌라촌이었다.
“어? 설대표님?”
이런 장소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말쑥한 차림의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번 건에는 표세인 부장님의 조력은 받지 않겠다고 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팀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조력까지 사양할 생각은 없습니다. 손에 쥔 패는 무엇이든 사용해야지요.”
양실장은 씩 웃었다.
“이제 제가 설명을 좀 들을 수 있는 건가요? 여기가 어디죠?”
“아! 전혀 이야기를 못들으신 겁니까?”
“예.”
내가 짧게 대답하자, 설대표와 양실장은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일단 들어가시죠.”
우리는 빌라 안으로 향했다.
“김태호씨, 계십니까?”
설대표의 노크에도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양실장이 앞으로 나서서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남의집 비밀 번호를 안다고?
대체 누구의 집이길……. 아, 이건?
나는 좁은 빌라 내부에 가득한 전자기기들을 보고 놀람을 감출수가 없었다.
“집에 이런 서버컴퓨터까지 들여 놓은 사람은 처음 보네요.”
“네. 이 분은 좀 독특한 분이시죠.”
두세 걸음 만에 안방에 도착하니, 헤드셋을 착용하고 무서운 기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런닝셔츠에 반바지.
절대로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정작 나는 엄청난 속도로 모니터를 채워가는 코딩실력에 시선을 빼앗겼다.
“김태호씨?”
“아, 예. 오셨어요.”
살짝 주눅 들고 긴장한 태도.
처음본 나를 다소 경계하면서도 정작 내쪽으로는 시선도 보내지 않는다.
“김태호씨는 유년기 시절부터 다수의 게임 경연에서 화려한 수상 이력을 지닌 인재입니다.”
“오, 그렇군요.”
역시 어려서부터 일인개발을 해온 인물이기 때문일까? 일을 쳐내는 솜씨가 막힘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분이 양실장님의 이번 러닝메이트군요.”
“그렇습니다.”
양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굳이 저를 데려오신 이유가 뭐죠?”
“원래 김태호씨는 설대표님이 발견한 인재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희와는 함께 하기가 어렵더군요.”
함께 하기 어렵다?
“김태호씨는 뭐랄까 다소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십니다. 스티븐 잡스 같은 인물상이랄까요?”
스티븐 잡스.
IT업계의 총아로, 그의 커리어 시작은 당시 최고의 게임회사였던 아타리에서 시작되었다.
히피 정신에 물들어 씻지 않고 심각할 정도로 공격적인 성향 덕분에 모두가 그의 퇴사를 바랐으나, 당시 아타리의 오너는 스티븐 잡스에게 특별히 야간 근무를 허가할 정도로 많은 특혜를 주었다.
천재란 때때로 남들과는 어울리기 힘든 괴팍한 사고를 지니는 경우가 있다는데…….
아무래도 김태호라는 인물도 그런 타입인 모양이다.
“저와 양실장은 개발자 출신이 아니라서일까, 딱히 큰 문제는 없는데……. 개발 일선에서 활동하는 인물들과 만나면……. 뭐랄까 공격적인 대화가 오고가게 된달까요?”
설대표는 안타깝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저희는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고,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전사차원에서 처리되는 탓에 영입은 무산되었습니다.”
라는 것은…….
“덕분에 제가 기회를 얻었지요.”
양실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굳이 저를 이곳으로 데려오신 이유는?”
“재택근무 시스템을 이용하더라도, 누군가 컨트롤이 가능해야겠지요. 만약 표세인 부장님마저 김태호씨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면, 아쉽게도 김태호씨는 계속 일인개발자로 활동하셔야 겠지요.”
맥베스는 그나마 소규모 프로젝트도 활발히 진행되는 사내 분위기다.
게다가 근래 재택근무 열풍까지 불어닥친 덕분에 김태호와 같은 사교성이 떨어지는 인물도 어쩌면 소화가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양실장의 말대로 조직에 속한 이상,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은 필요하다.
양실장은 마지막 테스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군.
