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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기둥서방이 되었다-217화 (217/346)

217.

“이거 오랜만이야. 이제는 표대표님이라 불러드려야 하나?”

좀비로얄의 대표인 박영수를 만나는 것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그냥 부장이라고 불러주세요.”

이제는 나도 어엿한 기둥소프트의 대표가 되었기 때문인지, 박대표도 내 직위를 가지고 놀리는 것은 그만두었다.

“좀비로얄2 제작은 잘 되어가고 계신가요?”

“잘 된다기보다는……. 천천히 하고 있지.”

사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다. 당장 좀비로얄이 좋은 수익을 거두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운영에 집중하며 천천히 좀비로얄2를 준비중인 상황.

섣불리 새로운 타이틀에 올인하기 보다는 좀비로얄 운영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보자고 한 이유는 뭘까?”

이쪽도 대충 내가 방문한 이유를 짐작하는 모양.

박대표는 능글맞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새로 기획중인 게임의 기획서입니다. 이부분에 외주를 의뢰하고 싶네요.”

“외주라…….”

박대표는 내가 건넨 기획서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건물과 총기 리소스 제작의뢰인거네?”

역시 연륜이 있달까? 단번에 내 요청사항을 파악했다.

“네. 그 부분이라면 그쪽에 노하우가 있으니까요.”

“그렇긴하지.”

박대표는 느긋하게 등을 기대며 다리를 꼬고 발을 까딱거렸다.

뭔가 나 고민하고 있다~ 라고 시위하는 듯한 모습이다.

“좋습니다. 말씀해 보시죠.”

“응? 뭐가?”

“할 말 있으시잖아요.”

“역시, 눈치가 칼이야?”

아니,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나 할말 있음’이라고 행동하는데, 그걸 눈치 못채면 문제지.

“이래저래 아쉬워. 나로서는 최대한의 딜을 했는데도 대답도 못듣고…….”

박대표는 지난번 자신의 지분 절반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한 확답을 하지 않으며 슬그머니 발을 뺐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높게 평가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것은 함부로 덥썩 물수는 없는 제안이었다.

‘이제 약속은 끝났다.’

순간 조회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게다가 박대표는 맥베스 직원도 아니다.

나에게 이정도 호의를 보여준 사람에게는 슬슬 진실을 밝혀도 좋겠지.

“영수형.”

“갑자기 그렇게 부르니 좀 무서운데?”

“저는 맥베스를 떠날 수 없어요.”

“아니, 그게 이해가 안된단 말이지. 너 지금 기둥소프트 시장가치가 얼마인 줄은 아냐? 순이익으로만 따지면…….”

“돈 문제가 아니에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너 진짜로 금수저였냐?”

“그런게 아니라…….”

역시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언제나 애먼 곳에서 대화가 빙빙 돌게 된다.

“저 조연아 부회장과 결혼합니다.”

“결혼 축……. 지금 뭐라고?”

“저 조연아 부회장과 결혼한다고요.”

“조연아 부회장……. 내가 아는 맥베스의 부회장 조연아 맞아?”

조연아라는 이름의 부회장이 어디에 또 있는지는 몰라도, 내가 아는 부회장 조연아는 오직 우리 연아 뿐이다.

“네. 맞습니다.”

“…….”

“형님이 저를 좋게 봐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이것이 제가 형님과 정식으로 손잡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사외이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다할 생각입니다.”

“와……. 이 미친……. 와…….”

박대표는 거의 넋이 나가버렸다.

“아니, 진짜로?”

“네. 진짜로.”

“언제부터?”

“맥베스 입사 전부터입니다. 몇 년 됐어요. 그리고 저도 맥베스 입사하고 나서야 연아가 조회장님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내가 지금 재벌집 사위한테 딜을 하고 있던 거냐? 환장하겠네.”

박대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간 솔직히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조회장님이 엄명을 내리셨거든요.”

“그래……. 이정도면 대기업 스캔들 수준인데……. 조심할만 하지.”

박대표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세상은 얼굴인가…….”

“갑자기 그게 무슨?”

“아니, 조연아 부회장이 널 뭘 보고 만났겠어. 얼굴보고 만났을거 아냐. 니가 솔직히 당시에 돈이 있냐, 뭐가 있냐?”

“본인 말로는 얼굴 보다는 다른 이유라는데……. 어쨌든 운이 좋았죠.”

운이 좋았다.

정말로 그것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일단……. 축하한다고 해야겠지?”

“감사합니다.”

“일단 이거 비밀인거지?”

