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정말 대단하시군요.”
김태호와 두시간이 넘게 떠들고 온 것에 대한 치하랄까?
인근 카페에서 설대표는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역시 양실장님의 안목은 출중하십니다.”
“아닙니다. 저도 의외였습니다. 설마 전화번호 교환까지…….”
듣자 하니 김태호는 메신저는 공유해도 전화번호는 공유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버,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조차, 그 더듬거리는 말투로 내 전화번호를 물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어떠셨습니까? 그는 ‘쓸만한’ 인재입니까?”
양실장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마치 유리잔처럼 까다롭고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는 인재.
확실히 일반 회사에서는 쉽사리 소화해낼 수 있는 타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만들었다는 게임들의 수준.
그리고 때마침 시작된 재택근무라는 세상의 흐름을 고려한다면…….
“네. 쓸만한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짝!
“다행이군요. 한시름 덜었습니다.”
“하지만 가능 하시겠습니까?”
나 외의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묵묵 부답인 타입이라고 했다. 그래서야 어찌 함께 인디게임 개발을 진행 할 수가 있겠나?
“이미 계획은 있습니다. 저는 김태호씨가 꺼려하는 외주 부분과 기타 사항들을 중간에서 서포트해주는 측면으로 강화하려고 합니다.”
“확실히 그 친구는 그 정도 이상 해주려해도 할 수가 없겠죠.”
양날의 검이라고 한다면 다소 과장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까다로운 타입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타입은 시간을 들여 서서히 녹여가야 한다. 사실 우리팀의 함송희도 저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처음에는 다소 서먹했던 것도 사실.
“저도 가능한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이상 든든한 대답은 없지요.”
양실장은 만족한다는 듯 미소지었다.
“외주작업은 우리쪽에서 해결해주면 되는 것이겠지?”
일인개발자라고는 해도 도트 정도가 아닌, 그래픽 전반을 다룰 수 있는 개발자는 그야말로 손에 꼽는다.
그렇기에 그래픽 리소스는 대개 외주이기 마련인데, 이 부분을 설대표가 맡아준다고 하는 것.
“물론입니다. 우리 협업관계가 아닙니까.”
“그렇지. 설마 이런식으로 함께 일하게 될 줄은 몰랐어.”
설대표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아까 듣자니, 표세인 부장은 조금 다른 방식의 게임을 고려중인 것 같던데?”
설대표가 은근슬쩍 내 프로젝트에 대해 질문했다.
아무리 양실장과 손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프로젝트에 한정된 이야기다.
내가 우리 회사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말해줬다고 해서, 외부에까지 그럴 수는 없지.
내가 잠깐 장난을 쳐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 질문은 다소 과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나설 것도 없이, 양실장이 급히 실드를 쳤다.
“허참, 장난이야. 장난. 너무 그렇게 무섭게 보지 말라고.”
양실장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였지만 그 눈빛은 단호했다.
“그보다 표세인 부장도 요즘 카메라 달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면서?”
“예. 엠씨소프트 쪽에서도 출연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우리쪽은 임재규 이사가 맡았지.”
“설대표님이 아니고요?”
“하핫, 내가 방송에 얼굴을 내밀었다가는 그 후폭풍이 무서워서 말이지. 알다시피 국내 게임회사 오너 중에 게이머들에게 미움사지 않은 인물이 어디 있겠나.”
“그렇군요.”
확실히 방송에 출연해서 좋은 이야기는 못들을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남의 이야기만은 아닐 수 있다.
나라고 악플에 시달리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그런데 임재규 이사님……. 정말 승진이 빠르시군요.”
나는 모르지만, 양실장은 임재규라는 인물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예. 어쨌건 저희 회사의 차세대 에이스니까요.”
“연배도 표세인 부장님과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이사라…….”
“오히려 제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야 말로 왜 임원직을 달지 않는 것인지가 의외입니다.”
“저는 사정이 있어서.”
“저는 생각이 있어서.”
“?”
“?”
나와 양실장은 동시에 비슷한 멘트를 날리고는 피식 웃었다.
“어쨌든 다음주 첫 방영이라니, 기대가 되는 군요.”
“딱히 기대하실 것까진…….”
“저는 오히려 약간 걱정도 됩니다.”
“걱정이요?”
양실장은 무엇이 걱정일까?
“언제나 기대이상……. 아니, 예상을 뛰어넘는 표세인 부장님이지 않습니까. 이번 일도 혹시 예상치 못한…….”
“그렇게 큰 사고가 일어날까요?”
게임업계에는 이따금 분노한 유저들이 회사 정문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는 일도 있다.
혹시 나로 인해 그런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표정을 보니, 저와는 다소 다른 사고를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네?”
“표세인 부장님.”
“네.”
“제 생각에 표세인 부장님은 게임회사가 천직입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점점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된다.
“네. 그거면 됐습니다.”
양실장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
*
*
한편 같은 시각.
“표세인 부장님이요?”
남궁원은 자신을 향한 카메라에 살짝 긴장한 느낌으로 질문을 곱씹었다.
“너무 긴장하실 것은 없습니다. 간단한 인터뷰에요.”
“네, 네.”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왠지 평소보다 자꾸 힘이 들어가고 눈을 둘곳을 찾기가 어렵다.
“뭘 그렇게 긴장하냐?”
“?”
갑자기 홍기도가 남궁원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그 뒤를 쫓아 함송희 역시 앉았다.
“인터뷰 방식 바꾸죠.”
“바꾼다고요?”
“일대일 면담 같은 거, 요즘 별 재미도 없잖아요. 다 같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홍기도의 제안에 카메라맨은 뒤에 있던 김유성 피디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래도 됩니까?’