좋아. 양실장의 구원요청이라면 거부할 수 없지. 게다가 정말로 좋은 인재라면, 맥베스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 아니겠나.
“김태호씨?”
“……네.”
김태호는 내가 부르기가 무섭게 싫은 기색을 드러냈다.
어쩌면 이 사람은 자신이 평가 받는 상황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보는 것이 좋겠다.
사람들의 가장 흔한 착각은 상대를 볼 때, 자신이 쉽게 컨트롤이 가능한지를 본다.
하지만 상급자라면 응당, 내가 상대의 맨파워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지가 우선이 아니겠나?
그것을 위해 더 높은 급여와 대우를 받는 것이다.
나도 이제는 부장이다.
한 부서를 이끌고 그들의 맨파워를 극대화시키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떤 장르 좋아하십니까.”
“게임은 대강 다 좋아합니다. 오픈 월드부터 퍼즐까지, 전부요. 저는 게임이란 취향문제가 아닌, 즐기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소질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소질!
하하, 이 녀석 재미있는데?
“그거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그러면 혹시 좀비로얄, 깨비몬, 오행전기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모를 리가 있습니까? 양실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요즘 맥베스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쓸만한’ 회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흠, 흠.”
엠씨 소프트 대표를 앞에두고 맥베스가 유일하게 쓸만하다는 멘트를 날리다니…….
확실히 만만치 않은 케릭터다.
“깨비몬은 어떤 식으로 즐겨야 참맛을 즐길 수 있을까요. 겜알못에게 설명해준다고 생각해본다면…….”
“기본적으로 겜알못에게 먼저 추천할 만한 게임은 아니지만……. 우선 수집욕구 자극을 위해서 깨비몬 애니부터 시청하는 것이 좋겠죠.”
김태호는 갑자기 열성적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훌륭하십니다.’
‘아닙니다. 홍기도 같은 녀석만 하더라도 뭐…….’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녀석들을 컨트롤하는 것에는 이골이 났다.
김태호 같은 인물은 단순하다.
일반적인 대화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관심사, 그리고 약간의 호응이 있다면 래퍼라도 빙의한 것처럼 자기 생각을 속사포처럼 쏟아붓기 마련이다.
“혹시 양실장님 프로젝트는 협의가 된겁니까?”
“팀 리더를 아예 김태호씨께 맡기려고 했는데……. 아직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제, 제 아이디어를 남에게 말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요.”
“아이디어는 말할 필요 없습니다.”
“?”
“곧 다가오는 인디게임 페스타. 여기에 맞출 수 있겠어요?”
“꼭 맞춰야 하는 건가요?”
아무래도 확답을 하는 것이 싫고, 남들 계획에 휘둘리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것 같다.
오케이. 이제 좀 더 딥하게 들어가볼까?
“못하면 하는 수 없지.”
“못한다고는 안 했는데요.”
“만약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말이야. 기왕 하는 것 수상이 목표잖아? 너 원래 수상 많이 했다며.”
어느새 내 말투는 은근슬쩍 경어가 사라졌다. 이렇게 서서히 거리감을 좁혀간다.
“일단 일인개발자 중에서는 제가 제일 많죠.”
“이번에 쟁쟁한 출품작 많은 텐데, 제일 잘 먹히는 장르가 뭐라고 생각해?”
“규모 좀 있게 갈 수 있다는 전제인가요?”
“그렇지. 안되는 것은 대충 외주쳐내면서 말이야.”
“탑뷰 시점 서바이벌 + 핵앤슬래쉬 전투. 이거 밖에 안 보이네요.”
“그렇군. 나는 컨셉이 틀려서 그쪽은 안되겠네.”
“어떤 것을 생각 중이신데요?”
“규모 줄인 액션 어드벤처.”
“확실히 페스타에서는 좀 힘들죠.”
“그래. 아무튼 너는 그렇게 생각한 다는 거지?”
“네. 이건 이쪽 업계에서 좀 굴러본 사람들은 다 그럴걸요?”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설대표와 양실장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다음 질문?
조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