“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너희 쪽 사람들 기절하겠다.”

“저도 이제와서는 그게 좀 걱정이네요.”

사실 그것때문에라도 좀처럼 모두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연아와 이 부분에 대해서 논의를 해봐야겠지.

“그럼 이제 다시 일쪽으로 넘어가 볼까요?”

“야, 이런 핵폭탄을 날리고 갑자기 일 이야기를 하자고?”

“일단 일은 처리해야죠.”

“어차피 아까 말한 것들 외주 요청한다 이거지?”

“예.”

“알았어. 알았다고! 그거야 어차피 해줘야 하는 일이고, 나가자. 술이나 한잔 하자.”

“아니, 형도 원하시는 것 있던 거 아니에요?”

“없어! 그냥 심통 한 번 부리려던 거야. 그리고 이런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한잔 사야지. 물론 돈이야 니가 훨씬 많겠지만, 원래 술은 형이 사는 거잖냐.”

“그러시죠. 감사히 먹겠습니다.”

외주 요청도 흔쾌히 받아줬는데, 축하주까지 거절할 수야 없지.

나는 흔쾌히 박대표의 뒤를 따랐다.

*

*

*

“이거 리소스가 너무 많아.”

남궁원은 펜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클클. 지금 상태로는 그렇지. 하지만 원래 개발이란 조각과 같은 것 아닌가? 개발 여력에 맞춰서 조금씩 덜어내는 거지.”

조회장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긴 하죠. 그래도 좀 아쉬운데…….”

남궁원 역시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같이 쓸만한 리소스들이지만, 이걸 모두 넣어버린다면 개발 규모가 너무 비대해진다.

“아니. 그렇지 않지.”

“?”

“우리는 하나도 포기하지 않아.”

“이거 다하려면 지금 인원으로는 어림도 없어.”

“걱정마. 이미 해결했어.”

“해결했다고?”

“쉬린칭이구만. 클클클.”

조회장은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네. 맞아요. 쉬린칭이 협력해주기로 했어요. 앞으로 나올 추가 리소스 전체를 그쪽에서 모두 맡아 줄 거에요.”

“쉬린칭이 나선다면야 문제될 것 하나 없지.”

세계 1위 기업 카이두의 대주주인 쉬린칭이라면 이 정도 규모 리소스쯤은 식은 죽먹기나 다름이 없다.

“쉬린칭은 네가 뭐가 이쁘다고 이런걸 해준대?”

“내가 예뻐서라기보다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우리는 스케일로 승부한다. 요즘에는 인디게임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높은 퀄리티의 게임도 있잖아?”

“그거야 그렇지.”

게임 엔진의 발달로 인디개발사의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퀄리티의 게임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이 정도는 하지 않으면 표세인 부장님과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지.”

“정말로 표세인 부장님에게 한방 먹일 생각이구나.”

“당연하지! 우리 그러기 위해서 모인 거잖아!”

“클클, 뭐 그런 것도 있지.”

“뭐 욕심은 있지.”

표세인에게 굳이 한 방 먹이겠다. 보다는…….

자신들의 역량을 보여주고 싶다.

이 바람 하나만은 모두가 한마음 한 뜻!

“그러면 리소스 부담이 없다고 했으렷다?”

조회장은 슬쩍 입맛을 다셨다.

“예. 없습니다. 게다가 리소스만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모든 부분에 전폭적인 약속을 했어요. 그러니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얼마든지 제시해주세요.”

“그러면 우리는 멀티 시스템 넣을 수 있겠군.”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미 크래프팅에 핵앤슬래시 기능이 추가된 상황.

여기에 멀티요소가 추가된다면…….

이것만으로도 성공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

“클클. 이 부분은 내가 맡지.”

서버 관련은 특히 자신이 있었다. 한국 게임의 역사는 온라인과 함께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조회장에게는 무엇보다도 친숙한 요소였다.

“좋아! 드디어 우리도 하나씩 맞물려가기 시작하는 것 같지?”

“리소스만 해결된다면야 그렇지.”

남궁원이 드물게도 홍기도의 의견에 동의했다.

애초에 나쁘지 않은 기획이었다. 다만 너무 비대한 기획인 탓에 맨파워가 부족해서 소화할 수 없다는 것이 문재였다.

하지만 홍기도는 무려 쉬린칭이라는 치트키를 준비해왔다.

덕분에 정말로 기대해도 좋을 만한 프로젝트로 탈바꿈하게 된 것.

“좋아 이거라면 해볼 만해!”