‘긴장 풀렸네. 괜찮아. 이대로 한번 해보자고.’
김유성은 오케이 사인을 던지고 다시금 질문했다.
“평소 표세인 부장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 둘, 셋하면 동시에 대답하기?”
홍기도가 남궁원과 함송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타겟!”
“목표!”
“이상형?”
순간 홍기도와 남궁원이 동시에 함송희를 바라보았다.
“아, 아니. 그냥 취향적으로요.”
“넌 가끔 진짜 무서워.”
“저것도 병이지.”
홍기도와 남궁원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답들이 재미있으시네요. 각자 이유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김유성 피디의 다음 질문에 함송희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멋있잖아요! 외모출중! 능력출중! 성격도 좋고, 유머러스하시기까지! 솔직히 너무 사기캐 아니에요?”
“그거……. 나 보고 말하지 말아 줄래? 대답해야 할 것 같잖아.”
“죄송합니다.”
“하하하. 표세인 부장님 멋있으시죠. 저도 처음 뵙고 놀랐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 팀은 어쩜 다들 선남선녀들만 모아놓으신 건지 모르겠네요.”
김유성 피디는 유들유들하게 분위기를 환기했다.
“저는 간단해요. 표세인 부장님, 일 정말 잘하시죠. 언젠가 부장님 못지 않은 개발자가 되는 것이 목표에요.”
“오, 그렇게까지? 듣기로는 남궁원 과장님께서는 이번 오행전기를 주도하실 정도의 에이스 개발자라고 하시던데, 그럼에도 표세인 부장님을 그토록 존경하십니까?”
“솔직히……. 괴물이죠.”
“괴물?”
“하하하! 하지만 나는 그 괴물에게 이번에 한방 먹이고 말거다!”
“한 방 먹여?”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그림 좀 나오는데?’
김유성 피디는 본능적으로 시청률 떡상의 기운을 감지했다.
“그런데 정말 가능하겠냐. 솔직히……. 후우.”
남궁원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갑자기 한숨이냐. 같은 편 힘 빠지게.”
“힘은 네가 빼고 있겠지. 표세인 팀장님은 벌써 그래픽팀에 요청서까지 보낼 정도로 팍팍 진행하시는데, 우리는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있냐?”
“괜찮아. 우리도 곧 기세를 탈 거야.”
“그러고보니, 지난번에 말한 비밀병기는 뭐야?”
“아! 맞아. 그런 것도 있었죠? 뭐에요?”
“……아직은 말 할 수 없어.”
홍기도는 그 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
*
*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쉬린칭의 목소리는 당황과 장난기가 반쯤 섞여 있었다.
“무빙에게 들었으면서 뭘 호들갑이야.”
-그래도 직접 연락할 줄은 몰랐지.
쉬린칭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화면속에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홍기도를 주시했다.
-상황이 녹록치는 않은 가봐?
“상대가 상대잖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너라면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방법있지. 다만 아주 여러 방법을 총동원해야하는 것이 문제지.”
-그거면 확실한 승률은 있는 거고?
“과장 조금 보태면 40%?”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해도 승률은 오할을 넘지 못하리란 것이 솔직한 예상.
이것이 홍기도가 실감하는 표세인과 자신의 차이였다.
오랫동안 표세인을 지켜봐 왔기에 얼추 그를 흉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그것이 완벽한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표세인이라면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릴까?
표세인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이 모든 생각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가 떠올리는 표세인이란, 오직 그의 머릿속에서 그려낸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어느정도만 해내도, 표세인 부장은 순수하게 너를 칭찬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 맞는 말이다.
그것 역시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도 노력하고 있어.”
-?
“나름대로 여러모로 박차를 가하고는 있는데……. 차이가 점점 벌어져.”
-그 차이를 좁히고 싶다고?
“너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표세인 부장 곁에 얼마나 쟁쟁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줄 알아?”
그동안 입박에 내지는 않았으나, 홍기도 역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더랬다.
-듣기로는 맥베스의 에이스급 인사들은 전원 표세인 부장의 손아귀에 있다고 들었어. 일반적으로 경영진도 두려워할 정도라고…….
물론 그 표세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조연아의 혼약자.
당연히 문제될 여지는 없다.
그리고 어차피 이 경쟁에 그런 상황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
순수한 개발자끼리의 경쟁.
“도와줘.”
-……!
쉬린칭은 화면에 드러나지 않은 오른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이 얄미운 남자가 자신에게 손을 벌렸다.
오랜만남 동안 단 한번도 없었던 일.
이 모든 것조차 표세인이라는 남자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점이 다소 복잡한 심정이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애초에 홍기도부터가 상식 밖의 사람이다. 그와의 관계에서 상식적인 상황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그가 자신에게 손을 벌렸다는 것.
-뭐가 필요하지?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 내가 표세인 부장을 놀라게 할 수 있게만 한다면 뭐라도 좋아.”
대체 어째서 이렇게까지 표세인이라는 남자에게 연연하는가?
대단한 남자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애초에 홍기도라는 인물의 사고가 워낙 일반적이지 않다보니, 호기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하나는 들어야 겠어.
“뭔데?”
-일종의 계약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대체 왜 그렇게까지 표세인에게 집착하는 거지?
“그걸 꼭 말해야해?”
-들어야겠어.
쉬린칭의 태도는 단호했다.
“쯧……. 그게 조건이라는 거냐?”
-우리가 조건 없이 도와줄 사이는 아니잖아?
홍기도는 스스로 외통수에 걸렸음을 깨달았다.
은혜 갚는 홍켓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