홍기도는 확신했다.

*

*

*

박대표와 술을 마신 다음 날. 마침 주말이어서 나는 연아를 만났다.

“쉬린칭이 홍기도를 거들어 주기로 했다고?”

“응. 조금 전에 연락 왔어. 허락한 거 잘 한 거지?”

“그럼. 당연히 잘한 거지.”

무슨 게임이든 잘 만들면 결국에는 맥베스의 이익이 아닌가?

“그러면 멀티 들어가겠네.”

“멀티?”

“응. 애초에 그쪽 기획은 멀티 요소와 시너지가 좋은데, 아무래도 서버 작업은 체급이 체급이다보니, 엄두를 못 내잖아?”

“그렇구나.”

“아마 서버쪽은 회장님이 맡으시겠지.”

“아빠가?”

“유저 커뮤니티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이니까.”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니,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어쩐지 그렇게 흘러갈 것 같다는 느낌이다.

요즘 들어서 대충 그렇지 않나~ 싶은 느낌이 빗나가는 법이 없다.

띠링!

[표세인은 마왕의 혜안을 손에 넣었다.]

뭐랄까, 좀 건방진 표현이지만……. 모두가 내 손바닥 위에 있다는 느낌?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아무리 오빠라도 혹시 모를 일이잖아?”

“혹시는 없어.”

“없다고?”

재수없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럼 다행이네. 아, 이제 하는가 보다.”

연아가 자세를 고쳐잡았다.

우리는 그간 촬영한 다큐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호텔방 쇼파에 앉아서 우리는 주전부리를 하나씩 손에 쥐었다.

“어? 잠깐 이거 뭔가…….”

“원래 이런 느낌이 아니지 않나?”

일반적인 다큐의 인트로 대신 처음부터 복도를 걷는 내 뒷모습이 화면을 가득채웠다.

[유저분들게 즐거움을 드린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즐거운 것을 함께 즐기자고 생각할 뿐이죠.]

야……. 이거 생각보다 너무 부끄러운데?

“말 잘하네~”

연아는 우습다는 듯이 깔깔거렸다.

[좀비로얄, 깨비몬, 오행전기까지! 손대는 프로젝트마다 흥행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스타개발자, 표세인! 과연 그는 동료들에게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표세인 부장님이요?]

남궁원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얘는 좀 많이 긴장했네.

[솔직히……. 괴물이죠.]

“괴물이래! 아하하하! 너무 웃겨.”

그래……. 둘 중에 하나라도 웃을 수 있으면 됐지.

남궁원의 멘트에 연아는 자지러지듯 웃다가 쇼파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연아가 이렇게까지 웃는 것을 보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

[하하하! 하지만 나는 그 괴물에게 이번에 한 방 먹이고 말 거다!]

이번에는 홍기도 녀석이 나서서 헛소리를 늘어 놓았다.

“어머, 쉬린칭에게 메시지왔어. 쉬린칭도 이거 보나봐. 홍기도 과장 화면발 잘 받는다고 하네.”

“벌써 그렇게 친해졌어?”

“응. 나름. 아참, 나 쉬린칭에게 우리 이야기 했어.”

“아, 그래? 생각보다 엄청 가까워졌나보네?”

“응. 어쩐지 좀 통하는 느낌이 있더라고.”

그 말도 맞겠지만, 사실 요즘 연아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부회장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한 치의 허점도 보일 수 없다는 듯이 날을 세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조회장의 후계자로 낙점되었고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어쩌면 이것이 연아의 본래 분위기일 것이다.

[추정가치가 수조원이 넘는 비상장회사를 쥐고 있는 국내 게임 업계의 기린아.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한다.]

“어? 이렇게 끝난다고?”

분명히 다른 회사의 개발자들과 함께 나오는 것 아니었나?

“이건 거의 오빠 화보집이네.”

“아니, 대체 무슨 의도로 이걸 이렇게…….”

때마침 스마트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저 김유성 피디입니다. 혹시 지금 보셨습니까?

“네. 영상 잘 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대체…….”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슨?”

-예능 출연 한번 하시죠.

예능? 갑자기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새롭게 출시하시는 게임에 대한 홍보도 팍팍 해드리겠습니다. 원래 연예인들도 신곡이나 신작 홍보차 출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우선 회사에 문의를…….”

순간 연아가 두 팔을 들어 커다란 원을 그렸다.

‘공짜 홍보는 무조건 받아야지!’

아, 이번엔 제가 제물이었군요?

그걸 이제 알았네?

MSG 같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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